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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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5

 


어디를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이종묵·안대희 글,이한구 사진
 북스코프 펴냄,2011.8.26./18000원

 


  작가가 글을 쓰는 곳은 작가 스스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가난한 이웃들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면, 가난한 이웃들 살아가는 동네에서 똑같이 가난하게 하루하루 살림을 꾸립니다. 삶에서 저절로 글이 태어납니다.


  연예인 이야기를 쓰고 싶으면, 연예인과 같이 지내거나 연예인처럼 살아야겠지요. 운동선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운동선수와 같이 운동하거나 운동선수 곁을 늘 맴돌아야겠지요.


  공장 노동자 이야기를 쓰려 한다면, 공장에서 일해야 합니다. 시골 할매 할배 이야기를 쓸 생각이면, 시골에서 할매 할배하고 어울려 흙을 만져야 합니다. 아이들 눈높이를 헤아리는 이야기를 쓸 마음이라면, 아이를 낳아 돌보거나 아이들 둘레에서 아이들 생각하는 결을 언제나 살피면서, 즐겁게 함께 놀고 어깨동무해야 합니다.


.. 바쁜 일상에 휘둘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여유도 얻지 못하다가 유배를 와서야 산수를 즐기는 호사를 누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 … 절망의 나락에 있는 이들을 위안한 것은 자연과 문학이었다 ..  (6쪽)


  독자가 글을 읽는 곳은 독자 스스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글이나 이야기로만 가난한 이웃들 삶을 만난다면, 독자 가슴에는 아무것도 샘솟지 않습니다. 글이나 이야기에 담긴 이웃들 삶을 내 삶과 같이 느끼는 곳에서 마주해야, 비로소 책읽기가 이루어집니다.


  글을 쓰는 사람뿐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도 같은 곳에 있어야 해요.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삶일 때에는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글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가 아니라면, 짧은 글로든 두꺼운 책으로든, 어느 하나 가슴으로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신문글이건 문학글이건, 독자 스스로 삶이 하나될 때에 제대로 알아듣습니다. 서로 하나되는 삶이 아니라면, 짤막한 편지조차 무슨 뜻인지 읽어내지 못해요.


  사진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겉보기로 멋들어지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을 본대서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입으로는 ‘아름답구나’ 하고 말한다지만, 참말 아름다움을 느껴서 아름답구나 하고 말한다고는 여길 수 없어요. 삶이 있을 때에 사진을 찍고, 삶이 있기에 비로소 사진을 읽습니다. 삶을 일구기에 사진을 찍으며, 삶이 있는 만큼 차근차근 사진을 읽어요.


.. 바다도 아름답고 백사장도 물론 아름답지만 나로도는 나무가 가장 아름답다. 우리 나라에서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해도 과하지 않으리라 … 마음의 평화를 얻은 최익현은 흑산도로 들어가 몇 달씩 머물다 돌아왔다. 흑산도에서는 천촌리에 일신당이라는 현판을 단 서당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쳐 생계의 수단 겸 삶의 위안으로 삼았다 ..  (97, 240쪽)


  공무원이란, 심부름꾼입니다. 공무원이란, 행정을 맡는 일꾼이 아닌 심부름꾼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 공무원은 동사무소나 면사무소나 이런저런 공공기관 이름 붙은 건물에 깃든 채 서류를 만지작거립니다. 공무원 스스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 살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이리하여 ‘민생’하고 동떨어진 정책과 개발이 자꾸 이루어집니다. 공무원 스스로 가난한 골목동네 주민으로 지내지 않으니, 골목동네 재개발을 언제나 ‘막개발’ 되도록 아무렇게나 꾸리고, 사람들이 쓰는 민원서류 양식이 까다롭지요.


  정치를 한다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이와 같아요. 정치꾼들은 언제나 입술에 ‘민생’이라는 낱말을 달고 지내지만, 정치꾼 스스로 ‘여느 사람들 삶’을 누리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만원버스나 지옥철을 타는 정치꾼이 없습니다. 오토바이 싱싱 달리고 자동차 멋대로 선 고단한 거님길 아슬아슬하게 걸어다니면서 일터를 오가는 정치꾼이 없습니다. 자가용 아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정치꾼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요. 그런데, 정치꾼만 이렇게 살지 않아요. 초·중·고등학교 교사도 으레 자가용 출퇴근을 합니다. 대학교수도 흔히 자가용 출퇴근을 해요.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나 두 다리로 일터를 오가는 교사와 교수가 나날이 줄어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나란히 천천히 걸어서 하루를 열고 삶을 생각하는 교사와 교수는 몇 사람쯤 있을까요.


  더 생각하면,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 이 밥이 되기까지 흙을 일구고 돌보며 아낀 흙일꾼 삶이나 넋이나 꿈을 돌아보는 도시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판사나 의사는 시골 흙일꾼을 얼마나 생각할까요. 버스나 택시 일꾼은 시골 할매와 할배를 얼마나 생각할까요. 이 나라 아이들은 시골 논밭이랑 숲이랑 멧골이랑 바다를 얼마나 생각하며 하루를 보낼까요. 이 나라 아버지들은 이 나라 어머니들 삶을 얼마나 이녁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읽으려고 할까요.


