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
장성수 외 지음 / 눈빛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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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생활사박물관 사진찍기
 [찾아 읽는 사진책 54]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눈빛,2008)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사람들이 모여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눈빛,2008)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 머리말에는 “화호리(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 소재)는 마을 전체가 생활사박물관을 방불케 한다(5쪽).” 하고 적습니다. 참으로 마을 어디를 보나 ‘생활사박물관’과 같다고 느껴 이렇게 ‘읍 면 리’ 가운데 고작 리라 할 자그마한 마을 이야기를 책 하나로 묶으려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로 치면 ‘시 구 동’에서 동이라 할 만할 테지요. 그러면, 도시에서 조그마한 동 하나 이야기는 책 하나로 묶을 만할까요.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무엇이든 달라집니다. 누군가한테는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는 아주 작은 곳이지만,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간 사람한테는 너른 마당이거나 우주라 할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태어난 인천 남구 도화1동이 무척 조그맣다고 여길 수 있으나, 어린 내가 뛰놀기에는 동 하나 크기만 하더라도 몹시 큽니다. 어른이 된 내가 도화1동을 걸어서 돌아다니자면 몇 시간을 들이거나 며칠을 들여도 골목골목 누비지 못합니다. 신나게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몰거나 오토바이를 몰아야 몇 시간쯤 들여 골목골목 모두 누빌 만해요.

 

 

 

 신태인읍 화호리라는 시골마을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그마한 시골마을이라 하지만, 고샅과 들판과 멧자락을 두루 돌아다니며 느끼자면 퍽 오래 걸립니다. 아니, 하루에 걸쳐 다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날씨에 따라, 철에 따라, 달에 따라, 아침 낮 저녁에 따라 언제나 다른 빛깔과 모습과 내음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다른 빛깔과 모습과 내음이니, 언제나 다른 이야기가 태어나요.

 

 새삼스럽지 않습니다만, 온 나라 곳곳에 동사무소가 있고 면사무소가 있어요. 동사무소와 면사무소 일꾼이 있어요. 이들 동사무소랑 면사무소 일꾼이라면 동 한 곳이 흐르는 한해살이 이야기를 꾸준히 적바림하거나 갈무리해야지 싶습니다. 면 한 곳이 누리는 한해살이 꿈과 사랑을 찬찬히 적바림하거나 갈무리해서 해마다 책 한 권씩 내놓아야지 싶습니다.

 

 아마 여느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 ‘다 같은 아이’라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 같은 아이로 보이더라도, 다 다른 어버이가 낳아 다 다른 집에서 살아가요. 곧, 다 다른 아이는 다 다른 집에서 다 다른 삶을 누립니다. 이렇게 다 다른 아이들 이야기를 어버이 스스로 꾸준히 담는다면 다 다른 삶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참말 재미나며 눈부신 다 다른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사진이야기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을 읽으며 “1934년 화호농장 소작인 4백여 명이 정부와 농장주에게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정부나 농장측 모두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자, 소작인들은 그 이듬해인 1935년 5월에 다시 한 번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였다(51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 이야기는 1930년대 삶자락을 공무원이 적바림해 놓았기에 오늘날 학자들이 자료를 뒤적이며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놈들이 나쁜 짓을 어떻게 했냐고 하니 비가 오면 하수구를 그쪽으로 대 가지고 못살게 만들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팔게 만들고, 또 다른 집은 안 팔면 말을 그냥 마당에다 쨈며 놓고 그랬어. 말이 마당에 있는데 어떻게 살겄어? 그래서 나쁜 짓을 해 가지고 한국사람들을 다 쫓아낸 거야(주민 구술 1922년생,103쪽).” 하는 목소리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을 한 곳에서 오래오래 뿌리를 박으며 살아온 사람한테서 귀담아 들었으니 적바림할 수 있습니다. 따로 누군가 종이나 책이나 신문에 적바림하지 않았을 이야기라지만, 한 사람 삶에는 또렷하게 아로새겨진 이야기입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주세법은 최근까지도 유효한 채로 남아 있었다. 일본 식민정부가 한국인들의 생활 습관을 무시하고 술에 대한 국가통제를 했다는 것을 잊은 채 식민정책을 그대로 답습해 왔다(143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자료에 나오기도 하고, 마을 붙박이한테서 들을 수도 있겠지요. 이곳에도 저곳에도 깊디깊게 돋을새김한 삶자락입니다.

 

 마땅한 노릇이라 하겠습니다만, 신태인읍 화호리는 틀림없이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인천 남구 도화1동과 도화2동과 도화3동 또한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서울 종로구 평동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부산 중구 보수동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이 나라 어느 곳이나 생활사박물관입니다.

 

 

 

 일제강점기 발자국이 짙게 남았기에 생활사박물관이 되지 않습니다. 1950년대 발자국이 남았어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1970년대 발자국이 옅게 드리워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1990년대 발자국이 넓게 남아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2010년대 발자국이 갓 찍혔어도 생활사박물관입니다.

 

 바라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거든요. 바라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이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건져올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사랑을 느끼며 어깨동무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삶을 깨닫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는 누구나 ‘박물관사람’입니다. 김치를 담글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손빨래를 할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릴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호미로 땅을 쫄 줄 알아도 박물관사람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박물관’을 생각하면서 꿈꾸고 돌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박물관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꿈이랑 사랑을 물려주려고 하느냐에 따라, 우리 스스로 길어올릴 글·그림·사진·춤·노래·연극·영화는 사뭇 달라집니다. (4345.2.22.물.ㅎㄲㅅㄱ)


― 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글·사진,눈빛 펴냄,2008.12.2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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