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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
박재철 글.그림 / 길벗어린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0
겨울 끝자락 2월에 먹는 봄풀
―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
박재철 글·그림
천둥거인 펴냄, 2006.8.2.
설 언저리에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는 전남 고흥 우리 시골집에는 드디어 봄풀이 돋습니다. 봄풀은 진작 돋기는 했지만, 이제 오늘부터 밥상에 올릴 만큼 제법 돋습니다. 아침으로 먹을 밥과 국을 모두 끓이고 나서 빈 그릇을 들고 마당으로 나와서 갈퀴덩굴 어린 줄기를 뜯습니다.
보름쯤 앞서 올망졸망 조그마한 싹이 돋은 갈퀴덩굴을 바라보면서 ‘기운 내렴. 올해에도 즐거우면서 고맙고 맛나게 먹을게.’ 하고 인사했습니다. 뵥뵥 가볍게 뜯은 갈퀴덩굴을 그릇에 담습니다. 한 끼니 먹을 만큼 뜯습니다. 냄새를 맡고 물로 가볍게 헹굽니다. 아이들 먹이고 나도 먹습니다. 큰아이가 묻습니다. “이 풀 뭐야?” “갈퀴덩굴.” “먹어도 돼?” “먹는 풀이니까 밥상에 올렸지.”
갈퀴덩굴이 돋으며 텃밭 흙이 해마다 천천히 살아납니다. 갈퀴덩굴이 자라며 우리 집에 뱀이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갈퀴덩굴을 뜯어서 먹으며 싱그러운 봄내음 듬뿍 누립니다. 갈퀴덩굴이 숙숙 줄기를 올리면, 다른 봄풀도 찬찬히 오르면서 우리 집 밥상은 갖가지 풀빛이 어우러집니다.
.. 여름에는 풀이 정말 빨리 자라나 봐. 며칠 전에 풀을 뽑았는데 우리 밭은 다시 풀밭이 되었어. 그런데 그냥 풀밭이 아닌걸.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 있어 .. (8쪽)
2월 3일부터 올해 ‘집풀’을 처음 뜯습니다. 지난해 12월 끝무렵까지 우리 ‘집풀’을 실컷 고맙게 얻었습니다. 겨울 한복판인 12월 끝무렵과 1월 한 달을 빼고는 집 안팎에서 돋는 풀을 누리면서 풀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집 옆밭과 뒷밭과 뒤꼍에 나무들 우람하게 자라면, 나무 사이로 자라는 풀을 겨울 한복판에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이 집에 들어오기 앞서 살던 분들이 이 밭 저 땅에 쓰레기를 워낙 많이 파묻었고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쓰신 탓에, 흙을 살리자면 여러 해 걸려요. 그래도 한 해 가운데 열 달 남짓 집풀을 뜯어서 먹을 수 있으니 즐겁습니다. 상추나 배추나 시금치 같은 풀은 아니지만, 갈퀴덩굴부터 까마중알과 까마중잎까지, 2월부터 12월까지 누리는 풀은 한결같이 싱그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밭에 씨앗을 뿌려야 얻는 풀이 아닙니다. 배추씨나 무씨나 당근씨는 따로 뿌리거나 심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민들레나 고들빼기나 씀바귀나 냉이나 비름나물이나 소리쟁이나 미나리나 쑥이나 정구지나 살갈퀴나 돌나물이나 괭이밥이나 토끼풀이나 갓풀이나 유채풀이나 꽃다지나 꽃마리나 코딱지나물이나 별꽃나물이나 봄까지꽃풀 들은 씨앗을 하나도 안 뿌립니다. 이 풀 저 풀 모두 스스로 씨앗을 드리우고 스스로 줄기를 올려요.
