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과 책읽기 

 차디찬 물로 빨래를 하는 동안, 손끝과 손가락과 손등과 손바닥 모두 꽁꽁 얼어붙는다. 덜덜 떨리는 손을 팔뚝이며 볼에 대며 녹인다. 얼얼한 손으로 비비고 헹구다 보면 저절로 끙끙 소리가 터져나온다. 겨우 마친 빨래하고 물통을 들고 집으로 내려오면 내 손이 내 손 아닌 듯하다. 그러나 젖은 빨래를 착착 펴서 빨랫대에 넌다. 부들부들 떨면서 빨래를 널고 몇 가지 집일을 하고 나면 손이 차츰차츰 녹으면서 찌릿찌릿 아프다. 쩡 하고 골이 울린다. 흑흑 속으로 흐느낀다. 입에서는 아이고 소리 새어나온다. 한 시간쯤 지나 비로소 손이 풀리지만, 손톱 둘레는 욱씬욱씬 쑤신다. 꾹꾹 누른다. 왼손으로 오른손 손톱을, 오른손으로 왼손 손톱을 주무른다. 아아, 한숨이 나오고 한 시간쯤 더 있은 뒤에야 바야흐로 몸이 풀리, 이제는 책을 손에 쥘 만하다.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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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마실과 책읽기


 서울마실이나 인천마실을 할 때면 늘 아이를 데려가든지 집식구 모두 움직인다. 마실을 가는 길에 책을 두 권쯤 꼭 챙긴다. 이렇게 챙긴 책을 꺼내기는 꺼내고 들추기는 들춘다. 그렇지만 제대로 읽어내기란 참 힘들다. 시외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읽고, 전철에서 아이를 안은 채 읽는다. 한 쪽을 읽든 두 쪽을 펼치든 어찌 되든 한 번은 꺼내어 펼친다.

 오늘 서울마실을 한다. 옆지기가 아이하고 시골집에 남는다고 한다. 지난주부터 같이 가기로 얘기하고서 어떻게 짐을 꾸리며 챙길까 하고 생각하면서 집에 남는 먹을거리가 없도록 밥을 해 왔는데, 이렇게 되면 걱정스럽다. 옆지기가 밥을 아예 못하거나 몸을 조금도 못 움직이지는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둘째를 밴 뒤로 뜨개질로 하루하루 몸을 버티며 마음을 다스리는 터에, 혼자 아이를 이틀씩 건사할 수 있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방 뛰며 놀아도 지치지 않고 낮잠조차 없는 아이를 옆지기 혼자 돌볼 수 있으려나.

 아이 없이 홀로 서울마실이나 인천마실을 한다면, 나로서는 시외버스에서든 전철이나 버스에서든 마음을 툭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시골집 식구들이 근심스러운 나머지, 읽다가 자꾸 덮고 읽다가 또 덮는다.

 식구들 함께 움직여도 가방에 넣은 책을 꺼내지 못하지만, 홀가분하게 돌아다녀도 가방에 넣은 책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지난밤 잠자리에서 생각한다. 옆지기와 내 삶을 거꾸로 놓고 생각해 본다. 내가 옆지기요, 몸이 아프면서 거의 꼼짝 못하며 지내는 삶이고, 옆지기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집살림 꾸리는 한편 돈도 번다면, 나는 내 옆지기한테 무어라 말을 하려나. 내 옆지기한테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하려나.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더 힘내어 알차게 살아야 한다. 집안에서도 나는 나대로 내가 할 몫을 하면서 아이와 옆지기하고 나란히 할 몫을 알뜰히 해야 한다. 게으를 겨를이란 없지만, 손을 놓는다든지 풀이 죽는다든지 기운이 꺾인다든지 할 수는 없다. 늘 더욱 힘을 내어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야 한다. 책을 손에 쥐었으면 신나게 읽고, 책을 손에서 내려놓았으면 밥하기이든 설거지이든 빨래하기이든 비질이든 즐거이 하면 된다. 오늘 함께 마실을 간다면 얇은 책으로 두 권, 오늘 혼자 마실을 간다면 두꺼운 책으로 두 권을 챙기련다.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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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노래와 책읽기


 어린이가 부를 노래를 어른들이 지어 줍니다. 어린이가 읽을 책을 어른들이 써 줍니다. 어린이가 볼 만화며 영화를 어른들이 만들거나 찍어 줍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한테 이것저것 베풀어 줍니다. 어린이가 먹을 밥도 어른들이 차려 줍니다. 어린이가 입을 옷도 어른이 지어서 입힙니다. 어린이가 어디를 다닐 때에도 어른들이 자전거에 태우든 자동차에 태우든 합니다.

