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빠도 건너뛸 수 없는 기저귀 빨래

 


  아무리 바빠도 기저귀 빨래는 건너뛸 수 없다. 여느 빨래는 좀 건너뛴다 하더라도 기저귀 빨래만큼은 늘 꼬박꼬박 해야 한다. 두 아이 자라는 동안 두 아이 오줌기저귀와 똥기저귀는 날마다 수없이 빨래했고, 두 아이 젖물리기 끝나고 난 뒤에는 곁님 핏기저귀 빨래를 다달이 한다. 여러모로 일이 몹시 바빠 아이들한테 밥을 제대로 차려 주지 못한 나머지 라면이나 국수만 삶아서 주더라도, 기저귀 빨래는 건너뛰지 못한다. 엉덩이도 너무 아프고 빨래를 미룰 수도 없어, 씻는방에 쪼그려앉아 핏기저귀 아홉 장을 빨면서 며칠 미룬 빨래꾸러미를 복복 비빈다.


  쪼그려앉아 비빔질을 하는 데에도 엉덩이와 허벅지가 아프다. 그래도 어깨가 결리지 않으니 고맙다. 어깨가 결릴 적에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누울 수 없었다. 이제는 엉덩이가 아프니 이리 엎드리다가 저리 엎드리곤 하는데, 허벅지까지 쑤시니 엎드리더라도 힘들고, 모로 누워도 뻐근하다.


  잘 비비고 헹구어 물기를 짠 핏기저귀 아홉 장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햇볕이 포근하다. 곧 삼월이 다가온다고 느낄 만하다. 해가 퍽 높아 이제는 처마 안쪽으로 잘 깃들지 않는다. 겨울에는 해가 꽤 낮아 마루로 햇볕이 깊이 들어온 터라, 온도가 낮아도 집안이 퍽 따스했다면, 봄이 가까운 탓에 해가 높다 보니 한낮에는 마루로 아예 햇볕이 스미지 못한다. 삼월을 지나 사월쯤 되어야 비로소 집안에 따스한 기운이 퍼지겠구나 싶다.


  처마란 참 대단하구나. 철 따라 햇볕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구나. 여름에는 시원하도록 하고 겨울에는 포근하도록 하는 처마로구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처마를 맨 처음 누가 떠올렸을까.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뿐 아니라 핏기저귀도 햇볕에 말려야 잘 마른다. 햇살을 듬뿍 머금은 기저귀는 우리 몸에 따스하게 감긴다. 봄을 부르는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빨래마다 스며든다. 푸릇푸릇 돋는 봄꽃이 앞다투어 빨래한테 푸른 숨결을 나누어 준다. 우리 집 동백꽃도 곧 꽃망울 터뜨리겠지. 4347.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개를 생각한다

 


  떠돌이 개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지 이레가 된다. 오늘은 아침부터 떠돌이 개가 어디론지 마실을 가고는 저녁 늦도록 들어오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어디를 돌아다닐까. 엉뚱한 사람을 잘못 따라가다가 붙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저녁에 두 아이를 재우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문득 큰아이가 “보라야, 누나가 개 이름 ‘아오’라고 지었다.” 하고 말한다. 네가 이름을 지어 주네 하고 생각하다가 왜 ‘아오’라고 지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큰아이가 잠자리에서 온갖 이야기를 조잘조잘 하기에 가만히 귀여겨듣기만 한다. 너는 어떤 마음으로 떠돌이 개한테 이름을 지어 주었니? 너는 어떤 눈길로 떠돌이 개를 바라보니? 너는 어떤 사랑으로 떠돌이 개를 쓰다듬고 안으며 아껴 주니?


