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브라시카의 첫 여행 안녕, 체브라시카 2
예두아르트 우스펜스키 원작, 야마치 카즈히로 엮음, 김지현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8



사이좋게 마실하는 세 사람

― 체브라시카의 첫 여행

 에두아르트 우스펜스키 원작

 야마치 카즈히로 엮음

 김지현 옮김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2014.12.23.



  내가 네 살 적에 어떻게 놀거나 지냈는지 하나도 못 떠올립니다. 다섯 살이나 여섯 살 적에 어떻게 놀거나 지냈는지 도무지 못 떠올립니다. 세 살이나 두 살 적 일도 도무지 못 떠올립니다. 아마 우리 형은 내 어릴 적 모습을 꽤 떠올리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어느 한 가지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를 지켜보면서 가만히 헤아립니다. 큰아이는 제 동생이 어떤 하루를 누리거나 보내는지 찬찬히 살핍니다. 작은아이는 제가 어떤 짓이나 놀이나 말을 하는지 잊거나 못 떠올릴는지 몰라도, 큰아이는 작은아이 몸짓이나 놀이나 말을 여러모로 되새기거나 떠올릴 수 있습니다.



.. 게나와 체브라시카가 막 여행을 떠나려고 해요. 게나가 악어라는 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렇다면 체브라시카는 무엇일까요? 곰은 아니에요. 원숭이도 아니고요. 체브라시카는 체브라시카 ..  (2쪽)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하자면,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이모저모 많이 챙깁니다. 아버지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다가 모든 짐을 커다란 가방에 잔뜩 짊어지면서 다녀야 하는 줄 큰아이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작은아이는 마실길이건 어디에서건 졸리면 그냥 잡니다. 작은아이는 어디에서나 졸릴 적에 잠들면 아버지가 안거나 업어서 데리고 다닙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를 믿고 몸을 맡깁니다. 이때에 큰아이는 저도 졸릴 테지만 졸음을 씩씩하게 참습니다. 씩씩하다 못해 대견할 때가 있고, 딱하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큰아이한테 말하지요. 얘야, 아버지는 너희 둘을 다 안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졸리면 그냥 자면 돼. 아버지가 너희 둘을 안고 걷다가 정 힘들면 택시를 불러서 타면 되니까, 너무 힘들게 참지는 말자.


  큰아이는 가끔 ‘아버지 가방’을 들거나 나르겠다면서 용을 씁니다. 큰아이 몸무게보다 훨씬 무겁고 큰 가방을 들 수는 없을 노릇이지만, 이를 악물고 용을 써서 번쩍 들어올릴 때가 있으나 들고 나르거나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작은아이는 아예 들어 볼 생각조차 않는데, 큰아이는 아버지 가방을 건드려 본 일이 마음속에 남는지, “나도 짐을 들래.”  하면서 작은 가방 하나를 달라고 합니다.



.. 게나는 짐을 많이 들고 있었어요. “내가 도와줄게.” 체브라시카가 가장 작은 상자를 건네받았어요. “고마워. 그럼 내가 너를 들어 줄게.” 게나는 체브라시카를 안아 주었어요 ..  (11∼12쪽)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이 다니는 마실은 만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곁님과 함께 네 사람이 마실을 다니면, 곁님이 곧잘 작은아이를 안을 수 있으니 훨씬 홀가분합니다. 그런데 이때에는 큰아이가 어김없이 아버지한테 안기거나 업히지요. 작은아이가 어머니한테 칭얼거리면서 안기면, 큰아이는 아버지한테 칭얼거리면서 안기고 싶어요. 어버이 눈길로는 ‘칭얼거림’이라 할 테지만, 아이로서는 ‘사랑받기’를 바라는 목소리라고 느껴요.


  그림책 《체브라시카의 첫 여행》(어린이작가정신,2014)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2015년에 여덟 살로 접어드는 큰아이는 거의 모든 한글을 혼자 읽어냅니다. 동생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기도 합니다. 체브라시카 이야기도 동생한테 틈틈이 읽어 줍니다.


  에두아르트 우스펜스키 님이 빚고, 야마치 카즈히로 님이 새롭게 엮은 이 그림책을 보면, 체브라시카라는 아이가 게다라는 아저씨하고 나들이를 떠나는 이야기가 흘러요. 그리고, 체브라시카랑 게다랑 오붓하게 나들이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사포클라크 할머니는 시샘과 부러움으로 이 나들이에 끼어들지요.