.. 조관빈은 나로도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유배객을 돌봐 주는 이가 없어서 밥을 거르기 일쑤였다. 명문가의 후손으로 서른이 넘도록 밥을 굶은 적이 없다가 늘 배에서 우레처럼 요란한 꼬르륵꼬르륵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였다. 주린 배를 안고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시를 쓰고 꽃을 가꾸는 일뿐이었다 ..  (106쪽)


  이종묵·안대희 님 글과 이한구 님 사진이 어우러진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북스코프,2011)를 읽습니다. 지난날 서울에서 관리나 학자로 지내다가 임금님한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전라남도나 경상남도 외딴 섬마을로 가야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오늘날에도 고흥이나 강진이나 해남이나 통영이나 거제는 서울하고 참 멀다 할 만하지요. 고속도로 많고 자가용 넘치지만,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은 서울과 같은 큰도시하고 많이 멉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한창 이름을 드날리거나 어떤 권력을 누리던 이들로서, 다시는 서울로 돌아오기 힘들다 느끼며 섬마을에서 지내야 한다 했을 때에, 참 외롭고 슬프며 힘들다 여겼겠지요.


  그런데, 사람은 서울에서도 살고 시골에서도 살아요.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밥을 먹고 옷을 입어요. 서울사람이라면, 또 서울에서 지내는 관리나 학자나 임금 같은 사람이라면, 아마 흙을 안 만지고 물도 안 만지겠지요. 남이 해 주는 밥을 먹고, 남이 실을 짜고 베틀을 밟아 천을 엮어 바느질로 깁은 옷을 얻어서 입겠지요. 어느 임금이나 학자도 이녁 옷을 스스로 지어서 입지 않아요. 어느 임금이나 관리도 이녁 집을 스스로 지어서 살지 않아요.


  다시 말하자면, 관리나 학자는 서울에서 이럭저럭 자리 하나 얻어 관직을 누리거나 학문하는 글을 쓴다 할 적에는 ‘밥도 옷도 집도’ 굳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간다 하겠습니다. 서울에서 모든 자리 빼앗기거나 잃어 깊디깊은 두멧시골로 떠나야 한다면, 이때부터 ‘밥이랑 옷이랑 집이랑’ 모조리 스스로 건사하면서 살아야 해요.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건사할 적에는 보금자리와 마을과 삶터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제부터 시나브로 풀을 느끼고 꽃을 알아채며 나무를 깨닫습니다. 서울에서 지낼 적에는 눈여겨볼 수 없던 풀과 꽃과 나무가, 시골에서 지내면서 하나씩 둘씩 마음 깊이 스며들어요. 사람이 살아가며 누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어떻게 이루는가 생각합니다. 사람다운 푸른 숨결이 어떠한가 생각합니다.


  어디를 바라보는 삶인가요. 무엇을 생각하는 사랑인가요. 서울에 계신 분들한테 전남 고흥이나 경남 통영은 ‘두멧시골’ 또는 ‘외딴섬’입니다. 거꾸로, 전남 고흥이나 경남 통영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서울은 ‘풀도 꽃도 나무도 마주하지 못하고, 숲이나 바다나 멧골 모두 누리기 어려운’ 어딘가 얄궂거나 뒤틀린 곳입니다. 숲이 없는데 어인 사람이 이토록 많은 서울일까요. 바다가 없는데 어인 자동차는 이토록 넘치는 서울일까요. 멧골이 없는데 어인 아파트와 건물이 이토록 춤추는 서울일까요.


  어떤 옛사람이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낸다’ 하고 말했지만, 사람은 나면 시골로 보내어 시골숨 마시는 착한 넋 되도록 할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서울도 이제는 숲이 늘고 찻길 줄면서, 수돗물 아닌 시냇물 흐르고 자동차 배기가스 아닌 맑은 구름이 흐르는 시골자락 기운이 깃들어야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이럴 때에, 서울에서 살며 문학을 하는 이들이 살가운 문학 이루겠지요. 이럴 때에, 서울에서 정치를 하거나 행정을 맡는다는 이들이 살가운 이웃사랑 나누겠지요. 4346.6.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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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의 집
김남주 지음 / 그책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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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읽기 삶읽기 134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
― 김남주의 집
 김남주 글
 그책 펴냄,2010.10.20./15000원

 


  일찍 잠든 아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어제는 저녁 일곱 시 즈음 아이들 눕히고 함께 잠들었습니다. 어제 하루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서 바지런히 놀며 많이 힘들어 하는구나 싶어, 다 함께 일찍 불 끄고 일찍 잤어요. 이듬날, 큰아이는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을 번쩍 뜹니다.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듯합니다. 곁에 누운 아버지가 잠에서 깼는지 안 깼는지도 모르면서 문득 “아버지, 비 와요?” 하고 묻습니다. “그래, 비 온다.” 빗물에 젖으면 안 될 것이 마당에 있는지 헤아립니다. 엊저녁 잠자리 들기 앞서 다 치우기는 했지만, 마당에 내려와서 둘러보고, 집 뒤꼍을 돌아봅니다. 이럭저럭 괜찮구나 싶어 방으로 들어옵니다.


  작은아이가 언제 일어날까 싶지만, 오늘도 두 아이는 하루를 일찌감치 여는 만큼, 오늘 저녁에도 하루를 일찍 닫아야겠지요. 그러니까,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요.


.. 가정을 가꾸고 한 인격체를 성장시키기 위해 엄마들이 하는 모든 일을 ‘종합예술’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 나 역시 하루 종일 집에서 육아에 시달린 날에는 남편을 만나면 투정부터 늘어놓게 된다. 사실 아이들과 씨름하는 얘기를 남편 아니면 ..  (11, 44쪽)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 새롭게 놉니다. 아이들은 나날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배웁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은 어른대로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배워요.


