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83


《민족중흥 대학·일반용》

 한국문인협회 엮음

 어문각

 1969.4.30.



  “우리는 국민교육헌장을 세밀히 분석하여 그 정신이 가르키는 바 여러 가지 요지를 18개 항목으로 나누었다.” 하고 머리말에 밝히는 《민족중흥 대학·일반용》은 한국문인협회라는 데에서 엮습니다. ‘새 국민 문고’로 나온 책이라는데, ‘대학·일반용’이 있으니 초등하고 중등을 가르는 판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서강대도서관 폐기도서’로 헌책집에 흘러들었기에 이런 책이 다 있었네 하고 오늘에 와서 돌아봅니다. 나라를 살리자는 뜻보다는 정치권력이 흔들린다 싶기에 나라팔이를 했다고 느낍니다.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갖은 말썽을 피우면서 이 말썽짓을 감추려고 ‘민족중흥’이란 이름을 앞세워 사람들을 길들이려 했구나 싶습니다. 군사독재가 온나라를 짓밟은 나날을 붓끝으로 나무라지 않는다면 그들을 글님(문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군사독재한테 빌붙거나 엉겨붙으면서 돈·이름·힘을 거머쥔 그들은 그저 허수아비이거나 거머리라고 해야겠지요. 이런 책을 찍은 곳도 똑같이 독재부역을 한 셈입니다. 아무리 ‘폐기도서’로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습니다. ㅅㄴㄹ


“또 혼란해지는 질서를 바로 하기 위해선 군인들까지가 나서 혁명도 하면서, 이 천지개벽만큼 새로운 우리 겨레의 중흥을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12쪽/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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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79


《소설 보다 봄·여름》

 김봉곤·조남주·김혜진·정지돈

 문학과지성사

 2018.8.29.



  소설꾼 한 사람이 그동안 내놓은 책이 2020년 여름날 크게 말썽이 됩니다. 출판사도 소설꾼도 한참 입을 다물거나 팔짱질이었으나,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자 부랴부랴 움직이더니 뒤늦게 고개숙이는 시늉에 책을 거둬들이기로 합니다. 이러고서 얼마 안 지나 소설꾼 이름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바뀌고, 누리책집에서 이 소설꾼 책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아예 감추려 하네 싶습니다. 큰 출판사가 여러 가지로 보여준 모습은 이 나라 정치·사회하고 닮습니다. 아니, 매한가지일 테지요. 이제는 찾을 길이 없다시피 한 그 소설꾼 자취를 《소설 보다 봄·여름》에서 엿봅니다. 그릇이 얕은 쪽은 소설꾼 하나뿐일까요? 큰 출판사 일꾼이나 대표는, 또 문학평론을 하는 이는, 또 우리들은 ……?


“무엇보다 고향을 떠난 것이 결정적인 변곡점이었다. 나는 상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촌스러운 내 옷들과 함께 내 말투를 버렸다. 그다음은 옛 친구들이었다 … 여름을 위해 준비해둔 향수는 르라보의 상탈33과 바이레도의 블랑쉬입니다 … 세상에 온전히 ‘나’가 ‘나’인 사람이 없듯, 온전히 ‘나’의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 역시나 가장 만나고 싶은 독자는 다음 소설을 쓰게 할 사람이에요.” (38, 49, 50, 56쪽/김봉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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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78


