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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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23.

노래책시렁 333


《수학자의 아침》

 김소연

 문학과지성사

 2013.11.11.



  사람사이(인간관계)란, 멀다고 안 나쁘고 가깝다고 안 좋습니다. 그저 멀거나 가깝습니다. 붐비는 서울을 좋아할 수 있고, 한갓진 시골을 반길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삶은 다 다른 삶터에서 태어납니다. 술 한 모금을 마셔야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고, 언제나 스스럼없이 수다를 펼 수 있습니다. 북적이는 서울에서 숱한 사람을 마주하며 일할 수 있고, 혼자 작은칸에서 조용히 일할 수 있어요. ‘사람’이라는 우리말은 ‘사이(새)’하고 말밑(어원)이 같습니다. 눈에 보이거나 안 보여도 사람은 늘 둘레에 있고, 우리는 뭇사람 사이에 있어요. 서로서로 어떤 사이로 ‘일’을 하며 만날까요? 《수학자의 아침》을 읽었습니다. 뭔가 ‘학(學)’을 하는 이들은 ‘자(者)’를 붙입니다. 때로는 ‘가(家)’나 ‘사(師)’를 붙이더군요. 사람으로서 ‘사람’을 뜻하는 ‘이’를 붙이는 이웃은 드물어요. 우리말로 ‘꾼·꽃·님·씨·지기’를 붙여 볼 만하기에, 서로 일꾼·일꽃·일님·일씨·일지기가 될 만합니다. 어린씨랑 이야기씨를 펴고, 노래님이랑 수다님으로 지냅니다. 사람사이에 높이거나 낮추려는 이름은 서로 갈라지는 틈으로 번지지만, 어깨동무하면서 아이 눈길에 맞추려는 이름은 서로 마음을 틔우고 봄바람이 싱그러이 퍼질 수 있습니다.


ㅅㄴㄹ


내가 하는 말을 /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 나 혼자 듣습니다 (그래서/16쪽)


할 수 있는 싸움을 모두 겪은 연인의 무릎에선 알 수 없는 비린내가 풍겨요. 알아서는 안 되는 짐승의 비린내가 풍겨요. 무서워, 라고 말하려다, 무사해, 라고 하지요. (격전지/44쪽)



《수학자의 아침》(김소연, 문학과지성사, 2013)


벚나무는 천 개의 눈을 뜨네

→ 벚나무는 즈믄 눈을 뜨네

→ 벚나무는 눈을 수북히 뜨네

→ 벚나무는 눈을 잔뜩 뜨네

9쪽


교회의 문전성시와 일요일과

→ 절집은 북새통에 해날과

→ 절집은 붐비고 해날과

9쪽


모두가 공평무사하게 불행해질 때까지

→ 모두가 고루 슬플 때까지

→ 모두가 두루 가난할 때까지

→ 모두가 나란히 아플 때까지

10쪽


장마전선 반대를 외치던 빗방울의 이중국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 장마구름 싫다고 외치던 빗방울 두얼굴을 생각합니다

→ 장마띠 가라고 외치던 빗방울 두이름을 생각합니다

12쪽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 빗방울숲을 민 자국입니다

→ 빗방울바다를 민 자취입니다

13쪽


언젠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 언젠가 반드시 휠 곧은 길이를 그린다

→ 언젠가 반드시 휠 바른 길이를 떠올린다

15쪽


알아서는 안 될 거대한 열매들에 고름 같은 과즙이 흘러내려요

→ 알아서는 안 될 커다란 열매에 고름 같은 물이 흘러내려요

45쪽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 나는 나대로 하늘새는 하늘새대로

71쪽


꽃들을 향해 지난 침묵을 탓하는 이는 없다

→ 꽃한테 지난 고요를 탓하는 이는 없다

→ 꽃한테 말이 없다 탓하는 이는 없다

86쪽


강물이 흐르고 있다고

→ 냇물이 흐른다고

96쪽


사각의 광장에는 사각의 가오리가 탁본 뜨듯 솟아올라야 한다

→ 네모난 터에는 네모난 가오리가 글씨 뜨듯 솟아올라야 한다

→ 네모터에는 네모가오리가 글뜸 하듯 솟아올라야 한다

10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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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주의자 창비시선 466
김수우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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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20.

