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묘지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4
조정권 지음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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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9.13.

노래책시렁 366

《산정묘지》
 조정권
 민음사
 1991.7.5.


  노래를 쓰고 싶다면 노래를 쓸 일입니다. 혀에 소리로 얹어서 가만히 들려주고 듣다 보면, 우리가 여느 때에 읊는 말이 노래인지 아닌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허울을 씌우거나 치레를 해야만 노래인 듯 잘못 여긴다면,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에 가락을 입히는 노래가 하나도 안 와닿을 수 있어요. 《산정묘지》는 ‘山頂墓地’로 적는 글을 잔뜩 싣습니다. ‘멧부리뫼’란 소리일 텐데, ‘꼭대기’나 ‘무덤’ 같은 우리말을 쓰지 않아야 노래인 듯 여기는 낡은 틀입니다. 참말로 지난날에는 한문을 수글로 여기며 높였고, 우리글은 암글로 여기며 낮잡았습니다. 몇몇 글바치를 뺀 모든 글바치는,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으면 문학이 아니’라고 여겼어요.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입니다. 쉽게 ‘말’이라는 낱말을 혀에 얹고 노래로 부를 적에는 ‘소리로 흐르는 마음’을 나눌 만합니다. 그러나 말을 ‘말’이라 하지 않고, 일본말씨까지 섞는 “나의 언어들”이라 읊을 적에는, 그만 꾸미기로 번지고, 겉치레에 허울로 휘감습니다. 숱한 ‘시창작교실’과 ‘문학강좌’는 ‘수글잔치’입니다. 이제는 ‘수글잔치’가 아닌 ‘우리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마음을 나누려는 말을 펴고, 마음을 가꾸려는 글을 담을 일입니다.

ㅅㄴㄹ

나와 나의 언어들을 / 자석처럼 몸을 붙이게 하라 (山頂墓地·2/20쪽)

고요를 일으키며 잔잔히 파도치는 雪風이여 / 너희들 雪風의 옷자락조차 또 한차례의 고요를 기슭에다 선사하고 있지 않은가 (山頂墓地·8/36쪽)

《산정묘지》(조정권, 민음사, 1991)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 겨울에 멧길 오르면서 본다
→ 나는 겨울메를 오르면서 본다
→ 겨울메를 오르면서 본다
13쪽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 바위는 스스로 무겁게 등짐으로 스스로 사로잡힌다
→ 바위는 등짐을 무겁게 이고서 스스로 홀린다
16쪽

天上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 눈부신 디딤돌마다 하나씩 바치며 내 눈은
→ 빛나는 디딤칸마다 하나씩 바치며 눈은
16쪽

어둠은 존재의 處所에 뿌려진 生木의 향기
→ 어둠은 이곳에 뿌린 나무내음
→ 어둠은 여기에 뿌린 갓나무내
17쪽

소쿠리가 神의 문간으로 도착하기를 기대하면서
→ 소쿠리가 하늘 길목으로 닿기를 바라면서
→ 소쿠리가 저 난달로 가기를 빌면서
24쪽

내일의 歌人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은
→ 새 노래님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는 뜻은
→ 다음 소리꽃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니
44쪽

구름 위에서 폭포구경을 하다가
→ 구름에서 쏠을 구경하다가
→ 구름에 앉아 쏟물을 구경하다가
93쪽

처녀시집은 영원한 그리움이다 왜냐하면 너의 라이벌은 너 자신이었으니까
→ 첫걸음은 늘 그립다 왜냐하면 네 맞잡이는 너이니까
→ 첫노래는 내처 그립다 왜냐하면 너는 너랑 겨루니까
11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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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수상해 문학동네 동시집 40
함기석 시, 토끼도둑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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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8.21.

노래책시렁 301


《아무래도 수상해》

 함기석

 문학동네

 2015.11.27.



