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이루어진 책


 책은 글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림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사진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책은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아무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빈 책’일 수 있습니다. 빈 책을 일컬어 한자말로 ‘공책’이라고 적습니다.

 예부터 이 나라 사람들은 ‘책’이라 할 때 “글로 이루어진 책”만 책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을 책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글로 이룬 책이면 ‘글책’이고, 그림으로 이룬 책이면 ‘그림책’이며, 사진으로 이룬 책일 때에는 ‘사진책’입니다.

 예나 이제나 ‘글책’이라고 따로 나누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책’이라면 으레 “글로 이루어진 책”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놓고 ‘책’이라 생각하거나 말하기보다는 애써 ‘그림책’이랑 ‘사진책’이라며 앞에 덧말을 붙입니다.

 여느 어른은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이나 만화로 이루어진 책이나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은 ‘읽을 수 없다’는 듯 생각합니다. 그냥 슥 훑으면 다 보는데, 이런 책을 어떻게 ‘읽는다’ 하느냐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이런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만화책을 찬찬히 ‘읽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꼼꼼히 ‘읽는’ 사람도 드뭅니다. “나는 책을 읽기가 싫어.” 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책’이라 할 때에 ‘글책’만 책이라고 생각하니까, ‘나 스스로 내가 싫어하는 책이란 글로만 이루어진 책’인 줄을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책은 책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흙은 흙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하늘과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풀도 하늘과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풀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내가 책읽기를 좋아한다면 글을 읽기 좋아하는지, 글에 깃든 사람들 생각을 읽기 좋아하는지, 글에 서린 사람들 삶을 읽기 좋아하는지, 글에 담은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읽기 좋아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책읽기를 싫어한다면 책이 어떠하기에 싫으며, 어떠한 책이 싫은가를 곰곰이 짚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물 반찬이 싫은 사람은 나물 반찬이 내 몸에 안 맞아서 싫은지, 풀만 먹으니 싫은지를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고기 반찬이 싫은 사람은 고기 반찬을 먹으면 내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에 싫은지, 얼마 앞서까지 펄떡펄떡 뛰던 목숨을 잡아죽여 먹기가 싫은지 또렷이 알아야 합니다.

 풀도 목숨이고 고기도 목숨입니다. 풀만 먹는대서 목숨을 아끼는 삶이 아닙니다. 풀이라는 목숨이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내가 새 목숨과 기운을 얻는 줄 느껴야 제대로 밥을 먹는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논밭 흙을 일구면서 책을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멧자락을 신나게 오르내리면서 책을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지런히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기 오줌기저귀나 똥이불을 빨면서 책을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 그대로 글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습니다.

 책이란, 우리가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보금자리나 마을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보따리입니다. (4344.2.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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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과 책읽기


 술을 많이 마셔야 술을 잘 마시거나 즐겁게 마신다고 할 수 없어요. 술을 적게 마시거나 못 마신다 해서 술맛을 모른다거나 술을 못 즐긴다고 할 수 없어요. 내가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시면서 즐길 수 있으면 되는 술이에요.

 아무리 몸에 좋은 밥일지라도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은 한 사람 몸에 따라 달라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하겠지요. 때로는 여러 그릇을 비울 사람이 있고 반 그릇 비워도 배가 부른 사람이 있을 텐데, 몸에 좋은 밥이니까 두어 그릇이나 서너 그릇씩 비워야 하지 않아요. 내 배가 받아들일 만큼 알맞게 먹어야 좋으면서 즐거운 밥먹기가 돼요.

 그런데 책읽기에서는 왜 이렇게들 더 많이 읽어야 더 좋은 줄 생각하고 말까요.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만들어 내놓아야 하는 줄 여기고 마나요. 더 많이 읽는다고 해서 더 좋은 책읽기가 될 수 없어요. 더 많이 만든다 해서 더 알찬 책마을 살림이 되지 않아요. 내 삶에 알맞춤하게 책을 마주하면서 읽거나 살피면 넉넉해요. 우리네 터전에 걸맞게 한 권 두 권 차분하게 가다듬어 내놓을 수 있으면 즐거워요.

 훌륭하다는 책을 더 많이 읽는다 해서 더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아요. 훌륭하다는 책을 더 많이 내놓는다 해서 이 나라가 더 훌륭한 터전으로 새로워지지 않아요. (4344.2.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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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와 춤추기


 아빠는 책을 읽고 엄마는 뜨개질을 한다. 아이는 혼자 놀다가 아빠가 읽던 책을 빼앗는다. 서른두 달째를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엄마가 몸이 많이 아프고 힘들어 같이 놀아 주기 어려운 줄을 아니까, 아빠를 붙잡고 놀자 한다. 아빠 손을 놓지 않는다. 빙글빙글 춤을 춘다. 속으로 말한다. 너, 앞으로 몇 살까지 아빠 손을 안 놓을 생각이니? 아니, 아이한테 물을 말이 아니라 아빠 스스로 당신은 아이 손을 몇 살까지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시오, 하고 물어야겠지. 까르르 웃으면서 뱅글뱅글 돌다가는 안아 달라 한다. 하기는, 아직 너한테는 책읽기는 조금만, 또는 안 해도 되지만, 아주 곯아떨어질 때까지 뛰고 놀며 춤추어야 할 테지. 아빠는 오늘이 아니어도 올해가 아니어도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을 테지. (4344.2.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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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한테서 책읽기


