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는 힘들어 웅진 세계그림책 78
다루이시 마코 그림, 카도노 에이코 글,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1



어버이와 함께 지내고 싶은 아이

― 보물찾기는 힘들어

 카도노 에이코 글

 다루이시 마코 그림

 김난주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5.3.14



  그림책 《보물찾기는 힘들어》(웅진주니어,2005)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할머니 병문안을 간다고 합니다. 이때에 아이는 혼자 집을 보라고 합니다. 어머니 혼자 병원에 다녀오실 듯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한테 가면 할머니가 한결 기뻐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림책 줄거리를 보면 아이는 할머니한테 함께 가겠노라 말하지 않고, 어머니도 아이한테 할머니한테 함께 가자고 묻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할머니를 돌보러 가는 길이라서 어머니가 혼자 가시려는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간다면, 늙거나 힘들거나 아픈 할머니를 어머니가 어떻게 돌보는지 곁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고작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심부름을 할 수 있습니다. 심부름을 못하더라도 말동무가 될 수 있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할머니로서도 아이가 짓는 웃음을 볼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 “준호야, 할머니 병문안 다녀올 테니까 집 좀 보고 있어, 응.” “또야, 나 싫어.” 준호는 입이 툭 튀어나왔어요. “참, 보물찾기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다. 엄마가 아주 좋은 거 숨겨 놓을게.” ..  (2쪽)




  아이는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늘 어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을 바랍니다. 함께 밥을 먹기를 바랍니다. 함께 잠들기를 바랍니다. 함께 놀기를 바랍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책을 읽으며, 함께 그림을 그리기를 바랍니다.


  어버이가 아이하고 함께 안 하고 자꾸 학교에만 맡겨 버릇하면, 아이는 천천히 집하고 멀어지지요. 어버이가 아이와 함께 삶을 누리지 않으면,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해요.


  아이는 학교에서 지식을 배울 목숨이 아닙니다. 아이는 삶을 아름답게 밝히는 슬기를 배울 목숨입니다. 아이는 더 높은 학교를 다니다가, 돈을 더 잘 버는 회사에 들어갈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는 사랑을 물려받아서 꿈을 키울 사람입니다.



.. 준호가 뒤돌아보자 집은 텅 비어 있고,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준호는 계단을 올라가 살며시 2층의 방문을 열었어요. 방을 휘 돌아보니 이불장이 조금 열려 있고, 이불 사이에 가느다란 꼬리가 늘어져 있었어요 ..  (6쪽)





  카도노 에이코 님이 글을 쓰고, 다루이시 마코 님이 그림을 넣은 《보물찾기는 힘들어》를 가만히 읽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혼자 집을 보도록 하되, 집에서 보물찾기를 하도록 이끕니다. 아마 다른 날에는 아이와 함께 마실을 갔을 테지요. 아이는 어머니 없이 혼자 집을 보면서 씩씩하게 놀기도 할 테지요. 둘은 서로 믿으리라 생각합니다. 둘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혼자 씩씩하게 집을 본 아이한테 멋진 선물을 마련해서 돌아오는 어머니입니다.


  아무튼, 아이한테는 장난감도 멋진 선물이지만, 비가 오는 날 함께 손을 잡고 우산을 쓰면서 다니는 마실도 멋진 선물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 빗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할머니한테 찾아가는 일도 멋진 선물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 어머니가 예전에 겪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멋진 선물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누리는 삶은 언제나 멋진 선물입니다.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이란 늘 멋진 선물이지요.



.. “쳇, 이제 보물찾기 안 할 거야.” 준호는 골이 나서 방바닥에 벌렁 누웠어요. 그런데 서랍장 위, 모자 상자에 꼬리가 보였어요 ..  (26쪽)



  아이 눈빛을 읽습니다.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아이 눈빛을 읽습니다. 아이 눈망울을 읽습니다. 함께 노래하고 싶어 하는 아이 눈망울을 읽습니다. 아이 눈동자를 읽습니다. 함께 춤추면서 뛰놀고 싶어 하는 아이 눈동자를 읽습니다.