 온누리 어린이는 어른들이 베푸는 모든 것을 누리거나 받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어른들은 어린이가 누리기에 좋은 여러 가지를 마련하기도 하지만, 어린이 눈높이와 삶을 헤아리지 않고 만들기도 합니다. 이른바 어른이에서 푸름이로 접어들 무렵 푸름이가 저지른다는 잘못 ‘청소년범죄’가 이처럼 어린이 눈높이와 삶을 헤아리지 않고 저지르는 ‘어른들 나쁜 짓’입니다. 어른들은 청소년범죄라 말하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어른범죄를 청소년이 똑같이 저질렀을 뿐’입니다.

 어린이에서 푸름이로 접어드는 나이에 즐겁게 부를 노래는 거의 없습니다. 아니, 없습니다. 푸름이로 접어드는 사람이 읽을 책은 그리 안 많습니다. 푸름이일 때에는 만화책은 보지 말라 하는데, 푸름이가 즐길 영화도 몇 가지 안 됩니다. 이제 푸름이가 되면 스스로 밥을 지을 법하지만, 푸름이한테 도마질을 비롯해 밥하기를 맡기는 어른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푸름이부터는 어른들이 어른끼리 즐기려고 짓는 노래를 부르고, 어른끼리 나누려는 책을 읽으며, 어른끼리 보자는 만화나 영화를 보자는 뜻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열여덟과 열아홉과 스물이라는 나이는 얼마나 다른 나날이며 삶이기에, 나이 울타리에 따라 어떤 책이나 영화나 이야기는 볼 수 없다고 금을 그으며 막는 셈일까요. 열일곱 해 삼백예순나흘을 살던 사람하고 열여덟 해 하루를 사는 사람은 생각과 몸과 마음이 얼마나 벌어졌다 할 만할까요.

 어린이노래란 어린이만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어린이부터 부르면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살찌우는 노래입니다.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부터 읽으면서 생각을 북돋우는 책입니다. 어린이밥이란 어린이처럼 작고 여린 몸뚱이를 한결 깊이 살피면서 마련하는 밥입니다. 말을 할 때에 한결 쉬우면서 바르게 말해야 한다면, 어린이를 비롯해 내 둘레 사람을 더 널리 사랑할 때에 즐겁기 때문입니다. 한결 쉬우면서 바르게 말하는 일은 내 넋과 얼을 더욱 사랑하며 아끼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함께 나누는 나날이고,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이며, 함께 즐기는 일이면서 놀이입니다. 참다운 책일 때에 어린이책이 되고, 참답지 않은 책이라면 어린이책도 어른책도 문학책도 책조차도 될 수 없습니다. (4344.2.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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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과 책읽기


 오른손 둘째손가락 끝이 베었다. 그저께 베었다. 벤 줄 모르고 손가락이 꽁꽁 얼면서 일하다가 나중에서야 알아챘다. 피가 몽글몽글 솟아 말라붙은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손가락이 얼어붙는 추운 도서관에서 책을 만지며 일하느라 아픈 줄도 몰랐구나 싶다. 따뜻한 집으로 들어오니 언손이 녹으며 비로소 따끔거린다. 저녁때 소독약을 살짝 뿌려 보니 꼭 송곳으로 후비듯 따갑다. 그래도 반창고를 대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한다. 아이도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기고 똥눈 밑을 닦아 주며 이도 닦아 준다. 손끝이 아픈 줄 알면서 아파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는 채 글을 썼다. 이렇게 이틀을 보내고 맞이한 새벽녘, 손끝은 제 임자를 잘못 만난 셈치고 일찌감치 아물어 주었다고 느낀다. 어쩌면 임자를 잘 만났으니(?) 다른 때보다 더 일찍 아물어 주어야 한다고 여겼을까.

