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 랜덤 시선 39
박진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6.19.

노래책시렁 343


《아라리》

 박진성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4.30.



  사랑이란, 살내음이 아닙니다. 살내음은 살내음일 뿐, 사랑도 사랑내음도 아닙니다. 사랑이란, 손잡기나 살섞기가 아닙니다. 손잡기나 살섞기는 손잡기나 살섞기일 뿐, 사랑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숱한 사람들은 사랑이 아닌 곳에 자꾸 사랑이라는 낱말을 붙입니다. 살내음·손잡기·살섞기를 하면서 자꾸 ‘사랑’이라는 낱말을 내세웁니다. 사랑을 배운 적이 없고, 사랑을 지은 적이 없고, 사랑을 나눈 적이 없고, 사랑을 그린 적이 없다면, 몸뚱이로 부비대는 길에 갇힙니다. 사랑을 펴고, 사랑을 가꾸고, 사랑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은, 이 사랑으로 스스로 반짝이는 눈빛으로 거듭나면서 온누리에 사랑씨앗을 푸르게 흩뿌려요. 《아라리》를 읽는 내내 ‘난 사랑받지 못 하며 살았어!’ 하는 혼잣말을 느낍니다. 그런데, ‘사랑을 알지 못 하고, 스스로 사랑을 짓지 않았다’면, ‘사랑을 못 받은 줄’ 어떻게 알지요? 사랑을 모르는 숨결이라면, 사랑을 받았다거나 했다고 여길 수 없어요.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살섞기가 아닌 사랑빛으로 살아가고 노래하고 웃을 뿐 아니라, 모든 말이 사랑으로 피어나요. 다시 말해서, 누구나 사랑을 받아서 태어나지만, 사랑을 스스로 찾아나서지 않기 때문에 ‘사랑받은 줄 모를’ 뿐입니다. 겉치레예요.



만져진다, 네 발톱에서 미끄러지는 나의 지문들, 소용돌이친다 (오래된 싸이월드/102쪽)


도대체가 약발이 들지 않는 날이에요 신경을 안정시키지 못한 알약이 속을 우려내고 액체로 헹구네요 새벽이구요 나는 공터로 나가는데요 (약발이 받지 않는 날/122쪽)


연속극에선 젊은 여자가 왼갖 신경질 내면서 배를 움켜잡고 끙끙대더란 얘기. 생리통 앓는 소리가 화면 조정 소리처럼 길고 길더란 얘기. / 어머니가 母로 누워 있다. 어머니가 모로 누워 울고 있다. 어머니가 폐경기를 지나고 있다. (어머니의 생리/128쪽)



《아라리》(박진성,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늙은 여자들 평상에 앉아 화투(花鬪) 친다

→ 할매들 바깥마루 앉아 꽃짝 친다

→ 늙은 순이들 바깥채 앉아 꽃짝 친다

12쪽


한 달 치 생활비는 잘 받았습니다

→ 한 달 살림돈은 잘 받았습니다

→ 한 달 삶돈은 잘 받았습니다

18쪽


별빛은 두텁게 가려져 있고 시계(視界)를 가늠하지 마라

→ 별빛은 두껍게 가렸고 눈을 가늠하지 마라

30쪽


불빛이 뿜어내는 열(熱) 속에서

→ 불빛이 뜨거운데

→ 불빛으로 뜨거운데

41쪽


바람이 상여를 흔드는 것이 아니다

→ 바람이 가마를 흔들지 않는다

1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의 나이 창비시선 107
김정환 지음 / 창비 / 199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6.19.

노래책시렁 345


《희망의 나이》

 김정환

 창작과비평사

 1992.11.5.



