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7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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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꿈
 [만화책 즐겨읽기 119] 데즈카 오사무, 《불새 (7)》

 


 나는 어른들이 아이한테 사탕 주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내가 이제 사탕을 안 먹을 뿐 아니라, 사탕이 무엇으로 만드는가를 아니까 못마땅하게 여기겠지요. 돌이키면, 나도 어릴 적에는 사탕 먹기를 좋아했고, 누군가한테서 사탕을 받으면 기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탕을 여럿 잇달아 먹으면 입안이 싸하면서 아파요. 밥맛이 나지 않습니다. 사탕만 더 먹고 싶지, 밥을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라면 이 사탕이 몹시 끔찍할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사탕 한 알이면 울던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거나 말 안 듣는 아이 말을 듣게 하기도 하니까, 한숨을 쉬면서 사탕을 주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사탕 아니면 아이를 어찌 달래나 걱정할는지 모르지만, 사탕 아니고도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는 먹을거리는 많아요. 아이 입맛은 어버이 입맛이요, 아이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는 어버이부터 좋아하는 먹을거리인 만큼, 어버이부터 삶과 넋과 밥을 찬찬히 가다듬거나 고치면서 아이와 좋은 삶과 넋과 밥을 헤아리면, 사탕에서 얼마든지 홀가분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화학조합물인 설탕이 아닌 엿을 먹을 수 있고, 사탕수수 졸여 굳힌 덩어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돼지감자를 먹을 수 있고, 배나 능금을 먹을 수 있어요. 당근이나 푸성귀를 물로 짜서 먹을 수 있어요. 우리 식구 땅뙈기를 마련해서 우리 식구가 밭을 일구어 우리 식구 먹을거리를 손수 마련할 수 있습니다. 무 한 뿌리 배추 한 포기 시금치 한 포기를 내 밭에서 거두어 먹는 맛을 아이와 어른이 다 함께 느낀다면 입맛과 밥맛은 새롭게 거듭나리라 믿어요.


- “개는 무슨 얼어죽을! 모두들 하나같이 너저분한 잡동사니잖아! 당신들도 마찬가지야!” “역시 그렇군, 레오나. 안됐지만 그 원인은 인공 두뇌에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소뇌 전부와 대뇌 대부분을 인공 두뇌로 교환한 건 전례가 없으니.” “결국 난 실험대상이었던 건가요?” “넌 완전히 죽어 있었어. 그 육체를 부활시키려면 의학상 새로운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31쪽)
- “꽃이다! 그림은 무기물이라 그런가? 살아 있는 꽃은 꽃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림 속의 꽃은 제대로 보여!” (37쪽)


 나는 어른들이 아이한테 과자 주는 일을 괘씸하게 여깁니다. 이제 나는 과자를 따로 사다 먹지 않고 즐기지 않으니까 괘씸하다 여긴다 할 텐데, 곰곰이 돌이키면 나도 어린 나날 과자를 꽤나 좋아해서 자주 먹었습니다. 어린 나날 과자를 무엇으로 만드는가를 살피지 않았어요. 어른들도 과자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만드는가를 따지지 않았어요. 나들이를 가면 으레 과자를 한 부대 장만해야 하는 줄 알고, 바깥을 돌아다니며 과자를 사다 먹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바깥으로 나들이를 다니면 꼼짝없이 과자를 사다 먹을밖에 없습니다. 집에서 따로 도시락을 마련하거나 주전부리를 챙기지 않으면, 아이도 어른도 가게에서 손쉽게 돈을 치러 사는 과자에 손이 가고야 맙니다.

 

 너무 마땅한데, 과자를 사다 먹으면 비닐 쓰레기가 나옵니다. 집에서 도시락이나 주전부리를 챙기면 통에 담을 테니 쓰레기가 없습니다. 도시락 통은 잘 씻어서 말리면 얼마든지 다시 씁니다. 썩 좋지 못한 화학조합물 잔뜩 넣은 과자를 돈까지 비싸게 치러 사다 먹으면, 얼마 안 되는 알맹이를 비우고 나서 쓰레기가 풀풀 날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집과 일터를 바지런히 오가야 하고, 이래저래 아이와 마실 다니는 일이 잦아야 하니까, 참말 온누리가 새 물건과 새 쓰레기로 그득그득 넘칩니다.

 

 사탕이랑 과자는 한쪽에서는 혀와 마음과 생각을 녹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끝없이 쓰레기를 늘립니다. 사탕 공장과 과자 공장에서는 물과 전기를 잔뜩 먹으면서 물과 땅을 더럽히는 일을 되풀이합니다.


- “그 회사로 전화해도 될까?” “안 돼요. 로봇은 작업 중에는 불필요한 행동을 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근무 시간이 끝나고 만나면 되잖아.” “일이 끝나면 에너지가 스톱되어 창고로 들어갑니다.” (44쪽)
- “당신, 그 로봇과 이 사진이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나?” “전혀 달라요.” “그렇게 보는 건 당신뿐이야, 레오나 씨. 우린 아무리 봐도 똑같이 보인단 말이야.” “치히로를 모욕하는 녀석은 내가 용서하지 않아!” (55쪽)


 아름다운 꿈을 바라보는 삶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름다운 사랑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은 어른들이란 어떠한 삶을 바라보며 어디에서 무럭무럭 자라는가요. 아이들은 어른들한테서 어떠한 사랑을 물려받으며 어느 길을 씩씩하게 걷는가요.

