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삐라로 묻어라 - 한국전쟁기 미국의 심리전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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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경쟁은 왜 생기는가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4] 이임하, 《적을 삐라로 묻어라》

 


- 책이름 : 적을 삐라로 묻어라
- 글 : 이임하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10.19.)
- 책값 : 25000원

 


  두멧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깊은 밤에 까만 하늘을 점점이 빛내는 별무리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크고작게 보이는 별은 저마다 다른 빛을 뽐냅니다. 지구에서 퍽 밝게 보이는 별이 있고, 지구에서 하나도 안 보이는 별이 있어요. 지구에서 보이는 별이라 해서 ‘있는’ 별이고, 지구에서 안 보이는 별이라 해서 ‘없는’ 별은 아니에요.


  먼먼 옛날에는 저 별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밤하늘 반짝이는 작은 점을 언제부터 누가 ‘별’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바라보았을까 궁금합니다.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마냥, 지구도 저 별에 깃들어 바라볼 때에는 똑같은 ‘별’인 줄 느끼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얼마나 되랴 궁금합니다.


  과학자뿐 아니라 여느 사람도 때때로 궁금하게 여길 텐데, 저 숱한 별들 가운데에는 지구처럼 온갖 목숨이 얼크러진 곳이 있겠지요. 어쩌면 지구별처럼 끔찍한 전쟁과 경쟁이 춤추는 곳이 있을는지 모르고, 지구별과 달리 온통 사랑과 믿음으로 이루어진 곳이 있을는지 몰라요. 지구별처럼 기계물질문명이 판치며 숲을 망가뜨리고 사람 스스로 사람을 깔보는 곳이 있을는지 모르며, 지구별과 달리 다 다른 목숨이 다 다른 목숨을 서로 아끼고 돌보는 곳이 있을는지 몰라요.


.. 극동사령부는 전쟁이 발발한 지 24시간도 안 되어 주한 미국 군사 고문단이 사용할 삐라를 준비했다. 최초의 심리전 작전은 6월 28일 공군 C-46 수송기로 ‘미국이 국제연합에 전쟁 개입과 원조를 요구했으므로 그동안 참고 저항하라’는 내용의 삐라를 뿌리면서 시작됐다 … 미국에서 온 의복과 선물을 받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한국의 고아 강구라는 아이를 언급하면서 이는 미국의 오랜 관습이라고 말한다. ‘인정 많은 미국인’이라는 이미지를 쌓으려 〈자유세계〉는 미군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진이나 원조하는 사진도 종종 실었다 … 1950년 11월까지 뿌려진 삐라는 1억 2000만 장이었다. 1951년 12월까지의 누적된 삐라 살포량이 9억 6000만 장이므로, 1951년 뿌려진 삐라는 1950년도의 7배가 넘는 8억 4000만 장가량이 되는 셈이다 ..  (22, 104, 251쪽)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보금자리가 있는 곳에 천천히 마을이 이루어집니다. 이웃이 없더라도 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살림집을 차츰 넓혀야 해요. 때로는 새 살림집을 지어야 해요. 다 큰 아이들은 스스로 짝을 맺기도 하고, 짝을 맺으며 새 아이를 낳기도 하겠지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어떻게 배우며 크는가에 따라 달라질 테지만, 사랑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은 사랑을 누리고 사랑을 펼쳐요. 사랑으로 자란 아이한테는 미움이나 다툼이 깃들지 않을 뿐더러, 미움도 다툼도 몰라요. 사랑보다 경쟁과 전쟁, 시험공부와 지식외우기 따위로 길들인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 나이와 몸집이 된 뒤에 경쟁과 전쟁을 드러내요. 어릴 적부터 시험공부와 지식외우기로 길든 어른이 이녁 아이한테도 똑같이 시험공부와 지식외우기를 물려줄밖에 없어요. 이것 말고는 모르거든요.


  전쟁이 터지는 싹은 바로 나한테 있습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겪고 자랐는가에 따라 삶터를 이루는 얼거리가 달라집니다. 내 마음속에 싸움이나 미움이 또아리를 틀면, 이 싸움이나 미움이 차츰 커지면서 바깥으로 번져요. 어떤 우두머리 몇몇이 일으키는 싸움이나 미움이 아니에요. 우두머리 몇몇이 일으키는 싸움이나 미움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 사랑과 믿음만 자란다면, 어떠한 싸움이나 미움에도 휩쓸리지 않아요.


