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심다 - 용기와 신념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8가지 이야기
바바 치나츠 지음, 이상술 옮김 / 알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평화와 민주주의가 없는 나라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6] 바바 치나츠, 《평화를 심다》(알마,2009)

 


- 책이름 : 평화를 심다
- 글 : 바바 치나츠
- 옮긴이 : 이상술
- 펴낸곳 : 알마 (2009.11.9.)
- 책값 : 9500원

 


  고흥군청 민원실에 들러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국가보안법 바로알기 10문 10답》이라 적힌 노란 빛깔 도톰한 책자를 봅니다. 어디에서 누가 만들었는지 간기가 없는 알쏭달쏭한 유인물이라 할 텐데, 군청 민원실 책꽂이에 버젓이 놓입니다. 국가정보원에서 만들었는지, 군청에서 만들었는지, 청와대에서 만들었는지, 또는 어느 정당에서 만들었는지 아리송합니다. 이 책자 곁에 나란히 놓인 한 장짜리 ‘귀농·귀촌’ 안내 전단지조차 전라남도 도청에서 만들었다는 간기를 또렷이 밝히는데, 도톰한 《국가보안법 바로알기 10문 10답》은 어디에도 간기를 안 밝혀요.


  2012년 가을, 고흥군의회에서 ‘고흥군 화력발전소 문제’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고흥군에 화력발전소 같은 위험·위해시설을 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창 고흥군이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애쓸 적에 조그마한 면사무소뿐 아니라 읍내 버스역에조차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면 고흥군에 얼마나 이바지를 하느냐’ 하는 이야기만 잔뜩 적힌 전단지가 수북히 있었어요. 이 전단지에도 간기가 없어 누가 왜 어떻게 만들어 이렇게 수북히 쌓았는지 아리송했습니다. 그냥저냥 군청에고 면사무소에고 읍내 버스역에까지, 이 전단지를 잔뜩 쌓아 사람들더러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옳고 그름이나 맞고 틀림을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만든 책자와 전단지가 버젓이 놓인다면, 이 곁에는 ‘정체를 알 수 있는’ 곳에서 만든 ‘다른 목소리’가 함께 놓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말밥거리가 되기에 누군가 ‘스스로 제 모습(정체)을 숨긴’ 채 어떤 책자나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겠지요.


.. 2주일 동안의 취재를 마치고 딜리 공항을 출발할 때 내 뒷머리를 잡아당기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일본인인 나는 일이 끝나면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탄압에 시달리면서 살아가야 한다. 생명의 소중함은 어디나 다르지 않을 텐데도 ..  (6쪽)


  군청 민원실에 있던 《국가보안법 바로알기 10문 10답》 1부를 챙겨 집으로 가져옵니다. 찬찬히 살핍니다. 대한민국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자면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힘있게 외치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책자를 덮고 생각합니다. 평화란 무엇일까요.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요. 어느 때에 평화라고 말할까요. 어느 때에 민주주의라고 말할까요. 이 나라에 군대가 있어 평화를 누릴까요.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표로 뽑아 민주주의를 누리는 셈일인가.


  고흥군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 한 이들은 공무원과 개발업자입니다. 군청 공무원이든 중앙정부 공무원이든, ‘서울과 큰도시 전기가 모자라다’고 하니까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밝히면서, 정작 서울이나 큰도시에 발전소를 안 짓고, 고흥군처럼 맑고 정갈한 시골에 발전소를 지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서울과 큰도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 이런 도시에 발전소 같은 위험·위해시설을 지으면 ‘많은 사람들 안전이 걱정스럽’다 하거든요. 다음으로 개발업자는 고흥군 같은 시골에 발전소를 지어야 땅을 값싸게 사들여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밝힙니다. 위험·위해시설을 짓기 때문에 ‘보상금’ 같은 돈을 준다 하는데, 보상금을 안기려 하는 시설이라 한다면 얼마나 위험하고 나쁘다는 소리일까요. 참으로 고흥군에 도움이 되며 멋스러운 시설이라면, ‘고흥군에서 돈을 주면서 끌어들일’ 노릇이거든요.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둘러싼 실타래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 나라는 하나도 평화롭지 않습니다. 이 나라 지자체는 조금도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군민한테 제대로 된 정보나 이야기 한 자락조차 들려주지 않고 위험·위해시설을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이 나쁜가 하는 대목을 군청이나 중앙정부나 개발업자 스스로 밝히지 않습니다. 발전소란 어떤 곳이며, 전기를 한꺼번에 어마어마하게 만드느라 어떤 것을 어떻게 불태워 어떤 배기가스와 쓰레기와 열폐수가 나오고, 어떤 것(연료)을 실어나르느라 얼마나 많은 짐배와 짐차가 이곳을 드나들어야 하며, 얼마나 많은 송전탑을 어떤 도시까지 줄줄이 이어야 하는가를 조금도 밝히지 않았어요. 간추리자면, 정보이건 이야기이건 꽉 막힌 채 ‘발전소 지으면 고흥군에 이바지하니까 꼭 해야 한다’는 명령과 지시만 있었어요. 평화도 아니요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그저 전쟁이고 그예 독재입니다.