아주까리도 방동사니도 보리뺑이도 지칭개도 박주가리도 저마다 곱게 드리우면서 살며시 고개를 내밉니다. 까마중 씨앗을 뿌려야 까마중이 자라지 않아요. 이 풀 저 풀 서로서로 얼크러지면서 예쁘게 돋습니다. 갯기름나물도 후박나무 곁에서 고운 잎사귀 내밀고, 젓가락나물이며 도깨비바늘이며 이쁘장하게 새잎 내놓습니다.
.. 아빠와 난 우리 밭에서 딴 깻잎, 상추, 오이, 배추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어. 난 밥보다 삶은 감자와 옥수수가 맛있었어 .. (30쪽)
박재철 님이 이녁 딸아이와 누린 한 해 들놀이 이야기를 갈무리한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천둥거인,2006)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봄이’는 봄부터 여름과 가을을 누리고는 겨울을 즐깁니다. 들에서 들풀과 들꽃을 만납니다. 풀밭에서 풀벌레하고 사귑니다. 딱정벌레를 만지고 거미를 지켜봅니다. 가랑잎을 만지고 나뭇잎 스치는 바람노래를 듣습니다.
봄이는 들에서 들빛을 마십니다. 봄이네 아버지인 박재철 님은 아이와 함께 아이 눈높이로 들빛을 지켜보면서 들숨과 들넋을 그림 하나로 옮깁니다.
.. 아침마다 어김없이 찾아와서 잠을 깨우는 새가 있어. 삐익 삐익 삑 시끄러운 소리로 울어대는 직박구리 한 쌍이야 .. (52쪽)
아이가 먹는 들밥은 어른이 함께 먹는 들밥입니다. 아이가 마시는 들숨은 어른이 함께 마시는 들숨입니다. 아이가 누리는 들놀이는 어른이 함께 누리는 들놀이입니다.
어른이 자가용을 몰면 아이도 커서 자가용을 몰고 싶습니다. 어른이 흙을 만지면서 웃으면 아이도 언제나 흙을 만지면서 웃고 싶습니다. 어른이 나무 한 그루를 포근히 안으면서 소근소근 사랑어린 말을 속삭이면, 아이도 언제나 나무 한 그루를 따사로이 안으면서 속닥속삭 살가운 말을 속삭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는 ‘교과서 진도’하고 다릅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학습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이 책을 곁에 두면서 학습 능력을 높인다든지 환경사랑하고 이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들빛은 교육이나 학습이나 문화가 아니거든요. 들풀과 들꽃은 환경보호가 아닙니다. 우리 목숨이요 우리 숨결이며 우리 지구별입니다.
환경을 지키거나 보호하려는 뜻에서 읽는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목숨이요 숨결인지 돌아보면서, 우리가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를 찾도록 돕는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입니다.
.. 밭두렁에서 아주머니 둘이서 뭔가 열심히 찾고 있었어. 뭘 하고 있는 걸까? 아주머니들은 질경이를 뜯고 있었어. “아줌마, 질경이는 뜯어서 뭐 해요?” “호호! 소금물에 데쳐서 기름에 볶아 먹으면 맛이 좋단다.” .. (76쪽)
들에서 자라는 들유채를 뜯으면 들맛과 유채맛이 섞인 들유채맛을 누립니다. 비닐집에서 비료와 농약을 주어 돌본 시금치를 사다 먹으면 비닐맛과 비료맛과 농약맛이 어우러진 영양소를 먹겠지요.
숲에서 큰숨 들이켜면 숲바람을 마십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목숨이 어우러진 숲노래를 함께 마십니다. 숲빛을 먹고 숲꿈을 안습니다. 숲풀을 만지고 숲꽃을 바라봅니다.
살아가는 즐거움을 들마실을 하면서 천천히 느낍니다. 사랑하는 기쁨을 들놀이를 누리면서 찬찬히 깨닫습니다. 삶과 사랑이 어우러지는 빛을 들꽃 한 송이 톡 따서 귓등에 꽂으면서 빙그레 짓는 웃음으로 알아차립니다. 4347.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