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노래와 책읽기


 어린이가 부를 노래를 어른들이 지어 줍니다. 어린이가 읽을 책을 어른들이 써 줍니다. 어린이가 볼 만화며 영화를 어른들이 만들거나 찍어 줍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한테 이것저것 베풀어 줍니다. 어린이가 먹을 밥도 어른들이 차려 줍니다. 어린이가 입을 옷도 어른이 지어서 입힙니다. 어린이가 어디를 다닐 때에도 어른들이 자전거에 태우든 자동차에 태우든 합니다.

 온누리 어린이는 어른들이 베푸는 모든 것을 누리거나 받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어른들은 어린이가 누리기에 좋은 여러 가지를 마련하기도 하지만, 어린이 눈높이와 삶을 헤아리지 않고 만들기도 합니다. 이른바 어른이에서 푸름이로 접어들 무렵 푸름이가 저지른다는 잘못 ‘청소년범죄’가 이처럼 어린이 눈높이와 삶을 헤아리지 않고 저지르는 ‘어른들 나쁜 짓’입니다. 어른들은 청소년범죄라 말하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어른범죄를 청소년이 똑같이 저질렀을 뿐’입니다.

 어린이에서 푸름이로 접어드는 나이에 즐겁게 부를 노래는 거의 없습니다. 아니, 없습니다. 푸름이로 접어드는 사람이 읽을 책은 그리 안 많습니다. 푸름이일 때에는 만화책은 보지 말라 하는데, 푸름이가 즐길 영화도 몇 가지 안 됩니다. 이제 푸름이가 되면 스스로 밥을 지을 법하지만, 푸름이한테 도마질을 비롯해 밥하기를 맡기는 어른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푸름이부터는 어른들이 어른끼리 즐기려고 짓는 노래를 부르고, 어른끼리 나누려는 책을 읽으며, 어른끼리 보자는 만화나 영화를 보자는 뜻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열여덟과 열아홉과 스물이라는 나이는 얼마나 다른 나날이며 삶이기에, 나이 울타리에 따라 어떤 책이나 영화나 이야기는 볼 수 없다고 금을 그으며 막는 셈일까요. 열일곱 해 삼백예순나흘을 살던 사람하고 열여덟 해 하루를 사는 사람은 생각과 몸과 마음이 얼마나 벌어졌다 할 만할까요.

 어린이노래란 어린이만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어린이부터 부르면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살찌우는 노래입니다.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부터 읽으면서 생각을 북돋우는 책입니다. 어린이밥이란 어린이처럼 작고 여린 몸뚱이를 한결 깊이 살피면서 마련하는 밥입니다. 말을 할 때에 한결 쉬우면서 바르게 말해야 한다면, 어린이를 비롯해 내 둘레 사람을 더 널리 사랑할 때에 즐겁기 때문입니다. 한결 쉬우면서 바르게 말하는 일은 내 넋과 얼을 더욱 사랑하며 아끼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함께 나누는 나날이고,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이며, 함께 즐기는 일이면서 놀이입니다. 참다운 책일 때에 어린이책이 되고, 참답지 않은 책이라면 어린이책도 어른책도 문학책도 책조차도 될 수 없습니다. (4344.2.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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