노래책시렁 331


《뿌리주의자》

 김수우

 창비

 2021.11.12.



  뒷종이 어디나 우리 마음과 생각과 꿈을 담아서 차곡차곡 여미면 글은 저절로 깨어납니다. 멋진 글종이(원고지)에 적어야 글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종이에라도 적으면 됩니다. 비싼 종이에 쓰기에 값진 글이 되지 않아요. 비싼 붓을 써야 멋진 글이 되지 않습니다. 글은 늘 삶입니다. 스스로 사랑하며 짓는 살림을 담는 삶이 글입니다. 이 길을 차곡차곡 누리면 누구나 노래님입니다. 《뿌리주의자》를 읽으며 부산이라는 고을빛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저는 종이(운전면허증)를 딸 뜻이 없기에 예나 이제나 걷고, 앞으로도 걸어다니려 합니다. 2023년 5월 늦봄에도 부산 여러 골목을 거닐면서 ‘늦봄이면 온나라 어느 골목에나 눈부신 꽃찔레(장미)’를 한껏 누렸어요. 아는 분이라면 알지만, 모르는 분이라면 영 모르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골목빛’입니다. 뭔가 글밥을 먹은 분들은 ‘구도심·민중생활’처럼 어렵게 들려주려 하지만, 마을사람은 그저 ‘골목빛’이에요. 골목사람으로서 골목이웃이랑 골목꽃 이야기를 해보았나요? ‘태양신’ 아닌 ‘해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명과 핑계”가 겹말인 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암탉처럼 기르지 않고”란 뭘까요? ‘시적 표현’ 아닌 ‘노래하기’일 적에 부산을 사랑할 수 있어요.


ㅅㄴㄹ


잊었던 태양신이 도착했다 생선 궤짝 뒹구는 자갈치 뒷길 (칸나, 노란/10쪽)


내 사랑을 시적 장치로 삼지 않고 / 변명과 핑계를 암탉처럼 기르지 않고 / 합리를 사악한 헌금처럼 뿌리지 말고 (뿌리주의자/14쪽)


이틀 만에 붙들려 사슬에 묶였다 / 줄을 끊고 달아났던 백구 / 풀 죽어 땅바닥에 엎드렸다 / 비우지 못한 개밥 그릇에 노랑나비가 앉았다 (한바퀴/80쪽)


#노래책 #시쓰기 #시읽기

#숲노래노래책 #숲노래시읽기 #숲노래글쓰기

#글빛 #노래꽃 #노래읽기 #숲노래 #문학비평

#뿌리주의자 #김수우 #창비시선 #아쉬운책 #시적장치


《뿌리주의자》(김수우, 창비, 2021)


잊었던 태양신이 도착했다

→ 잊은 해님이 온다

→ 잊고 지낸 해가 왔다

10쪽


생선 궤짝 뒹구는

→ 고기꿰미 뒹구는

→ 물고기널 뒹구는

10쪽


한때 가난한 외상 장부이던

→ 한때 가난한 외상 적이에

11쪽


내 사랑을 시적 장치로 삼지 않고

→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14쪽


변명과 핑계를

→ 핑계를

14쪽


두개 부고가 동시에 도착한 순간

→ 궂김일 둘이 나란히 오자

→ 떠남글 두 자락이 함께 오자

18쪽


동심원이다 비늘마다 빛나는 수천수만의 겨울

→ 겹동글이다 비늘마다 빛나는 숱한 겨울

→ 두동그라미 비늘마다 빛나는 가없는 겨울

40쪽


폐기물 자루에 처박힌

→ 쓰레기 자루에 처박힌

67쪽


떨리며 풍경(風磬) 소리를 냅니다

→ 떨리며 처마꽃 소리를 냅니다

→ 떨리며 바람새 소리를 냅니다

102쪽


#노래합시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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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십니까 창비시선 111
도종환 지음 / 창비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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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17.

노래책시렁 312


《당신은 누구십니까》

 도종환

 창작과비평사

 1993.3.30.