  노는 아이가 예쁘고, 노는 아이와 함께 놀 줄 아는 어른이 아름답습니다. 노는 아이가 사랑스럽고, 노는 아이와 함께 놀 줄 아는 어른이 믿음직합니다. 보물찾기도 재미있고, 숨바꼭질도 즐겁습니다. 윷놀이도 재미있고, 소꿉놀이도 즐겁습니다. 종이 한 장을 접어도 재미있고, 그림을 살살 그려도 즐겁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하면 재미있으면서 즐겁습니다. 풀을 뜯어도, 설거지를 해도 언제나 재미있으면서 즐거운 하루입니다. 재봉틀이 있고 과자를 손수 구워서 주는 삶이 가만히 드러나는 그림책이 따사롭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어머니가 손수 깁고 짓는 옷과 가방을 받아서 쓰리라 생각합니다.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을 전하는 편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71
안소니 프랑크 지음, 티파니 비키 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0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아요

― 행복을 전하는 편지

 안소니 프랑크 글

 티파니 비키 그림

 최순희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6.6.30.



  누군가 나를 해코지하려고 편지를 보내면, 이 편지를 열면서 마음이 쓸쓸하거나 무겁습니다. 누군가 나를 북돋우려고 편지를 보내면, 이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가볍거나 즐겁습니다. 누군가 내 동무와 이웃을 괴롭히려고 글을 쓰면, 이 글을 읽다가 마음이 아프거나 괴롭습니다. 누군가 내 동무와 이웃을 사랑하려고 글을 쓰면, 이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설레거나 사랑스럽습니다.



.. 아침으로 우유 한 숟갈과 어제 마시다 남은 식은 차를 마셨어요. 그러고는 생각했지요. ‘할 일이 없는 건 아냐. 같이 할 사람이 없을 뿐이지. 요즘엔 친구들도 통 찾아오질 않아. 누구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정말 심심해.’ ..  (4쪽)




  웃음은 늘 웃음을 낳습니다. 웃음은 늘 웃음을 부릅니다. 웃음은 늘 웃음을 심습니다. 그리고, 미움은 늘 미움을 낳습니다. 미움은 늘 미움을 부릅니다. 미움은 늘 미움을 심습니다.


  나이가 퍽 어린 사람들이 입에 거친 말을 달고 노는 모습을 곧잘 봅니다. 열서너 살이나 열예닐곱 살일 뿐인데, 입에 몹시 거친 아이들이 있습니다. 거친 말은 어디에서 듣거나 배웠을까요? 바로 어른들이 거친 말을 쓰니까 듣거나 배웠을 테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거친 말을 왜 쓸까요? 마음이 거칠어졌기 때문일 테지요. 아이들은 왜 마음이 거칠어졌을까요? 둘레에서 어른들이 집과 마을과 학교와 사회 모두 거칠게 내팽개치거나 망가뜨렸기 때문일 테지요.


  아이들은 거친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나 사회에서도 맑거나 착한 마음을 건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다만, 어린 아이들더러 ‘모든 일을 너희가 스스로 해야지!’ 하고 윽박지를 수 없어요. 아직 어린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보살핌을 받을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거친 말을 쓴다면, 이는 모조리 어른 탓으로 돌려서 어른이 뉘우쳐야 하고, 어른이 먼저 스스로 바뀌어야 할 일입니다.



.. 들쥐는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어요.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열 번을 더 읽어 보았어요. “정말 고마운 편지네! 하지만 누가 보낸 건지 정말 모르겠는걸.” ..  (6쪽)





  안소니 프랑크 님이 글을 쓰고, 티파니 비키 님이 그림을 그린 《행복을 전하는 편지》(시공주니어,2006)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들쥐가 나오고, 들쥐를 둘러싼 여러 동무와 이웃이 나옵니다. 들쥐는 어느 날부터 까닭 없이 슬프고 고단하며 힘겹습니다. 왜 그러한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어느 날부터 들쥐는 스스로 밥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스스로 몸을 가꾸지 않으며, 집도 이냥저냥 어수선합니다.


  이날이나 저날이나 늘 똑같이 쳇바퀴를 돌듯이 쓸쓸하며 무거운 날인데, 어느 날 노란빛깔 종이에 적힌 예쁜 편지를 받아요. 난데없이 찾아온 편지를 읽은 들쥐는 갑자기 기운이 솟아 낯을 씻고 몸을 추스르면서 바깥마실을 가기로 합니다.



