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681


《共産主義를 벗어난 인물들》

 리쳐아드 크로스먼 엮음

 편집부 옮김

 을유문화사

 1952.9.10.



  1950년에 싸울아비하고 총칼이 마녘으로 물결치던 무렵, 집이며 마을을 버리고 걸어서 더 마녘으로 떠난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싸울아비하고 총칼이 높녘으로 밀어붙일 적에도 시골집 높녘 사람들은 똑같이 봇짐을 이고 지며 더 높녘으로 걸어서 떠나야 했지요. 미국하고 소련이 쪼갠 우리나라로 여기지만, 우두머리를 노린 이들이 스스로 갈라서며 둘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共産主義를 벗어난 인물들》은 봇짐을 들고 부산으로 옮긴 을유출판사가 “臨時事務所·釜山市光復洞一街六一”에 깃들고서 선보입니다. 한겨레싸움(한국전쟁)이 한창일 적에는 함살림(공산주의)을 나무라는 줄거리가 잘팔릴 만하겠지요. 나라에서도 이 책을 북돋았을 테고, 붓바치도 이 책을 읽으라고 읊었을 테고요. 총칼사슬에 억눌린 탓에 우리 말글로 우리 넋을 가꾸지 못한 잎망울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길이 아닌 서로 미워하는 싹을 책으로까지 심었습니다. 이 책은 앞뒤에 “通義洞 116番地 通仁書店”이라 찍힙니다. 언제 어떻게 서울 통인동 책집에 흘러들고, 누구 손을 거쳐 용산 헌책집에 닿았을까요. 내세우는 말(주의·주장·이론)은 싸움으로 치닫고, 나누는 말(대화·소통·논의)은 살림으로 나아갑니다. 말조차 없이 총칼을 들면 죽음으로 떨어지고요.


#TheGodThatFailed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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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5.

숨은책 679


《學習便覽 理科辭典》

 學習社 編輯所 엮음

 學習社

 1933.2.15.첫/1935.8.1.고침17벌



  경남 진주로 책마실을 간 길에 〈동훈서점〉에서 겉그림(표지)에 책자취(판권)가 모두 뜯겼으나 다른 종이를 댄 “理科辭典”을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권말부록’을 싣는 바로 앞쪽 귀퉁이에 으레 ‘終’이라 적고서 책이름을 넣는 줄 알기에 겨우 “이과사전”인 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더는 어떤 “이과사전”이거나 어디에서 언제 펴냈는지 알 길이 없다가, 스무 해쯤 앞서 서울 용산 헌책집에서 겉그림하고 책자취가 멀쩡한 《學習便覽 理科辭典》을 장만해서 갖추어 놓은 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건사한 책이 커다란 더미로 겹겹 쌓이면 스스로 어느 책이 어디에 있는지 ‘집에서조차 잃거나 잊는’데, 뜻밖에 아주 잘 보이는 데에 1933년치 작은 꾸러미를 얌전히 올려놓았더군요. 겉에 “理科の知識すべて分る!”하고 “最近の科學この一冊に!”처럼 적은 이 책을 죽 넘기다가 “朝鮮大邱府 中央通 春江堂書店”에 “優良圖書, 釜山六八二四番”란 글씨를 보았습니다. ‘대구 중앙통’은 대구에서 오랜 한길이자 저잣길이요 책골목입니다만, 이제 이 거리에서 책집은 자취를 감춥니다. 삽질로 다 밀어냈거든요. 우리는 어떤 어제를 살았고, 어떤 오늘을 살며, 어떤 모레를 그리는 하루일까요? 배우고 나누며 쥐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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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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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4.29.

숨은책 678


《NEW LIFE ENGLISH-KOREAN DICTIONARY》

 류형기 엮음

 Educational Services Washington D.C.

 1952.



  이 나라에 깃든 선교사 게일 님이 《한영자전》을 엮었습니다만 굳이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쓰는 말을 눈여겨보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1950년에 이르러 한겨레가 피를 튀기며 죽이고 죽는 슬픈 싸움판이 벌어지고 미국에서 싸울아비를 잔뜩 보낼 즈음, 비로소 ‘작은 나라 말글’을 조금쯤 알아야겠다고 여긴 사람이 늘었으며, 류형기 님이 엮은 《新生 英韓辭典》이 미국 워싱턴에서 영어판으로 1952년에 나옵니다. 1946년에 처음 나온 “신생 영한사전”은 온통 한자말투성이라면, 미국에서 미국사람한테 읽힐 ‘영한사전’은 한자를 거의 걷어낸 한글판이라 할 만합니다. 미국사람한테는 한글도 낯선데 한자까지 새겨야 한다면 머리가 터질 만했겠지요. 그러나 류형기 님은 이때에도 ‘영화사전(영일사전)’을 베끼는 틀을 못 버립니다. 저는 이 묵은 낱말책을 1997년 여름에 서울 용산 〈뿌리서점〉에서 만났어요. 싸움터(군대)에서 말미(휴가)를 얻어 책집마실을 했어요. 책집 아저씨는 “허허, 군대에서 휴가 나왔는데 집에는 안 가고? 군인한테는 책값을 받을 수 없지. 나는 월남까지 갔다와 봐서 군인이 얼마나 배고픈지 알지. 그냥 가져가게.” 하셨어요.