  노래를 쓰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니, 아이를 가르치려면 아이한테서 사랑빛을 배우면서 노래를 들려줄 노릇입니다. 아이를 가르치다가 문득문득 노래를 부를 만합니다. 아니, 아이 곁에서 살림을 짓는 동안 삶이란 이렇게 눈부시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저절로 노래가 샘솟을 일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를 예전에도 읽으면서 참 거짓스러웠다고 느꼈습니다. 말로만 들려주는 모습은 겉이요, ‘겉 = 거죽 = 거짓’입니다. ‘거짓’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겉’을 꾸미려 하기에 ‘거짓’으로 흐르고, 거짓은 어느새 ‘거저’로 닿으면서 ‘거지’하고 만나요. ‘거저·거지’가 나쁠 일이 없습니다. ‘겉’만 있을 뿐, 속은 비었다는 뜻이요, 스스로 속을 가꾸면서 짓는 빛나는 삶하고는 멀 뿐입니다. “그대는 누구입니까?” 하고 묻기 앞서 “나는 누구입니까?”를 스스로 돌아보면 됩니다. 언제나 ‘나부터’입니다. 나부터 바꾸고, 나부터 되새기고, 나부터 일어서고, 나부터 걸어가면 됩니다. 나부터 눈뜨고, 나부터 생각을 지으며, 나부터 오늘 이곳을 사랑하면, 저절로 ‘너’를 만나려고 ‘너머’로 나아가면서 ‘그곳’에서 ‘그대’를 만나서 ‘우리’라고 하는 새빛을 익힙니다. 감투에 홀리면 노래를 잊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먼저 시를 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시가 먼저 우리를 배반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눈에 보이는 것마다 시가 되는 때가 있다/53쪽)


길은 어디에라도 있는 것이다 // 가장 험한 곳에 목숨을 던져서 /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상선암에서/79쪽)


나뭇잎 몇개가 떠서 지켜보는 그날의 하늘도 / 오늘처럼 이렇게 푸르렀을 겁니다 / 푸르른 가슴으로 그들도 젊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 과일처럼 자라오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 … 나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사랑하면서부터 / 이땅에서 피흘리며 지켜야 할 것이 있음을 알면서부터 / 그들은 사랑보다는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식민지의 이 푸르른 하늘 밑에 또다시 가을이 오면/122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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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 전집 1 : 시 박영근 전집 1
박영근 지음, 박영근전집 간행위원회 엮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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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17.

노래책시렁 256


《대열》

 박영근

 풀빛

 1987.11.15.



  어린배움터부터 푸른배움터를 지나는 열두 해에 걸쳐 ‘대열’이라는 일본스런 한자말이 끔찍하게 듣기 싫었습니다. 요새는 매질(체벌)이나 주먹질(폭력)이 많이 걷혔으나,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집·마을·배움터·일터·나라 어디에서나 매질하고 주먹질이 판쳤습니다. 줄(대열)을 지으라고 윽박질렀고, 줄에서 벗어나면 두들겨패거나 밟으면서 틀에 끼워맞추려고 했습니다. 《대열》은 ‘줄’에 ‘길들’이려는 무리한테 ‘들불’처럼 맞서면서 ‘줄기차’게 ‘어깨동무’를 하는 ‘새길’을 읊는 노래를 담는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이 줄을 저 줄로 바꾸면 나을 수 있을까요? 이 길을 저 길로 바꾸면 달라질까요? 이 틀을 저 틀로 고치면 새로울까요? 어쩔 길이 없어서 이곳을 못 떠난다고 여기지만, 다른 길을 스스로 찾거나 바라거나 생각하지 않기에, 그만 길드는 굴레를 우리가 스스로 짓는다고 느껴요. 왜 배움터를 그만두지 못 할까요? 왜 일터를 떠나지 못 할까요? 왜 ‘나라’ 아닌 ‘나’를 바라보면서, ‘나와 매한가지인 너’를 스스럼없이 품고 안고 풀고 알면서 꽃으로 피어나려는 숨결로 자라는 길로는 선뜻 나아가지 못 할까요? ‘노동문학’은 나쁘지 않되, 낫지 않습니다. 살림길을 삶글로 풀어 사랑으로 녹일 ‘일’입니다.