.. 중립적인 위치에서 원조 활동을 벌이던 NGO와 국제기관이 안전상의 문제로 차례차례 철수 또는 활동을 축소하는 사이, 그 여파로 피해를 입는 것은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에 처한 이라크 사람들이다 … “나는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없지만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습니다.” 신부는 말한다. “가톨릭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아이들도 그런 나쁜 말을 듣거나 나쁜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남을 상처가 가장 걱정이었습니다.” ..  (111, 185쪽)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한테 평화나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는 평화와 민주주의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과서는 늘 ‘대학 입시 문제’에 틀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여러 갈래 과목이 있다고 하지만, 중·고등학교 수업은 늘 ‘대학 입시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히도록 하는 쪽으로 흐릅니다. 시험공부를 시키는 교과서이지 삶배움으로 이끄는 교과서가 아니에요. 교과서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다루기는 하지만, 시험문제를 잘 맞히도록 하는 지식을 다룰 뿐, 아이들이 사회에서 평화를 누리거나 민주주의를 빛내는 길을 밝히지 않아요. 평화가 어디에서 오고, 평화를 우리 스스로 어떻게 일구며, 평화는 서로 어떻게 어깨동무할 적에 태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교사부터 스스로 평화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교사는 평화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입시지도와 진학지도로 바쁘며, 온갖 서류를 꾸려야 하니 바쁩니다. 학생 또한 스스로 평화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대학입시와 상급학교 진학에 온 넋을 쏟아야 하느라 바쁩니다. 영어 낱말 하나를 더 외우느라 바쁩니다. 한국사람이면서 정작 ‘한국말 한 가지’ 옳고 바르게 쓰는 데에는 마음을 두지 못해요. 왜냐하면,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쓰기보다는 영어 낱말 하나를 더 외워야 대학입시와 중간·기말시험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니까요.


  학교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교사도 학생도 스스로 느낍니다. 교사도 학생도, 또 학부모도 여느 사람들도 학교는 ‘입시전쟁터’라고 느낍니다. 대학입시를 치르는 싸움터가 학교라고 여깁니다. 학교로는 모자라 학원을 세워 아이들을 몰아넣습니다. 학원으로 모자라 방과후학교이니 체험학습이니 봉사활동이니 외부인사 초청 특강이니 하면서, 또 나라밖 영어유학이니 하면서 서로 들볶고 스스로 들볶입니다.


  평화롭지 않은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오직 대학입시 한길만 바라볼 뿐이기에, 민주주의가 들어서지 못합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교사와 교사 사이에도, 학생과 학생 사이에도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더 깊이 파고들면, 교사도 학생도 ‘국가보안법’이 무언지 모릅니다. 알 턱이 없고 알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 이야기는 대학입시에 안 나오거든요. 교과서에도 안 실리거든요.


.. 강권 정치를 펴던 밀로셰비치 정권은 독립을 외치는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여 세르비아 치안 부대 등에 의한 비인도적인 인종 청소를 저질렀다. 주민을 추방하고 학살하는 것도 모자라 알바니아인 여성에게 세르비아인 아기를 갖게 하려는 성폭행도 수없이 자행되었다. 문화·교육 면에서도 코소보의 ‘세르비아화’가 진행되어 공립학교에서는 알바니아인 교사가 대량 해고되고 세르비아식 교육이 강제되었으며 알바니아인은 학교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쓰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  (145쪽)


  교과서에는 ‘밥하기·빨래하기·아이돌보기’ 같은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대학입시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안 다룹니다. 교과서에는 ‘사랑하기·꿈꾸기·생각하기’ 같은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어린이는 푸름이가 되며 차츰 사랑에 눈을 뜨고, 사랑놀이에 마음을 기울이지만, 성교육 한두 시간 어설피 하고 지나갈 뿐, 참사랑을 밝히며 가르치고 배우며 누릴 겨를이 없어요. ‘성교육 지식’이 아니라 ‘삶을 누리는 사랑’을 보지도 듣지도 배우지도 익히지도 누리지도 살지도 못한 아이들은 밥그릇 나이로만 ‘어른’이 되어 모텔방을 드나들 뿐이에요. 서로를 아끼는 사랑을 깨닫지 않아요. 서로를 아끼는 사랑으로 빚는 아름다운 아기를 헤아리지 않아요. 서로를 아끼는 사랑으로 빚는 아름다운 아기를 어떻게 돌보고 가르쳐서 해맑은 넋으로 뛰놀며 자라도록 이끌 때에 즐거운가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날 푸름이나 젊은이들은 아이돌보기와 얽힌 지식조차 모릅니다. 아기를 어떻게 어디에서 낳는가조차 모르며, 밥을 어떻게 짓고, 밥은 어떻게 얻으며, 빨래는 어떻게 하고, 옷은 어떻게 짓거나 깁거나 손질하는가조차 몰라요. 아이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아이들은 대학입시 시험문제만 알아요. 어른들도 아무것도 몰라요. 아이들을 대학입시에 밀어넣는 틀거리만 알 뿐, 아무것도 몰라요.


.. 나는 민간인 희생자들 간의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 간의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살인을 명령하는 사람들 간의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사람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 못합니다. 나는 정치가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악마에게 팔아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잘못되고 치우친 정보를 전하는 언론도 믿을 수 없습니다 … 누군가의 욕망이 아닌, 내 인간성이 바라는 것만을 따를 것입니다 … 스스로 평온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지낼 수 없습니다. 나라안이 평화롭지 않은 나라는 다른 나라와 평화롭게 지낼 수 없습니다 ..  (19∼21쪽)


  삶이 삶답지 못한 곳에는 평화가 싹트지 못합니다. 삶이 삶답지 못해 평화가 싹트지 못하는데, 평화가 자랄 일이란 없습니다.


  사랑이 사랑답지 못한 곳에는 민주주의가 싹트지 못합니다. 사랑이 사랑답지 못해 민주주의가 싹트지 못하는데, 민주주의가 자랄 일이란 없습니다.