  누구나 씨앗을 어질게 심고 즐거이 가꾸어 기쁘게 열매를 맺을 만합니다. 누구나 사랑을 길어올려 스스로 빛나고 서로 환하게 웃으면서 보금자리를 지을 만합니다. 나쁜풀도 좋은풀도 없이 모두 다 다르게 푸르면서 싱그러운 풀입니다. 나쁜나무도 좋은나무도 없이 저마다 다르게 우거지면서 맑게 이루는 숲입니다. 아이한테 뭘 해줘야 하는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이 뭘 해주기를 바랄 까닭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서울나라는 아이어른이 그만 제넋을 잊다가 제얼을 잃어요. 《아무래도 수상해》를 읽었습니다. 한숨을 쉬다가 생각합니다. 넝쿨을 도둑으로 빗댄다면, 마음에 사랑 아닌 도둑이 있다는 뜻입니다. 넝쿨풀이나 넝쿨나무를 몰라도 한참 모를 뿐 아니라, 스스로 사랑이 없는 속빛이겠지요. “이상한 곤충”이 어디 있을까요? “다 다른 벌레”는 있습니다. 파리가 똥을 먹거나 모기가 피를 먹기에 ‘나쁜’ 벌레이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무엇을 보고 읽고 느끼는 하루인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어른들은 아이 곁에서 무엇을 하고 짓고 쓰고 나누는 오늘인지 되새길 일입니다. 어떻게 써야 글(시)일 수 있을까요? 먼저 사랑씨앗을 심고, 이 사랑씨앗을 가꾸는 하루를 누리고, 이 사랑씨앗으로 살림하는 오늘을 고스란히 옮기면서, 아이랑 어깨동무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들숲바다를 품으면, 우리 손에서 태어나는 이야기는 언제나 글(시·문학)로 피어납니다.


ㅅㄴㄹ


깊은 밤 / 녹색 복면을 한 도둑이 / 등에도 팔뚝에도 가시가 돋은 도둑이 / 손을 뻗어 담을 넘는다 (넝쿨장미/20쪽)


거울 앞에서 / 아빠가 면도를 한다 // 면도기는 수염을 먹고 사는 / 이상한 곤충 (전기면도기/4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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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희재 브로콜리숲 동시집 15
임동학 지음, 고니 그림 / 브로콜리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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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8.21.

노래책시렁 360


《개 같은 희재》

 임동학

 브로콜리숲

 2020.11.11.



  우리말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확 줄어듭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글 아닌 말’로 마음을 나누고 살림을 지어 아이한테 물려주고 이웃하고 주고받는 나날이었기에, 지난날에는 저마다 말빛이 씨앗으로 영글었어요. 오늘날에는 어느새 ‘말 아닌 글’을 배움책(교과서)으로 달달 외워서 겨루고 싸우고 다투고 치고받느라, 어느새 말빛은커녕 글빛조차 없이 시들고 멍글고 찌드는 굴레에서 스스로 허덕입니다. 《개 같은 희재》처럼 글장난에 사로잡히는 글이라면 그저 굴레입니다. 글이란, 마음을 소리로 담은 말을 눈으로도 읽도록 그린 빛줄기일 수 있지만, 생각이 뻗지 말라며 붙들어매는 굴레일 수 있어요. ‘개’란 무엇일까요? ‘개’가 나쁘거나 낮거나 못 먹는 것을 가리키는 곳에 쓰는 낱말이라고 잘못 받아들이니 “개 같은” 소리를 읊느라 바빠요. 그런데, 왜 ‘개다’일까요? ‘열다’하고 비슷하되 다른 ‘개다’예요. 구름이 걷히고 비가 멎고 해가 나면서 온누리가 맑고 밝게 새롭게 빛나는 터전을 ‘개·다’로 그립니다. 들숲을 거친 모든 부스러기에 숨결이 ‘개(개펄·갯벌)’를 거쳐서 바다로 나아가기에 푸르면서 파랗게 싱그러운 숨빛으로 거듭납니다. 이제 제발 ‘개’가 뭔지 읽고 느끼고 헤아려서 아이어른 사이를 잇는 실타래로 풀어내야지 싶습니다. 개가 왜 개인 줄 모르니, ‘예뻐하다’가 ‘사랑’이 아닌 줄 모를 테고, 모든 글치레가 부글부글 쳇바퀴인 줄도 모르겠지요.