.. 점심을 먹고 들쥐는 또다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마음은 행복하기 그지없었지요. 자기를 특별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누구일까 하도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니, 정말로 자기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들쥐는 이제 박쥐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  (17쪽)




  누가 들쥐한테 편지를 썼을까요? 누가 들쥐한테 편지를 부쳤을까요? 왜 들쥐한테 편지를 띄웠을까요? 왜 들쥐한테 편지를 건넸을까요?


  어느 한 가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만 알 수 있습니다. 즐거움을 그득 담은 편지를 받은 들쥐한테 즐거운 마음이 솟았습니다. 그리고, 즐거움을 그득 담은 편지를 쓴 누군가도 마음속에 즐거움이 그득 솟았을 테지요.



.. “이 편지를 누가 보냈는지 알아내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누가 보냈든, 나는 이 편지를 받을 자격이 없어. 난 누구에게도 참다운 친구가 되지 못했으니까. 좋아, 내일부턴 달라질 테야!” ..  (21쪽)



  보는 사람이 있건 없건 꽃이 피고 집니다. 먹는 사람이 있건 없건 온갖 나물과 열매가 숲에서 돋고 맺다가 집니다. 보는 사람이 있으면 한결 고운 꽃이 될 테지만, 보는 사람이 없어도 꽃은 언제나 곱습니다. 먹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싱그러운 나물이나 열매가 될 테지만, 먹는 사람이 없어도 나물이나 열매는 숲을 곱다라니 빛냅니다.


  내 아름다운 삶을 누가 들여다보니까 내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즐겁게 살고 싶기에 내 하루를 가꿉니다. 내 기쁜 웃음과 노래를 누가 쳐다보니까 웃거나 노래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웃음을 길어올리고 스스로 노래를 자아냅니다.


  내 노래는 네 노래입니다. 네 웃음은 내 웃음입니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웃어요. 같이 춤추고 같이 꿈꾸어요.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편지 한 장 짤막하게 쓰더라도, 사랑과 꿈을 담아서 주고받습니다. 편지로 마음을 나눕니다. 편지 한 장 단출하게 쓰더라도, 이야기와 삶을 담아서 나눕니다. 4348.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서 나와봐 한림 아기사랑 0.1.2 11
하야시 아키코 지음,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9



종이 한 장으로

― 어서 나와 봐

 하야시 아키코 글·그림

 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3.6.30.



  종이 한 장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연필로 그림을 그립니다. 가장 사랑하는 한 가지를 골라서 찬찬히 그림을 그립니다. 종이 한 장에 그린 가장 사랑스러운 그림은 나한테 가장 사랑스러운 님한테 선물로 줍니다.


  종이 한 장에 글을 씁니다. 연필로 글을 씁니다.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를 한 가지 살펴서 천천히 글을 씁니다. 종이 한 장에 쓴 가장 사랑스러운 글은 나한테 가장 사랑스러운 님한테 편지로 띄웁니다.


  종이 한 장을 오려서 인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을 곱게 오리고 물을 들여서 보꾹에 매달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을 책상맡에 놓아 늘 바라볼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은 숲에서 찾아옵니다. 숲에서 아름드리로 우거진 나무가 제 살결과 살점을 내놓아 우리한테 베푼 종이입니다. 어느 종이를 손에 쥐더라도 깊디깊은 숲에서 자라던 푸른 내음을 맡을 만합니다. 어느 종이를 손에 들어 펼치더라도 오랜 나날 햇볕을 먹고 바람을 마시던 삶을 읽을 만합니다.




.. 요즘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넓게 바라보는 듯한 마음이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 세상 전체, 모든 행위의 신기함을 느끼며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새로이 사람으로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진심으로 “잘 왔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아기의 새롭고 티없이 맑고 새로운 눈을 바라볼 때면 나 자신도 다시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처음으로 손님을 맞았을 때 손님의 눈이 되어 제 방을 둘러보듯이 ..



  하야시 아키코 님이 빚은 그림책 《어서 나와 봐》(한림출판사,2003)를 읽습니다. 하야시 아키코 님은 이녁한테 찾아오는 첫 손님을 그리면서 종이를 오렸다고 합니다. 하얗게 맑은 숨결로 곱다라니 찾아오는 손님한테 선물을 하고 싶어서 살살 종이를 오려서 이야기를 엮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기하고 놀려고 그림책을 짓습니다. 아기하고 사랑스레 얼크러지려고 종이 한 장으로 삶을 짓습니다. 아기하고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싶으니 종이 한 장을 빌어 숱한 꿈을 짓습니다.