  우리를 둘러싼 숨결이 무엇일까 하고 이웃님한테 묻다가 ‘아차, 잘못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하루 내내 새·개구리·풀벌레 노래에 바람·구름·해·별 노래를 듣는 터전이 아니라, 쇳덩이·잿더미가 가득한 터전에서는 ‘숨결’을 느끼거나 헤아릴 틈이 없게 마련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부채조차 거의 안 쓰면서 보내니, 바람이(선풍기·에어컨)는 집에 들여놓지도 않는데, 시골조차 읍내나 버스에서는 바람이를 싱싱 틀 뿐, 들바람을 누리려 하지 않습니다. 《희망의 나이》를 다시금 읽다가 예전부터 마음에 안 와닿던 까닭을 어렵잖이 알아챕니다. 이 꾸러미를 여민 분을 비롯해 거의 모두라 할 글꾼은 서울(도시)에서 삽니다. ‘이름까지 서울’인 곳에서 살든 ‘이름만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든, 다 ‘서울’입니다. ‘이쁘장한 호프집 여종업원’을 그리는 글이 나쁘다고 여길 수는 없으나, 늘 술집마실을 하면서 늘 술고래로 헤엄치는 판에서 끌어낼 만한 글은 너무 뻔합니다. ‘헌책방’이라는 이름인 글은 뭘 말하려는 셈이었을까요. 헌책집에는 ‘손길책’이 있습니다. 손길을 받아 오래오래 읽힌 책이 있고, 미처 손길을 못 받고 숨죽이는 책이 있고, 앞으로 손길을 받고픈 새책이 있는 데가 ‘헌책집’입니다. 참으로 딱합니다.


ㅅㄴㄹ


그날 4차까지 가고 헤어졌다 / 교수인 그는 지하철 막차를 탔다 / 나는 택시를 타고 꽤 미인이었던 / 호프집 알프스 복장의 여종업원 얼굴과 / 그의 안경테가 밤 한강 파돗물에 / 출렁이는 것을 달리며 보았다 (안경/83쪽)


망하지 않았다면 절망했으리 / 그 사이에 네가 있다 / 내가 진열창 밖에서 여직 / 그 속에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 / 식구들은 안녕할 것인가 / 낭만적이던 것은 끝났다 모두 / 시대는 수척하지 않고 날씬하다 / 그 사이에 내가 있다 (헌책방/86쪽)



《희망의 나이》(김정환, 창작과비평사, 1992)


고층건물도 뒤집어보면 계단이다

→ 높은집도 뒤집어보면 디딤돌이다

89족


자본주의의 裏面으로서 되돌아보면 눈 내려 시간이 깔리고

→ 돈나라 뒷낯으로 되돌아보면 눈 내려 하루가 깔리고

10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꾸로 가자 삶창시선 35
윤재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 숲노래 문학비평 2023.5.30.

노래책시렁 337


《거꾸로 가자》

 윤재철

 삶창

 2012.11.23.



  남들처럼 가야 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안 가기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남이야 가건 말건,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나아갈 길을 바라보면서 가면 됩니다. 내가 가는 길에 이웃이 갈 수 있어요. 내가 가는 길이되 이웃이 안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숨결을 입고서 살아가기에, 때로는 만나고 때로는 헤어집니다. 어느 길이건 배웁니다. 나쁘거나 낫지 않습니다. 어느 길이건 삶입니다. 이쪽에 서야 좋지 않고, 저쪽에 서니 나쁘지 않아요. 금을 긋지 말아요. 새도 나비도 나무도 풀도 금을 안 긋습니다. 바다에 고래만 살지 않고, 새우나 거북만 살지 않아요. 다 다른 숨결은 서로 다르게 어우러집니다. 《거꾸로 가자》를 읽다가 “미루나무 이파리 오르가슴” 같은 글줄을 읽으며, 이런 ‘다른 길’이 아니라 ‘궂은 길’일 텐데 싶더군요. 궂은 눈길을 걷어낼 적에 금긋기가 사라집니다. 궂은 손길을 치울 적에 끼리끼리 뭉치지 않습니다. 궂은 발길을 멈출 적에 쪼개거나 가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길을 가면” 됩니다. 스스로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을 바라보면서, 궂긴 굴레를 스스로 느껴서 털면 됩니다. 천천히 걷고, 비를 맞고, 꽃내음을 맡고, 개미하고 동무하고, 참새하고 속삭일 적에, 비로소 모든 길은 거꾸로 아닌 노래로 갑니다.


