[시골살이 일기 53] 뜀박질
― 놀고 일하며 쉬는 곳
나는 국민학교를 다닐 적까지 ‘집’이 어떤 곳인 줄 생각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만큼 내 어버이가 살림을 알뜰살뜰 꾸리셨기에 즐겁게 뛰놀았구나 싶습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집’을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여섯 해 다니는 동안 새벽 다섯 시 반이나 여섯 시 사이에 집을 나섰고, 학교에는 열한 시까지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걷거나 버스를 타느라 길에서 보내는 때를 빼니, 중·고등학교 여섯 해에 걸쳐 ‘집’이라는 곳에 머무는 때는 고작 다섯 시간 즈음이었습니다.
하루 다섯 시간, 게다가 이 다섯 시간이란 누워서 자는 때라면, 집은 어떤 곳일까요. 집이 집다울 수 있을까요. 짐은 그저 “자는 데”을 뿐이고, 학교가 학교이면서 집 구실을 해야 하는 셈 아닐까요.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머물지만, 학교는 학교 노릇도 집 구실도 하지 않습니다. 학교는 오직 입시지옥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슬기나 즐거움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입니다. 사람이 기쁘게 웃고 어깨동무하는 슬기를 보여주지 않는 학교입니다. 이웃이 서로 아끼고 동무가 서로 사랑하는 길을 밝히지 않는 학교입니다. 게다가 이런 학교에서는 뛰거나 놀지 못합니다. 수업을 받으며 웃어도 안 되고, 쉬는 때라서 노래를 해도 안 됩니다. 허울은 ‘학교’이지만 속내는 ‘감옥’과 같습니다.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집’을 생각합니다. 집은 어떤 모습일 때에 집이 될까요. 집이 모인 마을은 어떤 빛일 때에 마을이 될까요. 그저 여러 집이 모이면 마을이지 않습니다. 집은 집답게 예뻐야 하고, 마을은 마을답게 사랑스러워야 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웃고 떠들면서 노래할 수 있을 때에 집입니다. 농약바람이 아닌 풀바람이 흐르면서 풀내음이 싱그러울 때에 마을입니다. 나무가 우거지면서 나무그늘과 나무노래가 감돌 때에 집이면서 마을입니다. 함께 놀고 함께 일하며 함께 쉬는 곳이 집이 되겠지요.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이야기꽃 피우는 데가 집이 될 테지요.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