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65


《박정희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박정희 글

 문화공보부

 1976.1.16.



  1976년 1월 15일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했다는 연두 기자 회견을 모두 담았다는 85쪽짜리 책을 하루 만인 1월 16일에 내놓으면서 책뒤에 “이 책을 다 읽으시면 이웃에도 돌려 여러분이 보실 수 있도록 합시다”라고 적으며, 안쪽에는 ‘회람’ 칸까지 마련합니다. ‘회람’이라는 말이 무섭습니다. 참 그랬지요. 어슴푸레 떠오르는데, 어머니는 이웃 아주머니한테서 ‘회람판’을 받아 이름을 적으셨고, 이 회람판을 다른 이웃집에 건네셨습니다. 어머니가 집일로 바쁘시면 제가 어머니 이름을 슥슥 적어 이웃집에 건네주었습니다. 아마 다른 집에서도 바쁜 어머니보다는 그 집 아이가 슥슥 이름을 적어 회람판을 꾹꾹 채웠지 싶습니다. 반상회장도 그러려니 하고 여겼을 테고요. 다만 어른 글씨 아닌 아이 글씨인 줄 눈치를 채면 따로 우리 집에 찾아와서 물어요. “이 댁 이 회람글 다 읽었나요?” “그럼요, 다 읽었지요.” 반상회장이 돌아가면 낮게 한말씀 합니다. “읽기는. 바쁜데 언제 그걸 다 읽어?” 어머니가 반상회에 가시는 날 더러 따라가 보곤 했는데, 한두 시간쯤 꾸벅꾸벅 졸며 자리를 지키셔야 했습니다. 다른 아주머니도 똑같이. 우두머리 아닌 나라지기라면, 아니 나라일꾼이라면 그네 말씀을 책으로 묶지 않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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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9.

숨은책 692


《학급문집 물또래》

 강원도 봉정분교 어린이 글·그림

 임길택 엮음

 종로서적

 1987.2.28.



  지난날 〈종로서적〉은 펴냄터 노릇을 함께했어요. 여느 펴냄터에서 내놓기 어려운 삶책·살림책을 알뜰히 여미고, 가난한 책벌레가 수월하게 책빛을 누리도록 손바닥책을 알차게 엮었습니다. 책과 삶 이야기를 담은 알림책(사외보)를 내면서 ‘책으로 얻은 보람을 책으로 돌려주는 몫’을 톡톡히 합니다. 여기에 어린이책을 몇 자락 선보이는데, 이오덕 님이 도움말을 들려주고 여러 어린글꽃지기(아동문학가)한테서 글을 받아 이어주었으며, 무엇보다 어린이글을 펴내도록 북돋았다지요. ‘종울림 소년문고’에는 어린이글이 셋 있어요. 《물또래》랑 《해 뜨는 교실》이랑 《들꽃》입니다. 《학급문집 물또래》는 강원도 멧자락에서 멧바람을 마시면서 하루를 보내는 어린이가 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글그림을 들려줍니다. 1985∼86년에도 베짜기를 하고 들일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저는 이 책을 2001년에 헌책집에서 만났어요. 마침 《보리 국어사전》을 짓는 일꾼이었기에 ‘어른이 쓴 글’보다는 ‘어린이가 쓴 글’을 낱말책 보기글로 삼자고 얘기했습니다. 나라 곳곳 배움터에서 내는 배움글집(학급문집)을 잔뜩 모아 보기글을 뽑았지요. 그러나 이런 땀방울이 낱말책에 제대로 담기지는 않더군요. 어린이글을 얕보는 눈이 아직 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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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밑줄 그은 낱말은

어린이 낱말책(보리 국어사전)에 

보기글로 넣을 밑글입니다.


낱말책에 싣는 보기글은

이렇게 책을 죽 읽으며

밑낱말을 모아서

신나게 글로 옮겨놓고서

낱말에 따라 알맞게 넣지요.


그러나 이렇게 모은 밑낱말이

제대로 사전에 실렸는지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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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9.

숨은책 33


《광부 아저씨와 꽃게》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3.31.