  아이들만 날마다 새롭게 배우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날마다 새롭게 배웁니다.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골라서 써야 하는가를 새롭게 배우고, 아이들과 누릴 밥과 보금자리와 옷을 어떻게 건사할 때에 아름다운가를 새롭게 배웁니다.


  배우지 않는다면 아이도 어른도 아니라고 느낍니다. 언제나 배우기에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숫자와 글자를 배우고, 어른들은 숫자와 글자를 어떻게 가르칠 때에 서로 즐거운가를 배웁니다.


  책을 좋아하는 어른이라면, 아이와 함께 어떤 책을 즐길 때에 참으로 좋은가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아이를 돌보느라 온 하루 보내면서, 아이 없던 때에 즐기던 책을 똑같이 즐길 수 없다고 배우는 한편, 아이하고 보내는 하루를 쪼개어 읽을 만한 책이란 어떤 책일 때에 가슴 깊이 새록새록 스며드는가 하고 배웁니다. 또한, 아이 없던 때에 읽은 책을 아이와 살아가며 다시 읽으면, 지난날에는 느끼거나 알아채지 못한 다른 대목을 숱하게 짚고 헤아립니다.


.. 내가 독립하면서 처음으로 얻은 집은 반지하 원룸이었다. 유독 습했던 그 집에서 살며 지하의 습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난생 처음 알게 됐다 …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책을 볼 수 있도록, 거실 한가운데에 뜬금없이 아동서적이 빼곡한 책장 하나를 들여놓았다 … 늘 바쁜 아빠, 엄마 때문에 라희와 찬희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집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  (50, 60, 86쪽)


  빗소리를 듣습니다. 빗물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뿌리기도 합니다. 비와 함께 바람이 찾아들어 나뭇가지를 흔들고 나뭇잎을 간질입니다. 이 비와 바람에 떨어지는 오월 꽃잎 있을 테고, 이 비와 바람을 먹으며 무럭무럭 익을 열매 있을 테지요.


  문득 한 가지 떠올라 여섯 살 큰아이를 부릅니다. 혼자서 씩씩하게 놀던 큰아이가 공책을 가지고 옵니다. “자, 연필도 가져오렴.” 큰아이가 연필 두 자루 찾아옵니다. 공책을 펼쳐 빈 자리 찾습니다. 깍두기 여섯 칸 공책에 ‘빗소리 노란꽃’ 여섯 글자를 적으며 읽습니다. 큰아이는 엎드려서 여섯 글자를 하나하나 읽으며 베낍니다. ‘붉고 달콤 딸기’ 여섯 글자를 적으며 읽습니다. 오늘은 비가 올 듯해서 어제 하루 우리 딸기밭에 가서 들딸기를 꽤 많이 땄습니다. 오늘 먹을 몫까지 신나게 땄어요.


  스스로 글을 쓰기 어려운 큰아이는 아버지가 천천히 반듯하게 적는 글을 눈여겨보며 하나하나 베낍니다. 이번에는 ‘알록달록 치마’ 여섯 글자를 씁니다. 큰아이는 치마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 너 치마 좋아하니, ‘치마’라는 글을 혼자서 쓸 줄 알아야 하고, 어디에 ‘치마’라 적힌 글 있으면 스스로 읽을 줄 알아야 해. 다른 낱말보다 ‘치마’는 여러 번 다시 써 봐.


  좋아하는 일은 일이라고 느끼지 않으면서 즐길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놀이를 하듯 일을 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늘 같아요. 좋아하는 삶을 누릴 때에 활짝 웃습니다. 좋아하는 길을 걸을 때에 홀가분한 몸과 마음 됩니다. 좋아하는 하루라 느끼며 즐겁게 놀거나 일할 때에, 삶이 빛나고 사랑이 샘솟아요.


.. 내가 살아오면서 읽었던 책보다 임신과 출산, 육아 기간 동안 읽었던 책이 훨씬 많을 것이다 … “라희야, 고마워. 너는 엄마의 보석 같은 존재야.” … 아이들이 조금씩 커 가면서 나는 매일 ‘오늘은 어디에 갈까?’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백화점과 미용실이 고작이었지만 점점 미술관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고, 조만간 박물관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  (101, 114, 126쪽)


  배우 김남주 님이 쓴 《김남주의 집》(그책,2010)을 읽습니다. 이 책은 김남주 님이 꾸미기 좋아하는 집과 살림과 옷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배우 김남주라는 이름값만으로는 나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배우 김남주이면서 ‘어머니 김남주’가 되었기에 나올 수 있습니다. 책에서 2/5쯤은 배우 김남주로서 좋아하는 집과 살림과 옷 이야기를 다루지만, 3/5쯤은 ‘어머니 김남주’로서 아이들과 보낸 삶을 돌아본 이야기를 다룹니다.


  나는 집치레나 옷치레를 그닥 즐기지 않기에 《김남주의 집》이라는 책에서 2/5는 눈에 안 들어옵니다. 나는 두 아이와 날마다 복닥복닥 얼크러지며 살아가기에 이 책에서 3/5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다른 배우들도 이렇게 이녁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적바림해서 책으로 낸다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여자 배우뿐 아니라 남자 배우도 이녁 아이들과 누리는 삶을 글로 찬찬히 적바림하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배우이건 아니건, 이름값 날리지 않는 여느 사람들도 이녁 아이들과 알콩달콩 빛내는 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즐겁게 적바림하면 좋겠구나 싶어요.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는 집집마다 다릅니다. 아이가 모두 다르고, 어버이가 모두 다르거든요.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는 집집마다 재미납니다. 아이도 어버이도 서로서로 날마다 새로운 삶 누리면서 새로운 웃음과 새로운 빛을 누려요. 사랑이란 바로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태어나고, 꿈이란 바로 조그마한 삶터에서 샘솟습니다. 김남주 님이 집치레를 하고 옷치레를 할 수 있는 까닭은, 이녁이 어린 나날부터 사랑스레 살아온 보금자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김남주 님 아이들도 김남주 님을 좋은 어버이로 여기며 하루하루 삶을 새롭게 배우는 나날 이으면, 앞으로 씩씩하고 푸른 마음 아끼는 예쁜 숨결 되겠지요. 4346.5.2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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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 삶이 길이 되고 꿈이 땀이 된 고졸 청년들의 이유 있는 선택
박영희 지음 / 살림Friends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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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3