.. “게나, 딸기가 있어.” “딸기가 아니라 작은 나무 열매란다.” “작은 집이 있어.” “그건 작은 집이 아니라 버섯이야.” “있잖아, 게나, 숲은 재미있어 보여.” “그러니?” “여행 대신 숲에 가자.” “좋은 생각이구나.” ..  (15쪽)



  사이좋게 나들이를 하는 둘을 지켜보는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 끼고 싶습니다. 얼마나 오붓하고 애틋해 보이는지, 함께 둘러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할머니 나이까지 살며 오랜 동무를 사귀지 못한 사포클라크는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짓궂은 장난을 칩니다. 마치 아이처럼 장난을 쳐요.


  그래요, 할머니가 아이처럼 장난을 쳐요. 왜냐하면, 나이로는 할머니이지만 마음으로는 아이라 할 테니까요. 나이로만 보면 늙은 사람이지만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착하고 맑은 넋이라 할 테니까요.


  수줍음이 장난으로 드러납니다. 한 발 두 발 다가서고 싶은 몸짓이 장난이 되어 나타납니다. 체브라시카와 게다는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짓궂은 장난 때문에 먼 길을 걸어야 하니 고단했을 테지만, 외려 기차에서 내려야 했기에 숲을 만납니다. 외려 먼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야 했기에, 게다와 체브라시카는 서로서로 한결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웁니다.




.. 체브라시카가 지붕 위 게나 곁으로 왔어요. “옆에 앉아도 돼?” “좋아. 그런데 왜 올라왔어?” “게나와 함께 있고 싶으니까. 사포클라크 할머니도 올라왔어요. “나도 옆에 앉아도 될까?” “좋아요. 그런데 왜 올라오셨어요?” “네 노래가 듣고 싶어서 말이지.” ..  (39쪽)



  체브라시카는 체브라시카입니다. 다른 어느 것도 아닙니다. 게다는 게다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악어가 아닌 게다입니다. 사포클라크는 사포클라크입니다. 짓궂거나 장난스러운 할머니가 아닌 그저 사포클라크입니다. 그리고, 사포클라크가 아끼는 커다란 쥐 라리스카는 또 라리스카이지요.


  셋은 함께 놀면서 즐겁습니다. 아니, 셋이 아닌 넷은 함께 놀면서 즐겁습니다. 서로 한식구라도 되는듯이 즐겁습니다. 마음으로 사귀고 마음으로 아낍니다. 마음으로 마주하고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표를 끊어서 어디에서 어디로 꼭 가야만 하는 나들이가 아니라, 살가운 벗님과 도란도란 웃고 노래하면서 길을 나서는 나들이입니다.


  마실길이 즐겁고, 삶길이 즐겁습니다. 마실을 다니는 하루가 즐겁고, 서로 사랑하는 하루가 즐겁습니다. 4347.12.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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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4-12-31 23:39   좋아요 0 | URL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였을거예요.
1권..2권?ㅎㅎ.몰아서 폭풍 읽기를 해버린탓에 전체 스토리ㅡ로 묶여 기억하는..이런 병폐..각설하고, 오래전
가출해 집을 등진 여자가 맘에 드는 남자와 결혼해 집에 인사가고파 하는게 원래 주 목적인데..사정상.그 목적은 숨긴채 고서당에 찾아와 책 찾기를 의뢰합니다.
고서당의 시오리코씨는 들으면 거의 모든 정황상 모를는게 없는 그런 수수께끼같은 인물. 거기에..미지의..그 동화가 나와요.
의뢰인이 찾는건 어릴 때 보던 동화책.
개와 사자와 악어와...뭐 그런 녀석들이
집이 없어 지들끼리 모여 동물원을 찾아가다..뭐..그런 얘기 였어요..그게 중요 한게 아니지..암튼 서로 조합이 안 맞는
동물들이 한데 어울어져 그려진 이상한 동화책 찾기가 의뢰 였다는 거죠.
...왜 뜬금없이..??? 체브라시카..이.단어가묘하게 기억을 자극하는 거죠..흐흐흐..아무래도.
그그...치만.지금..은 두통중이오니~ 나중에
책을 뒤져 보는걸로...그랬답니다.
오늘의..얘기..끝!.(뭐야...? 밑도 끝도 없이누가 시켰데?...별..ㅎ) ^^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숲노래 2015-01-01 00:04   좋아요 0 | URL
체브라시카라는 만화영화를 보면
이 아이들이 동물원에도 찾아갑니다.
오래된 만화영화이지만,
한글자막 없는 외국말로
유투브에서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아직 한국에 디브이디로 소개되기 앞서
이 만화영화를 보았는데
무척 잘 빚은 멋진 작품이더라구요.

