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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 ㅣ 자연과 나 7
이우만 글.그림 / 마루벌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맑은 물과 바람이 없으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4] 이우만,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마루벌,2010)
창릉내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고 합니다. 창릉내는 다른 여러 냇물과 똑같이 사람들과 푸나무와 들짐승과 멧짐승 모두한테 고운 물줄기 구실을 하며 오래오래 흘렀겠지요. 그러나, 창릉내는 이 나라 거의 모든 냇물과 똑같이 백 해가 채 안 되는 짧은 나날 사이에 콘크리트 옷을 입었어요. 콘크리트 옷을 한 번 입혔다가 벗겼다고 하지만, 처음 모든 목숨들한테 시원한 물줄기로 스며들던 때처럼 구비구비 흐르지는 않습니다. 창릉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냇물에서 멱을 감거나 빨래를 하지 않아요. 이 냇물을 길어 밥을 하거나 그대로 마시지 못합니다.
.. 하지만 새들을 만나려고 늘 먼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도시에 있는 작은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 숲에서도 새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 (6쪽)
사람 몸뚱이는 거의 다 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사람만 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여우도 곰도 개도 고양이도 물로 이루어졌어요. 풀도 나무도 꽃도 이와 같아요. 복숭아도 능금도 포도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산 목숨은 모두 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에요.
곧, 물은 목숨이라 일컬을 만합니다. 물이 없으면 죽음이라 할 만합니다. 물을 마셔야 살고, 물로 이루어진 다른 목숨을 먹어야 내 목숨을 잇습니다.
.. 나는 물총새가 멋스러운 바위나 버드나무 줄기에 앉기를 바랐지만, 앉는 자리는 언제나 물총새 마음대로였어요. 물총새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흉한 콘크리트와 철근 줄기를 못마땅하게 보았을 테지만, 그곳은 이제 물총새와 내가 만나는 사랑방이 되었답니다 .. (25쪽)
아주 살짝이라 하더라도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숨이 끊어집니다. 바람을 들이마시며 숨을 잇는 사람이에요. 아주 조금이라 하더라도 몸에서 물기가 빠져나가면 목숨이 버티지 못합니다. 물을 마시고 물로 이루어진 밥을 먹으며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이에요.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먼저 좋은 바람을 마셔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물을 마셔야 합니다. 또한,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좋은 바람과 물과 밥을 얻는 좋은 터에 좋은 보금자리를 지어야 합니다. 좋은 보금자리에서는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함께할 좋은 짝꿍을 만나 좋은 살림을 지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안 좋을 때에는 삶이 버겁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어긋날 때에는 삶이 비틀거립니다.
돈은 없어도 돼요. 시원한 바람을 마실 수 있어야 해요. 자가용은 없어도 돼요.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해요. 아파트에서 안 살아도 돼요. 좋은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해요.
어른이 되어 어떤 일자리를 얻는다 할 때에는, 돈을 더 버는 자리로 찾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일자리라 하더라도, 내 몸을 살리고 살찌우는 바람과 물과 밥을 누리는 가장 좋은 마을에서 가장 좋은 보금자리를 꾸릴 만해야 합니다.
흐르는 냇물이 더러워 수도물이나 먹는샘물을 사다 마셔야 한다면, 수도물에까지 정수기를 달아서 써야 한다면, 이렇게 죽은 물을 마시는 사람 목숨은 얼마나 산 목숨이라 할까 궁금합니다. 날마다 부는 바람이 지저분해 재채기가 끊이지 않는다면, 공장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에 지저분해지는 바람으로 잿빛 하늘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한다면, 이렇게 죽은 바람을 마시는 사람 숨결은 얼마나 싱그러운 숨결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물과 바람이 아름답게 빛나지 않는다면 밥 한 그릇 빛나지 못합니다. 물과 바람이 좋지 않다면 밥 한 술 좋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좋은 삶을 누릴 때에 즐겁고, 좋은 사랑을 나눌 때에 기쁘며, 좋은 꿈을 이룰 때에 아름답다면, 자꾸자꾸 커지는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해요. 도시를 더 크게 키우는 일자리에 얽매이려는 어른들은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생각하며 좋은 쪽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해요.