 

 국가경쟁력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이름 드날리거나 나라사랑 내세우며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삶을 사랑하고 싶기에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와 함께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하루하루 사랑하는 넋으로 지내고 싶으니 오순도순 살림을 일굽니다.

 

 온 사랑을 담아 짓는 밥입니다. 온 믿음을 실어 짓는 옷입니다. 온 기쁨을 누리며 짓는 집입니다.

 성공이나 실패라는 틀로 나누지 못하는 삶입니다. 명예나 권력이라는 울타리에 가둘 수 없는 삶입니다. 학벌이나 재산으로는 재지 못하는 기쁨이요 보람이며 사랑입니다.


- “치히로! 전혀 움직이질 않잖아! 대체 뭐 하는 거야?” “나, 괴로워. 괴로워. 아파. 너무 괴로워요.” “뭐라고?” “새로운 감정이 날 지배해서 지울 수가 없어요.” (62쪽)
- “정말 상쾌한 날씨군.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 (82쪽)
- “오, 하늘이여! 숲이여! 물이여! 공기여! 내 말 좀 들어 봐!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인간들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너희들 자연계의 요정들이라면 우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지?” (86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일곱째 권을 읽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사람답고, 삶이 얼마나 삶다우며, 사랑은 얼마나 사랑다이 누릴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가 얼크러지는 일곱째 권을 천천히 받아먹습니다.

 

 사람은 왜 태어나서 왜 살아갈까요. 사람은 왜 밥을 먹고 왜 아이를 낳을까요. 사람은 왜 짝꿍을 사귀고 왜 삶을 누릴까요.

 

 사람이 심는 나무는 무엇을 해야 나무답다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심는 꽃은 어떻게 피어야 꽃답다는 소리를 들을까요.

 

 냇물은 어떻게 흘러야 냇물답고, 멧자락은 어떤 모양새여야 멧자락다울까요. 바다는 어떻게 있어야 하고, 햇살은 어떻게 비추어야 할까요.

 

 어느 사람이든 어느 목숨이든 햇살과 흙과 물과 바람이 어우러져 태어납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깃들지 않으면 사람도 목숨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만들어 이룬다는 도시 물질문명에서는 햇살이나 흙이나 물이나 바람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사당에서 일하는 국회의원이 햇살을 받으며 일하는가요. 청와대 청소부나 국회의사당 영양사는 햇살이나 냇물이나 바람을 받으며 일하는가요. 시청이나 군청 일꾼은 어떠한 터전에서 일하는가요. 병무청이나 법원 일꾼은 어떠한 삶을 지으며 일하는가요.

 

 사람들은 누구나 ‘일’을 한다고 말하는데, 참말 ‘일’이란 무엇인가요. 돈을 버니까 일이 되나요. 돈을 벌 때에는 ‘돈벌이’이지, ‘일’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텐데요. 내 꿈을 싣고 내 사랑을 펼치며 내 삶을 누리는 일이 아니라, 하루하루 끼니를 잇는 돈벌이만 하면서, 우리 아이들한테까지 삶짓기 사랑짓기 사람짓기 아닌 돈벌이만 익히도록 내몰지 않나요.


- “넌 내가 돈을 주고 산 도구야. 이봐, 도구에게 무슨 권리가 있다는 거지?” (103쪽)
- “난 인간인가요?” “인간이다마다. 어엿한 인간이지.” “난 인간이 아니에요. 그러니 인생이라고도 할 수 없다구요!” “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내 몸의 60%는 인간이 아닌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그래, 인공 두뇌, 인조 세포, 인공 장기 …….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자네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만일 자동차가 부서져 고칠 때 반 이상을 전철 부품으로 간다면, 그건 과연 자동차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 “내 뇌의 반 이상과 소뇌는 전부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렇지.” “차라리 전부 갈아치우지 그랬어요?” “그러면 자네는 로봇이 되고 말아! 로봇이!” “그럼 차라리 로봇으로 만들어 주세요!” “말도 안 돼! 그럼 내가 인간을 부활시켰다는 의미가 없어지고 말잖아!” (177∼179쪽)


 아이들이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어른들부터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른들로서는 돈벌이에 얽매이면서 아이들만큼은 사랑스러운 꿈을 푸르게 꾸라고 이끌 수 없습니다. 어른들이 먼저 아름다이 살아갈 사랑스러운 꿈을 푸르게 꾸어야 합니다. 이 푸르고 너르며 싱그러운 길을 아이들 손을 잡으며 즐거이 걸어가야 합니다.

 

 함께 걸어가며 즐거운 길입니다. 함께 사랑하며 기쁜 삶입니다. 함께 밥과 옷과 집을 나누기에 보람찬 하루입니다.

 

 따사로운 기운 머금은 해님은 아침마다 찾아듭니다. 고맙게 하루를 비춘 해님은 곱게 저물면서 어두운 마을 밝게 보듬는 달과 별이 빛납니다. 바람은 차갑게 불다가도 포근하게 붑니다. 잎과 꽃은 겨울을 맞이하며 시들지만 봄을 맞이하며 푸르고 싱그러이 다시 돋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아이를 낳고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은 모든 사람과 목숨을 살찌우면서 모든 사람과 목숨을 고이 건사합니다. 서로 아끼고 서로 돌보며 서로 기대어 한삶을 누립니다. (4345.2.21.불.ㅎㄲㅅㄱ)


― 불새 7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4.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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