그장소 님도 한번 유투브에서 찾아보셔요.
또는 한글판 디브이디를 장만해 볼 수 있을 테고요 ^^

아무쪼록 새해에도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시기를 빌어요.
고맙습니다~~

[그장소] 2015-01-01 01:0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그 장면에 대란 언급이...글에 나온다는 거죠..ㅎㅎㅎ
저도 고맙습니다.(^o^)b

숲노래 2015-01-01 08:04   좋아요 0 | URL
네, 멋진 작품이기에,
다른 어느 책을 쓰는 분이
이 그림책이나 만화영화 이야기를 적을 만하리라 느껴요~ ^^

[그장소] 2015-01-01 08:24   좋아요 0 | URL
감동적인 얘기로 이끌어 주는 역..으로
훌륭했어요.그 동화책을 찾는다며..집을 발칵..ㅎㅎ실은 그런 동화책은 없었고..실재 영상였다..없어진건..집에
그녀가 주워 기르던 개였죠.그래서 그때부터
그녀는 삐뚤어지고요.동기였죠..기댈데없는 소녀가 마음주던..유일한 개..는 자신과 동일시 한 존재. 뭐 그런 얘기였어요.그런데 알고 보니 아무도 안본다 생각한 가출한 소녀.그 엄마도 아빠도
그날 그 개를 엄청 찾았던것.서로 얘길 안해 오해가 깊어진 거죠.
재미있으셨나요?..^^
^ ^
새 해 아침 첫 선물이 책 얘기라..
좋네요..
커피를 갈았어요.방금...케냐AA..한잔..드실래요?^^


숲노래 2015-01-01 13:11   좋아요 0 | URL
그장소 님이 읽으신 그 책이
오래도록 가슴이 남았으니
그 책도 아름다운 징검다리 구실을 하는구나 싶어요.
새해 첫날 느긋하면서 아름답게 누리셔요~
커피 한 잔 고맙습니다~~ ^^

[그장소] 2015-01-01 13:35   좋아요 0 | URL
아이가 있기전부터 동화도 만화도 즐겨 봤어요. 다만 집엔 어릴 때도 TV는 없었죠.아주 나중에 잠깐 생겼다..그나마도
다시 라디오로 올라갔어요. 습관이 참 무서워요.지금도 TV는 필요를 못느껴요.
긴 시간..책이 거의 제 시간..대부분이고요..
덕분에 책읽는 기억을 되새겨요..더 오래
기억 하겠지요..제가 더 고마울 일.!
감사 합니다. o(^-^)o
오후 너그럽게 넘기는 시간 되시길~~~~~♬♩

숲노래 2015-01-02 02:31   좋아요 0 | URL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신문 같은 매체는
우리한테 자꾸 `유행`이나 `사건 사고` 같은 소식에 얽매이도록 할 뿐 아니라,
생각을 안 하고 빨려들도록 이끌지 싶어요.

이와 달리 책은 우리가 스스로 고르고 마음을 써야
비로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요.

동화와 만화는 아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눈높이를 크게 낮추어 누구나 읽어서 이야기를 먹도록 엮은
멋있는 책이라고 느껴요.

언제나 스스로 찾고 지으면서 가꾸는 이야기를
즐겁게 누리셔요~~

[그장소] 2015-01-02 03:49   좋아요 0 | URL
이런..표현을 허락해 주신다면...즐거워 (잠깐 시간을 잊었을 정도니..)미치겠어요. 헌데,혼자 그동안 책에대한 감상을 품고 살았으니...서러웠구나..안타깝고. 그래서
라푼젤 마냥 스스로 성 꼭대기에 올라 긴 머릴 싹둑 자르고는 아무도 없네..하고 있었고, 나... 함께살기 님처럼 동화같은 마음였다면 진즉 내려와 수 풀에 발목을 적시며 이슬 털어내는 기쁨을 알고도 남았을것을..아무것도 아닌 그 저 책..! 쓰기도 아닌 읽기를 하며 뭘 그리 오만방자 했나..고독하다. 노래하면서...

그래요.알아버려서..후련하고 일견 아늑하던
고성의 한 때가 그리울 날 . 있을지도 모르지만..지금은 이 많은 더불어 & 함께..
를 미친 듯 즐기겠습니다. 어느 날 이 풀 밭위의..한가로운 식사가 덧없이 끝나더라도...지금은..차곡차곡 기쁨을 쌓고
나눌테입니다...당신과도 함께..하기를
정중히 미친듯 청하며...그럼..
달 속에 해를 ..품은 꿈을...꾸는 깊은 잠.
굿--나잇! ㅠ_ㅠ

숲노래 2015-01-02 04:32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고맙습니다 ^^
이 깊은 밤과 새벽에
도란도란 책 하나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삶이란
참으로 아름답구나 싶어요.