  떠돌이 개가 따뜻할 때에 먹기를 바라며 밥 한 그릇 덜었지만, 밥이 식도록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밤이 깊어 비가 그치면 슬그머니 찾아오려나. 아무쪼록 어느 곳에서든 따사로이 잠을 자고 배부르게 밥을 먹으면서 시골자락 밤과 아침과 낮을 고이 누릴 수 있기를 빈다. 한참 떠들던 아이는 어느새 조용하다. 잠들었구나. 4347.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래오래 자는 작은아이

 


  자동차로는 멀지 않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자면 사십 분쯤 걸리는 곳에서 사는 이웃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우리 집까지 온 김에 그분 짐차를 얻어타고 그분 사는 마을까지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간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자동차를 얻어타니 신난다. 그분 집 둘레에서 개구지게 뛰어노니 또 신난다. 두 아이 모두 얼마나 신나게 노는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작은아이는 이내 곯아떨어졌다. 삼월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해가 길어지니, 다섯 시에도 아직 햇살은 곱고 따사로운데, 작은아이는 다섯 시를 살짝 넘긴 때부터 잠들어 일곱 시에도 여덟 시에도 일어나지 않는다. 두 아이 저녁을 차려야 할 텐데 작은아이가 안 깨어나니 큰아이 저녁만 차린다. 곧 일어나겠지 하고 생각하며 작은아이 밥그릇에도 밥을 담는다. 만화영화를 틀면 이 소리에 깰까 싶어 틀지만 꼼짝하지 않는다. 작은아이는 이튿날 아침까지 내처 잠들었다. 이튿날에도 저녁 여섯 시를 넘기니 시들시들하다. 얼마나 힘을 쏟아 놀았기에, 이틀에 걸쳐서 몸을 쉬어야 할까. 대단하구나. 아이들이 놀이에 쏟는 힘이 참 놀랍구나. 놀면서 자라고 놀이로 크는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는다. 아이들은 곯아떨어지도록 놀아야 하고, 아이들은 밥조차 잊으면서 놀아야 씩씩하게 자란다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저녁밥, 밤밥, 새벽밥, 아침밥

 


  엊저녁에 아이들 저녁밥을 차려 줄 즈음 마당을 살피니, 떠돌이 개가 온데간데없다. 어디로 갔을까. 저녁을 좀 늦게 주는가 싶어 먹이를 찾으러 마실을 갔나. 여덟 시 사십 분 즈음에 아이들 재울 때까지 떠돌이 개는 안 보인다. 아이들 새근새근 재우고 나서 열 시 즈음 살며시 일어나 돌아볼 적에도 안 보인다. 그러다가 열두 시가 넘을 무렵 비로소 본다. 너 밥은 먹고 다니니? 틀림없이 굶었겠지? 밤 열두 시에 국을 뎁혀서 개밥을 차려 마당에 내려놓는다.


  새벽에 일어나 마당을 살피니 밥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배고팠구나. 그러게, 밥때에 맞춰 집에 있어야지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다가 밥을 다시 차리게 하니.


  새벽에 방에 불을 넣으면서 쌀을 헹군다. 엊저녁에 아이들 밥을 차려 주면서 비운 냄비에 누런쌀을 미리 불렸고, 아침에 물갈이를 한다. 두어 시간 흐르면 아이들은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날 테고, 새삼스레 아침밥 차리느라 부산을 떨어야 하리라. 어제 작은아이가 그림책에 나온 이쁘장하게 보이는 밥을 곁님한테 보여주면서 “이것 먹고 싶어.” 하고 말했다는데, 오늘 아침은 눈으로 보기에도 예쁜 반찬을 차려서 밥상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4347.2.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배고픈 아이들한테 밥을

 


  배고픈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준다. 큰아이는 이제 아침에 슬슬 배가 고프다 싶으면 아버지한테 “아버지, 밥 먹고 싶어요.” 하고 말한다. 고맙다. 예전에는 “과자 먹고 싶어요.”라든지 “빵 먹고 싶어요.” 하고 말했는데, 과자나 빵은 배를 불리지 못한다고, 튼튼하게 자라고 씩씩하게 노는 힘은 밥을 먹으면서 얻는다고, 밥을 맛나게 먹고 나서 과자나 빵을 고맙게 먹을 때에 즐겁다고 얘기하고 또 얘기했는데, 이제 이 말을 어느 만큼 받아들여 주는구나 싶다.


  쌀은 어젯밤에 불렸으니 물갈이를 해서 안치면 된다. 큰아이 말을 듣고서 밥을 안친다. 달걀을 헹구어 불을 올린다. 어떤 국을 끓일까 생각해 본다. 콩나물을 헹군 뒤 감자를 썬다. 무와 양파를 썬다. 달걀을 삶으려 하다가 한 알을 깼다. 쯔쯔 혀를 차면서 콩나물국에 달걀 한 알 풀기로 한다. 큰아이는 밥을 먹다가 “왜 국에 달걀을 했어?” 하고 묻는다.