  대통령을 뽑는 한 표 권리를 쓸 수 있기에 평화나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군수와 국회의원이나 기초의원을 내 한 표로 뽑을 수 있대서 평화나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삶을 삶답게 누릴 때에 평화입니다. 사랑을 사랑답게 나눌 때에 민주주의입니다. 삶을 누리지 못하면서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랑을 나누지 못하면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 평화를 만드는 것은 정치가나 국제기관의 수장 같은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만 하는 일이 아니다. 사회의 평화와 안전은 정치적인 움직임보다도 오히려 우리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생활 가운데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203쪽)


  일본사람 바바 치나츠 님이 쓴 《평화를 심다》(알마,2009)라 하는 인문책을 읽습니다. 일본사람 바바 치나츠 님은 ‘지구별 분쟁 지역’을 두루 돌아다닙니다. 왜 안타까운 싸움이 생기고, 왜 슬픈 피죽음이 일어나며, 왜 쓸쓸한 미움이 커지는가를 살핍니다.


  참말 왜 평화와 민주주의 아닌 싸움과 독재가 이리도 판칠까요. 지구별 어느 나라이든 전쟁무기가 그토록 많은데, 아니 지구별 어느 나라이든 군대가 그토록 크고 많은데, 왜 어느 나라에서도 평화는 찾아들지 못할까요. 지구별 어느 나라도 대통령이든 누구이든 한 표 권리로 뽑는다는데, 왜 민주주의는 싹트지 못할까요.


  평화는 어디에 있을까요.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나요. 평화를 부르는 사람은 어디에 있나요. 민주주의를 일구는 사람은 어디에 있나요. 평화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요. 자유와 평등과 통일과 자주란 무엇일까요.


  양복을 입어야 점잖은 차림새일까요. 자가용을 몰아야 느긋한 살림일까요. 아파트에서 살아야 아늑한 보금자리일까요. 대학교를 마쳐야 사람 구실을 할까요. 은행계좌에 돈이 넘쳐야 넉넉한 하루일까요.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 맡겨야 복지일까요.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밤하늘에 뭇별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겨울바람 스산하게 불며 후박나무 잎사귀를 건드립니다. 마을 들고양이가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쏘다닙니다. 마늘잎은 함박눈을 머금으며 한결 씩씩하고 푸른 빛깔을 뽐냅니다. 갈대와 억새와 부들은 짙누렇게 물듭니다. 이웃마을에서 닭이 울고, 먼 멧자락에서 멧새가 노래합니다. 4345.1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 선물 - 화가 김원숙의 이야기하는 붓
김원숙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꿈을 그리는 그림
 [책읽기 삶읽기 121] 김원숙, 《그림 선물》(아트북스,2011)


 

  그림을 그리는 김원숙 님은 《그림 선물》(아트북스,2011)이라는 책에서 당신 그림은 당신 꿈을 그리는 일이라고 밝힙니다. 꿈이 있기에 꿈을 꾸고, 꿈을 꾸기에 꿈을 그린다고 할까요. 곧, 그림쟁이라 하든 그림쟁이가 아니라 하든, 그림을 그리는 이는 누구나 이녁 꿈을 그립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든 어른이 그림을 그리든 누구라도 꿈을 그린다 할 만해요.


  돌이켜보면, 꿈이 아니라면 그릴 수 없습니다. 꿈을 꾸기에 그림을 그립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그림을 못 그립니다. 꿈이 없는 사람도 종이와 붓을 장만해서 무언가 슥슥삭삭하기는 할 텐데, 슥슥삭삭하는 일이 그림이 되지는 않아요. 한마디로 ‘슥삭질’이나 ‘슥슥삭삭’은 될 테지만, 이밖에 달리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림을 그리는 이한테는 ‘그림그리기 = 꿈그리기’이고, 글을 쓰는 이한테는 ‘글쓰기 = 꿈쓰기’입니다. 사진을 찍는 이라면 ‘사진찍기 = 꿈찍기’요, 노래를 부르는 이라면 ‘노래부르기 = 꿈부르기’예요.


  그래서 나는 아무 노래나 섣불리 부르지 못합니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내 꿈을 부르는 셈이기에, 노래가락과 노래말을 찬찬히 살펴요. 노래가락이 달콤하거나 아름답다고 느끼더라도, 노래말이 어둡거나 슬프다면 내 삶이나 꿈 또한 어둡거나 슬프기를 바라는 셈이 되기에, 어둡거나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는 한편, 이런 노래를 불러야 한다면 노래말을 고쳐서 불러요.


.. 아무래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사랑인 것을 … 아, 정답이 없구나. 느낌대로 그리기만 하면 그게 정답인 거구나, 틀린 답이란 게 없구나 … 나는 꿈을 그린다. 내 그림은 모두가 다 꿈이다. 아니, 모든 예술가는 꿈을 그리고 쓰고 노래한다 ..  (20, 157, 167쪽)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마다 그리고픈 그림을 그릴 뿐이기에 잘 그리는 그림이나 못 그리는 그림은 없어요. 그림 역사에 이름을 남겼기에 잘 그린 그림이 되지 않습니다. 미술관에 걸리거나 박물관에서 건사하기에 잘 그린 그림이 될 수 없습니다. 비싸다 싶은 값으로 사고팔리니까 잘 그린 그림이 되지 않아요.