ㅅㄴㄹ


엄마, 아빠도 다예를 / 얼마나 예뻐할까? // 그거, 다 모르고 하는 말이다 / 다예는 미치겠다 (모르고 하는 말/10쪽)


구름 속에서 / 수많은 빗방울들은 / 까마득한 저 아래로 / 누가 먼저 뛰어내릴지 / 어떻게 정했을까? (맨 처음 내린 빗방울 2/55쪽)


+


풀의 씨앗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 풀씨앗이 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풀씨가 붙은 줄 볼 수 있습니다

2쪽


그게 바로 저만의 매력이거든요

→ 바로 제 멋이거든요

→ 제가 그렇게 멋지거든요

18쪽


구름 속에서 수많은 빗방울들은 까마득한 저 아래로 누가 먼저 뛰어내릴지 어떻게 정했을까

→ 구름이던 숱한 빗방울은 까마득한 저 밑으로 누가 먼저 뛰어내릴지 어떻게 골랐을까

→ 구름을 이룬 숱한 빗방울은 까마득한 저곳으로 누가 먼저 뛰어내릴지 어떻게 잡았을까

55쪽


또다시 죽어 고향에 오는 건 아닐까

→ 또다시 죽어 돌아오지 않을까

→ 또다시 죽어 집으로 오지 않을까

7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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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라면이라면
권기덕 지음, 임효영 그림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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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8.21.

노래책시렁 361


《내가 만약 라면이라면》

 권기덕

 창비

 2021.9.3.



  앞자리에 있으려고 겨룹니다. 먼저 쥐거나 얻거나 잡으려고 다툽니다. 높이 올라서려고 싸웁니다. 빼앗으려고 치고받습니다. 살림하고 등지면서 겨루고, 삶을 잊은 채 다투고, 사랑을 품지 않아 싸우고, 숲을 모르면서 치고받아요. 겨루기에 빠지라며 줄을 세웁니다. 다투며 미워하라고 담을 쌓습니다. 싸우며 죽으라고 등을 떠밀지요. 치고받으며 끙끙거리라고 서울로 모입니다. 《내가 만약 라면이라면》은 오늘날 우리 모습 같아요. 마음을 가꾸는 길이 아닌, 겉차림을 반드레하고 꾸미는 오늘날입니다. 생각에 날개를 다는 하루가 아닌, 틀에 따라 외우면서 홀리는 수렁입니다. 사랑으로 푸르게 품으려면 스스로 풀꽃나무일 노릇인데, 풀과 꽃과 나무는 들숲바다를 이루는 바탕인 줄 몰라보기만 하더군요. 아이도 어른도 “인기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고, “인기 있는 라면”은 더더욱 될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무엇을 보나요? 풀잎을 스치기에 푸른바람이고, 나뭇잎을 살랑이기에 푸른노래인데, 푸나무가 아닌 바람이(에어컨)라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면서 여름땀을 잊고 겨울추위를 잃어 바보로 뒹굴지 않는가요? “둥근 모서리”란 없습니다. ‘모’란 뾰족하게 나온 것이나 곳입니다. ‘볏모’요 ‘못’이요 ‘모시풀’입니다. ‘목’도 매한가지예요. 얼핏 보면 뾰족하게 길되, 부드러이 샘솟으면서 숨결을 품는 ‘모·못’을 헤아리지 않는 눈길로는, 우리 별이 왜 ‘둥근 공’인지 모를밖에 없습니다.


ㅅㄴㄹ


스펀지 책상의 둥근 모서리처럼 / 우리도 점점 둥글어지고 있어 (스펀지 교실/11쪽)


폭염 땐 / 에어컨 설치된 방에 틀어박혀 / 외톨이가 되는 게 / 소원이래 (달성공원/17쪽)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면이 되고 싶다 (라면/42쪽)


+


《내가 만약 라면이라면》(권기덕, 창비, 2021)


둥근 모서리처럼 우리도 점점 둥글어지고 있어

→ 둥근 귀퉁이처럼 우리도 차츰 둥글어

→ 둥근 가처럼 우리도 어느새 둥글어

11쪽


내가 던진 너의 공이 던진 나의 공이 던진 너의 공이 던진 나의 공이

→ 내가 던진 네 공이 던진 내 공이 던진 네 공에 던진 내 공이

14쪽


나를 위해 자신의 음식과 방까지 내줄 때도 있어

→ 나한테 밥과 칸까지 내줄 때도 있어

2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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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넘세 창비시선 51
신경림 지음 / 창비 / 198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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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8.21.