《新訂 普通學校 全科模範正解 第貳學年 前編》

 普通學校 硏究會·홍순필

 박문서관·회동서관·조선도서주식회사

 1928.3.25.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우리 생각입니다. 생각이 말로 드러나고, 말로 생각을 살찌웁니다. 그래서 고장마다 말이 다르고, 나라마다 말이 달라요. 살아가는 터를 고스란히 말로 담거든요. 나라지기는 이 대목을 알기에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말’을 쓰도록 억누르거나 몰아세웁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말을 하면 스스로 살림을 짓는 길이지만,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말을 쓰면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몸짓’으로 물들거든요. 《新訂 普通學校 全科模範正解 第貳學年 前編》은 일제강점기에 배움터를 다닌 분이 참고서로 삼은 책입니다. 첫 쪽을 넘기면 “‘현상문제 2회’ 엽서”가 있고, 책끝에는 ‘현상문제 1회’ 엽서를 보내어 뽑힌 사람들 이름이 빼곡합니다. ‘보통학교’ 참고서인 책이라 그무렵 보통학교에서 어떤 갈래를 가르쳤는지 엿볼 만한데요, ‘國語’하고 ‘朝鮮語’가 따로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국어 = 일본말’입니다. ‘조선어 = 우리말’이에요. ‘국어’란 이름은 일본 제국주의가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면서 비로소 퍼뜨린 이름이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 ‘국어’를 못 버려요. 국립국어원에 국어교육이란 이름이지요. 언제쯤 ‘우리말’이나 ‘배달말’이나 ‘한말’이란 이름을 되찾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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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91


《der Grosse Brockhaus》

 F.A.Brockhaus 편집부 엮음

 F.A.Brockhaus

 1928.



  순천에 있는 헌책집 〈형설서점〉에서 두툼한 백과사전 《der Grosse Brockhaus》 꾸러미를 만났습니다. 모두 몇 자락인지는 모르겠는데, 첫걸음은 “A-Ast”를 담고 1928년에 나왔다 하며, 스물한걸음은 1935년에 나왔다고 해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찍은 백과사전인데, 광주의과대학교 도서관은 1948년에 이 책을 장만했고, 첫걸음은 ‘78째’로 들인 책이라고 합니다. 스물한걸음으로 나온 백과사전 안쪽을 보니 ‘Deutshe Buchhandlung NISSHIN-SHOIN, Tokyo·Kyoto·Fukuoka Japan’이라 적힌 조그마한 붙임종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일 백과사전을 장만하기 어려워 일본에 있는 책집에 여쭈어서 들여왔을 테지요. 독일책을 다룬다는 일본 책집은 토쿄하고 교토하고 후쿠오카에 가게가 있었구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일본은 1948년에도 ‘독일책만 다루는 책집’이 있었다는 뜻이요, 아마 프랑스책이나 이탈리아책만 다루는 책집도 따로 있었겠지요. 오늘날에도 〈NISSHIN-SHOIN〉이라는 책집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광주의과대학은 이제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겠지요. 공공도서관이든 학교도서관이든 ‘빌려읽는 사람’이 없으면 오래된 책이든 새로운 책이든 다 버립니다만, 어쩐지 스스로 발자취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셈 같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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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80


《바다밑 20만 리》

 쥘 베른 글

 한낙원 옮김

 계몽사

 1975.10.3.



  아무리 엉터리이거나 잘못이거나 나쁘다고 하더라도 ‘나한테 익숙하니 내가 익숙한 대로 쓰는 길이 낫다’고 여기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으레 나이든 사람이 합니다. 어린이는 이런 말을 안 해요. 어린이는 늘 새로 맞아들여서 즐겁게 배우려는 눈빛인 터라 ‘알맞고 바르며 즐겁고 사랑스러운 길’을 들려주면 의젓하게 나아갑니다. 쥘 베른 님은 푸른별 안팎을 둘러싼 이야기를 꽤 써냈습니다. 믿기지 않는다 싶은 이야기라는 타박을 꽤 들었다는데요, 마음으로 어디로든 찾아다니고 느끼면서 바다밑 이야기도 이웃별 이야기도 그릴 만했지 싶습니다. 《바다밑 20만 리》는 ‘원자력 잠수함’에 끌린 한낙원 님이 옮긴 어린이문학입니다. 1869년에 “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라는 프랑스말로 나온 책을 일본은 “海底二萬里”로 옮깁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사람이 옮긴 말씨’를 그대로 베꼈지요. ㅅㄴㄹ


“그리고 이 소설의 원제목은 《바다밑 2만 리이그》입니다. 1리이그는 약 4.8킬로미로 우리나라의 10리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바다밑 20만 리》로 번역하였으니, 일본사람들이 번역한 《바다밑 2만 리》와 혼동이 없기를 바랍니다.” (옮긴이 말/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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