해방의 돐을 거듭하여 벌써 세 돐을 지냈으나 아직도 볼만한 사전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부족하나마 우리 사전의 요구는 더욱 많아 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말수도 더 많고 글자의 설명도 좀더 우리글로 된것이라야 할 것을 깊이 느끼고 한번 해본 경험을 살려 가며 우리의 힘을 합하여 지은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일본의 영화 사전으로는 제일 좋은것이라 할만한 삼성당의 《최신 콘사이쓰 영화 사전》을 기초로 하고 미국의 Funk & Wagnalls New Collage Standard Dictionary를 참고하여 편집한것이니 전것보다는 한걸음 나아간것으로 생각된다.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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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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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4.29.

숨은책 677


《NEW LIFE ENGLISH-KOREAN DICTIONARY》

 류형기 엮음

 신생사

 1946.10.1./1947.1.15.3벌.



  《新生 英韓辭典》이라고도 하지만, 겉에는 《NEW LIFE ENGLISH-KOREAN DICTIONARY》처럼 영어만 박은 낱말책은 1946년에 나옵니다. 엮은이 류형기 님이 한글판을 내놓기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영일사전·일영사전을 썼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일본이 총칼로 억누르며 우리말조차 못 쓰던 무렵에는 우리 낱말책조차 나오기 어려웠어요. 다만 1946년 8월 15일에 쓴 ‘머리ㅅ말’을 읽으면 새까맣게 한자말입니다. 사슬에서 풀렸어도 우리말·우리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까마득했다는 뜻이요, 글잡이(문필가·지식인)는 그동안 익숙하게 쓴 일본 한자말을 못 버렸습니다. ‘익숙하다’는 무엇일까요? 총칼사슬에서 풀렸으면 어깨동무하는 새나라를 그리면서 아이들이 앞으로 익힐 수수하며 환한 우리말·우리글을 어른부터 차근차근 배울 노릇 아닐까요? 자라날 아이들한테 낡은 사슬말(식민지 용어)을 물려줘도 될까요? 그런데 이 영한사전은 英和辭典(영일사전)을 베낀 판이요 책값도‘臨時定價 ¥375.00’입니다. 적잖은 글잡이는 일본 낱말책을 그대로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때만 해도 일본 낱말책을 베꼈다고 대놓고 밝혀야 한결 잘 팔렸다지요.


從來 學生界에서 愛用된 硏究社 《스쿨英和辭典》을基礎로하고, 同社 《新英和大辭典》, 富山房 《大英和辭典》, 大倉書店 《大英和辭典》, 三省堂 《英和大辭典》, 《콘싸이쓰英和新辭典》, Oxford Concise English Dictionary, Webster's Collegate Dictionary 等을參考하여 本辭典을 만들었다. (머리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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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우리 낱말책(사전) 발자취는

하나부터 열까지

‘일본 낱말책 베끼기’였다.

이 민낯을 

글로 남긴 사람이 드물게 있으나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쓴다면

배움터(대학교)나 일터(연구소)에서

눈치를 받는다고 하더라.


알면서도 쉬쉬한 민낯이자 뒷자취인데

떳떳이 밝히고 말끔히 털고서

새길을 갈 노릇 아닐까?


우리나라 영한사전은 아직도

이 사슬에 갇힌 채

우리 영어사전이 없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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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4.24.

숨은책 665


《요리·일기 1981 완전칼라版 家計簿》

 편집부

 주부생활

 1980.12.5.



  흔히들 ‘조선왕조실록’이라든지 갖은 한문책을 ‘기록문화유산’으로 떠받듭니다만, 저는 달리 봅니다. 우두머리하고 벼슬아치 몇 사람 발자취는 우리나라를 이룬 삶길 가운데 티끌 하나만큼도 아닙니다. ‘적히지(기록)’ 않은 사람들 발자취야말로 참다이 ‘기록문화유산’이요, 이 가운데 하나로 ‘주부생활 송년호 특별부록’으로 나온 《요리·일기 1981 완전칼라版 家計簿》를 꼽을 만하다고 봅니다. ‘살림적이’인 ‘가계부’입니다. ‘여성잡지 별책부록’으로 찍힐 적에는 다 같으나, 사람들 손을 거칠 적에는 다 다른 살림빛으로 피어납니다. 서울 갈현동에서 아주머니 홀몸으로 아이를 돌본 눈물자국이 범벅으로 흐르는 1981년 살림순이(가정주부) 이야기가 ‘우리 역사’이지 않을까요? 임금님 이름은 ‘역사가 아닙’니다.


“오년동안 게혁 세우고 장사를 시작한다. 현금은 한푼도 엄다. 고모네돈 300만원 목공고 50만원, 이것이 빗이다. 내힘으로 이세상을 살아보렷다. 노력하면 된다. 하라 하면 된다. 오년 동안 내 힘을 다해서 살겠다. 돈이라면 고생 무릅쓰고 하겠다. 몸맣 건강하게 해주십시요. 이 불상한 여인을 구비살펴 주심시요. 내 잇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 쌀 네가마가 올해 외상입.”


“(부산에 있는) 상호가 왔다. 용돈을 넘무 조곰 주어서 마음이 아푸다. 내 몸은 왜 이럭에 아플까? 너무 괴롭다.”


“상철이가 아버지한테 갔다 왜 완느야고 하더라. 그래서 아버지 공낙금 좀 내주실래요 그러니까 옴마한테 달라고 하더라며 집에 와서 울었다. 너무 게롭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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