 


모든 사람 도시로 보내는 대학교
―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박영희 글
 살림출판사 펴냄,2012.11.16./12000원

 


  더없이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대학에 간대서 대수롭지 않고, 대학에 안 간대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다녀야 똑똑하지 않으며, 대학교를 안 다녔으니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사람은 됨됨이로 따집니다. 됨됨이가 착한가 참다운가 고운가를 따집니다. 겉모습이나 얼굴이나 몸매가 어떠한가를 놓고 사람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껍데기로 사람을 재거나 따지는 흐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깎아내리려 하고, 저마다 스스로 높이려 합니다. 이웃이 어느 대목에서 아름다운가 하고 살피려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이렇게 더 예쁘고 저렇게 더 멋지다고 뽐내려 합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는 누구도 거울 볼 까닭 없어요. 우리는 누구도 머리 생김새나 모양을 예쁘게 보이려고 애쓸 까닭 없어요. 치마가 더 짧아야 하거나 길어야 하지 않아요. 양복을 입어야 하거나 벗어야 하지 않아요. 상표 드러나는 옷을 입거나 벗어야 하지 않아요. 자가용을 타거나 버려야 하지 않아요.


  거울을 볼수록 ‘성형미인 사회’가 됩니다. 옷차림에 마음을 쓸수록 ‘나와 네가 이루는 사회를 겉치레 수렁’으로 내몹니다. 혼인신고서 있어야 부부이지 않아요. 출생신고서 있어야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요. 졸업증명서 있으니까 학문을 잘 한다거나 머리에 든 지식 많지 않아요. 자격증 있으니 어떤 일 잘 하지 않아요.


  면허가 생기고 자격이 나타나면서 계급이 생기고 신분이 나타나요. 어떤 면허가 있어야 머리를 깎을 수 있거나 자동차를 몰 수 있도록 하니까, 계급이 생깁니다. 어떤 자격이 있어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거나 호봉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하니까, 신분이 나타납니다. 졸업장 사회란 면허증 사회요, 자격증 사회입니다. 학벌 사회란 계급 사회요, 신분 사회입니다.


.. 왜 대한민국 학생들은 재학 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자살로 그 답안지를 내는 걸까? 이 문제에 어른들은 아무런 지은 죄도 없는 것일까 …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 진학이 의무교육처럼 되어 버린 걸까. 고등학교 졸업만으로는 정말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것일까 ..  (6∼7쪽)


  우리 사회 어른들은 아이들을 대학교로 보내려 애씁니다. 우리 사회 어른들 가운데 아이들을 대학교로 안 보내려 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대학교에 앞서, 제도권학교에 안 보내려 하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몫 스스로 맡으려 하는 어른은 훨씬 적습니다. 우리 사회 어른들은 저마다 일자리 지켜야 한다 말하면서, 아이 가르치는 몫을 학교한테 떠넘깁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제 앞날 만들도록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스스로 꿈을 품지 못해요.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학교는 꿈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곳 아니에요. 학교는 직업 가르치거나 배우는 곳이요, 그나마 직업훈련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배우는 곳도 아니라, 어떤 직장에서 입사시험 치를 때에 내놓을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내주는 곳이 학교입니다.


  대학교 보내려 하는 고등학교입니다. 고등학교 보내려 하는 중학교입니다. 중학교 보내려 하는 초등학교예요. 초등학교 보내려 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지요. 그러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부터 아이들이 다닐 까닭 없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저희 나이에 맞게 삶을 배우거나 놀이를 즐기지 못해요. 오직 초등학교 들어가기 앞서 ‘머리에 쌓을 지식’ 주워섬기는 데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입니다.


  초등학교도 이와 같아요. 중학교에 보낼 아이들한테 더 많은 지식을 주워섬기도록 하는 데가 초등학교예요. 나이에 맞게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답게 살아가고 꿈꾸며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는 초등학교가 아니지요. 온갖 시험과 체험학습과 영어교육에 푹 빠진 초등학교입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아예 대학바라기만 하도록 내몰아요. 다른 것은 하나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한테 참사랑 가르치는 학교 있나요. 중학생과 고등학생한테 ‘독립된 생활 스스로 일구도’록, 그러니까 밥하기와 빨래하기와 청소하기에다가 아이돌보기와 살림하기를 골고루 가르치는 데 있나요?


.. 혜영 씨가 공부에 기겁을 한 것은 오빠를 지켜보면서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오빠의 귀가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저렇게까지 공부를 해서 대체 뭘 하자는 건지. 열다섯 살 소녀의 눈에는 그것이 ‘미친 짓’처럼 보였다 … “조선소에서 일할 때 대학을 갓 졸업한 관리자가 있었는데, 상대방 나이에 상관없이 아주 막 대했어요. 잘리고 싶지 않거든 똑바로 하라며 엄포를 놓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요. 정말 화가 나는 건 거의 일방적으로 현장 근무자들을 깔아뭉개고도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는 늘 이런 식이었어요. 아니꼽거든 공부해서 출세하라는.” ..  (17, 185쪽)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수록 바보가 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졸업장과 자격증을 한 가지라도 더 따면 딸수록 바보 굴레에서 허덕입니다.