  맹자 어머니는 아이를 생각하며 삶자리를 자꾸 옮겼어요. 맹자 어머니는 이녁 아이도 이녁 아이라 하지만, 맹자 어머니 당신부터 ‘옳고 바르며 착하고 고운 삶’을 스스로 누리고 싶어요. 맹자 어머니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하고 고운 삶을 누릴 때에 당신 아이한테도 옳고 바르며 착하고 고운 삶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스스로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면 아이한테 이야기하지 못하고 물려주지 못하며 알려주지 못해요. 스스로 누리고 즐기는 삶결이 고스란히 아이한테 이어져요. 스스로 좋아하며 사랑하는 숨결이 하나하나 아이한테 대물림되어요. 돌이켜보면, 맹자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를 잘 가르치는 일’보다 ‘스스로 잘 살아가는 일’을 깨달았다고 할 만해요. ‘아이를 잘 가르치는 길’을 찾았다기보다 ‘스스로 삶을 잘 가꾸는 길’을 찾았다고 할 만해요.


.. 육군본부 심리전과에도 만화가 김용환을 비롯해 문학가 윤석중·신태환·민병태·정상충·심정섭 등이 소속되어 선전 활동에 참여했다. 육군본부에서는 〈사병만화〉를 발행했다. 일본 교토 미술전문학교에 다니던 김종래도 정보 계통의 심리전 관련 부서에서 일했는데 그가 하는 일은 지리산 빨치산을 회유하는 삐라를 만드는 일이었다 …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의 명의로 뿌려진 이 안전보장 증명서는 위협과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나아가 투항은 정의와 대의를 위한 길이기에 귀순할 때 중국군을 잡아오거나 목을 잘라오면 특별히 후대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  (64, 110쪽)


  자동차 오가는 소리를 늘 듣는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동차를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매캐한 바람이 가득한 도시에서 공장이나 아파트나 학교나 공공기관 시설을 늘 마주하는 아이들은 이 같은 건물을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숲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숲내음과 숲바람을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갯내음과 바닷바람을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들판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신나게 뒹굴거나 구르는 들살이를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영어노래를 부르고 영어만화를 보며 영어그림책을 배우는 아이들은 무엇을 몸으로 받아들일까요. 초등학교부터 시험공부에 얽매인 채 지식과 교과서를 머리에 한가득 집어넣는 아이들은 무엇을 마음으로 받아들일까요.


  아이들은 누구나 ‘내 어버이 대학교 졸업장’을 따지지 않습니다. 아기가 젖을 물며 ‘내 어머니가 무슨 대학교를 나왔을까?’ 하고 묻지 않습니다. 다섯 살이든 일곱 살이든 열 살이든, 아이들이 밥을 먹으면서 밥상 차린 어버이한테 ‘아버지는 어떤 대학교 어떤 학과를 다녔어요?’ 하고 묻지 않아요.
  무등을 타는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어떤 책을 읽었느냐고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손을 잡고 들길을 걷는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돈을 얼마나 버느냐고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깊은 밤 새근새근 잠드는 아이들이 자장노래 부르는 어버이한테 몸매 치수를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무엇을 알고 느끼며 살아야 즐거울까요. 아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알고 느끼며 살아가기에 즐겁게 뛰놀까요.


.. 해방 뒤 미 공보원은 〈월간 아메리카〉에 미국이 기존 자유방임주의적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를 극복한 체제라고 알리는 글들을 실었다. 이 글들은 미국을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복지를 책임지는 국가로 소개했다. 미국은 기업도, 노동자도, 연방정부도 경제제도를 독자적으로 농단하지 못하며 경제 발전을 위해 새로운 권력관계를 형성한 나라였다(고 스스로 밝힌 셈이다) … 1951년 심리전 비용은 3억 달러가량이 들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며, 삐라 살포량만을 비교하면 1억 8000만 달러가량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살포 방식에 따른 비용, 라디오 확성기 방송 이용 따위를 감안할 때 1951년 소요된 심리전 비용은 적어도 2억 달러를 넘어 3억 달러에 가까울 것이다. 심리전에 들인 단순 추정 비용도 2년 동안 유엔이 한국에서 사용했다는 원조와 재건 비용보다 많다 ..  (207, 252쪽)


  가을을 맞이해 온 시골마다 나락을 베어 털고 말리기에 부산합니다. 가을을 맞이한 시골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집에 들러붙을 겨를이 없습니다. 하루 내내 들판에서 들일을 하고 들밥을 먹습니다.