.. 세차게 흐르던 창릉천 물살이 쌓아놓은 흙더미에 어느새 풀과 나무가 무성해졌어요. 창릉천의 아기 새들과 풀이 자라는 동안 뚝딱뚝딱 쿵쿵 요란한 소리를 내던 창릉천 옆 공사장에는 산자락을 가릴 만큼 아파트들도 자라났어요. 창릉천과 사이좋은 북한산 봉우리들 사이에 허락도 받지 않고 끼어든 회색빛 거인들이 참 밉살스러워 보이네요 .. (43쪽)
이우만 님이 빚은 그림책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마루벌,2010)를 읽습니다. 이우만 님은 창릉내에서 만난 물총새 한 마리 때문에 그림책을 그립니다.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만, 잣나무도 대나무도 미루나무도 감나무도 아닌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만 경기도 고양시 한켠 창릉내에서 물총새를 만났기 때문에, 벅찬 가슴으로 그림책 하나 내놓습니다.
아마, 물총새 아닌 딱새를 만났더라도, 딱따구리를 만났더라도, 직박구리를 만났더라도, 아니 흔하디흔하다는 참새를 만났더라도, 그림책 하나 얼마든지 빚을 만합니다. 더 이름나거나 더 예쁘다 하는 새를 만나야 그림책 하나 그리지 않아요. 그림쟁이 가슴으로 왈칵 다가오는 빛나는 사랑을 깨우치는 새 한 마리 만날 수 있으면, 이 새 한 마리를 좋은 삶동무로 여겨 좋은 이야기 담는 그림책 하나를 빚을 만해요.
..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하천가 자갈밭이지만, 꼬마물떼새 가족에게는 더없이 특별한 보금자리예요 .. (13쪽)
다만, 그림쟁이 이우만 님은 창릉내에서 물총새를 만나기는 했으나, 물총새가 나누어 주는 빛을 듬뿍 나누어 받지는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쓸모없”다고 여기는 냇물이면 어떤가요. 나 스스로 쓸모있다고 여기는 냇물이면 넉넉해요. 나 스스로 사랑스레 돌보는 냇물이면 즐거워요. 나 스스로 아름답게 바라보며 좋은 꿈을 싣는 냇물이면 흐뭇해요.
꼬마물떼새 식구들한테만 더없이 남다르다 할 보금자리가 아닙니다. 이 창릉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더없이 남다르다 할 터예요.
똑같이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창릉내 둘레 아파트하고 자동차 가득한 종로 큰길가 아파트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시멘트로 빽빽히 둘러친 한강이라 하더라도, 이 한강 둘레 아파트랑 깊은 밤에도 불빛 번쩍이는 압구정동 둘레 아파트랑 아주 달라요.
숨을 쉴 수 있는 터에 깃드는 집이어야 합니다. 물을 아끼면서 마시고, 바람을 누리면서 마실 만한 곳에 짓는 집이어야 합니다. 밥 한 그릇에 담은 너른 우주를 헤아립니다. 쌀알 하나마다 깃든 깊은 사랑을 돌아봅니다. 목숨을 먹으며 목숨을 지키는 내 삶인 만큼, 내 목숨이 이 땅에서 얼마나 맑게 빛나도록 하루하루 새 꿈을 짓느냐 하는 대목을 톺아봅니다.
생각하며 살아야 비로소 삶입니다. 참새이든 사람이든, 63빌딩에서 일하거나 지내더라도 밥(또는 모이)을 먹어야 목숨을 잇습니다. 신용카드로 끼니를 잇지 못해요. 밥을 먹어야 목숨을 이어요. 개미이든 사람이든,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일하거나 지내더라도 밥(또는 먹이)를 먹어야 목숨을 잇습니다. 은행계좌로 끼니를 잇지 못해요. 밥을 받아들여야 목숨을 빛내요.
그림책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는 물총새 한살이를 살가이 보여줍니다. 그림책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는 도시 한복판이 되고 만 자연 한자락에서도 고운 숨결을 잇는 들새 한삶을 예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자연 도감’ 틀에서 머뭅니다. 자연 도감 틀을 한 꺼풀 벗고는 ‘자연을 누리는 기쁨’을 들려주거나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웃음꽃을 밝힐 수 있으면 한결 좋았을 텐데 싶어요.
고마운 숨결인 창릉내일 테니까요. 반가운 삶터인 창릉내일 테니까요. 어여쁜 이야기꽃인 창릉내일 테니까요. (4345.2.25.흙.ㅎㄲㅅㄱ)
―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 (이우만 글·그림,마루벌 펴냄,2010.11.11./11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