  생각해 보면 쉬 알 수 있습니다. 집을 짓는 목수 가운데 대학교 나온 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학교에서는 집짓기 안 가르칠 뿐 아니라, 못 가르쳐요. 남대문도 동대문도 ‘학교 안 나온 목수’가 지었어요. 목수가 다룬 나무는 ‘학교 안 다닌 나무꾼’이 베었어요. 산림학이나 임학 배운 학자가 벤 나무가 아니에요. 숲 해설가나 숲 전문가가 고른 나무를 베어서 옛 건물이나 절집 짓지 않았어요.


  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무친 사람들 가운데 ‘학교 다닌 사람’ 아무도 없어요. 모내기를 하고 가을걷이 하는 흙일꾼 가운데 ‘학교 다니며 흙일 배운 사람’ 아무도 없어요. 고기잡이를 대학교 나와야 하지 않아요. 낚싯대를 대학교 나와야 만들지 않아요.


  호미질, 낫질, 삽질, 괭이질, 써레질, 갈퀴질, 키질, 절구질, 방아질 들을 대학교에서 어느 한 가지도 못 가르쳐요. 아니, 하다못해 바느질조차 대학교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가운데 어디에서 가르치나요. 뜨개질이라도 가르치는 학교가 있을까요.


  학교에서는 아이들 자장노래 한 가락 못 가르쳐요.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신나게 즐기는 놀이 한 가지 못 가르쳐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그림책 읽는 매무새’ 가르치지 못해요. 더군다나, 학교에서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올바르게 쓰는 몸가짐’ 못 가르쳐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라면 한 냄비 끓이는 법도 못 배우고, 두부 썰기나 무 썰기조차 못 배웁니다.


..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인문계 학생들이 실업계들 온다며 후다닥 자리를 뜨곤 했죠. 실업계가 무슨 벌레도 아니고, 기분이 좀 드럽긴 했습니다.” … “인간의 기억이 무섭긴 했어요. 다른 교사들은 결석을 해도 충고 몇 번에서 그쳤는데 유독 그 교사만 저를 눈물 나게 팼거든요. 그것도 주먹으로요. 차라리 매나 몽둥이로 맞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 교사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저를 조폭처럼 두들겨팼습니다.” ..  (28, 79쪽)


  박영희 님이 쓴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살림출판사,2012)를 읽습니다. 대학교 졸업장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을 읽습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아쉽다면 아쉽다 할 대목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거나 물 만지며 살아가는 ‘시골아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들 도시에서 일자리 찾아 도시에서 보금자리 마련하려는 ‘도시아이’만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을 도시에서 가르쳐 도시에 남도록’ 하는 학교만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아이들을 도시로 나가도록 가르쳐 시골을 떠나도록’ 하는 학교만 있습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 가운데 ‘굳이 도시에만 남지 말고 시골로도 가서 네 꿈을 펼치고 네 사랑을 나누어라’ 하고 가르치는 데는 거의 안 보여요. 시골에 있는 학교 가운데 ‘너희가 시골에서 태어난 보람을 기쁘게 누리며, 시골 빛내는 아름다운 젊은 일꾼 되어라’ 하고 가르치는 데는 거의 찾을 길 없어요.


.. “2학년 1학기는 담임에게 얻어맞은 기억이 전부일 정도로 너무 힘든 시간이었어요. 반 친구들 다 가는 수학여행 빠진다며 때리고, 시험 때면 성적 처졌다고 때리고.” … 유치원 교사를 파견하는 업체? 당장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아낸 동효 씨는 다음날 그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 역시 학력에서 손을 내저었다. “최종 학력이 고졸이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더군요.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어요.” ..  (174, 209쪽)


  모든 사람 도시로 보내는 대학교입니다. 대학교가 말썽거리가 된다면, 다른 어느 대목보다, 대학교는 사람을 온통 도시로만 보내기에 말썽거리라고 느낍니다.


  사람을 온통 도시로만 보내니, 도시에는 사람이 철철 넘치고 시골은 사람이 텅텅 빕니다. 사람이 철철 넘치는 도시가 되면, 사람들은 서로서로 ‘사람 값어치’를 못합니다. 회사나 공장에서는 사람을 알뜰히 여기지 않고 톱니바퀴로 여깁니다. 소모품이나 부속품처럼 여겨, 한 사람 그만두어도 얼마든지 새로 일할 사람 많다고 거들먹거립니다. 도시에서 회사 일꾼이나 공장 일꾼 된 이들은 어느새 톱니바퀴 되어서 ‘나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내 밥그릇’ 잃지 않으려고 단단히 붙잡습니다. 이러는 동안, 도시에서 일자리 찾은 나도 괴롭고, 도시에서 일자리 아직 못 찾은 남도 괴롭습니다. 모두 괴롭습니다.


