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 시산맥 기획시선 94
문젬마 지음 / 시산맥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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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30.

노래책시렁 338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

 문젬마

 시산맥

 2023.2.28.



  “짓는 사람”을 한자말로 옮기면 ‘작가’입니다. 지을 줄 알면 누구나 ‘지음이(작가)’입니다. 글이나 그림을 지을 뿐 아니라, 그림꽃(만화)하고 빛꽃(사진)을 짓는 사람도 지음이예요.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지을 적에도 지음이요, 삶을 짓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지을 적에도 지음이입니다. 우리는 언제 밥옷집을 지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삶·살림·사랑을 짓는가요? 아직 본 적이 없는 것을 처음으로 내놓기에 ‘짓다’이지 않습니다. 삶을 이루는 살림을 사랑이라는 빛으로 펴서 내놓기에 ‘짓다’입니다.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를 읽었습니다. 겨울 끝자락인 2월은 잣나물이 돋아 밥살림을 북돋우고, 가을 한복판으로 접어드는 10월은 겨울을 앞두고 숱한 들풀이 마지막으로 꽃송이를 피우면서 씨앗을 남기려 합니다. 나무나 새나 꽃이나 나비는 북적이는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 깨어날 때를 그리면서 느긋이 기다리고 노래합니다. 사람들은 늘 북적입니다. 저잣판을 이루고, 부릉부릉 쇳덩이를 들이밀고, 자꾸 거머쥐려고 다투기까지 합니다. 우리말 ‘살림꾼’이 있으나 ‘일(직업)’에는 안 들어갑니다. 한자말 ‘주부·가정주부’도 일로 치지 않습니다. ‘지음 = 일(일다) = 물결·바다·바람’입니다. 지음꽃을 돌아봅니다.



고개 처박고 / 술만 퍼마셨다 // 부러질 듯 부러질 듯 무거운 목이 아슬아슬했다 // 게워도 게워도 몹쓸 그 사내 비워지지 않았다 // 넘치는 곳은 하수구만이 / 아니었다 (수국여자/38쪽)


평소에 못 한 말 // 쌓이고 쌓인 말 // 실컷 퍼부었다 // 달라진 건 끝끝내 // 아무것도 없었다 (소나기/103쪽)


+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문젬마, 시산맥, 2023)


선물 상자 언박싱 나도 좋아한다는 것

→ 꾸러미 열기 나도 좋아한다

→ 받은 꾸러미 뜯기 나도 좋아한다

19쪽


신생아실에서 처음 잡았다

→ 아기칸에서 처음 잡았다

36쪽


나의 가장 사랑하는 희고 검은 이율배반의 너

→ 내가 가장 사랑하는 희고 검게 뒤틀린 너

→ 가장 사랑하는 희고 검게 멋대로인 너

7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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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단짝 브로콜리숲 동시집 9
한은선 지음, 신은숙 그림 / 브로콜리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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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13.

노래책시렁 365


《오줌 단짝》

 한은선

 브로콜리숲

 2020.5.30.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무 말이나 하지 않을 줄 알 노릇입니다. 때를 가리고 자리를 살피면서 바람을 읽고 햇살을 따라서 별빛으로 말할 줄 안다면, 누구나 눈을 반짝이는 어른일 테지요. 둘레를 보면, 때를 가려서 얼굴을 꾸미고 자리를 살펴서 옷을 입는 사람만 수두룩합니다. 얼굴하고 몸을 치레하거나 씌울 줄만 알면 어른일까요?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도 어른일 수 있을까요? 사랑을 지어서 펴려는 숨결이 없다면 어떻게 어른일까요? 《오줌 단짝》은 여러모로 장난스레 말을 엮습니다. 장난스럽고 개구진 말잔치는 안 나쁘되, 말빛이나 말살림하고 멀어요. ‘살림’은 ‘장난’이 아니거든요. 살림은 자잘할 수 없어요. 살림은 사랑스럽고, 살림은 즐거워요. 말이 태어난 때를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말이 깨어난 자리를 들여다보기를 바라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숱한 말은 살림터가 아닌 ‘잿터’인 서울(도시)에서 만들었습니다. ‘숲에서 지은 말’이 아닌 ‘서울에서 뚝딱뚝딱 맞춘 말’이 확 퍼졌어요. ‘만들기 = 맞추기’입니다. ‘짓기 = 살리기’예요. “말이 씨가 된다”는 숲에서 살림을 짓던 옛사람이 아이들한테 슬기롭게 물려주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말씨앗을 생각한다면 ‘세 살 버릇’ 속뜻을 제대로 읽겠지요.