  어떤 그림이든 이 그림을 그린 사람 삶과 넋과 꿈이 담겨요. 그림을 읽는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삶을 누리며 어떤 넋을 나누었고 어떤 꿈을 이루는가를 하나하나 읽습니다. ‘유행’이나 ‘사조’나 ‘기법’을 읽을 사람은 없어요.


  다만, 비평이나 평론을 하는 이 가운데에는 ‘그림읽기’ 아닌 ‘유행읽기’나 ‘기법읽기’에 휘둘리는 분이 있어요. 유행이나 사조나 기법을 밝혀야 마치 그림읽기가 되는 듯 잘못 알기 때문인데, 대학교에서 이처럼 가르치니 어쩔 수 없어요. 그림을 그린 이가 어떤 삶을 누리면서 어떤 꿈을 꾸느냐를 읽어야 비로소 그림읽기인데, 엉뚱한 다리를 짚는달까요.


  신문읽기이든 문화읽기이든 늘 매한가지입니다. 정보나 줄거리를 읽으려고 신문이나 문화를 읽지 않아요. 신문에 깃든 삶을 읽거나 문화에 서린 넋을 읽으려고 신문이나 문화를 읽어요.


  누군가는 삶도 넋도 꿈도 없이 오직 재미로만 영화를 만들거나 글을 만들거나 그림을 만들기도 해요. 이렇게 만드는 영화나 글이나 그림은, 이러한 영화나 글이나 그림대로 뜻이 있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러한 뜻이란 무엇일까 궁금해요. 삶도 없고 넋도 없으며 꿈도 없는데, 재미만 있으면 무엇할까 궁금해요.


.. 내 속에 이런 쓰레기통이 들어 있었다니. 한심하기 그지없이 들리던 온갖 시어머니 상들은 내 속에 일던 바람들에 비하면 온화한 것이었다 … 세상살이를 왜곡 없이 수용하되 노예가 되지 않는 창의성, 현실의 앞뒤, 위아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크고 깊은 눈, 또 삶을 사랑하고 더 아름답게, 즐겁게 살려는 용감한 노력들 … 그렇다고 지금 대단한 부자가 된 건 아니지만, 이전에 안타까워하던 만큼은 가지게 됐는데도, 기대한 만큼의 편안함은 오지 않았다. 내가 인생의 큰 행복을 돈에다 걸 만큼 어리석지는 않지만, 그저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던 삶의 여건 몇 가지 정도는 나아질 거라 믿었었나 보다. 나 자신과 돈, 둘 다에게 큰 실망이다 ..  (71, 177, 235쪽)


  그림을 팔아 돈을 번대서 즐거울 수 없습니다. 돈벌기를 즐긴다면 그림을 팔아 돈을 벌 때에 즐거울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림을 즐겁게 그리고픈 이라면, 그림을 그려 돈을 벌든 안 벌든 대수롭지 않아요. 그림을 그려야 즐겁고, 그림을 누려야 즐거워요.


  아이들이 즐겁게 먹을 밥을 차려서 밥상에 올리며 즐겁습니다. 무언가 더 값진 밥을 차릴 때에 즐겁지 않아요. 배부르게 먹고, 고맙게 먹으며, 기쁘게 먹으면 넉넉해요. 어떤 맛집을 찾아갈 때에 즐겁지 않아요. 집에서 내가 손수 차려서 나누는 밥이면 넉넉해요.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어도 되지만, 그림책 없이 들길을 걷거나 숲속에서 하늘바라기를 해도 즐거워요. 마당에서 별하늘을 누린다든지, 텃밭에서 풀을 함께 뜯어서 먹어도 즐겁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늘 풀을 뜯어먹으니, 아이들도 곧잘 어디에서나 스스로 풀을 뜯어서 입에 넣곤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풀맛을 헤아립니다. 아이들 스스로 풀 한 포기에 감도는 햇볕과 바람을 헤아립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아이들이 도시에서 이름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도록 등을 밀어야 하나요.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이름난 대학교에 잘 붙도록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닦달해야 하나요.


.. 웅장한 유적지와 박물관 들엔 가는 곳마다 죽음이 가득했다 …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끼가 아름답게 끼어 있는 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찌 보면 둘 다 맞는 견해인데도 정답은 하나여야 하는 세상이 싫었다 … 화가인 나에게 많은 사람들은 “나는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으로 말문을 뗀다. 나는 건강한 관객들에게 그렇게 자신 없는 말을 하게 만든 도도한 현대 미술세계가 참 안타깝다 ..  (126, 161, 210쪽)


  나는 시골에서 꿈을 그립니다. 네 식구 시골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꿈을 그립니다. 낮에는 환한 햇살을 바라보며 꿈을 그립니다. 밤에는 새까만 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그리며 꿈을 보듬습니다.


  재주 많은 사람도 나쁘지는 않다 할 테지만, 재주보다는 웃음이 환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솜씨 뛰어난 사람도 나쁘지 않다 할 테지만, 솜씨보다는 사랑이 맑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내 꿈을 내 글에 담습니다. 나는 내 꿈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나는 내 꿈을 온몸으로 살아냅니다. 나는 내 꿈에 따라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하루가 저뭅니다. 늦가을 바람이 선선합니다. (4345.11.15.나무.ㅎㄲㅅㄱ)


― 그림 선물 (김원숙 글·그림,아트북스 펴냄,2011.9.30./16000원)

 

(최종규 . 2012 - 책읽기 삶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년어 - 물고기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삽니다
김수우 지음 / 심지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마음으로 읽는 책
 [책읽기 삶읽기 117] 김수우·윤석정, 《百年魚》(심지,2009)

 


  부산 중구 동광동4가 5-2번지 2층에 〈백년어서원〉이라 하는 책쉼터가 있습니다. 인터넷에도 작은 방(http://cafe.daum.net/100fish)이 있어요. 서울 못지않게 커다란 도시인 부산에는 사람도 많고 집도 많고 자동차도 많습니다. 어디를 가도 북적거리고, 어디를 가도 밤하늘 하얀 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큰길에 서면 자동차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골목에 서도 싱싱 달리는 자동차가 많아 아슬아슬합니다. 나뭇잎을 간질이는 바람결을 느끼면서 햇살을 누릴 만한 땅뙈기가 매우 모자라요. 풀잎을 춤추게 하는 바람무늬를 바라보면서 햇볕을 쬘 만한 터가 아주 작아요.