느긋하면서 아늑하게 꿈을 짓고 누리셔요~ 고맙습니다 ^^
 
반쪽달걀에서 나온 수탉 내 아이가 읽는 책 2
나탈리 라코스트 그림, 디안느 바바라 글, 이경수 옮김 / 제삼기획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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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7



씩씩한 아이들과 함께

― 반쪽달걀에서 나온 수탉

 디안느 바바라 글

 나탈리 라코스트 그림

 편집부 옮김

 제삼기획 펴냄, 2001.12.10.



  간밤에 찬물을 만지면서 부엌일을 살짝 오래 했더니 이튿날 몸이 아픈 듯합니다. 아니, 좀 아픕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아이들과 함께 저녁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기는 하지만,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는 해가 떨어지면 이내 잠자리에 들 때에 몸이 튼튼하리라 느낍니다. 해와 함께 일어나고 별과 함께 쉰다고 할까요.


  몸이 아플 적에는 밥도 물도 몸에서 안 받습니다. 아픈 몸은 아무것도 안 바랍니다. 그저 쉬기를 바라고, 그저 기운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옷을 두껍게 입어도 오슬오슬 떨리고, 방바닥에 불을 넣어도 손발이 찹니다. 그렇지만 어버이는 몸이 아프더라도 밥을 지어서 아이들을 먹입니다. 밥이 몸에 안 받아 간을 보기 어렵지만 어림으로 간을 보면서 아이들한테 밥상을 차려 줍니다.



.. 옛날, 하지만 아주 먼 옛날은 아니에요. 한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달걀 반쪽씩을 나누어 주었어요. 큰아들은 달걀 반쪽을 먹어 버렸어요. 그렇지만 작은아들은 달걀 반쪽을 품어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품고, 또 품었어요. 그랬더니 그 달걀 속에서 ‘톡, 톡’ 소리가 나면서, 반짝달걀수탉이 알을 깨고 나왔어요 ..  (2쪽)





  우리 둘레를 살펴보면 으레 ‘안 아픈 사람’한테 모든 것을 맞춥니다. 버스이든 전철이든 안 아프거나 안 힘든 사람한테 맞춥니다. 아프거나 힘든 사람은 걸음이 느리거나 굼뜰 텐데, 느리거나 굼뜨게 움직이는 사람을 보는 ‘안 아픈 사람’은 자꾸 눈치를 주어요. 기다리지 못합니다.


  건물마다 높다랗게 놓는 계단은 ‘안 아픈 사람’한테는 대수롭지 않으나, 아프거나 힘들거나 늙은 사람한테는 몹시 대수롭습니다. 벅차거나 힘겹지요.


  공장에서든 공공기관에서든 학교에서든 늘 ‘안 아픈 사람’한테만 맞춥니다. 일자리와 배움자리 모두 ‘안 아픈 사람’이 일하기에 알맞는 얼거리요 ‘안 아픈 사람’이 배우도록 하는 얼거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롸 문화와 정치와 경제는 모두 ‘안 아픈 사람’끼리 맺고 짜고 얽는 흐름이라고 할까요.



.. 주인의 말대로 반쪽달걀수탉은 도둑을 찾아 나섰어요. 한참을 가다가, 반쪽달걀수탉은 늑대를 만났어요. 늑대가 수탉에게 물었어요. “어디를 그렇게 서둘러 가고 있니?” “나랑 같이 가. 따라와 보면 알게 될 거야!” 늑대가 반쪽달걀수탉을 따라 나섰어요. 한 시간쯤 지났어요. 쉬지 않고 달려가다가, 너무나 지쳐 버린 늑대가 헉헉대며 말했어요. “어휴, 반쪽달걀수탉아, 힘들어서 더는 못 가겠어. 좀 쉬어야겠어!” “그러면 내 엉덩이 뒤로 들어와. 내가 데리고 갈게!” 반쪽달걀수탉은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어요 ..  (6쪽)




  디안느 바바라 님이 글을 쓰고, 나탈리 라코스트 님이 그림을 넣은 재미난 그림책 《반쪽달걀에서 나온 수탉》(제삼기획,2001)을 읽습니다. 반쪽달걀에서 깨어난 수탉이라니, 이 아이는 ‘반쪽이’라 할 만하군요. 반쪽에서 깨어났으니까요.


  그런데 달걀 한 알에서 두 목숨이 태어난다고 할 적에는 둘이 ‘반쪽과 반쪽’이라 하지 않습니다. 쌍둥이라 합니다. 사람도 두쌍둥이와 세쌍둥이가 있어요. 씨앗 하나에서 여럿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반쪽이나 쌍둥이는 힘이 여릴 수 있습니다. 반쪽이나 쌍둥이가 아닌 ‘한쪽이’가 힘이 여릴 수 있습니다. 반쪽이로 태어났기에 힘이 여리지 않고, 반쪽이로 태어날 적에 힘이 세지 않습니다. 반쪽이는 그저 반쪽이일 뿐입니다.