흙 속에서 / 하늘 향해 // 끙차! / 심지 밀어 올려 // 햇살 아래 / 피워 올린 // 일렁일렁 / 초록 불꽃들 (무 밭/48쪽)


“장하린, 다리 그만 떨어. / 세 살 버릇 여든 간다잖아!” // “엄마, 그럼 여든한 살 되면 / 자동으로 고쳐지는 거죠?” // “으이구, 내가 못살아.” // 엄마는 못살아 못살아 하면서 / 참 열심히 산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면/65쪽)


+


《오줌 단짝》(한은선, 브로콜리숲, 2020)


책을 공들여 만들어 준

→ 책을 땀흘려 엮은

→ 책을 힘껏 여민

3쪽


수런수런 이야기 나눌 때

→ 수런수런 이야기할 때

12쪽


왼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왔다

→ 왼쪽 다리를 다져서 왔다

→ 왼쪽 다리를 굳혀서 왔다

18쪽


흙 속에서 하늘 향해

→ 흙에서 하늘 보며

48쪽


햇살 아래 피워 올린

→ 햇볕에 피워 올린

48쪽


자동으로 고쳐지는 거죠?

→ 저절로 고쳐요?

→ 스스로 고쳐요?

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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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묘지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4
조정권 지음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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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13.

노래책시렁 366

《산정묘지》
 조정권
 민음사
 1991.7.5.


  노래를 쓰고 싶다면 노래를 쓸 일입니다. 혀에 소리로 얹어서 가만히 들려주고 듣다 보면, 우리가 여느 때에 읊는 말이 노래인지 아닌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허울을 씌우거나 치레를 해야만 노래인 듯 잘못 여긴다면,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에 가락을 입히는 노래가 하나도 안 와닿을 수 있어요. 《산정묘지》는 ‘山頂墓地’로 적는 글을 잔뜩 싣습니다. ‘멧부리뫼’란 소리일 텐데, ‘꼭대기’나 ‘무덤’ 같은 우리말을 쓰지 않아야 노래인 듯 여기는 낡은 틀입니다. 참말로 지난날에는 한문을 수글로 여기며 높였고, 우리글은 암글로 여기며 낮잡았습니다. 몇몇 글바치를 뺀 모든 글바치는,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으면 문학이 아니’라고 여겼어요.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입니다. 쉽게 ‘말’이라는 낱말을 혀에 얹고 노래로 부를 적에는 ‘소리로 흐르는 마음’을 나눌 만합니다. 그러나 말을 ‘말’이라 하지 않고, 일본말씨까지 섞는 “나의 언어들”이라 읊을 적에는, 그만 꾸미기로 번지고, 겉치레에 허울로 휘감습니다. 숱한 ‘시창작교실’과 ‘문학강좌’는 ‘수글잔치’입니다. 이제는 ‘수글잔치’가 아닌 ‘우리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마음을 나누려는 말을 펴고, 마음을 가꾸려는 글을 담을 일입니다.

ㅅㄴㄹ

나와 나의 언어들을 / 자석처럼 몸을 붙이게 하라 (山頂墓地·2/20쪽)

고요를 일으키며 잔잔히 파도치는 雪風이여 / 너희들 雪風의 옷자락조차 또 한차례의 고요를 기슭에다 선사하고 있지 않은가 (山頂墓地·8/36쪽)

《산정묘지》(조정권, 민음사, 1991)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 겨울에 멧길 오르면서 본다
→ 나는 겨울메를 오르면서 본다
→ 겨울메를 오르면서 본다
13쪽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 바위는 스스로 무겁게 등짐으로 스스로 사로잡힌다
→ 바위는 등짐을 무겁게 이고서 스스로 홀린다
16쪽

天上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 눈부신 디딤돌마다 하나씩 바치며 내 눈은
→ 빛나는 디딤칸마다 하나씩 바치며 눈은
16쪽

어둠은 존재의 處所에 뿌려진 生木의 향기
→ 어둠은 이곳에 뿌린 나무내음
→ 어둠은 여기에 뿌린 갓나무내
17쪽

소쿠리가 神의 문간으로 도착하기를 기대하면서
→ 소쿠리가 하늘 길목으로 닿기를 바라면서
→ 소쿠리가 저 난달로 가기를 빌면서
24쪽

내일의 歌人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은
→ 새 노래님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는 뜻은
→ 다음 소리꽃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니
44쪽

구름 위에서 폭포구경을 하다가
→ 구름에서 쏠을 구경하다가
→ 구름에 앉아 쏟물을 구경하다가
93쪽

처녀시집은 영원한 그리움이다 왜냐하면 너의 라이벌은 너 자신이었으니까
→ 첫걸음은 늘 그립다 왜냐하면 네 맞잡이는 너이니까
→ 첫노래는 내처 그립다 왜냐하면 너는 너랑 겨루니까
11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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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수상해 문학동네 동시집 40
함기석 시, 토끼도둑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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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8.21.

노래책시렁 301


《아무래도 수상해》

 함기석

 문학동네

 2015.11.27.