  가을 들판을 바라봅니다. 어느 들판에나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보일 뿐, 젊은 가시내나 사내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느 들판에나 어린이와 푸름이는 그림자조차 안 보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보육원으로 가고, 푸름이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갑니다. 시골마을조차 ‘시골아이’ 아닌 ‘학교아이’입니다. 아이들은 바쁜 가을일을 거들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쁜 가을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치르는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이나 학력평가나 수능시험이나 모의시험이 대수롭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갈무리하는 가을일은 아이들한테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들판에서 일한다지만,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는 들판에 없거든요.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는 회사에 있거나 공장에 있습니다.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는 들판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살아갑니다.


  뿌리를 캐면,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부터 이녁 아이들을 들판에서 내쫓고 학교로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들판을 떠나 학교를 다녀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비로소 ‘고된 들일’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돈을 많이 벌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아니, 이렇게 배웠습니다.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학교 보내기’가 ‘아이키우기’라고 배웠어요. 나라가 이렇게 가르치고, 정부가 이렇게 가르쳐요. 사회가 이처럼 가르치고, 신문과 방송이 이렇게 가르쳐요.


  아이들은 반드시 제도권학교에 다녀야 하는 줄 여겨요. 아이들이 제도권학교에 들어가서 무엇을 배우는 줄 하나도 모르면서, 그저 아이들을 제도권학교에 넣어요. 아이들이 제도권학교에서 교과서 지식만 외우면서 시험공부만 하는 줄 헤아리지 못해요. 아이들이 학교 졸업장은 여럿 거머쥐지만, 정작 삶을 일구는 슬기는 조금도 살피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며 누리지 못하는 줄 깨닫지 못해요.


.. 귀환계획은 민간인을 포로로 다루고 억류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민간인을 포로와 같이 다룬 까닭은 근거 없는 의심에서 출발했다. 얼굴색만으로 적을 구분할 수 없었던 미군은 민간인을 근거 없이 의심했고, 이 의심은 한국전쟁 내내 일어났다. 피난민의 이동 금지나 피난민 심사와 수용소 운용은 모두 여기에서 출발했다 … 학교라는 공간에서 심리전은 다시 생산되고 심리전에서 말해진 가치들이 살아났다. 학교에서 심리전을 이용하는 방식은 아이들이 즐기는 노래나 놀이로 삐라를 살포하는 형태와 교과서로 하는 학습이었다 ..  (229, 267쪽)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면, 나라에서 운동경기를 꾀하든 전쟁을 꾀하든 ‘내 편 이겨라!’ 하고 외칩니다. 나라에서 운동경기를 괜히 꾀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제도권교육을 괜히 의무교육으로 시키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제도권교육을 나라돈으로 베푸는 줄 잘못 알지만, 나라돈이란 바로 ‘내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요, 나라님은 ‘내 돈’으로 이녁 일삯을 챙기고 이녁 큰집을 짓는 한편, ‘내 돈 가운데 부스러기 얼마쯤’으로 제도권학교 틀을 세웁니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교과서를 만든 사람도 바로 나요, 입시지옥을 만든 사람도 바로 나예요. 교과서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이며, 입시지옥을 털어낼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한 마디로 간추린다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다고 하는 전쟁은 ‘우두머리가 우리들 모두를 길들여서 우리 스스로 치고받도록 부추기는 일’입니다. 싸우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다치는 사람도, 적을 만들고 적을 미워하는 사람도, 바로 나예요. 잃는 사람도, 빼앗기는 사람도, 슬픈 사람도, 괴로운 사람도, 바로 나예요.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기에 내 삶이 나아지지 않아요.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가 들어서기에 내 삶이 좋아지지 않아요.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이 나라에서 치르기에 내 삶이 발돋움하지 않아요. 경제발전을 이룬대서 내 삶이 훌륭해지지 않아요.


  나무 한 그루와 함께 풀 한 포기를 가꿀 때에 내 삶이 나아져요. 풀벌레와 멧새 노랫소리를 들을 때에 내 삶이 좋아져요. 들길을 아이 손 맞잡고 거닐 때에 내 삶이 발돋움해요. 낮하늘이 얼마나 파란가 느끼고 밤하늘이 얼마나 까만가 깨달을 적에 비로소 내 삶이 훌륭하게 거듭나요.


  제도권학교를 세워서 의무처럼 다니게 하는 정부란 곧 제도권정부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제도권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게끔 가로막는 제도권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돌보면서 가꾸고 북돋우며 아끼는 길을 틀어막는 제도권입니다.