.. 도둑과 부인은 수탉을 사이에 놓고 힘껏 눌렀어요. 반쪽달걀수탉은 소리를 질렀어요. “말벌들아, 말벌들아! 어서 나와 나를 구해 줘.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죽게 돼!” 말벌들은 쏜살같이 튀어나와 도둑과 부인을 쏘아대기 시작했어요 ..  (23쪽)



  그림책 《반쪽달걀에서 나온 수탉》에 나오는 반쪽이는 몹시 씩씩합니다. 이 아이가 태어나도록 돌본 사람 말만 따르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기운이 넘치고, 누구보다 슬기로우며, 누구보다 야무집니다. 반쪽이는 어떻게 기운과 슬기로움과 야무진 매무새를 갖출 수 있을까요?


  반쪽이는 사랑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사랑 가운데에서도 더 따스하고 포근하면서 살가운 사랑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알뜰히 돌보는 사랑 가운데에서도 더욱 아끼고 보살피는 사랑을 받아 태어났어요.


  지구별 모든 아이는 사랑을 받아 태어납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는 앞으로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숨결입니다. 입시지옥에 시달리거나 시험기계가 되어야 할 아이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숨결을 알뜰히 북돋우면서 아름답게 커야 할 아이입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가 즐겁게 노래하고 맑게 웃을 때에 비로소 지구별 어디에나 사랑과 꿈이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씩씩한 아이들과 사랑을 꽃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야무진 아이들과 꿈을 일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꾸밈없이 바라보셔요. 어른이 된 내 몸도 아이로 태어나서 사랑을 받아 자란 줄 물씬 느낄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는 모두 사랑입니다. 4347.12.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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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엘로이즈 - 여기는 뉴욕! - 튀는 아이 엘로이즈 1
케이 톰슨 지음, 힐러리 나이트 그림, 김이숙 옮김 / 리드북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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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2



우리 무슨 놀이를 할까

― 나야, 엘로이즈, 여기는 뉴욕!

 케이 톰슨 글

 힐러리 나이트 그림

 김이숙 옮김

 리드북KIDS 펴냄, 2000.5.5.



  놀이터에는 놀이기구가 있습니다. 놀이기구에는 아이들이 매달립니다. 한 아이 두 아이 여러 아이가 골고루 매달립니다.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은 아주 조그마한 놀이기구에서도 와하하 까르르 웃음을 터뜨립니다. 조그마한 놀이기구를 타면서 조그마한 아이들은 온통 땀투성이가 됩니다.


  바람을 가르면서 달립니다. 하늘로 높이 치솟으려고 펄쩍펄쩍 뜁니다. 동무끼리 부딪혀서 넘어지기도 하고, 달리거나 뛰다가 걸려서 자빠지기도 합니다. 다쳐서 피가 흐르기도 하지만, 다쳐서 피가 나도 씩씩하게 그대로 놀기도 합니다.


  노는 아이들은 해가 넘어가는 줄 모릅니다. 노는 아이들은 배가 고픈 줄 모릅니다. 노는 아이들은 여름과 겨울이 따로 없고, 노는 아이들은 나이나 성별이나 계급 따위는 하나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저 어울리는 동무요, 살가이 어깨를 겯으면서 조잘조잘 떠드는 사이입니다.



.. 난 맨 끝 방에 살아요. 두 손에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벽에다 쭉 그으면서 뛰어갈 때도 있어요. 복도를 뛰어갈 때는 쿵쿵 발을 굴러요. 발을 질질 끌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에 마룻바닥만큼 좋은 건 없어요 ..  (17쪽)





  지난날에는 놀이터라는 곳이 없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어떤 어른도 놀이터를 따로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난날에는 어느 곳이나 모두 놀이터요 일터였기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키우는 나무가 놀이기구입니다. 마을에 있는 숲정이가 놀이터입니다. 마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펼쳐지는 숲이 놀이터요, 바다와 들과 골짜기와 냇물이 모두 놀이터입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누구도 돈 한푼 안 들였으나 온통 놀이기구였습니다. 지난날에는 모든 아이가 어버이 곁에서 심부름을 하거나 일을 거들었는데, 이렇게 하면서도 늘 늘고 노래하며 웃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집도 놀이터요 마을도 놀이터이고 들과 숲과 바다와 냇물 모두 놀이터였으니,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뛰놀면서 씩씩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따로 돈을 들여서 만든 놀이터’가 아니면 놀 수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따로 돈을 들여서 만든 학교’에만 가야 하고, ‘따로 돈을 들여서 만든 놀이터’에만 가야 하며, ‘따로 돈을 들여서 만든 장난감’만 갖고 놀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기 몹시 어렵습니다.