 사람한테서 책을 읽을 줄 알 때에 비로소 종이로 된 책을 읽을 줄 압니다. 사람한테서 책을 읽을 줄 모른다면 그 어떤 훌륭하거나 대단하다는 도서관이나 책방에 발을 들여놓았어도 막상 무슨 책을 고르거나 사야 할 줄을 모릅니다. 사람한테서 책을 읽을 줄 안다면, 책방이나 도서관을 통째로 사들이거나 장만하고 싶다는 꿈을 꾸겠지요. 사람이 좋은 만큼 책이 좋고, 책이 좋은 만큼 사람이 좋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듯이 책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듯이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일구는 삶이 곧 책이고, 사람들 누구나 손수 가꾸는 나날이 바로 책입니다. 책은 노래이기도 하고 춤이기도 합니다. 책은 웃음이기도 하고 울음이기도 합니다. 책은 몸짓이기도 하고 발짓이기도 합니다. 책은 입맞춤이거나 살섞기가 되기도 합니다. 책은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흙내음이기도 하다가는 발톱에 낀 흙때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꾸리는 삶에서 책을 읽기에 책에서 삶을 읽습니다. 사람이 보내는 나날에서 책을 마주하기에 책에서 사람들 하루하루를 마주합니다. 사진은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은 책 한 권 또는 글 한 줄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은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 하나와 눈썹 한 올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꾸덕살 박인 손으로, 투박하거나 못생긴 발로 삶을 밝힙니다. 꾸덕살 박인 손을 어루만지며 책을 느끼고, 투박하거나 못생긴 발을 주무르면서 책을 헤아립니다. 어머니 등허리를 주무르고 아버지 발바닥을 주무르는 딸아들은 노상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책을 읽을 때에 내 하루하루는 언제나 새롭습니다. 착하게 거듭나고 싶다면 사람을 읽고, 참다이 다시 태어나고프다면 책을 읽으며, 아리땁게 빛나고 싶다면 삶을 읽으면 됩니다. (4344.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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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부르는 소리 

 좋은 책이 사람을 부른다. 좋은 책들이 사람들을 부른다. 나를 얼른 읽어 달라고 부르며, 나를 알뜰살뜰 읽어 달라면서 부른다. 책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가난한 책쟁이 주머니를 안 털 수 없다. 가난한 책쟁이 주머니이지만, 이 책들을 하나하나 장만하여 가방에 차곡차곡 쟁인다. 어깨가 눌리며 아프지만, 꾸욱 참으로 집까지 들고 돌아온다. 살림돈이 바닥나니 하루살이 같은 살림살이 걱정이 큰데, 이달은 또 어떻게 살림돈을 마련해야 하나 시름시름 앓는다. 책을 사서 읽는다고 돈이 나오지 않는데, 돈은 얼마 없으면서 그예 책을 자꾸 사들인다. 이제까지 사들인 책을 다시 읽어도 되는데, 또 새로운 책을 사들인다. 책은 꾸준히 새로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삶을 일구면서 새로운 글을 써서 새로운 책을 내놓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른다. 착한 아이가 아빠를 부른다. 고운 아이가 아빠가 저랑 놀아 주기를 바라면서 부른다. 아빠는 이 일을 해야 하고 저 일을 해야 한다며 아이랑 잘 안 놀아 준다. 그러나 아이는 아빠를 또 부르고 다시 부른다. 이렇게 착한 아이하고 안 놀면 착한 아빠가 될 수 없다. 아빠는 일손을 붙잡으며 이맛살을 찡그리지만, 이내 두 손을 들어야 한다. 그래, 일이야 아이가 잠들고 나서도 할 수 있으며, 깊은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서도 할 수 있잖아. 아이야, 모자라고 바보스러운 아빠가 네가 깬 동안 제대로 놀아 주지 못하니 아빠가 참 잘못했구나.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자. 아빠 무릎에 앉아 그림책을 함께 읽자. 그림책을 읽으며 너는 새로운 말을 배우고 새로운 사랑을 받아먹어라. 

 옆지기가 부른다. 옆지기가 마음속으로 부른다. 우리가 시골집에서 조용하면서 오붓하게 잘 살아가자면서 부른다. 집다운 작은 집을 우리 손으로 알차게 보듬으면서 우리가 이 시골자락에서 예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아빠는 첫째와 곧 태어날 둘째를 먹여살릴 근심으로 이 글도 쓰고 저 사진을 찍는다며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단다. 노상 핑계를 댄다. 그러나, 집이 집다웁지 않고서야 글을 글답게 여밀 수 있겠나. 아이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귀담아들으면서 어여삐 살아갈 길을 찾아야지. (4344.2.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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