ㅅㄴㄹ


나는 거꾸로 가자 / 예측 불가능하게 가자 / 벌거벗은 몸뚱이로 가자 / 저 강변 항하사 같은 금모래밭 / 남풍에 반짝이며 팔랑이는 미루나무 이파리 / 그 오르가슴을 나는 잊지 못한다 (거꾸로 가자/39쪽)


아하 아하 우리 어릴 적 흔히 먹던 것 / 우린 그냥 호박 나물이라 했는데 / 눈썹 자 붙이니 이름이 참 이쁘구만 / 호박 눈썹 나물이라 / 근데 요즘 아이들은 / 왜 그렇게 호박을 싫어하는지 / 밋밋하대나 어쩌대나 (호박 눈썹 나물/51쪽)



《거꾸로 가자》(윤재철, 삶창, 2012)


창의는 눈물에서 나오는 것

→ 새빛은 눈물에서 나온다

→ 새물결은 눈물에서 나온다

18쪽


삶은 단지 노역이 아니러니

→ 삶은 그저 고되지 않으니

→ 삶은 한낱 막일이 아니러니

27쪽


그녀는 알레고리에 익숙하다 판타지에 익숙하다

→ 이이는 돌림말에 익숙하다 꿈길에 익숙하다

→ 이녁은 견주어야 익숙하다 꿈누리에 익숙하다

38쪽


참고서대로 남녀 간 잠자리의 즐거움을 넉자배기로 말하라 했더니 야단법석이다

→ 도움책대로 즐거운 순이돌이 잠자리를 넉배기로 말하라 했더니 왁자지껄이다

52쪽


대추나무 묘목 한 그루

→ 어린 대추나무 한 그루

71쪽


내가 옥에서 나왔을 때

→ 내가 멍에를 나왔을 때

→ 내가 굴레를 나왔을 때

10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 숲노래 문학비평 2023.5.30.

노래책시렁 336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열림원

 1998.6.30.



  우리말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안는 품”이요, ‘내가 스스로 팔을 한껏 뻗어서 가득 받아들이는 너비’입니다. ‘아름’이라는 낱말은 ‘아·알’로 말밑을 이으니, ‘알 = 알다 = 깨닫다 = 안다 = 품다 = 아름 = 나’이기도 합니다. ‘내가 나로서 태어나는(알에서 깨는)’ 길을 스스로 보고 느껴서 받아들일 적에 비로소 ‘알다·깨달음’이요, 이러한 결을 풀어내면서 ‘한 아름’을 품는 몸짓이 ‘아름답다’예요. 그러니, 누구나 ‘혼자(하나)인 줄 알’면 누구나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다시 읽어 보면서, 이 꾸러미가 얼마나 허울스러운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누구나 혼자이기에 아름답습니다. 혼자 스스로 저마다 아름답기에, 다 다르게 아름다운 둘이 만나서 사랑을 새롭게 꽃피워 아기(알)를 낳아 돌볼 수 있어요. ‘혼자는 안 아름답다’고 읊는 사람이 있다면, 이이는 거짓말을 퍼뜨린다고 할 만합니다. 누구나 혼자(홀로·하나)이기에 아름답습니다. 사랑은, 두 아름(혼자)이 새길을 깨달으면서 둘레에 새빛을 퍼뜨리고 샘물을 길어올리는 보금자리를 짓는 길에서 눈부시게 자라곤 합니다. 하나(혼자)로 태어나는 아기가 안 아름다울까요? ‘허울’을 벗어냐 ‘하늘(하나)’을 참답게 봅니다.


ㅅㄴㄹ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리기다소나무/21쪽)


그날부터 나는 삶은 밤은 먹지 않았다 / 누가 이 지구를 밤처럼 삶아 먹는다면 / 내가 한 마리 밤벌레처럼 죽을 것 같아서 / 등잔불을 올리고 밤에게 용서를 빌었다 (밤벌레/53쪽)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정호승, 열림원, 1998)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 파란 바다가 고래를 헤아려 파란 줄

→ 파란 바다가 고래 때문에 파란 줄

20쪽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 바다 쪽으로 더 뻗어나간

→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21쪽


똥을 눈다는 것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 똥을 눠서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 똥을 누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67쪽


눈물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 고마운 눈물을 알았다

→ 눈물이 고마운 줄 알았다

6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치는 앉은뱅이 창비시선 23
양성우 지음 / 창비 / 1980년 4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23.