.. 전화를 끊고 나서 난 잠깐 천장을 올려다보며 선물 받을 방법이 뭐 없을까 궁리해 봐요. 나도 입을 쩍 벌리고 아함 여러 번 하품을 해요 ..  (25쪽)



  케이 톰슨 님이 글을 쓰고, 힐러리 나이트 님이 그림을 그린 《나야, 엘로이즈, 여기는 뉴욕!》(리드북KIDS,2000)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엘로이즈’는 퍽 어립니다. 그러나 아주 어리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엘로이즈는 혼자 전화를 걸 줄 알고, 승강기를 타고 내릴 줄 알며,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면서 놀 줄 압니다.


  엘로이즈한테는 어느 곳이나 놀이터입니다. 다른 어른들은 엘로이즈가 노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길 때가 있지만, 엘로이즈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엘로이즈는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엘로이즈가 기운차게 노는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는 어른이 있고, 엘로이즈와 함께 즐겁게 노는 어른이 있습니다.





.. 난 이 호텔에서 안 가는 데가 없어요. 그러니 길을 잃는 때도 아주 많아요. 그렇지만 대개는 2층에 있어요. 파티 준비를 하는 곳이니까요. 그러니까 날마다 적어도 세 시간은 2층에 내려가 있어야 하고, 가끔은 밤에 가야 될 때도 있엉 ..  (45쪽)



  종이 한 장이 있으면 종이를 접으면서 놉니다. 때로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놉니다. 종이를 오리면서 놀고, 종이로 인형을 만들어서 놉니다.


  종이는 묶이고 묶여서 책이 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책을 읽으면서 놉니다. 그리고, 종이가 태어나기 앞서 나무는 언제나 아이한테 놀이벗입니다. 아이들이 타고 오르는 놀이벗이 되기도 하지만,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서 아이한테 놀이벗입니다. 바람이 불 적에 나무가 춤을 추며 온몸으로 부르는 노래도 아이한테 놀이벗이 됩니다.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새도 아이한테 놀이벗이고, 나무 둘레에서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는 개구리와 풀벌레도 아이한테 놀이벗입니다.


  구름도 놀이벗입니다. 해도 별도 달도 모두 놀이벗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아이한테 놀이벗이요, 어른이 된 모든 사람도 어릴 적에 숱한 놀이벗한테 둘러싸여서 자랐습니다.



.. 어쨌든 난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잖아요. 아, 세상에, 할 일이 너무 많네요. 내일은 우편함에 물을 한 주전자 부어 줘야겠어요. 우와아아아아아아 난 플라자 호텔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  (64∼65쪽)



  우리 무슨 놀이를 할까요? 우리 무슨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즐길까요? 우리 무슨 놀이를 하면서 삶을 밝히고, 우리 무슨 놀이를 하면서 사랑을 속삭일까요?


  함께 놀아요. 즐겁게 함께 놀아요. 함께 웃고 놀아요. 함께 노래하고 놀아요. 어디에서나 즐겁게 놀아요. 자동차보다 아이를 생각하고, 아파트보다 숲을 생각해요.  도시가 아닌 지구별을 생각하고, 문명이나 문화가 아닌 온누리를 생각해요. 마음속에 꿈을 담고, 가슴속에 사랑을 담으면서 놀아요. 아이 손을 잡고 씩씩하게 놀아요. 4347.12.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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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스웨터 마음을 살찌우는 좋은 그림책 1
혼다 도요쿠니 글 그림, 박정선 옮김 / 사파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6



겨울 밤에 함께 나누는 사랑

― 노란 스웨터

 혼다 도요쿠니 글·그림

 박정선 옮김

 언어세상 펴냄, 2002.12.20.



  깊은 밤에 마당에 서면 수많은 별이 눈부시게 빛납니다. 나는 별빛을 듬뿍 받으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우리 집 풀과 나무는 밤새 이 별빛을 받으면서 별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먼먼 옛날부터 시골집 풀과 나무는 언제나 별님과 오순도순 지냈을 테고, 숲에 깃드는 새와 풀벌레도 밤새 별님과 알콩달콩 노래했으리라 느낍니다.


  별은 누구한테나 별입니다. 달은 누구한테나 달입니다. 해도 누구한테나 해입니다. 그리고 풀과 나무도 누구한테나 풀과 나무입니다. 온누리를 가득 비추는 빛은 서로 따사로이 주고받는 사랑이고, 온누리를 포근하게 감싸는 숨결은 서로 착하게 나누는 꿈입니다.