  책쉼터 〈백년어서원〉은 도시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마음을 쉬고 몸을 달래면서 스스로 삶을 북돋우도록 돕는 자그마한 둥지 구실을 하지 싶어요. 이곳을 지키는 김수우 시인은 윤석정 님이 나무에 새긴 ‘나무물고기’마다 한 가지씩 이야기를 달아 《百年魚》(심지,2009)라 하는 책을 내놓았어요. 이 책은 여느 책방에서는 구경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책방에서도 품절이라고만 뜰 뿐, 장만하기 퍽 힘들어요. 그러나, 즐거이 다리품을 팔아 〈백년어서원〉에 찾아가면 이 책을 기쁘게 만나 읽을 수 있어요.


..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배경입니다. 가장 아득하고 가장 가깝습니다. 누구에게나 높이이면서도 깊이이고 동시에 넓이로 열립니다 … 참 지혜는 삶은 공평하다는 것을 믿는 마음이 아닌지 … 진실한 사람에겐 어떤 형태의 삶이라도 제값을 지니고 반짝입니다 ..  (13, 23쪽)


  〈백년어서원〉에서는 따순 차를 마실 수 있고, 책꽂이에 가득한 여러 책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책이야 도서관에도 있고 새책방에도 있습니다. 요즈음은 곳곳에 북카페가 많이 생겨서, 북카페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어요. 그러나 〈백년어서원〉이 갖춘 책은 다른 북카페하고 사뭇 다릅니다. 제법 큰 출판사에서 차리는 북카페하고도 퍽 다릅니다. 하나하나 알뜰히 사서 읽으며 그러모은 책들이 있는 〈백년어서원〉이기에, 이 책들을 건사한 사람 눈길을 함께 읽을 수 있어요. 시를 쓰는 김수우 님이라서 시집을 꽤 널리 살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김수우 님이라서 사진 담긴 책을 여러모로 쏠쏠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숨가쁜 도시에서 숨을 돌리도록 이끌고, 앞만 보느라 바쁜 도시에서 옆을 보도록 돕습니다.


  더없이 마땅한데, 밭에서 김을 맬 적에 앞만 보며 김을 맬 수 없어요. 앞 뒤 옆을 골고루 살피며 알뜰히 김을 매야 합니다. 한쪽만 바라보면서는 흙일을 하지 못해요. 이곳저곳 골고루 돌아보는 눈썰미와 손길이 되어야 흙을 만질 수 있어요.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이들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멧골에서 나무나 풀을 만지는 이들도 이와 같아요.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셔요. 내 눈길 테두리에서만 별을 바라보지 않아요. 고개를 빙 돌리면서 온 하늘을 두루 살피며 별을 바라봐요. 한낮에 하늘을 올려다보셔요. 나는 내 눈으로 바라보이는 곳만 바라보지 않아요. 고개를 빙 돌리면서 온 하늘 구름을 보고, 저 먼 끝자락 파란빛까지 즐겁게 바라봐요.


.. 선행은 자연을 따르는 까닭에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음입니다. 그러나 선한 인연을 열매를 맺기 마련 … 주는 자는 늘 넉넉하고 제 것을 챙기는 자는 늘 모자라기 마련 .. (49, 57쪽)


  오늘날은 새책방도 헌책방도 인터넷에 목록 띄운 가게가 많아, 집이나 일터에서도 손쉽게 책을 살 수 있어요. 머잖아 도서관에서도 인터넷으로 ‘빌릴 책’을 신청해서 집에서 받도록 할는지 몰라요. 아니, 종이책을 몽땅 전자책으로 바꿔서 집에서 셈틀을 켜면 느긋하게 화면으로 책을 읽도록 할는지 몰라요.


  그런데 말예요, 사람들이 집이나 일터에서 셈틀을 켜며 ‘살피거나 찾는’ 눈길이랑 손길로 어떤 책을 살피거나 찾을 수 있을까요. 목록에 30만 권이나 50만 권이나 100만 권이 올랐다고 하는 인터넷책방에서 1만 권이나 10만 권쯤 목록을 죽 훑을 수 있나요. 다문 1000권이라도 훑고 나서 책을 사는가요.


  몸을 움직이고 다리품을 팔아 책방으로 나들이를 가면, 그야말로 수많은 책을 손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살피거나 찾을 수 있어요. 목록만 뒤져서는 만날 수 없는 책을 골고루 만나면서 내 마음을 북돋아요. 목록으로 볼 때에는 알기 어렵던 책을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줄거리를 훑을 수 있어요.


  값을 치러 책을 삽니다. 책방에 서서 넋이 사로잡히도록 읽은 책을 삽니다. 안 읽은 책을 살 수 없습니다. 책방에 나들이를 가서 ‘읽은’ 책을 사고, 읽은 책을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금 읽으며, 집에 닿아 새롭게 읽습니다.


