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과 책읽기
오른손 둘째손가락 끝이 베었다. 그저께 베었다. 벤 줄 모르고 손가락이 꽁꽁 얼면서 일하다가 나중에서야 알아챘다. 피가 몽글몽글 솟아 말라붙은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손가락이 얼어붙는 추운 도서관에서 책을 만지며 일하느라 아픈 줄도 몰랐구나 싶다. 따뜻한 집으로 들어오니 언손이 녹으며 비로소 따끔거린다. 저녁때 소독약을 살짝 뿌려 보니 꼭 송곳으로 후비듯 따갑다. 그래도 반창고를 대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한다. 아이도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기고 똥눈 밑을 닦아 주며 이도 닦아 준다. 손끝이 아픈 줄 알면서 아파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는 채 글을 썼다. 이렇게 이틀을 보내고 맞이한 새벽녘, 손끝은 제 임자를 잘못 만난 셈치고 일찌감치 아물어 주었다고 느낀다. 어쩌면 임자를 잘 만났으니(?) 다른 때보다 더 일찍 아물어 주어야 한다고 여겼을까.
바쁘고 힘들다며 마구마구 일하던 나한테 손끝은 이렇게 스윽 깊이 베이며 좀 쉬라고 말을 건넸고, 좀 쉬라고 말을 건네던 손끝은 집에서 맡은 살림살이가 얼마나 많은데 섣불리 막 쉬라 할 수 없겠구나 싶다면서 얼른 아물도록 해야겠다며 말을 건넨다.
언제 어떻게 아프거나 다칠지 모르기 때문에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처럼 일할 수 있도록 다스려야 한다. 언제 어떻게 부러지거나 못 쓸지 모르는 터라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마냥 살아갈 수 있도록 보듬어야 한다. 다치거나 아프거나 부러지거나 못 쓰면 얼마나 슬프며 괴로울까. 생각하기조차 싫다. 그러나 다치거나 아프거나 부러지거나 못 쓰는 사람은 참 많다. 게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살아서 움직이는 하루하루란 어마어마한 선물이다. 목숨도 선물이지만 내가 보낼 수 있는 하루하루 또한 대단한 선물이다.
누구한테나 일흔 해 한삶이든 고작 하루만큼이든 끝없는 선물이기 때문에, 이 선물을 잘 알아채거나 헤아리는 이들은 딱 하루 몇 시간 움직이면서 마주한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도 책 한 권을 일군다. 나한테 주어진 선물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일흔 해 한삶을 바쳐 책 한 권을 훌륭히 일구기도 한다. (4344.2.13.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