.. 저는 색종이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첫 손님을 대접하려고 색종이로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갖가지 색의 예쁜 색종이가 아무렇게나 겹쳐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림책 《어서 나와 봐》에 나오는 이야기는 누구나 지을 수 있습니다. 가위로 이렇게 오리라느니 저렇게 자르라느니 하고 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대로 어려서 실을 꿰어 보꾹에 매달아도 되고, 그냥 가위로 오려서 갖고 놀아도 됩니다. 책살피로 쓸 수 있을 테며, 책상맡에 얹어서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어요.


  고운 종이 한 장을 오린 어버이 손길을 따숩게 느낍니다. 종이 한 장이 되도록 몸을 내놓은 나무 한 그루 마음결을 살가이 느낍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자란 숲을 푸르게 느낍니다. 숲이 우거질 수 있는 아름다운 지구별을 느낍니다.


  그림책 한 권을 읽으면서 지구를 생각하고, 종이 한 장을 만지면서 숲을 헤아리며, 우리 집 아이들을 쓰다듬으면서 사랑을 그립니다. 4348.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브라시카의 첫 여행 안녕, 체브라시카 2
예두아르트 우스펜스키 원작, 야마치 카즈히로 엮음, 김지현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8



사이좋게 마실하는 세 사람

― 체브라시카의 첫 여행

 에두아르트 우스펜스키 원작

 야마치 카즈히로 엮음

 김지현 옮김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2014.12.23.



  내가 네 살 적에 어떻게 놀거나 지냈는지 하나도 못 떠올립니다. 다섯 살이나 여섯 살 적에 어떻게 놀거나 지냈는지 도무지 못 떠올립니다. 세 살이나 두 살 적 일도 도무지 못 떠올립니다. 아마 우리 형은 내 어릴 적 모습을 꽤 떠올리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어느 한 가지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를 지켜보면서 가만히 헤아립니다. 큰아이는 제 동생이 어떤 하루를 누리거나 보내는지 찬찬히 살핍니다. 작은아이는 제가 어떤 짓이나 놀이나 말을 하는지 잊거나 못 떠올릴는지 몰라도, 큰아이는 작은아이 몸짓이나 놀이나 말을 여러모로 되새기거나 떠올릴 수 있습니다.



.. 게나와 체브라시카가 막 여행을 떠나려고 해요. 게나가 악어라는 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렇다면 체브라시카는 무엇일까요? 곰은 아니에요. 원숭이도 아니고요. 체브라시카는 체브라시카 ..  (2쪽)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하자면,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이모저모 많이 챙깁니다. 아버지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다가 모든 짐을 커다란 가방에 잔뜩 짊어지면서 다녀야 하는 줄 큰아이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작은아이는 마실길이건 어디에서건 졸리면 그냥 잡니다. 작은아이는 어디에서나 졸릴 적에 잠들면 아버지가 안거나 업어서 데리고 다닙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를 믿고 몸을 맡깁니다. 이때에 큰아이는 저도 졸릴 테지만 졸음을 씩씩하게 참습니다. 씩씩하다 못해 대견할 때가 있고, 딱하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큰아이한테 말하지요. 얘야, 아버지는 너희 둘을 다 안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졸리면 그냥 자면 돼. 아버지가 너희 둘을 안고 걷다가 정 힘들면 택시를 불러서 타면 되니까, 너무 힘들게 참지는 말자.


  큰아이는 가끔 ‘아버지 가방’을 들거나 나르겠다면서 용을 씁니다. 큰아이 몸무게보다 훨씬 무겁고 큰 가방을 들 수는 없을 노릇이지만, 이를 악물고 용을 써서 번쩍 들어올릴 때가 있으나 들고 나르거나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작은아이는 아예 들어 볼 생각조차 않는데, 큰아이는 아버지 가방을 건드려 본 일이 마음속에 남는지, “나도 짐을 들래.”  하면서 작은 가방 하나를 달라고 합니다.