방을 옮겨야할 것 같아요. / 그런데 방값은 비싸고 / 싸구려 월세방은 드물고 // 정말 살아가기가 고달플 때 / ‘의연한 산하’를 부르며 / 가사를 되씹으며 / 당신과의 약속을 생각해요. (편지·1/32쪽)


공단 복지회관 안내공고판에서 모임의 이름들과 시간표가 환히 웃고 있었다. / 책 한 권……꽃 한 송이……연애 한 번 못해봤네. / 출근카드에 찍힌 수많은 날짜들과 / 야근하던 밤마다 손바닥에 올려지던 푸른 색 식권들이 떠올랐다. / 나는 괜찮을까. (공장 비나리·2-내 이름은 공순이에요/238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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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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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풀잎노래 창비시선 114
양정자 지음 / 창비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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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11.

노래책시렁 313


《아이들의 풀잎노래》

 양정자

 창작과비평사

 1993.6.15.



  다 지나간 일 아니냐고 여기는 분이 있지만, 무엇이 지나갈까요? 지나가면 사라질까요? 민낯을 감추고 얌전을 떨기에 온갖 잘못을 되풀이하고 맙니다. 굳이 예전 일을 들출 마음은 없되, 문득 돌아보고서 오늘을 바라봅니다. 지난날 어린이를 두들겨패던 자리에 선 어른 가운데 이녁 주먹다짐을 낱낱이 뉘우치고 또 고개숙이고 다시 눈물지으면서 조용히 호미를 쥔 채 씨앗을 심으면서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는 몇이나 있을까요? 《아이들의 풀잎노래》는 1993년에 나옵니다. 이 꾸러미에 흐르는 모든 이야기를 온몸으로 겪었고, 2010년 무렵까지 인천에서는 그리 안 바뀐 모습을 보았어요. 요새는 ‘학폭’이라 하지요. 예전 길잡이는 가볍게 따귀에 발길질에 몽둥이질을 일삼고 ‘술내기 축구·화투’를 으레 했습니다. “뭐, 예전 일 갖구 뭘?”처럼 여기겠습니까, “창피한 민낯입니다!”로 여기겠습니까? 얼마 안 된 일입니다. 그무렵 얻어터지고 뒹굴어야 했던 어린이·푸름이는 이제 쉰 살도 예순 살도 지나는데, ‘맞고 자라 어른이 된 사람’들 마음에는 무슨 씨앗이 싹텄을까요? 착하기만 해서는 못 산다고 여길 수 없어요. 착한 마음으로 누구나 사랑을 피우도록 ‘어른’이라면 발벗고 바꿔야지요. 참말로 ‘어른·길잡이’라면 말이지요.


ㅅㄴㄹ


승우야, 너 착하고 순진하지만 사내란 / 선만 가지고는 못 사는 세상이란다 / 배 뻥긋하도록 실컷실컷 먹고서 / 어서어서 힘도 세어지고 키도 크거라 / 그래서 다시는 네 몫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라 (점심시간/38쪽)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 줄줄 흐르는 /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 이 불볕 더위에 / 아이들도 아닌 다 큰 남자 선생님들이 / 시험 때라 아이들 일찍 가버리고 텅 비인 / 햇빛만 쨍한 새하얀 운동장을 누비며 / 땀 뻘뻘 흘리며 술내기 축구를 한다 / 이 더위에 보기만 해도 숨 헉헉 막히는 / 여자들은 도저히 꿈꿀 수조차 없는 / 사내들의 저 위대함! / 저 위대함이 한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 전쟁도 일으킨다 (남자 선생님들/50쪽)


비록 매 맞고 매 때리는 사이지만 / 그애 뺨과 내 손의 살이 맞닿는 순간 / 남모를 애틋한 느낌이 잠깐 오간다 / 내가 잠깐 복잡한 심정으로 망설이는 사이 / 눈치 빠른 놈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친다 / “선생님, 제발 살살 때려줘요 / 성호 여드름 터져요.” (여드름/86∼87쪽)


그때 그 일을

고스란히 남긴

이 글은 무척 값지다.

참으로 값지다.

이런 이야기를 시로 썼다니,

참 대단했다.

시로뿐 아니라 책으로도 나와,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지난날과 오늘날 우리 문단과 학교는,

참 놀랍다.


진작 이 느낌글을 쓰고 싶었으나

〈여드름〉을 비롯한 여러 시를

쉽게 읽을 수 없어

얼추 스무 해를 삭이고 난 오늘

비로소 느낌글을 갈무리해 놓는다.


문득 되물어 본다.

왜 때렸을까?

언제 뉘우칠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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