  한 번 읽고 덮은 뒤 다시는 안 들출 책이라면 살 까닭이 없습니다.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라야 살 까닭이 있습니다. 두고두고 읽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곱게 물려주고픈 마음이 드는 책이라야 살 만합니다. 나무를 베어 얻은 종이로 책을 짓는 까닭은 ‘더 많이 팔아치워 더 많이 돈을 벌자’는 뜻이 아니에요. 오래도록 알차게 건사해서 뒷사람한테 슬기롭게 물려주자는 뜻입니다.


.. 천천히 가면 얼마나 무수한 것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요 … 이름이 우리의 본질은 아니지만 이름을 통해 만나므로 내 이름도 당신 이름도 꽃잎보다 눈부십니다. 이름을 불러 관계하니, 이름은 곧 마음입니다 ..  (93, 171쪽)


  이야기책 《百年魚》를 읽습니다. 백 가지 나무물고기는 저마다 어떤 빛과 꿈과 사랑을 담았는가 곰곰이 생각합니다. 물고기 모양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품에 안았는가 생각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맑은 숨을 들이마시며 목숨을 잇는 나는 날마다 어떤 생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요. 나는 나한테 어떤 이름을 스스로 붙여 주었나요. 나도 내 어버이처럼 어버이가 된 뒤,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 주었나요.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어떤 어버이가 되어 어떤 아이들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 줄 만할까요.


.. 나는 손님이 아니라 주인인 것을 ..  (213쪽)


  누구나 하늘이요 누구나 땅입니다. 누구나 바다요 누구나 냇물입니다. 누구나 꽃이며 누구나 숲입니다.


  마음을 열면 스스로 하늘이 되고 숲이 됩니다. 마음을 펼치면 누구나 서로를 넉넉히 끌어안는 바다가 되고 냇물이 됩니다. 시원한 바람이 됩니다. 해맑은 잎사귀가 됩니다. 어여쁜 노래 들려주는 풀벌레와 멧새가 됩니다.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슬기로운 마음을 아리따운 생각으로 돌보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두 다리로 이 땅을 씩씩하게 밟을 수 있기를 빌어요. 두 손으로 이웃과 동무하고 살가이 어깨를 겯고 걸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1.10.흙.ㅎㄲㅅㄱ)

 


― 百年魚 (김수우 글,윤석정 깎음,심지 펴냄,2009.3.31./11000원)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혜련의 미래일기 - 쓰는 순간 인생이 바뀌는
조혜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내 오늘’을 사랑해요
 [책읽기 삶읽기 120] 조혜련, 《조혜련의 미래일기》(위즈덤하우스,2009)

 


  2009년 10월 1일에 1쇄를 찍은 《조혜련의 미래일기》(위즈덤하우스,2009)를 읽습니다. 내가 산 책은 2011년 10월 14일에 찍은 20쇄입니다. 이태 사이에 20쇄를 찍을 만큼 널리 사랑받은 책이기는 한데, 조혜련 님은 이 책 첫머리에 나오듯 ‘옆지기하고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지’는 못하고 맙니다. 2012년 봄부터 가을까지 무척 고단한 나날을 보내셨어요.


  조혜련 님은 2012년 봄에 겪은 일을 ‘그린’ 적 있을까요. 마음앓이를 하고 툭탁거리는 어느 한때에, ‘더는 옆지기하고 함께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요.


.. 상상력에 한계를 긋고 현실을 고려하다 보니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조금도 신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지금 이 프로젝트가 끝이 아니고 이 결혼도 골인점이 아니며 자식이 명문대학을 들어간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끝은 아니다. 매 순간이 시작이고 출발이다 ..  (7, 25쪽)


  ‘미래일기’란 늘 씁니다. 즐겁게 떠올릴 앞날도 언제나 쓰지만, 고단하게 숨죽일 앞날도 언제나 써요. 나도 모르는 사이 터져나오는 한숨이 바로 ‘미래일기’가 됩니다. 이런 걱정 저런 근심이 곧바로 ‘미래일기’가 됩니다. 옆지기하고 툭탁거린다든지,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 보는 채 바깥일로 바삐 돌아다니는 삶이 고스란히 ‘미래일기’가 돼요.


.. 돈보다 명예보다 인기보다, 나에게 자극을 받아 다시 멋지게 일어서는 한 사람의 팬을 위해 달리는 거야 …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다른 어떤 공부보다도 자연을 느끼고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  (57, 128쪽)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내 모습이 늘 달라집니다. 웃자고 생각하며 빙그레 웃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스스로 하루를 밝힙니다. 하루를 밝히면서 시나브로 삶을 빛냅니다.


  어떤 무대에 서서 이름값을 날려야 ‘삶 빛내기’가 아닙니다. 삶을 빛내는 일이란, 내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맛난 밥을 알뜰히 차려 즐기는 일입니다. 전기밥솥한테 맡기는 밥이 아니라, 내 손으로 짓는 밥이 ‘삶 빛내기’입니다. 값진 요리를 전화 걸어 시켜서 먹기에 ‘삶 빛내기’가 아니에요. 달걀 한 알을 손수 부치고, 두부 한 모를 손수 끓여서 밥이랑 맛나게 먹을 때에 ‘삶 빛내기’가 돼요.


  오프라윈프리쇼에 나가야 꿈을 이루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으면 꿈을 이룹니다.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일은 ‘말 그대로’ ‘한국과 일본 넘나들기’예요. 가시밭길 헤치며 이루는 꿈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넘나들며 연예인으로 일해서 돈을 벌기’일 뿐이에요.


