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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나와봐 ㅣ 한림 아기사랑 0.1.2 11
하야시 아키코 지음,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9
종이 한 장으로
― 어서 나와 봐
하야시 아키코 글·그림
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3.6.30.
종이 한 장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연필로 그림을 그립니다. 가장 사랑하는 한 가지를 골라서 찬찬히 그림을 그립니다. 종이 한 장에 그린 가장 사랑스러운 그림은 나한테 가장 사랑스러운 님한테 선물로 줍니다.
종이 한 장에 글을 씁니다. 연필로 글을 씁니다.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를 한 가지 살펴서 천천히 글을 씁니다. 종이 한 장에 쓴 가장 사랑스러운 글은 나한테 가장 사랑스러운 님한테 편지로 띄웁니다.
종이 한 장을 오려서 인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을 곱게 오리고 물을 들여서 보꾹에 매달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을 책상맡에 놓아 늘 바라볼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은 숲에서 찾아옵니다. 숲에서 아름드리로 우거진 나무가 제 살결과 살점을 내놓아 우리한테 베푼 종이입니다. 어느 종이를 손에 쥐더라도 깊디깊은 숲에서 자라던 푸른 내음을 맡을 만합니다. 어느 종이를 손에 들어 펼치더라도 오랜 나날 햇볕을 먹고 바람을 마시던 삶을 읽을 만합니다.
.. 요즘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넓게 바라보는 듯한 마음이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 세상 전체, 모든 행위의 신기함을 느끼며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새로이 사람으로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진심으로 “잘 왔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아기의 새롭고 티없이 맑고 새로운 눈을 바라볼 때면 나 자신도 다시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처음으로 손님을 맞았을 때 손님의 눈이 되어 제 방을 둘러보듯이 ..
하야시 아키코 님이 빚은 그림책 《어서 나와 봐》(한림출판사,2003)를 읽습니다. 하야시 아키코 님은 이녁한테 찾아오는 첫 손님을 그리면서 종이를 오렸다고 합니다. 하얗게 맑은 숨결로 곱다라니 찾아오는 손님한테 선물을 하고 싶어서 살살 종이를 오려서 이야기를 엮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기하고 놀려고 그림책을 짓습니다. 아기하고 사랑스레 얼크러지려고 종이 한 장으로 삶을 짓습니다. 아기하고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싶으니 종이 한 장을 빌어 숱한 꿈을 짓습니다.
.. 저는 색종이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첫 손님을 대접하려고 색종이로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갖가지 색의 예쁜 색종이가 아무렇게나 겹쳐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림책 《어서 나와 봐》에 나오는 이야기는 누구나 지을 수 있습니다. 가위로 이렇게 오리라느니 저렇게 자르라느니 하고 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대로 어려서 실을 꿰어 보꾹에 매달아도 되고, 그냥 가위로 오려서 갖고 놀아도 됩니다. 책살피로 쓸 수 있을 테며, 책상맡에 얹어서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어요.
고운 종이 한 장을 오린 어버이 손길을 따숩게 느낍니다. 종이 한 장이 되도록 몸을 내놓은 나무 한 그루 마음결을 살가이 느낍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자란 숲을 푸르게 느낍니다. 숲이 우거질 수 있는 아름다운 지구별을 느낍니다.
그림책 한 권을 읽으면서 지구를 생각하고, 종이 한 장을 만지면서 숲을 헤아리며, 우리 집 아이들을 쓰다듬으면서 사랑을 그립니다. 4348.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