.. 게나는 짐을 많이 들고 있었어요. “내가 도와줄게.” 체브라시카가 가장 작은 상자를 건네받았어요. “고마워. 그럼 내가 너를 들어 줄게.” 게나는 체브라시카를 안아 주었어요 ..  (11∼12쪽)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이 다니는 마실은 만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곁님과 함께 네 사람이 마실을 다니면, 곁님이 곧잘 작은아이를 안을 수 있으니 훨씬 홀가분합니다. 그런데 이때에는 큰아이가 어김없이 아버지한테 안기거나 업히지요. 작은아이가 어머니한테 칭얼거리면서 안기면, 큰아이는 아버지한테 칭얼거리면서 안기고 싶어요. 어버이 눈길로는 ‘칭얼거림’이라 할 테지만, 아이로서는 ‘사랑받기’를 바라는 목소리라고 느껴요.


  그림책 《체브라시카의 첫 여행》(어린이작가정신,2014)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2015년에 여덟 살로 접어드는 큰아이는 거의 모든 한글을 혼자 읽어냅니다. 동생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기도 합니다. 체브라시카 이야기도 동생한테 틈틈이 읽어 줍니다.


  에두아르트 우스펜스키 님이 빚고, 야마치 카즈히로 님이 새롭게 엮은 이 그림책을 보면, 체브라시카라는 아이가 게다라는 아저씨하고 나들이를 떠나는 이야기가 흘러요. 그리고, 체브라시카랑 게다랑 오붓하게 나들이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사포클라크 할머니는 시샘과 부러움으로 이 나들이에 끼어들지요.




.. “게나, 딸기가 있어.” “딸기가 아니라 작은 나무 열매란다.” “작은 집이 있어.” “그건 작은 집이 아니라 버섯이야.” “있잖아, 게나, 숲은 재미있어 보여.” “그러니?” “여행 대신 숲에 가자.” “좋은 생각이구나.” ..  (15쪽)



  사이좋게 나들이를 하는 둘을 지켜보는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 끼고 싶습니다. 얼마나 오붓하고 애틋해 보이는지, 함께 둘러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할머니 나이까지 살며 오랜 동무를 사귀지 못한 사포클라크는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짓궂은 장난을 칩니다. 마치 아이처럼 장난을 쳐요.


  그래요, 할머니가 아이처럼 장난을 쳐요. 왜냐하면, 나이로는 할머니이지만 마음으로는 아이라 할 테니까요. 나이로만 보면 늙은 사람이지만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착하고 맑은 넋이라 할 테니까요.


  수줍음이 장난으로 드러납니다. 한 발 두 발 다가서고 싶은 몸짓이 장난이 되어 나타납니다. 체브라시카와 게다는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짓궂은 장난 때문에 먼 길을 걸어야 하니 고단했을 테지만, 외려 기차에서 내려야 했기에 숲을 만납니다. 외려 먼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야 했기에, 게다와 체브라시카는 서로서로 한결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웁니다.




.. 체브라시카가 지붕 위 게나 곁으로 왔어요. “옆에 앉아도 돼?” “좋아. 그런데 왜 올라왔어?” “게나와 함께 있고 싶으니까. 사포클라크 할머니도 올라왔어요. “나도 옆에 앉아도 될까?” “좋아요. 그런데 왜 올라오셨어요?” “네 노래가 듣고 싶어서 말이지.” ..  (39쪽)



  체브라시카는 체브라시카입니다. 다른 어느 것도 아닙니다. 게다는 게다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악어가 아닌 게다입니다. 사포클라크는 사포클라크입니다. 짓궂거나 장난스러운 할머니가 아닌 그저 사포클라크입니다. 그리고, 사포클라크가 아끼는 커다란 쥐 라리스카는 또 라리스카이지요.


  셋은 함께 놀면서 즐겁습니다. 아니, 셋이 아닌 넷은 함께 놀면서 즐겁습니다. 서로 한식구라도 되는듯이 즐겁습니다. 마음으로 사귀고 마음으로 아낍니다. 마음으로 마주하고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표를 끊어서 어디에서 어디로 꼭 가야만 하는 나들이가 아니라, 살가운 벗님과 도란도란 웃고 노래하면서 길을 나서는 나들이입니다.