  사람을 죄 도시로 보내도록 꾸리는 제도권 교육과 사회는 사람 스스로 사람을 바보로 바라보도록 내몹니다. 그러니까,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라는 책은 대학교에 안 간 젊은이 몇 사람 만난다고 해서 뾰족한 풀이법을 내놓지 못합니다. 그래, 대학교 안 가고도 씩씩하게 일자리 찾은 젊은이 몇 사람 있네, 하는 데에서 이야기 끝납니다. 이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면 좋을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면 아름다울는지, 어른과 아이 모두 어떤 꿈을 꾸며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같은 대목은 조금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시골에서 살아가자면 대학 졸업장 부질없습니다. 마늘밭에서 마늘을 뽑는데, 팔힘과 허리힘 있어야지, 졸업장은 아무것 아닙니다. 논에 모를 심고 피를 뽑을 때에 자격증 있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허리에 힘이 있고 팔에 힘이 있어야 모심기를 하지요.


  쌀을 일고 불려서 밥을 지을 때에 졸업장으로 밥짓지 않아요. 밥상 차리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 씻기고 입히는 데에 졸업장 있거나 말거나 아무것 아니에요. 오직 사랑 있어야 밥상 차리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 보살핍니다.


  도시에서 일자리 찾는 아이들한테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같은 책은 ‘졸업장 없는 채 얼마나 뼈빠지게 힘쓰며 애써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제도권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모질게 다루거나 들볶는가 하는 대목을 새삼스레 읽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꿈과 사랑이 아직 없습니다.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아름답게 살아갈 아이들은, 고등학교나 중학교 안 가도 아름답게 살아가요. 그러니까, 아름답게 살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밝힐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학교가 어떤 모습 되어 아이들을 어떻게 괴롭히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건드려야 옳아요.


  푸념과 한숨으로는 아무것 달라지지 않아요. 비아냥과 손가락질로는 제도권 톱니바퀴는 그저 단단하게 버틸 뿐입니다.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아갈 길을 말할 수 있기를 빌어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사랑스러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찾으면서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대학교 가지 않고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젊은이처럼, 대학교 다니고 마친 뒤에 아름답게 살아가는 젊은이 있어요. 우리는 이제 ‘대학교’는 그만 말해야지 싶어요. 우리가 말할 대목은 오직 하나, ‘아름다움’이에요.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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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졸업하다 -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에세이
김영희 지음 / 샘터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131

 


삶을 춤추는 길
― 엄마를 졸업하다
 김영희 글
 샘터 펴냄,2012.11.23./13000원

 


  1944년에 태어난 김영희 님이 어느덧 일흔 나이에 접어듭니다. 일흔 나이에 쓰는 글 《엄마를 졸업하다》(샘터,2012)에서는 어떤 삶과 꿈을 담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든 살에도, 또 아흔 살에도, 어머니이자 딸이자 홀로서기 씩씩하게 누리던 한 사람으로서 적바림하는 이야기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 되어 아름다운 밥 마련하면, 아름답게 밥을 먹고 아름답게 몸을 건사합니다. 스스로 사랑스러운 넋 되어 사랑스러운 옷 입으면, 사랑스레 일하고 사랑스레 삶을 짓습니다.


  마음을 품기에 따라 달라지는 삶입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바뀌는 하루입니다. 누군가는 지갑에 백만 원쯤 있어도 모자라다 여기고, 누군가는 지갑에 천 원조차 없으나 홀가분하다 여깁니다. 맨발로 춤을 추며 웃는 사람 있고, 퍽 비싼 신을 발에 꿰었지만 춤을 출 마음을 못 품는 사람 있습니다.


.. “엄마, 이 직업이 나한테 맞는 건지 후회가 돼. 매일 망하는 회사 사람들만 만나서 일하다 보니 우울해.” … 일단 부모 둥지를 떠난 새는 자신의 날개로 날아야 하는 법이니 늙은 어미 새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 TV프로그램 편성 일을 하며 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 자신도 어머니의 엄한 교육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누누이 이야기했으면서, 어느새 과거를 잊고 이제 겨우 나기 시작한 어린 싹 앞에서 냉혹한 칼바람을 일으켰다 ..  (26, 37, 45, 71쪽)


  삶을 춤추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그저, 눈을 살포시 감고 가볍게 발을 놀리면서 춤을 추면 됩니다. 춤이란 내 마음을 살리면서 내 몸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남 눈치를 보는 춤이란 춤이 아닙니다. 남 흉내를 내는 춤은 춤이 아닙니다. 마음이 움직이면서 저절로 싱긋빙긋 웃고 어깨 들썩일 때에 춤입니다. 마음이 날갯짓 하면서 시나브로 노래가 터저나오고 환하게 이야기꽃 터뜨릴 때에 춤입니다.


  그러니까, 다 함께 춤을 추어요. 다 함께 노래를 불러요. 다 함께 꽃내음 맡고, 다 함께 숲바람 마셔요.


  두리번거리지 말고 앞을 봐요. 옆이나 뒤를 쳐다보지 말고 하늘을 올려다봐요. 내 앞에 펼쳐진 너른 길을 바라봐요. 우리를 둘러싼 맑은 구름과 눈부신 하늘을 한껏 안아요.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를 듣고, 풀벌레와 개구리가 베푸는 노래를 들어요. 마음이 가장 따사로울 때가 언제인가 하고 돌아봐요. 사랑이 가장 넉넉할 때가 언제인가 하면서 되새겨요.


