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전집 1 : 시 박영근 전집 1
박영근 지음, 박영근전집 간행위원회 엮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17.

노래책시렁 256


《대열》

 박영근

 풀빛

 1987.11.15.



  어린배움터부터 푸른배움터를 지나는 열두 해에 걸쳐 ‘대열’이라는 일본스런 한자말이 끔찍하게 듣기 싫었습니다. 요새는 매질(체벌)이나 주먹질(폭력)이 많이 걷혔으나,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집·마을·배움터·일터·나라 어디에서나 매질하고 주먹질이 판쳤습니다. 줄(대열)을 지으라고 윽박질렀고, 줄에서 벗어나면 두들겨패거나 밟으면서 틀에 끼워맞추려고 했습니다. 《대열》은 ‘줄’에 ‘길들’이려는 무리한테 ‘들불’처럼 맞서면서 ‘줄기차’게 ‘어깨동무’를 하는 ‘새길’을 읊는 노래를 담는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이 줄을 저 줄로 바꾸면 나을 수 있을까요? 이 길을 저 길로 바꾸면 달라질까요? 이 틀을 저 틀로 고치면 새로울까요? 어쩔 길이 없어서 이곳을 못 떠난다고 여기지만, 다른 길을 스스로 찾거나 바라거나 생각하지 않기에, 그만 길드는 굴레를 우리가 스스로 짓는다고 느껴요. 왜 배움터를 그만두지 못 할까요? 왜 일터를 떠나지 못 할까요? 왜 ‘나라’ 아닌 ‘나’를 바라보면서, ‘나와 매한가지인 너’를 스스럼없이 품고 안고 풀고 알면서 꽃으로 피어나려는 숨결로 자라는 길로는 선뜻 나아가지 못 할까요? ‘노동문학’은 나쁘지 않되, 낫지 않습니다. 살림길을 삶글로 풀어 사랑으로 녹일 ‘일’입니다.



방을 옮겨야할 것 같아요. / 그런데 방값은 비싸고 / 싸구려 월세방은 드물고 // 정말 살아가기가 고달플 때 / ‘의연한 산하’를 부르며 / 가사를 되씹으며 / 당신과의 약속을 생각해요. (편지·1/32쪽)


공단 복지회관 안내공고판에서 모임의 이름들과 시간표가 환히 웃고 있었다. / 책 한 권……꽃 한 송이……연애 한 번 못해봤네. / 출근카드에 찍힌 수많은 날짜들과 / 야근하던 밤마다 손바닥에 올려지던 푸른 색 식권들이 떠올랐다. / 나는 괜찮을까. (공장 비나리·2-내 이름은 공순이에요/238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