  마실길이 즐겁고, 삶길이 즐겁습니다. 마실을 다니는 하루가 즐겁고, 서로 사랑하는 하루가 즐겁습니다. 4347.12.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4-12-31 23:39   좋아요 0 | URL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였을거예요.
1권..2권?ㅎㅎ.몰아서 폭풍 읽기를 해버린탓에 전체 스토리ㅡ로 묶여 기억하는..이런 병폐..각설하고, 오래전
가출해 집을 등진 여자가 맘에 드는 남자와 결혼해 집에 인사가고파 하는게 원래 주 목적인데..사정상.그 목적은 숨긴채 고서당에 찾아와 책 찾기를 의뢰합니다.
고서당의 시오리코씨는 들으면 거의 모든 정황상 모를는게 없는 그런 수수께끼같은 인물. 거기에..미지의..그 동화가 나와요.
의뢰인이 찾는건 어릴 때 보던 동화책.
개와 사자와 악어와...뭐 그런 녀석들이
집이 없어 지들끼리 모여 동물원을 찾아가다..뭐..그런 얘기 였어요..그게 중요 한게 아니지..암튼 서로 조합이 안 맞는
동물들이 한데 어울어져 그려진 이상한 동화책 찾기가 의뢰 였다는 거죠.
...왜 뜬금없이..??? 체브라시카..이.단어가묘하게 기억을 자극하는 거죠..흐흐흐..아무래도.
그그...치만.지금..은 두통중이오니~ 나중에
책을 뒤져 보는걸로...그랬답니다.
오늘의..얘기..끝!.(뭐야...? 밑도 끝도 없이누가 시켰데?...별..ㅎ) ^^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숲노래 2015-01-01 00:04   좋아요 0 | URL
체브라시카라는 만화영화를 보면
이 아이들이 동물원에도 찾아갑니다.
오래된 만화영화이지만,
한글자막 없는 외국말로
유투브에서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아직 한국에 디브이디로 소개되기 앞서
이 만화영화를 보았는데
무척 잘 빚은 멋진 작품이더라구요.

그장소 님도 한번 유투브에서 찾아보셔요.
또는 한글판 디브이디를 장만해 볼 수 있을 테고요 ^^

아무쪼록 새해에도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시기를 빌어요.
고맙습니다~~

[그장소] 2015-01-01 01:0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그 장면에 대란 언급이...글에 나온다는 거죠..ㅎㅎㅎ
저도 고맙습니다.(^o^)b

숲노래 2015-01-01 08:04   좋아요 0 | URL
네, 멋진 작품이기에,
다른 어느 책을 쓰는 분이
이 그림책이나 만화영화 이야기를 적을 만하리라 느껴요~ ^^

[그장소] 2015-01-01 08:24   좋아요 0 | URL
감동적인 얘기로 이끌어 주는 역..으로
훌륭했어요.그 동화책을 찾는다며..집을 발칵..ㅎㅎ실은 그런 동화책은 없었고..실재 영상였다..없어진건..집에
그녀가 주워 기르던 개였죠.그래서 그때부터
그녀는 삐뚤어지고요.동기였죠..기댈데없는 소녀가 마음주던..유일한 개..는 자신과 동일시 한 존재. 뭐 그런 얘기였어요.그런데 알고 보니 아무도 안본다 생각한 가출한 소녀.그 엄마도 아빠도
그날 그 개를 엄청 찾았던것.서로 얘길 안해 오해가 깊어진 거죠.
재미있으셨나요?..^^
^ ^
새 해 아침 첫 선물이 책 얘기라..
좋네요..
커피를 갈았어요.방금...케냐AA..한잔..드실래요?^^


숲노래 2015-01-01 13:11   좋아요 0 | URL
그장소 님이 읽으신 그 책이
오래도록 가슴이 남았으니
그 책도 아름다운 징검다리 구실을 하는구나 싶어요.
새해 첫날 느긋하면서 아름답게 누리셔요~
커피 한 잔 고맙습니다~~ ^^

[그장소] 2015-01-01 13:35   좋아요 0 | URL
아이가 있기전부터 동화도 만화도 즐겨 봤어요. 다만 집엔 어릴 때도 TV는 없었죠.아주 나중에 잠깐 생겼다..그나마도
다시 라디오로 올라갔어요. 습관이 참 무서워요.지금도 TV는 필요를 못느껴요.
긴 시간..책이 거의 제 시간..대부분이고요..
덕분에 책읽는 기억을 되새겨요..더 오래
기억 하겠지요..제가 더 고마울 일.!
감사 합니다. o(^-^)o
오후 너그럽게 넘기는 시간 되시길~~~~~♬♩

숲노래 2015-01-02 02:31   좋아요 0 | URL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신문 같은 매체는
우리한테 자꾸 `유행`이나 `사건 사고` 같은 소식에 얽매이도록 할 뿐 아니라,
생각을 안 하고 빨려들도록 이끌지 싶어요.

