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아이들한테 밥을

 


  배고픈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준다. 큰아이는 이제 아침에 슬슬 배가 고프다 싶으면 아버지한테 “아버지, 밥 먹고 싶어요.” 하고 말한다. 고맙다. 예전에는 “과자 먹고 싶어요.”라든지 “빵 먹고 싶어요.” 하고 말했는데, 과자나 빵은 배를 불리지 못한다고, 튼튼하게 자라고 씩씩하게 노는 힘은 밥을 먹으면서 얻는다고, 밥을 맛나게 먹고 나서 과자나 빵을 고맙게 먹을 때에 즐겁다고 얘기하고 또 얘기했는데, 이제 이 말을 어느 만큼 받아들여 주는구나 싶다.


  쌀은 어젯밤에 불렸으니 물갈이를 해서 안치면 된다. 큰아이 말을 듣고서 밥을 안친다. 달걀을 헹구어 불을 올린다. 어떤 국을 끓일까 생각해 본다. 콩나물을 헹군 뒤 감자를 썬다. 무와 양파를 썬다. 달걀을 삶으려 하다가 한 알을 깼다. 쯔쯔 혀를 차면서 콩나물국에 달걀 한 알 풀기로 한다. 큰아이는 밥을 먹다가 “왜 국에 달걀을 했어?” 하고 묻는다.


  밥상에 노란무를 먼저 썰어 올린다. 배고픈 두 아이는 노란무부터 우걱우걱 집어서 먹는다. 그런 뒤 국그릇에 국을 담아 올린다. 노란무로는 배가 찰 턱이 없는 두 아이는 국물과 콩나물을 건져서 먹는다. 이제 밥을 퍼서 내민다. 두 아이는 조용히 수저질을 한다. 풀과 양배추를 썰어서 간장으로 무친 풀버무리를 접시에 담아 올린다. 국을 끓이며 데운 곤약을 네모낳게 썰어서 올린다. 우리 집에 깃든 떠돌이 개한테 밥을 국에 비벼서 마당에 내려놓는다. 김치를 썰어서 다른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린다. 히유, 한숨을 돌리면서 바라보니 아이들은 밥을 꽤 먹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곁에 없는 탓인지, 풀버무리는 얼마 안 집었네. 바야흐로 내 밥을 푸고 국을 떠서 작은아이 옆에 앉는다. 작은아이와 큰아이가 풀을 집어먹도록 챙긴다. 떠돌이 개한테 소시지나 물고기묵을 썰어서 주면서, 두 아이한테도 소시지와 물고기묵을 썰어서 준다. 무랑 함께 먹으라고 이른다.


  두 아이가 밥을 거의 비울 무렵, 삶은달걀을 내준다. 두 아이가 국그릇을 다 비웠기에 국그릇에 달걀을 한 알씩 올린다. 두 아이는 스스로 예쁘게 달걀을 깐다. 달걀과 함께 밥 한 톨 안 남기고 모두 비운다. 배가 부른 아이들은 마당으로 내려간다. 큰아이는 떠돌이 개를 품에 안고 마당을 이리저리 달린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개를 안으니, 개가 덜 무서워 살금살금 마당으로 내려선다. 동생이 개를 무서워 하니, 누나가 개를 붙잡고 동생 쪽으로 못 가게 막는다.


  아이들 노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설거지를 한다. 잘 노네. 어여쁜 아이들. 4347.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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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2-11 12:08   좋아요 0 | URL
어여쁜 밥을 마련하시는 마음이 저까지 맛있는 밥, 고마운 밥을 저절로
생각하게 하네요~ 이젠 떠돌이 개까지 함께살기님이 마련해주신 고마운 밥을 먹구요.^^
그나저나, 오늘은 저도 콩나물국을 끓여야겠습니다~*^^*

숲노래 2014-02-11 12:27   좋아요 0 | URL
하루가 아주 길어요.
떠돌이 개가 찾아온 뒤로
작은아이가 마당에 좀처럼 못 내려서다가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마당에서도 함께 노는구나 싶어요.

오늘 하루도 맛난 밥과
즐거운 이야기로
하루 알차게 누리셔요~~~~~~

BRINY 2014-02-11 12:18   좋아요 0 | URL
어여쁜 아이들의 모습이 절로 그려집니다.

숲노래 2014-02-11 12:27   좋아요 0 | URL
어여쁜 아이들은
이 아이들 바라보는 사람들한테도
어여쁜 빛을 물려주니
아주 사랑스럽답니다~

착한시경 2014-02-11 13:22   좋아요 0 | URL
읽고 나니...너무 배고파지네요~ 소박하지만 정겨운 밥상이 그립지만...전 아마도 대충 떼우는 점심을 먹어야 할 듯 싶네요~ ^^ 즐거운 하루 되세요~

숲노래 2014-02-12 19:45   좋아요 0 | URL
살짝 때우더라도
즐겁고 맛나게 드셔요~~

드림모노로그 2014-02-11 16:34   좋아요 0 | URL
아이들과 알콩달콩 행복한 식사시간이 눈앞에서 절로 그려지네요 ^^ ~

숲노래 2014-02-12 19:46   좋아요 0 | URL
아이들과 밥을 먹다 보면
마음도 생각도 보드랍게 풀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