.. “엄마, 나는 꽃을 보면 신을 만나요.” 잔잔한 미소를 띤 그의 얼굴에 그림자 같은 여울이 인다 … 자신의 작은 세계를 넘어 또 다른 세계를 본 장수가 아름답다 …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니 현실에 코 박고 있는 내 모습에 잠시 울적해졌다. 하루하루를 탐험하듯 길 떠나는 아이들 … 그런데 소위 문화인이고, 경제적으로 기반이 탄탄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감동이 적다 ..  (52, 58, 82, 166쪽)


  김영희 님은 참말 ‘엄마 노릇 마치고’싶어 《엄마를 졸업하다》라는 산문책 하나 내놓습니다. 그래요. 즐겁고 좋습니다. 그러면, 엄마 노릇 마치면서, 이제는 어떤 삶길 걸어가면 즐거울까요. 엄마 노릇은 마치겠다 하는데, 참말 엄마 노릇을 마칠 수 있을까 궁금한데, 엄마 노릇 마치면 앞으로는 할머니 노릇이 될까요. 엄마도 할머니도 아닌 ‘한 사람’이 될까요. 아니면, ‘하느님’이 될까요. 하늘과 같은 하느님, 또는 숲과 같은 숲님, 또는 바다와 같은 바다님, 또는 새와 같은 새님, 또는 구름과 같은 구름님, 또는 비와 같은 비님, 또는 무엇이 되어 하루하루 살아가면 즐거울까요.


  가만히 꿈을 꾸어요. 차근차근 꿈을 빚어요. 어떤 하루 나한테 찾아오면 환하게 웃고 노래할 만한지 꿈을 헤아려요. 어떤 삶 스스로 짓고 펼치면 내 웃음꽃 곱게 피어날 만한지 꿈을 노래해요.


.. 나는 ‘학교는 배우는 곳이지 형벌 받는 곳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 초등학생 때 나는 몇 년 동안 정기적으로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아버지가 폐병 말기로 요양소에 계실 때였다. 오빠의 명령으로 시작한 위문편지였는데, 매주 글을 올리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싹터 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 편지를 쓰며 나 스스로 성장하는 것도 느꼈다 … 내 젊은 날은 책이 귀해서 더욱 애착이 갔던 시절이었다 ..  (73, 125, 238쪽)


  학교는 배우는 곳이지 ‘출석하는’ 곳도, ‘시험을 치러 점수를 따는’ 곳도, ‘시험을 치르며 동무들하고 다투는’ 곳도, ‘무료급식 받는’ 곳도, ‘졸업장 거머쥐는’ 곳도 아닙니다. 배울 수 있어야 학교입니다. 곧, 배울 수 있으며 가르칠 수 있고, 살아가고 사랑하는 꿈을 나눌 수 있을 때에 학교입니다.


  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아는 김영희 님은, 글쓰기(편지쓰기)도 무엇인지 잘 알겠지요. 책읽기도 무엇인지 또렷이 알겠지요. 아이란 어떤 숨결이고, 어른은 어떤 넋인지 슬기롭게 알겠지요. 일흔 나이에 새롭게 삶을 춤추는 길로 접어든 김영희 님 하루하루 맑게 빛나기를 빕니다. 4346.5.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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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0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김영희님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와 <뮌헨의 노란민들레>, <눈이 작은 아이들>을 읽던 시간들이 아주 오래 되었네요.
엄마를 졸업하다, 저도 읽어야겠어요.~
왠지 독일에서 눈이 파란 외국남자와 사는 일은 굉장히 무섭고 외로울 것 같아요..

숲노래 2013-05-20 10:4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아주 오래된 다른 책들이네요.
엄마 졸업하고
이제 어떤 길 걸어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어른의 학교
이윤기 지음, 북디자인 정병규, 정재규 그림 / 민음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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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2

 


글에 담는 삶
― 어른의 학교
 이윤기 글
 민음사 펴냄,1999.4.10./7000원

 


  이윤기 님이 1999년에 내놓은 산문책 《어른의 학교》(민음사)를 201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장만해서 읽습니다. 이 책은 1999년에 처음 나왔지만, 나는 2013년 오늘 처음 만나니, 나로서는 ‘2013년 새 이야기’로 이 책을 읽습니다.


.. 집에서는 머리띠라는 것을 하고 지냈습니다. 근 20년 전에 광화문 육교 위에서 2백 원을 주고 산 플라스틱 머리띠는 여느 머리띠와는 다른 반달꼴 얼레빗입니다. 나는 두 손으로 이 반달꼴 얼레빗의 끄트머리를 하나씩 잡고 머리를 빗어 뒤로 넘기고는 마지막으로 정수리에다 꽂아 둡니다. 이렇게 해야 머리카락이 제자리에 붙어 있습니다. 나는 가까운 나들이 때는 곧잘 이 머리띠를 꽂은 채로 나다니기도 합니다 ..  (11쪽)


  책 첫머리에 머리띠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윤기 님은 머리띠 이야기를 쓰기는 하지만, 이 글을 쓸 무렵에는 머리카락이 짧습니다. 머리띠 하고 다니기 번거롭다며 짧게 깎았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이 길면 번거롭다 싶을 때가 있겠지요. 그런데, 머리카락이 짧아도 번거롭다 싶을 때가 있어요. 머리카락은 날마다 자라니, 언젠가 다시 긴머리가 되어요. 머리카락이 짧아서 가볍다 하더라도 틈틈이 머리를 깎으러 다녀야 합니다. 머리카락에 제법 긴 겨를을 내주어야 합니다.