이와 달리 책은 우리가 스스로 고르고 마음을 써야
비로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요.

동화와 만화는 아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눈높이를 크게 낮추어 누구나 읽어서 이야기를 먹도록 엮은
멋있는 책이라고 느껴요.

언제나 스스로 찾고 지으면서 가꾸는 이야기를
즐겁게 누리셔요~~

[그장소] 2015-01-02 03:49   좋아요 0 | URL
이런..표현을 허락해 주신다면...즐거워 (잠깐 시간을 잊었을 정도니..)미치겠어요. 헌데,혼자 그동안 책에대한 감상을 품고 살았으니...서러웠구나..안타깝고. 그래서
라푼젤 마냥 스스로 성 꼭대기에 올라 긴 머릴 싹둑 자르고는 아무도 없네..하고 있었고, 나... 함께살기 님처럼 동화같은 마음였다면 진즉 내려와 수 풀에 발목을 적시며 이슬 털어내는 기쁨을 알고도 남았을것을..아무것도 아닌 그 저 책..! 쓰기도 아닌 읽기를 하며 뭘 그리 오만방자 했나..고독하다. 노래하면서...

그래요.알아버려서..후련하고 일견 아늑하던
고성의 한 때가 그리울 날 . 있을지도 모르지만..지금은 이 많은 더불어 & 함께..
를 미친 듯 즐기겠습니다. 어느 날 이 풀 밭위의..한가로운 식사가 덧없이 끝나더라도...지금은..차곡차곡 기쁨을 쌓고
나눌테입니다...당신과도 함께..하기를
정중히 미친듯 청하며...그럼..
달 속에 해를 ..품은 꿈을...꾸는 깊은 잠.
굿--나잇! ㅠ_ㅠ

숲노래 2015-01-02 04:32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고맙습니다 ^^
이 깊은 밤과 새벽에
도란도란 책 하나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삶이란
참으로 아름답구나 싶어요.

느긋하면서 아늑하게 꿈을 짓고 누리셔요~ 고맙습니다 ^^
 
반쪽달걀에서 나온 수탉 내 아이가 읽는 책 2
나탈리 라코스트 그림, 디안느 바바라 글, 이경수 옮김 / 제삼기획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7



씩씩한 아이들과 함께

― 반쪽달걀에서 나온 수탉

 디안느 바바라 글

 나탈리 라코스트 그림

 편집부 옮김

 제삼기획 펴냄, 2001.12.10.



  간밤에 찬물을 만지면서 부엌일을 살짝 오래 했더니 이튿날 몸이 아픈 듯합니다. 아니, 좀 아픕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아이들과 함께 저녁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기는 하지만,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는 해가 떨어지면 이내 잠자리에 들 때에 몸이 튼튼하리라 느낍니다. 해와 함께 일어나고 별과 함께 쉰다고 할까요.


  몸이 아플 적에는 밥도 물도 몸에서 안 받습니다. 아픈 몸은 아무것도 안 바랍니다. 그저 쉬기를 바라고, 그저 기운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옷을 두껍게 입어도 오슬오슬 떨리고, 방바닥에 불을 넣어도 손발이 찹니다. 그렇지만 어버이는 몸이 아프더라도 밥을 지어서 아이들을 먹입니다. 밥이 몸에 안 받아 간을 보기 어렵지만 어림으로 간을 보면서 아이들한테 밥상을 차려 줍니다.



.. 옛날, 하지만 아주 먼 옛날은 아니에요. 한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달걀 반쪽씩을 나누어 주었어요. 큰아들은 달걀 반쪽을 먹어 버렸어요. 그렇지만 작은아들은 달걀 반쪽을 품어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품고, 또 품었어요. 그랬더니 그 달걀 속에서 ‘톡, 톡’ 소리가 나면서, 반짝달걀수탉이 알을 깨고 나왔어요 ..  (2쪽)





  우리 둘레를 살펴보면 으레 ‘안 아픈 사람’한테 모든 것을 맞춥니다. 버스이든 전철이든 안 아프거나 안 힘든 사람한테 맞춥니다. 아프거나 힘든 사람은 걸음이 느리거나 굼뜰 텐데, 느리거나 굼뜨게 움직이는 사람을 보는 ‘안 아픈 사람’은 자꾸 눈치를 주어요. 기다리지 못합니다.