  돈을 번다거나 연예인으로 일하는 삶이 좋고 나쁘다고 금을 그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즐거울 수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즐겁습니다. 스스로 즐거울 수 없다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안 즐겁습니다.


  미래일기란 언제나 ‘오늘일기’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삶을 바로볼 수 있을 때에, 내 어제를 바로보고 내 앞날을 바로볼 수 있어요. 오늘 이 자리 내 삶을 바로보지 못한다면 ‘오늘일기’도 ‘어제일기’도 ‘앞날일기’도 쓸 수 없어요.


  밝게 뜨는 ‘오늘 햇살’을 실컷 누리셔요. 시원스레 불다가 스산하게 불기도 하는 ‘오늘 가을바람’을 마음껏 누리셔요. 누렇게 물들어 떨어지는 ‘오늘 가을잎’을 아낌없이 누리셔요.


  오늘 하루 내 삶을 누리면, 천천히 사랑이 가슴속 깊은 데에서 샘솟습니다. 사랑이 찬찬히 샘솟으면서 내 앞날이 환하게 열립니다. 내 어제 또한 환하게 걸어온 숲길이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 각종 고정관념과 편견에 갇혀서 안 보였을 뿐이지, 우리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 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스스로를 믿는 한 원하는 어떤 모습으로도 될 수 있다고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 나는 앞으로도 계속 상상할 것이다. 폭력이나 제압으로 인한 통일이 아닌 비폭력 평화 통일이 되는 아름다운 온전한 대한민국의 그날을 ..  (144, 195쪽)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려요. 오늘 하루 하고 싶던 일과 놀이를 신나게 누려요. 오늘 하루 활짝 웃고 펑펑 뛰며 훨훨 날면서 살아요. 흙땅을 맨발로 밟아요. 흙기운이 내 몸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떠올려요. 흙 한 줌이 나무를 살리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구나 하고 깨달아 봐요. 빗방울이 풀잎을 푸르게 돌보고, 바람 한 줌이 내 숨결로 스며들어 목숨을 살찌우는 줄 느껴 봐요.


  조혜련 님이 쓴 《조혜련의 미래일기》는 참으로 예쁜 책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어제와 오늘과 모레를 사랑스레 돌보고픈 꿈을 즐겁게 잘 적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말예요, 정작 조혜련 님 스스로 ‘즐기고픈 사랑’은 거의 한 줄로도 못 적었지 싶어요. 조혜련 님 스스로 나누거나 받거나 어깨동무하던 ‘고운 사랑’ 또한 거의 한 줄로도 못 나타냈지 싶어요.


  이제 다른 누구보다도 조혜련 님 스스로 《조혜련의 미래일기》를 새로 써야지 싶어요. 모든 것을 훌훌 내려놓고 첫마음이 무엇이었나 곱씹으면서 ‘오늘일기’를 쓰셔야지 싶어요. 된장국에 밥 말아 먹으며 기운을 차린 다음 기지개 우두둑 켜고는 다시금 연필을 손에 쥐어 보시기를 빌어요. (4345.11.4.해.ㅎㄲㅅㄱ)

 


― 조혜련의 미래일기 (조혜련 글,위즈덤하우스 펴냄,2009.10.1./12000원)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지음 / 샘터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꿈꾸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책읽기 삶읽기 118] 김수미,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샘터,2009)

 


  시골집에 손님이 찾아옵니다. 여느 때에도 늘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에 차릴 밥을 이것저것 미리 손질해 놓지만, 손님이 찾아온 만큼 이모저모 더 마음을 써서 손질을 합니다. 집식구끼리 먹는 밥이라면 엊저녁 먹고 남은 찬밥이 있어도 아침에 그대로 먹지만, 손님이 온 만큼 아침밥은 달리 해야지 생각합니다. 어쨌든 따순 밥을 끓이고, 한편으로는 찬밥을 볶든지 지지든지 어떻게 끓이든지 할 생각입니다. 손님이 들고 온 먹을거리를 더 맛나게 먹자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함께 찾아온 아이들은 도시내기라 풀밥 먹기가 익숙하지 않은데, 우리 식구 먹는 대로 풀을 밥상에 차리자면 힘들는지 몰라요. 그러면 이 아이들이 풀을 맛나게 먹도록 이끄는 길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 나 자신 우울증과 빙의를 앓으면서 자살 직전까지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 후배들의 아픔에 누구보다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다. 개미는 바늘로만 찔러도 치명적이지만 코끼리에게는 그저 따끔할 뿐이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 보자. 절벽에서 떨어지면 코끼리는 치명적이지만 개미는 끄떡없지 않은가?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세상 모든 개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16쪽)