  어린이가 쓰는 글은 어른이 쓴 글을 고스란히 따르지 싶습니다. 어린이가 처음에는 수수하고 티없이 글을 쓰더라도, 이 수수하고 티없는 글을 읽은 어른이 자꾸 꾸중하고 꿀밤을 먹이면 어린이는 어느새 제 눈길이나 삶길이나 글길을 잊거나 잃어요. 어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 테지요. 배움수렁(입시지옥)은 푸름이뿐 아니라 어린이를 길들입니다. 어릴 적부터 길든 글길이 어른이 되어 풀려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둘레(사회)에 길들지 않으려는 어른이 있어 드문드문 삶책이 나오지만, 이러한 책이 돋보이면서 어린이 손까지 닿기란 몹시 어렵더군요. 배움수렁에서 살아남거나 동무를 이기고 올라서도록 북돋우는 곁배움책(참고서)을 아이들한테 내미는 어른인걸요. 한창 사슬(독재)이 춤추던 1985년 무렵 태어난 《광부 아저씨와 꽃게》는 그무렵에 어린이 손에 얼마나 닿았을까요? 이오덕 어른은 어른을 일깨워 어린이가 글이며 말이며 삶에서 홀가분하기를 바랐지만, 이 꿈을 이루기까지는 아직 멀지 싶습니다. 어린이 글을 묶은 이 꾸러미는 임길택·주중식·이기주 세 길잡이(교사)가 탄광마을·시골마을·바닷마을 어린이를 이끈 자취가 짙은데, 이 가운데 임길택 님이 이끈 탄광마을 어린이 글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따스하며 눈물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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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8.

숨은책 691


《개역 셩경》

 허엽 옮김

 셩셔공회

 1938./1939.



  우리글이 없던 무렵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던 삶책이 있고, 중국글을 빌려서 적은 책이 있고, 일본글을 담은 책이 있고, 일본글·중국글 너울에 끼었어도 한글이란 이름을 새로 얻어 비로소 선보인 책이 있어요. 나라지기는 여느 사람이 읽을 책을 선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이 나라를 집어삼킨 뒤에도 살피지 않았어요.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세워 ‘한겨레를 잡아먹을 뜻을 담아 한글책에 조선어사전까지 엮어냈’지만, 정작 이 나라 우두머리는 팔짱이었습니다. 이 틈바구니에서 ‘하느님 말씀’을 퍼뜨리려고 먼나라에서 찾아온 이들이 《한영자전》에 《조선어 첫걸음》을 일찌감치 냈고 《개역 셩경》(改譯 聖經)까지 냅니다. “구약 셩경”하고 “신약 셩경”을 앞뒤로 담는데, “The Holy Bible in Korea”라는 이 책은 ‘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London’이라 적힌 글월로 보건대 영국에서 찍어서 들여왔지 싶어요. 거룩책(성경)을 우리말로 옮긴 사람은 허엽(許曄/토마스 홉스Thomas Hobbs)이라는 분이고, 1880년에 태어나 1910년에 이 땅에 발을 디디고서 1941년에 조선총독부가 쫓아낼 때까지 온사랑을 바쳤다지요. 그런데 우리글 거룩책을 처음 옮긴 분 끝삶을 우리 스스로 제대로 모르니 더욱 딱한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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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6.

숨은책 680


《李守一과 沈順愛》

 허문영 글

 선경도서출판사

 1972.4.15.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려니 모든 책을 안 가립니다. 곳곳에서 우리말을 어찌 쓰나 살핍니다. 《李守一과 沈順愛》를 헌책집에서 만나던 날, 굳이 살펴야 하나 싶어 지나치려다가 뽑아들었어요. 책끝에 “一九七二年八月二十三日, 南大門驛前에서 金八十五원에 買入”이란 손글씨가 깃들어요. 1972년에 갓 나온 책을 싼값에 넘긴 셈이라 알쏭하더군요. 곰곰이 짚자니, 조중환 씨가 1913∼15년에 〈매일신보〉에 실은 《장한몽(長恨夢)》이요, 이 글은 일본사람 오자키 코요(尾崎紅葉) 씨가 1897∼1902년에 〈讀賣新聞〉(요미우리신문)에 실은 《金色夜叉》를 훔쳤다는데, 이 글은 또 영국사람 버서 클레이(Bertha M.Clay) 씨가 쓴 《Weaker than a woman》를 훔쳤다지요. ‘오늘눈’으로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도둑놈입니다. ‘어제눈’으로는 아랑곳않았다지만, 오늘뿐 아니라 어제에도 ‘내 글’을 쓸 생각을 안 하고 ‘남 글’을 슬쩍하는 짓을 거리끼지 않는다면, 그이 자취는 창피한 얼굴로 남을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내면서 살림을 짓는 눈빛이라면 두고두고 읽힐 이야기요 노래를 펴기에 사랑을 물려줄 만해요. 이웃을 달래고 아끼는 손길일 적에 스스로 삶글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그나저나 이 책을 낸 곳마저 또 도둑질이었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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