  건물마다 높다랗게 놓는 계단은 ‘안 아픈 사람’한테는 대수롭지 않으나, 아프거나 힘들거나 늙은 사람한테는 몹시 대수롭습니다. 벅차거나 힘겹지요.


  공장에서든 공공기관에서든 학교에서든 늘 ‘안 아픈 사람’한테만 맞춥니다. 일자리와 배움자리 모두 ‘안 아픈 사람’이 일하기에 알맞는 얼거리요 ‘안 아픈 사람’이 배우도록 하는 얼거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롸 문화와 정치와 경제는 모두 ‘안 아픈 사람’끼리 맺고 짜고 얽는 흐름이라고 할까요.



.. 주인의 말대로 반쪽달걀수탉은 도둑을 찾아 나섰어요. 한참을 가다가, 반쪽달걀수탉은 늑대를 만났어요. 늑대가 수탉에게 물었어요. “어디를 그렇게 서둘러 가고 있니?” “나랑 같이 가. 따라와 보면 알게 될 거야!” 늑대가 반쪽달걀수탉을 따라 나섰어요. 한 시간쯤 지났어요. 쉬지 않고 달려가다가, 너무나 지쳐 버린 늑대가 헉헉대며 말했어요. “어휴, 반쪽달걀수탉아, 힘들어서 더는 못 가겠어. 좀 쉬어야겠어!” “그러면 내 엉덩이 뒤로 들어와. 내가 데리고 갈게!” 반쪽달걀수탉은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어요 ..  (6쪽)




  디안느 바바라 님이 글을 쓰고, 나탈리 라코스트 님이 그림을 넣은 재미난 그림책 《반쪽달걀에서 나온 수탉》(제삼기획,2001)을 읽습니다. 반쪽달걀에서 깨어난 수탉이라니, 이 아이는 ‘반쪽이’라 할 만하군요. 반쪽에서 깨어났으니까요.


  그런데 달걀 한 알에서 두 목숨이 태어난다고 할 적에는 둘이 ‘반쪽과 반쪽’이라 하지 않습니다. 쌍둥이라 합니다. 사람도 두쌍둥이와 세쌍둥이가 있어요. 씨앗 하나에서 여럿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반쪽이나 쌍둥이는 힘이 여릴 수 있습니다. 반쪽이나 쌍둥이가 아닌 ‘한쪽이’가 힘이 여릴 수 있습니다. 반쪽이로 태어났기에 힘이 여리지 않고, 반쪽이로 태어날 적에 힘이 세지 않습니다. 반쪽이는 그저 반쪽이일 뿐입니다.




.. 도둑과 부인은 수탉을 사이에 놓고 힘껏 눌렀어요. 반쪽달걀수탉은 소리를 질렀어요. “말벌들아, 말벌들아! 어서 나와 나를 구해 줘.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죽게 돼!” 말벌들은 쏜살같이 튀어나와 도둑과 부인을 쏘아대기 시작했어요 ..  (23쪽)



  그림책 《반쪽달걀에서 나온 수탉》에 나오는 반쪽이는 몹시 씩씩합니다. 이 아이가 태어나도록 돌본 사람 말만 따르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기운이 넘치고, 누구보다 슬기로우며, 누구보다 야무집니다. 반쪽이는 어떻게 기운과 슬기로움과 야무진 매무새를 갖출 수 있을까요?


  반쪽이는 사랑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사랑 가운데에서도 더 따스하고 포근하면서 살가운 사랑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알뜰히 돌보는 사랑 가운데에서도 더욱 아끼고 보살피는 사랑을 받아 태어났어요.


  지구별 모든 아이는 사랑을 받아 태어납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는 앞으로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숨결입니다. 입시지옥에 시달리거나 시험기계가 되어야 할 아이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숨결을 알뜰히 북돋우면서 아름답게 커야 할 아이입니다. 지구별 모든 아이가 즐겁게 노래하고 맑게 웃을 때에 비로소 지구별 어디에나 사랑과 꿈이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씩씩한 아이들과 사랑을 꽃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야무진 아이들과 꿈을 일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꾸밈없이 바라보셔요. 어른이 된 내 몸도 아이로 태어나서 사랑을 받아 자란 줄 물씬 느낄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는 모두 사랑입니다. 4347.12.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