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 숲노래 사랑꽃 2025.3.18.
숲집놀이터 293. 사람 쪽
우리말 ‘바보’는 워낙 ‘밥보’를 가리키는 낱말이고, ‘밥벌레’하고 같다. 바보·밥보는 ‘애벌레’라 여기는 마음을 담은 사랑스러운 낱말이다. “바보가 사랑스러운 말이라구?” 하며 놀라는가? 놀랄 일이 없다. ‘딸바보·아들바보’는 어떤 사랑인지 바라보자. ‘책바보·책벌레’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생각하자. ‘애벌레·밥벌레’는 아직 신나게 잎(밥)을 먹어야 할 때이다. 앞으로 철이 들기 앞서 실컷 놀고 실컷 자고 실컷 먹어야 한다. 그야말로 끝없이 먹고 쉬고 자고 놀다가 어느 날 비로소 고요히 잠들어 고치를 트는 애벌레이다. 고치에서 한참 자는 동안 풀빛몸을 녹이고, 바야흐로 날개가 돋아서 가만히 거듭난다. 사람이 왜 애벌레하고 같겠는가? 어릴적에는 밥보·밥벌레로 실컷 먹고 신나게 놀아야, 바야흐로 천천히 철이 들면서 어른으로 일어선다. 못 놀거나 안 논 채 어린날을 보냈다면, 애벌레스럽게 살아내지 않은 터라 그만 날개돋이를 못 하기 일쑤이다.
요즈음 어린이나 젊은이가 그만 ‘극우 꼴통’으로 기울기도 한다고 나무라거나 걱정하는 목소리가 꽤 높다만, 왜 걱정해야 하는가? 아이들이 어릴적에 못 놀았잖은가? 아이들이 어릴적에 어버이사랑을 얼마나 받았는지 보라! 아이들을 그저 어린이집과 배움터(학교)에 맡긴 채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 보지 않았는가? 아이들은 “한창 밥보·애벌레로 뛰놀고 자고 쉬고 먹어야 할 때”를 하나도 못 누리면서 배움불굿(입시지옥)에 시달리지 않았는가? “책이라도 느긋이 읽을 틈조차 없이 불굿(지옥)에서 헤매고 갇혀야 하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제대로 삶을 바라보거나 살림을 짓거나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사랑을 품고 자란 아이들은 밥보에서 어른으로 부드러이 거듭난다. 애벌레로 살아내야 나비로 거듭난다. 나비는 그저 나비이다. 왼날개와 오른날개가 똑같은 몸빛인 나비요, 더듬이도 발도 눈도 왼오른이 똑같다. 아이들이 밥보로 뛰놀면서 신나게 자라야, 왼발과 오른발이 고르다. 왼손과 오른손을 두루 다룰 줄 아는 몸으로 커야, 비로소 이 아이들은 ‘어른’으로 일어선다.
누가 나더러 “최종규 씨는 왼쪽(좌파)이요, 아니면 오른쪽(우파)이요? 둘 가운데 어느 쪽이요?” 하고 따지거나 묻는다면, 나는 늘 빙그레 웃으면서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늘 사람 쪽에 섭니다. 사랑으로 살림을 하면서 숲빛으로 아이곁에서 하루를 노래하고 그리는, 그저 사람 쪽입니다.” 하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가운데(중도파)’도 아니다. 그저 ‘사람’이요, “사람 쪽에 서면서 아이하고 어깨동무하는 작은어른으로 시골에서 숲을 노래하는 아저씨”이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