노래책시렁 362


《달넘세》

 신경림

 창작과비평사

 1985.10.10.



  그제 새벽에 비가 억수로 내립니다. 이른아침에 이웃마을로 걸어가서 시골버스로 읍내에 가서, 다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려 하는데, 함께 움직일 아이들이 걱정합니다. “걱정 마. 우린 우산 없이 다닐 테니까.” 새벽비는 우리가 짐을 꾸리고 나서기 앞서 그칩니다. 그런데 이날 밤 경기 일산 길손집에 깃드니 또 함박비가 오고, 다시 아침에 할아버지한테 찾아갈 즈음에는 말끔히 갭니다. 아이들이 이모를 만나서 이모네에 깃드니 또 비가 오고, 다시 우리가 길손집으로 돌아갈 즈음에는 구름이 걷혀요. “별을 보라는 하늘일까요?” “음, 구름은 우리가 서울(도시)에서도 푸르게 숨쉬라고 내렸대. 별은 고흥으로 돌아가서 보라고 하네.” 아이들하고 두런두런 말을 섞은 밤에, 끝없는 부릉물결을 느끼면서 《달넘세》를 곱씹습니다. 신경림 님이 쓴 글을 1992년부터 읽었고, 2010년부터 더는 못 읽겠다고 여겼습니다. 떠도는 말을 떠돌듯 구경하면서 옮기는 글재주는 있을 테지만, 살아가는 하루를 푸르게 노래하는 글결은 찾기가 어렵구나 싶어요. 이녁은 왜 ‘글쓰기’가 아닌 ‘이름벌이’를 할까요? ‘가난하고 낮은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술그릇을 부딪으면서 쏟아내는 술타령도 ‘시’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손수 기저귀를 빨래하지 않고, 아침저녁을 차리지 않고, 살림꾼으로 하루를 누리지 않을 적에는, 어쩐지 텅 빈 채 별빛 한 줄기 없는 ‘서울 한복판 밤거리’를 보는 듯싶습니다.


ㅅㄴㄹ


더 오르리라는 수몰보상금 소문에 / 아침부터 들떠 있다 / 농협창고에 흰 페인트로 굵게 그어진 / 1972년의 침수선 표시는 이제 아무런 뜻도 없다 / 한 반백 년쯤 전에 내 아버지들이 주머니칼로 새겼을 / 선생님들의 별명 또는 이웃 계집애들의 이름이 / 헌 티처럼 붙어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들만이 / 다시는 못 볼 하늘을 향해 울고 있다 (강길 2/60쪽)


신새벽에 일어나 / 비린내 역한 장바닥을 걸었다. / 생선장수 아주머니한테 / 동태 두 마리 사 들고 / 목로집에서 새벽 장꾼들과 어울려 / 뜨거운 해장국을 마셨다. // 거기서 나는 보았구나 / 장바닥에 밴 끈끈한 삶을, / 살을 맞비비며 사는 / 그 넉넉함을, / 세상을 밀고 가는 /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편지―시골에 있는 숙에게/80쪽)


+


너는 나를 칼날 위에 서게 한다

→ 너는 나를 칼날에 세운다

10쪽


어물전에서 난장판에서

→ 고깃간에서 북새판에서

52쪽


두 길 험한 낭떠러지를 만들며

→ 두 길 낭떠러지로

→ 두 길 가파른 길로

54쪽


갈미봉에 뿌옇게 비 몰려도

→ 갈미메에 뿌옇게 비 몰려도

54쪽


그는 나의 소학교 동창이다

→ 그는 어린배움터 또래이다

→ 그는 씨앗배움터 벗이다

58쪽


목로집에서 새벽 장꾼들과 어울려 뜨거운 해장국을 마셨다

→ 시렁집에서 새벽 저잣꾼과 어울려 속풀이국을 마셨다

→ 널술집에서 새벽 장사꾼과 어울려 술풀이국을 마셨다

8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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