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동생이 생겼어요 - 아기고양이 그림책
오노 요코 글, 이모토 요코 그림, 송해정 옮김 / 지경사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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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는 동생을 미워해야 하나?
― 나도 동생이 생겼어요
오노 요코 글
이모토 요코 그림
지경사 펴냄, 1998.8.30.

 

 

오노 요코 님 글과 이모토 요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나도 동생이 생겼어요》(지경사,1998)는 그림이 무척 곱습니다. 그림만 보자면 보드라우면서 따사롭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에 나온 글을 아이한테 읽어 주자니 여러 대목에서 걸립니다. 동생 다섯이 한꺼번에 생긴 ‘형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를 ‘몰래 내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나오거든요. 동생 때문에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못 받는다고 여겨, 어디에든 버리려 하고, 숲에서 늑대한테 먹이로 주려 하며, 냇물에 풍덩풍덩 빠지기를 바라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에는 동생들끼리 놀게 하고는 냅다 꽁무니를 빼기까지 해요.

 


이렇게 하다가 형 고양이는 마음이 몹시 무거워 다시 동생 고양이한테 돌아가지만, 마지막에 동생 고양이들과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온통 동생 고양이를 미워하고 시샘하며 몰래 따돌리거나 괴롭히려 하는 이야기만 그득합니다.


형 고양이가 동생들 ‘때문에’ 여러모로 아쉽거나 서운하거나 싫은 마음이 들는지 모릅니다. 형 고양이 마음을 잘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태여 동생 고양이들을 ‘내다 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는지, 더군다나 자꾸자꾸 되풀이해서 이야기해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 “엄마, 나도 안아 줘.” “응석꾸러기 까로야, 이제는 형이 되었으니 어리광은 그만 부려야지.” .. (5쪽)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동생이 생기면서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 되는 아이가 서운해 하거나 섭섭해 하거나 아쉬워 하는 마음을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느 집안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사랑이 다르며, 빛이 다릅니다. 다 다른 만큼 다 다른 이야기가 감돌 만하니, 이렇게 동생을 미워하다가 나중에 이르러 무언가 깨닫는 얼거리로 그림책을 빚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 되는 아이는 참말 동생을 서운해 하거나 섭섭해 할까요. 사랑을 빼앗긴다고 생각할까요. 어머니한테서 제대로 사랑을 못 받는다고 여길까요. 어머니는 동생을 낳으면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 되는 아이를 안 사랑하거나 덜 사랑할까요.


.. “까로야, 동생들 데리고 산책 좀 하고 오지 않을래?” 엄마가 까로에게 부탁했어요. 동생들은 까로의 뒤를 아장아장 따라왔어요 .. (9쪽)


동생이 태어나면 어머니는 큰아이뿐 아니라 작은아이를 안아야 하니, 두 아이를 안느라, 예전에 한 아이만 안던 삶과는 다릅니다. 숫자로 치면, 큰아이는 사랑을 덜 받거나 못 받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두 번 안거나 두 시간 안아야 더 깊거나 큰 사랑인가요? 한 번 안거나 한 시간 안으면 더 얕거나 작은 사랑인가요?


큰아이한테 동생이 생기면 어머니는 두 아이를 골고루 안습니다. 동생은 처음에는 아주 갓난쟁이인 만큼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합니다. 천천히 자라면서 천천히 서고 천천히 걷습니다. 이러다가 큰아이처럼 걷고 달릴 수 있습니다. 이동안 어머니는 동생한테 조금 더 마음을 쓰기 마련인데, 어머니가 큰아이 안아 주는 시간이나 횟수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동생이 형이나 누나나 언니나 오빠를 안는 시간이나 횟수가 늘어납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안고 돌보며 아낍니다.

 

 

 

 

 

 

 

.. “자, 형을 꼭 잡아.” 까로는 동생들을 잘 붙잡아 주었어요. ‘동생들이 강물에 빠지면 숨도 못 쉴 거야…….” .. (21쪽)


아이들도 모두 알아요. 어머니는 동생을 안으면서 큰아이를 안는 느낌과 마음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큰아이도 동생을 안거나 돌보면서 어머니가 그동안 저(큰아이)를 안던 느낌과 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림책에 빠진 대목을 알 만합니다. 이 그림책 첫머리에 ‘형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를 안거나 돌보는 이야기가 하나도 안 나옵니다. 절반 넘게 흐르고서야 비로소 냇물을 건너며 형 고양이가 동생 고양이를 안아요.


큰아이가 느낄 서운함을 보여주려고 잇달아 ‘미워하는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만, 이런 모습을 그린다 하더라도, 큰아이가 그동안 어머니한테서 얼마나 깊고 크며 넓고 따사롭게 사랑을 받았는가를 돌아볼 만한 이야기와 그림이 깃들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무턱대고 동생들을 미워하거나 못살게 굴려는 마음만 보여주면, 이 그림책을 읽히기 몹시 힘듭니다.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도 매우 힘듭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아직 혼자서 모든 글을 다 읽어내지 못해, 이 그림책을 함께 읽을 적에는 책에 적힌 글을 다 안 읽습니다. 훌렁훌렁 건너뛰거나 바꿔서 읽어 줍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라고만 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를 아이가 듣고 읽으면, 큰아이가 저도 모르게 ‘동생을 이렇게 버릴 수도 있네’ 하고 생각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읽거나 볼 책을 빚는 어른은 아주 깊이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거나 볼 책을 빚을 어른은 두 번 세 번 자꾸자꾸 헤아리면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보고 배웁니다. 아이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 사랑을 더욱 따사롭게 그림책에 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받아먹을 꿈과 믿음과 노래를 한결 맑고 환하게 그림책에 싣기를 빕니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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