.. “오늘 밤은 너무 추워. 이 스웨터를 입으렴.” 달님이 준 노란 스웨터는 포근하고 따뜻했어요. “고마워요, 달님!” ..  (4쪽)



  혼다 도요쿠니 님이 빚은 그림책 《노란 스웨터》(언어세상,2002)를 읽습니다. 그림책은 온통 노란 물결입니다. 달님도 노란 물결이요, 노란 털옷을 입은 지구별 모든 아이들도 노란 물결입니다. 깊은 밤에 고요히 잠든 봉우리와 들과 하늘도 노란 물결입니다. 오직 사람만 없는 깊은 밤입니다. 사람은 어디에선가 새근새근 잠들었을 텐데, 아마 깊은 밤에도 잠들지 않고 도시에서 등불을 밝히면서 노닥거릴는지 몰라요. 밤에도 씩씩하게 하늘을 가르는 기러기가 있지만, 사람은 기러기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밤에도 즐겁게 노래하는 풀벌레와 멧새가 있으나, 사람은 풀벌레 노랫소리나 멧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 “그럼 짜 주고 말고.” 달님은 스웨터를 한 올 한 올 짰어요. 숲 속 새들한테 모두모두 하나씩 주려고요 ..  (9쪽)



  추운 겨울 밤, 숲을 포근하게 비추던 달님은 노란 털옷을 짜서 하나하나 선물합니다. 새한테도 털옷을 선물하고, 풀벌레와 나무한테도 털옷을 선물합니다. 모두모두 따스한 기운을 받고 포근한 밤을 누리기를 바라면서 노란 털옷을 선물해요.


  달님은 어떻게 모든 아이들한테 선물을 할 수 있을까요? 달님은 노란 털실을 어디에서 얻어 털옷을 짤 수 있을까요?


  달님이 짜는 털옷은 사랑입니다. 따사로운 숨결을 담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노란 털실은 끝없이 새로 나옵니다. 옷을 짜고 또 짜도 털실은 새로 나옵니다. 모든 아이가 저마다 몸에 꼭 맞는 노란 털옷을 입고 겨울 밤을 누릴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털옷을 짤 수 있습니다.



.. 벌레들도 같이 짰어요. 나무들도 같이 짰어요. 새들도 같이 짰어요. 모두모두 부지런히 짰어요 ..  (22∼23쪽)





  사람도 예전에는 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도 예전에는 풀벌레와 나무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도 예전에는 새와 개구리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도 예전에는 나라와 겨레가 따로 없이 ‘한나라’와 ‘한겨레’로서 아름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나라와 겨레가 따로 없이 이웃이요 동무이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그예 남남이거나 ‘맞수’가 되고 맙니다.


  두레가 없고 품앗이가 없습니다. 마을이 없고 보금자리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그저 ‘생계’와 ‘생존’이 있을 뿐입니다. 중앙정부에서 돈을 대어 협동조합을 돕는다는 정책은 어쩐지 못 미덥습니다. 사람들이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면서 누리던 두레와 품앗이를 모두 망가뜨린 오늘날, 사람들이 도란도란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빛내는 마을살이를 몽땅 무너뜨린 오늘날, 돈으로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이란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다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자, 아직 하나 더 남았어.” 숲 속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했어요. 그리곤 모두들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죠. 하늘의 달님은 잠을 자고 있었어요 ..  (29쪽)



  노란 털옷을 달님한테서 선물로 받은 숲아이는 서로 힘을 모아 마지막 털옷을 한 벌 뜹니다. 구름한테도 들한테도 하늘한테도 서로 힘을 모아 털옷을 짠 숲아이는 ‘노란 털옷을 잔뜩 짜느라 고단해서 잠이 든’ 달님한테 털옷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주고받는 사랑일 수 있지만, 주고 또 주며 다시 주는 사랑입니다. 아니, 주거니 받거니 하는 틀이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나누는 사랑입니다. 나누고 늘 나누고 새로 나누는 사랑입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한테 베풀거나 주는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나누면서 함께 웃는 사랑입니다. 4347.12.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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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마리 고양이와 별난 고양이 11마리 고양이 시리즈 5
바바 노보루 지음, 이장선 옮김 / 꿈소담이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5



우리는 모두 별나라 사람들

― 11마리 고양이와 별난 고양이

 바바 노보루 글·그림

 이장선 옮김

 꿈소담이 펴냄, 2006.6.20.