 바쁘고 힘들다며 마구마구 일하던 나한테 손끝은 이렇게 스윽 깊이 베이며 좀 쉬라고 말을 건넸고, 좀 쉬라고 말을 건네던 손끝은 집에서 맡은 살림살이가 얼마나 많은데 섣불리 막 쉬라 할 수 없겠구나 싶다면서 얼른 아물도록 해야겠다며 말을 건넨다.

 언제 어떻게 아프거나 다칠지 모르기 때문에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처럼 일할 수 있도록 다스려야 한다. 언제 어떻게 부러지거나 못 쓸지 모르는 터라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마냥 살아갈 수 있도록 보듬어야 한다. 다치거나 아프거나 부러지거나 못 쓰면 얼마나 슬프며 괴로울까. 생각하기조차 싫다. 그러나 다치거나 아프거나 부러지거나 못 쓰는 사람은 참 많다. 게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살아서 움직이는 하루하루란 어마어마한 선물이다. 목숨도 선물이지만 내가 보낼 수 있는 하루하루 또한 대단한 선물이다.

 누구한테나 일흔 해 한삶이든 고작 하루만큼이든 끝없는 선물이기 때문에, 이 선물을 잘 알아채거나 헤아리는 이들은 딱 하루 몇 시간 움직이면서 마주한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도 책 한 권을 일군다. 나한테 주어진 선물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일흔 해 한삶을 바쳐 책 한 권을 훌륭히 일구기도 한다. (4344.2.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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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을 걸고 책읽기


 독재 때에도 목숨을 걸고 책을 읽지만, 민주 때에도 목숨을 걸고 책을 읽어야 한다. 식민지 때에도 목숨을 걸며 책을 읽지만, 평화 때에도 목숨을 걸며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내 목숨을 건다. 책을 읽기에 목숨을 고스란히 바친다. 목숨값을 하지 않는 책이라면 읽을 까닭이 없다. 목숨값이 있기에 책을 고이 손에 쥔다.

 책을 쓰는 사람은 글 한 줄을 쓰더라도 제 목숨을 담는다. 제 목숨을 남김없이 바치지 않는다면 가짓말꾼이거나 거짓말쟁이라고 느낀다. 제 목숨을 송두리째 쏟지 않고서야 책 하나 가뜬히 태어나지 않으며 거뜬히 꽃피우지 못한다.

 책이란, 책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목숨을 바친다. 목숨을 고이 담아 책으로 일군다.

 누군가는 재미삼아 읽는다 하고 누군가는 말미를 때우려고 읽는다 하더라도, 책을 쓰거나 읽는 사람은 목숨을 걸기 마련이다. 아니, 목숨을 걸밖에 없다.

 하루이든 한 시간이든 한 분이든 온통 보배로운 목숨이다. 밥 한 그릇이든 밥 한 술이든 밥알 하나이든 몽땅 소담스러운 목숨이다. 책읽기가 왜 목숨읽기가 아니겠는가. 책쓰기가 왜 목숨쓰기가 아니겠는가. 재미삼아 읽든 말미 때우기로 읽든, 제 목숨을 들이지 않고서야 읽을 수 없다.

 그냥 흘려보내도 좋을 하루란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마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수 있는데, 마냥 바라보며 하루를 아무렇게나 흘려보내는 셈이 아니다. 마냥 바라보며 하루를 오롯이 즐긴다. 하루를 고이 쏟으면서 마냥 바라볼 만큼 좋으며 사랑스럽다.

 모든 글에는 글쓴이 피와 땀과 품이 깃든다. 잘 쓴 글이든 잘못 쓴 글이든, 빛나는 글이든 뚱딴지 글이든, 올바른 글이든 엉터리 글이든, 어떠한 글에도 글쓴이 뼈와 살과 꿈이 배어든다. 이러한 글을 읽는 사람도 피와 땀과 품이든 뼈와 살과 꿈이든 바치기 마련이다. 참말로 하루하루 아름다우며 몹시 거룩한데, 이 아름다우며 거룩한 하루하루 내 손에 쥘 책이란 어떤 책이 되어야 하고, 어떤 매무새로 읽어야 할까.

 아이들은 아주 조그맣다 싶은 놀이를 하더라도 온마음 쏟아 땀 뻘뻘 흘린다. 우리 어른들은 아주 어설프다 싶은 책을 읽더라도 온사랑 바쳐 알뜰살뜰 읽어 낼 줄 알아야 한다. (4344.2.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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