  밥상에 노란무를 먼저 썰어 올린다. 배고픈 두 아이는 노란무부터 우걱우걱 집어서 먹는다. 그런 뒤 국그릇에 국을 담아 올린다. 노란무로는 배가 찰 턱이 없는 두 아이는 국물과 콩나물을 건져서 먹는다. 이제 밥을 퍼서 내민다. 두 아이는 조용히 수저질을 한다. 풀과 양배추를 썰어서 간장으로 무친 풀버무리를 접시에 담아 올린다. 국을 끓이며 데운 곤약을 네모낳게 썰어서 올린다. 우리 집에 깃든 떠돌이 개한테 밥을 국에 비벼서 마당에 내려놓는다. 김치를 썰어서 다른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린다. 히유, 한숨을 돌리면서 바라보니 아이들은 밥을 꽤 먹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곁에 없는 탓인지, 풀버무리는 얼마 안 집었네. 바야흐로 내 밥을 푸고 국을 떠서 작은아이 옆에 앉는다. 작은아이와 큰아이가 풀을 집어먹도록 챙긴다. 떠돌이 개한테 소시지나 물고기묵을 썰어서 주면서, 두 아이한테도 소시지와 물고기묵을 썰어서 준다. 무랑 함께 먹으라고 이른다.


  두 아이가 밥을 거의 비울 무렵, 삶은달걀을 내준다. 두 아이가 국그릇을 다 비웠기에 국그릇에 달걀을 한 알씩 올린다. 두 아이는 스스로 예쁘게 달걀을 깐다. 달걀과 함께 밥 한 톨 안 남기고 모두 비운다. 배가 부른 아이들은 마당으로 내려간다. 큰아이는 떠돌이 개를 품에 안고 마당을 이리저리 달린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개를 안으니, 개가 덜 무서워 살금살금 마당으로 내려선다. 동생이 개를 무서워 하니, 누나가 개를 붙잡고 동생 쪽으로 못 가게 막는다.


  아이들 노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설거지를 한다. 잘 노네. 어여쁜 아이들. 4347.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4-02-11 12:08   좋아요 0 | URL
어여쁜 밥을 마련하시는 마음이 저까지 맛있는 밥, 고마운 밥을 저절로
생각하게 하네요~ 이젠 떠돌이 개까지 함께살기님이 마련해주신 고마운 밥을 먹구요.^^
그나저나, 오늘은 저도 콩나물국을 끓여야겠습니다~*^^*

숲노래 2014-02-11 12:27   좋아요 0 | URL
하루가 아주 길어요.
떠돌이 개가 찾아온 뒤로
작은아이가 마당에 좀처럼 못 내려서다가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마당에서도 함께 노는구나 싶어요.

오늘 하루도 맛난 밥과
즐거운 이야기로
하루 알차게 누리셔요~~~~~~

BRINY 2014-02-11 12:18   좋아요 0 | URL
어여쁜 아이들의 모습이 절로 그려집니다.

숲노래 2014-02-11 12:27   좋아요 0 | URL
어여쁜 아이들은
이 아이들 바라보는 사람들한테도
어여쁜 빛을 물려주니
아주 사랑스럽답니다~

착한시경 2014-02-11 13:22   좋아요 0 | URL
읽고 나니...너무 배고파지네요~ 소박하지만 정겨운 밥상이 그립지만...전 아마도 대충 떼우는 점심을 먹어야 할 듯 싶네요~ ^^ 즐거운 하루 되세요~

숲노래 2014-02-12 19:45   좋아요 0 | URL
살짝 때우더라도
즐겁고 맛나게 드셔요~~

드림모노로그 2014-02-11 16:34   좋아요 0 | URL
아이들과 알콩달콩 행복한 식사시간이 눈앞에서 절로 그려지네요 ^^ ~

숲노래 2014-02-12 19:46   좋아요 0 | URL
아이들과 밥을 먹다 보면
마음도 생각도 보드랍게 풀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