  나는 지구별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구사람’이거나 ‘지구별사람’입니다. 어떤 과학에서는 지구 말고 다른 별에는 아무 목숨이 없다고 하지만, 어떤 과학이 다른 별을 몸소 가 본 뒤에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과학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떤 과학으로는 저 멀리서 빛나는 별이 어떤 별이요 그 별에서는 어떤 목숨이 어떻게 사는지 못 밝힙니다. 차원이 다른 누리를 말하거나 알려줄 수도 없을 테고요.


  마음으로 가만히 헤아립니다. 내가 선 이곳에서 가만히 살핍니다. 나는 나보다 큰 다른 것을 제대로 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와 맞물려, 나는 나보다 작은 다른 것을 제대로 보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내 눈으로는 풀잎에 깃든 모든 목숨이나 숨결을 읽지 못합니다. 내 눈으로는 밤하늘에 가득한 별빛에 깃든 모든 목숨이나 숨결을 읽지 못합니다. 오직 두 눈으로만 살피면 껍데기를 보더라도 껍데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내지 못합니다.





.. 그 다음 날. 또 물방울 고양이가 나타났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나 했더니, 나뭇잎을 줍고 있습니다 ..  (11쪽)



  지구별에 개미가 몇 마리쯤 되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림만 할 뿐입니다. 지구별에 지렁이가 몇 마리쯤 되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구별에 나무가 몇 그루 있다든지, 꽃이 몇 송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들 어림만 할 테지만 어림조차 못 합니다. 지구별에 벌레가 몇 가지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고, 지구별사람 스스로 몇 가지 벌레를 날마다 없애는지 알아차리는 사람도 참으로 드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구별사람은 지구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제대로 모릅니다. 다른 목숨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지만, 이웃이나 동무인 다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예 눈길조차 안 둔다고 해야 옳을 수 있습니다. 지구별사람은 ‘지구별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 하는 대목조차 모릅니다. 아니, ‘내가 누구인가?’ 하는 대목을 아예 생각하지 않으면서 쳇바퀴를 돕니다.





..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물방울 고양이가 냇가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물속에서 안 나오고 이썽.” “저것 봐. 물속을 걸으면서 물고기를 잡고 있어.” ..  (19쪽)



  바바 노보루 님이 빚은 그림책 《11마리 고양이와 별난 고양이》(꿈소담이,2006)를 읽습니다. 《11마리 고양이와 별난 고양이》에는 ‘별나라 고양이’가 나옵니다. 다른 별에서 온 고양이라고 합니다. 다른 별에서 온 고양이인 터라 ‘별난’ 고양이라 할 만한데, 지구별에서 바라보면 이 고양이는 ‘다른 별에서 온 고양이’일 테지만, 다른 별에서 온 고양이가 바라보기에는 지구별 고양이야말로 ‘다른 별 고양이’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고양이는 ‘별고양이’입니다. 이 별에서는 이 별 이름을 붙이는 고양이요, 저 별에서는 저 별 이름을 붙이는 고양이입니다.





.. “물방울 친구, 그럼 벌써 떠나려고?” “응. 내일 밤, 작은 곰별자리가 반짝이면 떠날 거야.” “정말 저 나뭇잎 배가 날 수 있을까?” “만약 날게 되면 우주 여행 한번 해 보고 싶다. 그렇지?” (28∼29쪽)



  온누리로 헤아리자면 별과 별은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온누리로 헤아리자면 지구별은 그저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마을’인 지구별에서 저마다 금을 긋고는 나라가 다르다느니 겨레가 다르다느니 정부가 다르다느니 하면서 서로 따돌리거나 괴롭히기 일쑤입니다. ‘아주 작은 마을’인 지구별에서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만들어서 서로 짓밟거나 다투거나 죽이는 짓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마을’인 지구별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전쟁무기를 더 만들어서 ‘이웃이란 없이’ 죽이고 괴롭혀서 1등이 되어야 하나요? 군대와 무역과 문명을 앞세워 다른 나라 사람들을 식민지로 부려야 하나요? 이 ‘아주 작은 마을’에서는 누가 이웃이 되고 누가 동무가 될까요?


  너와 내가 서로 ‘지구별사람’인 줄 깨닫는다면 전쟁무기와 군대가 얼마나 덧없을 뿐 아니라, 몇몇 권력자가 권력을 거머쥐어 우리를 바보로 만들려고 하는 짓인 줄 제대로 읽어서, 모든 전쟁무기와 군대를 하루 빨리 없애는 데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너와 내가 서로 ‘지구별사람’인 줄 못 깨닫는다면 그냥 이대로 살 테지요. 이대로 전쟁무기와 군대만 자꾸 늘리고, 이대로 톱니바퀴가 되어 쳇바퀴질을 하며, 이대로 살다가 죽을 테지요. 4347.12.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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