  머리카락이 길더라도 고무줄로 묶고 머리띠로 누르거나 머리끈으로 착 조이면, 머리카락이 더 자라건 말건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아니, 머리카락이 긴지 짧은지 생각하지 않아요. 내 마음은 다른 데로 뻗어요. 머리카락이 짧더라도 틈틈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질해야 하니, 자꾸자꾸 머리카락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내 둘레 사람들은 나더러 머리카락 길어서 번거롭지 않느냐 묻곤 합니다. 나는 빙그레 웃습니다. 내 둘레 사람한테 도로 여쭙니다. “머리카락 짧아서 번거롭지 않으셔요? 머리카락 자르려고 이발소 자꾸자꾸 가셔야 하잖아요?”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머리를 깎아 보았는지 안 떠오릅니다. 나는 길을 가며 이발소나 미장원이 있어도 따로 느끼는 일 없습니다. 나는 머리집 들어갈 일 없고 생각할 일 없습니다. 나는 길을 가면서 나무가 얼마나 있고, 나무가 얼마나 큰가를 살핍니다. 길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어떤 숨결이고, 잎사귀가 얼마나 푸른지 헤아립니다. 길가 나무는 나뭇가지 안 잘리는지, 나뭇가지 잘린 나무라면 이 나무가 얼마나 아플까 하고 생각합니다.


.. 농부가 흙을 걸우듯이 사람도 나날이, 자신을 걸웁니다. 사람은, 필경은 흙이 될 운명을 타고 나서 그런 것일까요 ..  (35쪽)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다닐 때에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몰거나 군내버스를 탑니다. 내 둘레 사람들은 나한테 묻습니다. 자가용 있으면 아이들 데리고 다니기에도 좋고, 먼 데까지 마실 다닐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는 또 빙그레 웃습니다. 그러고는 도로 여쭙니다. “자동차 있어서 오히려 멀리 못 가지 않나요? 자동차 때문에 정작 가고 싶은 데 못 가지 않나요?”


  자동차를 끌고 숲속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동차를 몰면서 숲바람 쐴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탄 몸으로 숲내음 맡거나 햇살내음 마시지 못합니다. 자동차를 몰 적에는 아이들 얼굴 바라볼 수 없습니다. 자동차 손잡이를 붙잡느라 아이들 손 잡을 겨를 없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사귈 마음 조금도 없습니다. 자동차하고 사귀면, 그때부터 아이들하고 놀지 못하고, 책이랑 놀지 못하며, 호미를 손에 쥘 수 없거든요. 나는 아이들하고 부대끼고 싶습니다. 나는 책을 만지고 싶습니다. 나는 흙숨을 쉬고 싶습니다.


.. 사전을 열면 말의 역사가 보입니다. 그런데도 번역가는 사전 안 펴고 어물쩍 넘어가고 싶다는 유혹과 하룻밤에도 수십 번씩 싸워야 합니다 ..  (115쪽)


  나는 종이로 된 사전을 즐겨 씁니다. 내 곁에는 종이로 된 사전이 천 가지 즈음 있습니다. 한국말로 된 사전이 있고, 외국말로 된 사전이 있습니다. 1940년대 것부터 2000년대 것까지 골고루 있습니다. 조그마한 것 있고 커다랗거나 여러 권짜리 있어요.


  종이로 된 사전을 넘기면서 온갖 말 만납니다. 찾으려고 하는 낱말만 보지 않아요. 찾으려고 하는 낱말 둘레에 있는 숱한 말 마주합니다.


  책방마실을 할 적에도 이와 같은 느낌이에요. 찾으려고 하는 책 하나만 찾거나 살피거나 장만하지 않아요. 책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다른 책을 만집니다. 책 하나를 둘러싼 이런 책 저런 책 들추거나 넘기면서 널따란 책누리를 즐깁니다.


  사람을 만날 적에도 그렇지요. 이런 이야기 한 마디만 나누려고 사람을 만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조곤조곤 나누고, 저런 생각도 살근살근 주고받습니다.


  숲으로 들어가서 숲바람 쐴 때에도 그래요. 편백나무숲에 가야 하거나 삼나무숲에 깃들어야 하지 않아요. 소나무도 좋고 동백나무나 굴참나무도 좋아요. 콩배나무나 멧벚나무도 좋지요. 잣나무나 오리나무도 좋아요. 온갖 나무를 만나고, 숱한 나무를 생각합니다. 나무마다 다른 삶결과 숨결을 마십니다.


.. 받들어 모시는 대찰 주지 스님을 태연자약하게 놀려먹을 수 있는 내 길동무 스님의 세계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지요 ..  (129쪽)


  이윤기 님 산문책을 읽습니다. 이윤기 님이 살아온 발자국을 돌아봅니다. 이윤기 님이 생각하고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가 하고 헤아립니다. 이윤기 님 스스로 즐겁게 걸어온 삶이니, 이렇게 이윤기 님 마음을 글 하나에 차근차근 담겠지요. 이윤기 님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 산문책 즐겁게 장만해서 즐겁게 읽으며 이녁 마음밭 살찌우겠지요.


  누구나 삶을 누립니다. 그래서, 누구나 글을 씁니다. 누구나 삶을 짓습니다. 높거나 낮거나 좋거나 나쁜 삶이란 따로 없이, 누구나 스스로 삶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짓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녁 삶을 즐겁게 글로 씁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무엇인가 배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싸움 순위싸움 점수싸움에 시달립니다. 학교라는 데에서 아이들한테 즐거운 배움이나 슬기로운 가르침 나누는 일이 뜻밖에 무척 적어요.


  어른들이 학교를 세워서 무엇인가 가르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학교에서 시험공부 순위공부 점수공부로 들볶습니다. 학교라는 데에서 어른들 스스로 즐거운 삶과 사랑과 꿈을 북돋우거나 키우는 일이 뜻밖에 참 적어요.


  “어른 학교”란 무엇일까요. “어른 학교”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요. “어른 학교”는 꼭 다녀야 할까요. 졸업장 없는 사회가 그립습니다. 학교 없는 나라가 그립습니다.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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