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마실
책방마실을 할 적에 아이들은 책방에 깃든 기운을 누린다. 책방을 이루는 책꽂이뿐 아니라, 책방을 지키는 책방지기 마음씨를 함께 누린다. 책방이라는 곳은 책을 살피는 곳이요, 마음에 드는 책을 장만하는 곳이다. 책을 살피자면 누구나 책을 손에 쥐어 읽기 마련이니, 도서관 못지않게 조용한 곳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도서관이나 책방을 찾는 아이들은 으레 뛰거나 달린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아직 많이 어리면 목소리를 낮추기 어렵지만, 아이들 누구나 ‘도서관이나 책방’은 다른 곳과 달리 차분하면서 조용하게 놀거나 지내는 곳이라고 알아챈다.
도서관에서라면 아이들이 뛰거나 목소리를 높이면 으레 싫어한다. 도서관이라는 곳이 워낙 이렇다. 이와 달리 책방에서는 아이들이 뛰거나 목소리를 높일 적에 모두 싫어하지는 않는다. 새책방에서는 꽤 싫어한다 할 만하지만, 헌책방에서는 그렇게까지 싫어하지는 않는다. 어느 헌책방 책손은 ‘책방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 나는 아이들과 책방마실을 한다. 지난날 나는 혼자 책방마실을 했다. 예전에 혼자 책방마실을 하던 나날을 돌이켜본다. 나는 새책방에서나 헌책방에서나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뛰놀건 말건 ‘내 책읽기’를 거스르거나 가로막거나 헤살을 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만나면, 이 책을 읽는 데에 온마음을 쏟기 때문에 다른 소리를 못 듣거나 안 듣는다. 나는 내 책에 마음을 기울이지, 다른 움직임이나 소리에 마음을 기울일 까닭이 없다.
헌책방을 다닐 적에 아이들을 만나면 괜히 기쁘다. 이 아이들은 속깊은 어버이를 만나서 어릴 적부터 재미나고 아름다운 책터를 만날 수 있겠다고 느껴 기쁘다. 이 아이들은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다. 이 아이들은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방에서 감도는 기운’을 받아먹을 수 있으면 즐겁다. 책방지기가 가꾸는 책방 이야기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안으면 된다.
책은 틀림없이 책이기에, 종이로 된 책을 손에 쥐어 펼쳐야 이야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가득 그러모은 책시렁을 살피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얻는다. 책시렁을 살피는 사람들 둘레로 흐르는 바람을 함께 마시면서 새삼스럽게 이야기를 얻는다.
인터넷으로만 책을 살 적하고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살 적은 다르다.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워 돌아다닐 적하고 아이들과 군내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돌아다닐 적하고 다르다. 어른들도 이웃을 만나며 물건을 장만할 적과 인터넷으로 물건을 장만할 적이 다르다. 어른들도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릴 적하고 자가용을 몰 적에 받아들이는 기운과 바람과 숨결이 모두 다르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608/pimg_7051751241019927.jpg)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608/pimg_7051751241019928.jpg)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608/pimg_705175124101992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