  누구나 씨앗을 어질게 심고 즐거이 가꾸어 기쁘게 열매를 맺을 만합니다. 누구나 사랑을 길어올려 스스로 빛나고 서로 환하게 웃으면서 보금자리를 지을 만합니다. 나쁜풀도 좋은풀도 없이 모두 다 다르게 푸르면서 싱그러운 풀입니다. 나쁜나무도 좋은나무도 없이 저마다 다르게 우거지면서 맑게 이루는 숲입니다. 아이한테 뭘 해줘야 하는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이 뭘 해주기를 바랄 까닭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서울나라는 아이어른이 그만 제넋을 잊다가 제얼을 잃어요. 《아무래도 수상해》를 읽었습니다. 한숨을 쉬다가 생각합니다. 넝쿨을 도둑으로 빗댄다면, 마음에 사랑 아닌 도둑이 있다는 뜻입니다. 넝쿨풀이나 넝쿨나무를 몰라도 한참 모를 뿐 아니라, 스스로 사랑이 없는 속빛이겠지요. “이상한 곤충”이 어디 있을까요? “다 다른 벌레”는 있습니다. 파리가 똥을 먹거나 모기가 피를 먹기에 ‘나쁜’ 벌레이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무엇을 보고 읽고 느끼는 하루인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어른들은 아이 곁에서 무엇을 하고 짓고 쓰고 나누는 오늘인지 되새길 일입니다. 어떻게 써야 글(시)일 수 있을까요? 먼저 사랑씨앗을 심고, 이 사랑씨앗을 가꾸는 하루를 누리고, 이 사랑씨앗으로 살림하는 오늘을 고스란히 옮기면서, 아이랑 어깨동무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들숲바다를 품으면, 우리 손에서 태어나는 이야기는 언제나 글(시·문학)로 피어납니다.


ㅅㄴㄹ


깊은 밤 / 녹색 복면을 한 도둑이 / 등에도 팔뚝에도 가시가 돋은 도둑이 / 손을 뻗어 담을 넘는다 (넝쿨장미/20쪽)


거울 앞에서 / 아빠가 면도를 한다 // 면도기는 수염을 먹고 사는 / 이상한 곤충 (전기면도기/4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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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희재 브로콜리숲 동시집 15
임동학 지음, 고니 그림 / 브로콜리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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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8.21.

노래책시렁 360


《개 같은 희재》

 임동학

 브로콜리숲

 2020.11.11.



  우리말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확 줄어듭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글 아닌 말’로 마음을 나누고 살림을 지어 아이한테 물려주고 이웃하고 주고받는 나날이었기에, 지난날에는 저마다 말빛이 씨앗으로 영글었어요. 오늘날에는 어느새 ‘말 아닌 글’을 배움책(교과서)으로 달달 외워서 겨루고 싸우고 다투고 치고받느라, 어느새 말빛은커녕 글빛조차 없이 시들고 멍글고 찌드는 굴레에서 스스로 허덕입니다. 《개 같은 희재》처럼 글장난에 사로잡히는 글이라면 그저 굴레입니다. 글이란, 마음을 소리로 담은 말을 눈으로도 읽도록 그린 빛줄기일 수 있지만, 생각이 뻗지 말라며 붙들어매는 굴레일 수 있어요. ‘개’란 무엇일까요? ‘개’가 나쁘거나 낮거나 못 먹는 것을 가리키는 곳에 쓰는 낱말이라고 잘못 받아들이니 “개 같은” 소리를 읊느라 바빠요. 그런데, 왜 ‘개다’일까요? ‘열다’하고 비슷하되 다른 ‘개다’예요. 구름이 걷히고 비가 멎고 해가 나면서 온누리가 맑고 밝게 새롭게 빛나는 터전을 ‘개·다’로 그립니다. 들숲을 거친 모든 부스러기에 숨결이 ‘개(개펄·갯벌)’를 거쳐서 바다로 나아가기에 푸르면서 파랗게 싱그러운 숨빛으로 거듭납니다. 이제 제발 ‘개’가 뭔지 읽고 느끼고 헤아려서 아이어른 사이를 잇는 실타래로 풀어내야지 싶습니다. 개가 왜 개인 줄 모르니, ‘예뻐하다’가 ‘사랑’이 아닌 줄 모를 테고, 모든 글치레가 부글부글 쳇바퀴인 줄도 모르겠지요.


ㅅㄴㄹ


엄마, 아빠도 다예를 / 얼마나 예뻐할까? // 그거, 다 모르고 하는 말이다 / 다예는 미치겠다 (모르고 하는 말/10쪽)


구름 속에서 / 수많은 빗방울들은 / 까마득한 저 아래로 / 누가 먼저 뛰어내릴지 / 어떻게 정했을까? (맨 처음 내린 빗방울 2/55쪽)


+


풀의 씨앗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 풀씨앗이 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풀씨가 붙은 줄 볼 수 있습니다

2쪽


그게 바로 저만의 매력이거든요

→ 바로 제 멋이거든요

→ 제가 그렇게 멋지거든요

18쪽


구름 속에서 수많은 빗방울들은 까마득한 저 아래로 누가 먼저 뛰어내릴지 어떻게 정했을까

→ 구름이던 숱한 빗방울은 까마득한 저 밑으로 누가 먼저 뛰어내릴지 어떻게 골랐을까

→ 구름을 이룬 숱한 빗방울은 까마득한 저곳으로 누가 먼저 뛰어내릴지 어떻게 잡았을까

55쪽


또다시 죽어 고향에 오는 건 아닐까

→ 또다시 죽어 돌아오지 않을까

→ 또다시 죽어 집으로 오지 않을까

7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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