  동이 틉니다. 날이 밝습니다. 마을을 드나드는 멧새는 으레 우리 집 후박나무와 산초나무에 앉았다가 갑니다. 멧새와 들새는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집에도 빠짐없이 들르지 싶습니다. 새를 쫓는 집은 없고 새를 미워하는 집은 없어요. 새들은 감나무에 앉아 감을 쪼아먹기도 하고, 후박나무 열매를 먹기도 했고, 후박씨를 먹든 산초열매를 먹든, 저희 마음껏 이 나무 저 나무에 앉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은 곱게 뽑는 목소리로 나긋나긋 새벽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침에는 아침나절대로 아침노래를 듣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멧새와 들새가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을 이으며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다 다릅니다. 고운 결로 새삼스레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하루 흐름으로 보자면 동이 트며 온 고을이 환하게 빛날 무렵 새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먹이를 찾으며 비비배배 노래한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바라보자면, 새들이 이슬 내린 깃을 털고 힘차게 일어나서 비비배배 노래하기에 아침햇살이 새삼스레 우리한테 찾아온달 수 있습니다.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누구나 아직 동이 안 튼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열기에, 이러한 숨결과 손길을 받으며 아침햇볕이 즐거이 찾아온달 수도 있어요.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새벽에 조용히 생각에 젖습니다. 아직 새근새근 자며 고단한 몸을 쉬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아이들과 손님 아이들은 모두 저희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고 자랍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는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나는 내 어버이가 베푸는 사랑을 받아먹고 자랐습니다. 나 혼자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지 않았어요. 내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어 내 자그마한 사랑이 내 어버이한테 새롭게 기운이 되기도 했을 테지만, 내 어버이가 나누어 주는 사랑이 있기에 내 작은 몸뚱이는 천천히 자랐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큽니다. 이동안 아이들 나름대로 가슴속에서 사랑씨앗 살며시 심으며 저희 어버이한테 조그맣게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서로 주고받기에 사랑이요, 서로 나누기에 사랑입니다. 서로 즐겁게 웃는 사랑이고, 서로 기쁘게 북돋우는 사랑입니다.


.. 엄니는 매일 마당에서 꽃에 물을 주시면서 혼자서 구시렁구시렁 이야기를 하곤 하셨는데 내가 엄니를 꼭 닮았다. 집 안만이 아니었다. 끝이 안 보이는 깨밭에는 작은 주머니만 한 연보라색 깨꽃이 주렁주렁 열리고, 원두막 위에는 하얀 박꽃이 춤을 추고, 밭고랑 사이사이 노오란 호박꽃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밭에 올라가면 보리밭 사이에 몰래 심었다는 시뻘건 양귀비꽃도 보였다 ..  (65쪽)


  밥을 예쁘게 차려서 즐거이 먹은 다음 무얼 할까 헤아립니다. 마을 고샅을 살짝 걷다가 바다에 함께 갈까 싶습니다. 바다는 여름철에 물에 첨벙 뛰어들어도 재미나지만, 가을이나 겨울에 차디찬 바닷물에 살며시 손을 담그다가 모래밭에서 달리고 주저앉아 바람을 듬뿍 쐬어도 재미납니다.


  말없이 바라보아도 좋은 바닷바람입니다. 가만히 맞아들여도 기쁜 바닷햇살입니다. 들에서는 들바람과 들햇살을 누립니다. 멧골에 오르면 멧바람과 멧햇살 누립니다.


  이야기가 찾아옵니다. 한 올 두 올 이야기 실타래가 바람에 실려 나한테 찾아옵니다. 석 올 넉 올 이야기 꾸러미가 햇살 따라 아이들한테 찾아듭니다. 풀과 나무는 모두 바람과 햇살과 빗물과 눈송이를 받아먹고 자랍니다. 어른인 나도, 우리 아이들도, 손님 아이들도, 누구나 바람과 햇살과 빗물과 눈송이가 있기에 다부지게 하루를 열 수 있습니다.


  꼭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종이상자 하나가 놀잇감이 됩니다. 반드시 무얼 사야 하지 않습니다. 풀잎 하나 뜯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꼭 어딘가 가야 하지 않습니다. 내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숲이 되어 집식구 사랑을 보듬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꿈을 꾸어요. 내 모습을 꿈꾸고 내 얼굴을 꿈꾸어요. 따스하고 너그러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로 하루를 빛낼 수 있는 내 삶을 꿈꾸어요.


.. 나는 주로 여성들 위주로 모인 강연에서, 나의 행동이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가 그것이 메아리처럼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이야기한다 ..  (239쪽)


  김수미 님 이야기책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샘터,2009)를 읽습니다. 김수미 님이 내놓는 이야기책은 한결같습니다. 늘 당신 살아온 이야기를 담습니다. 언제나 당신 하루를 글로 적바림합니다. 굳이 소설을 쓸 까닭이 없어요. 누구라도 스스로 이녁 삶을 적바림하면 글이고 소설이고 문학이고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아요. 내 삶을 찬찬히 살피면서 적바림할 때에도 이야기를 쓸 수 있어요.


  누가 나를 사랑해 주어야 내가 예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지 않습니다. 아니, 꼭 입으로 말하거나 글로 적어야 사랑이 되지 않아요. “널 사랑해.” 하고 말할 적에 사랑이지 않아요. 삶을 함께 누리면 돼요. 함께 누리는 삶이 사랑이에요. 함께 나누는 밥그릇 하나가 사랑이에요. 김치 한 접시가 사랑이에요. 국 한 모금이 사랑이에요. 늘 마시는 바람 한 줄기가 사랑이에요. 나한테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한 그루가 사랑이에요. 구름 한 자락이 사랑이에요. 아침저녁으로 드리우는 노을이 사랑이에요. 풀벌레 한 마리 노랫가락이 사랑이에요. 빗물 한 방울이 사랑이에요.


  김수미 님은 꿈을 꿉니다. 꿈을 꾸기에 글을 씁니다. 김수미 님은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하기에 김수님은 이녁 삶을 가장 꽃피울 만하다고 여긴 ‘연기’를 하면서 이녁 이웃과 동무한테 고운 사랑을 방긋방긋 웃음꽃으로 나누어 줍니다. (4345.10.29.달.ㅎㄲㅅㄱ)

 


―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글,샘터 펴냄,2009.6.15./12000원)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