노래책시렁 332


《북치는 앉은뱅이》

 양성우

 창작과비평사

 1980.4.25.



  우리 집 아이들은 멧딸기를 따면 으레 먼저 맛보라며 내밉니다. “너희가 먼저 먹지?” “아녜요. 먼저 맛봐요.” 해마다 오월이면 멧딸기를 그리며 우리 집 뒤꼍이며 들숲을 헤아립니다. 찔레꽃내를 맡고, 감꽃내를 마시고, 유자꽃내를 들이켭니다. 나이듦이 아닌 철듦을 바랍니다. 나이먹기 아닌 철머금기를 바라요. 《북치는 앉은뱅이》는 사슬터(감옥)에 갇힌 몸으로 몰래 눌러쓴 글을 그러모았다고 합니다. 1980년 얼음나라는 이 노래책을 사람들이 읽지 못 하도록 틀어쥐고서 활활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골목뿐 아니라 한길에서까지 사람을 패고 돈을 빼앗는 얄개가 설치던 지난날에는 노래를 노래로 여기지 않고 불태우는 무리가 있었다면, 뒷길로 뒷돈을 주고받는 무리가 많은 오늘날에는 노래책을 불사르지는 않되 끼리끼리 노는 무리가 수두룩합니다. 마음을 시커멓게 태우는 이들을 어찌할 노릇일까요? 그런데 어린이를 먼저 바라보기를 바라요. 사납놈 아닌 어린이가 선 땅을 바라본다면, 붓을 어찌 쥐어야 할는지 실마리를 풀리라 봅니다. 어린이한테 물려줄 나라이듯, 어린이가 물려받을 말과 글과 넋과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꽝꽝 얼리면서 꽝꽝 터뜨리고 짓밟았습니다만, 그들한테 주먹질로 맞선다면, 쳇바퀴는 고스란합니다.


ㅅㄴㄹ


연애소설의 천분의 일도 읽히지 않는 / 시를 쓰다가 / 여기 와서 타의로 절필하고, / 한달에 한번씩 면회 오는 형수를 / 한달에 한번씩 울리니, / 보아라 우리 형수를 보아라, / 그 춘삼월 가마 타고 사포나루 건너던 / 새색시 얼굴이 아니다. (형수/26쪽)


사랑하는 사람들, 지금 어디 / 산비탈길 큰들을 나르며 / 멍들고 타는 그 입술 깨물고 있을까? / 갈라 터진 논바닥 후벼파면서 / 남모르는 노래를 소리 죽여 부르고, 혹은 이리저리 허리 굽고 몰리며 / 안으로 안으로만 흐느끼고 있을까? (마루 위에 쓴 詩/35쪽)



《북치는 앉은뱅이》(양성우, 창작과비평사, 1980)


길고 추운 마루 위의 밤

→ 길고 추운 마룻밤

10쪽


침묵의 땅은 비에 젖고

→ 고요한 땅은 비에 젖고

→ 말없는 땅은 비에 젖고

15쪽


별의 시인 윤동주의 마지막 비명을 듣는다

→ 별 노래님 윤동주 마지막 소리를 듣는다

→ 별을 그린 윤동주 마지막 목청을 듣는다

33쪽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 숲메가 소리쳐 푸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말하라

→ 푸른메가 소리쳐 푸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하라

52쪽


우리들은 남산 밑의 장삼이사(張三李四)

→ 우리들은 남산 밑 들꽃

→ 우리들은 남산 밑 풀꽃

→ 우리들은 남산 밑 작은꽃

107쪽


동전 한닢에 정조를 바꾼다

→ 돈 한 닢에 몸꽃을 바꾼다

→ 서푼에 온꽃을 바꾼다

→ 푼돈에 참꽃을 바꾼다

107쪽


곤장 맞아 죽던 날 밤엔

→ 볼기 맞아 죽던 날 밤엔

→ 볼기질로 죽던 날 밤엔

12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