  전쟁무기와 군대는 나라는커녕 마을이나 보금자리를 지키지 않아요. 화학방정식과 화학약품과 가공식품은 아이 목숨도 어른 목숨도 건사하지 않아요. 졸업장과 계급장과 신분증은 사람들 가슴에 깃든 사랑을 쳐다보지 않아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뜻이라면 오직 하나 사랑 때문이에요. 사랑을 누리기에 즐겁고, 사랑을 느끼기에 즐거우며, 사랑을 나누기에 즐겁습니다. 오직 사랑 하나를 누리고 느끼며 나누려고 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요. 오직 사랑 하나 빛내고 빚으며 돌보려고 저마다 새로운 숨결을 받아 태어나요.


  내 이웃을 적으로 삼아 죽이려 하는 전쟁이나 경쟁은 사랑이 아니에요. 내 이웃 숨결을 끊는 사람은 내 숨결 또한 끊는 꼴이에요. 내 옆에는 적 아닌 이웃이 있고, 내 가슴속에는 하느님이 깃들듯 내 이웃 가슴에도 하느님이 깃들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란, 나를 옳게 바라보면서 나를 사랑하는 길이요, 나를 옳게 바라보고 사랑하듯 내 이웃과 동무 모두 옳게 바라보며 사랑하는 길이에요.


.. 교과서, 나아가 국가는 나라, 겨레, 국가 같은 추상적인 관념으로 포장하여 아이(국민)들로 하여금 끝없는 충성과 희생을 요구했다. 나라와 민족, 세계 같은 추상적인 거대담론을 끊임없이 들먹임으로써 비록 어리지만 대단히 중요한 일에 참여한다는 허위의식을 어린이들에게 심어 주고 현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의 계기를 제거하고 있다 … 삐라는 국가가 없으면 개인도 없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라고 했고, 공산주의는 애국심이나 애국주의 사상이 없기 때문에 불쌍하다고 했다 … 어려서부터 남을 짓밟고 성공하는 것이 유일한 가치이자 생존 방법이라고 배우고 그 결과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현실, 그런 상황에서 더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반문은 나를 비롯한 대부분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는 무조건 1인자가 되어야 한다 … 남을 짓밟고 성공해 1인자가 되어야 한다는 가치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지지받는 까닭은 전쟁 경험과 학습받은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이기도 하다 … 냉전세대는 성인이 되어서도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진리로 알고 지내왔다 ..  (290, 313, 322, 437쪽)


  이임하 님이 쓴 인문책 《적을 삐라로 묻어라》(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한국전쟁 무렵 미국 군대가 한국땅 곳곳에 뿌린 삐라를 들추어 냅니다. 이임하 님은 삐라에서 ‘삶 발자국’을 하나하나 읽어내고 되새깁니다. 나라와 나라, 또는 정부와 정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 속살 가운데 아주 작은 구석인 ‘심리 전쟁’, 이 가운데에서도 ‘삐라 뿌리기’가 어떠한 모습인가를 차근차근 밝힙니다. 전쟁에 휩쓸리거나 휘둘리는 사람들 머리와 마음이 어떻게 길들여지는가를 들려주고, 전쟁을 일으키거나 부채질하는 권력자는 무엇을 꾀하거나 노리는가를 슬그머니 보여줍니다.


  오늘날 제도권사회는 진작 만들어진 뼈대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뼈대가 아니에요. 천민자본주의라 하든 신자유주의라 하든 자유무역협정이든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짠 하고 나타나지 않아요. 먼먼 옛날부터 천천히 이빨을 드러내며 스며들어요. 오랜 나날에 걸쳐 사람들을 홀리고 이끌며 가두어요.


  시골사람이 왜 도시로 빠져나갈까요. 시골사람을 왜 도시로 잡아들일까요. 시골에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길까요. 왜 젊은 사람은 흙을 안 만지면서 밥을 먹는 사회 얼거리를 만들까요. 왜 젊은이와 푸름이와 어린이 모두 흙일을 모르도록 교과서를 짜고 신문·방송을 엮으며 책을 만들까요. 왜 사람들 스스로 옷·밥·집을 못 빚고 못 누리도록 내몰까요. 왜 모든 일을 돈으로 하도록 만들고, 왜 돈이 없으면 굶어죽기라도 한다는 듯 가르칠까요. 왜 돈버는 일자리만 이야기하고, 삶을 짓는 꿈과 사랑은 조금도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꽁꽁 틀어막을까요.


.. 삐라의 내용을 들으면 미국적 신조는 결국 ‘미국인’에게만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자유세계’에서의 최고의 모델로 선전하는 미국식 모델은 미국을 뺀 다른 곳에서는 선언의 수준에 머물렀다 … 한국전쟁을 필두로 해서 냉전에 기반한 그 어떤 전쟁도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진보적 가치를 생산해내지 않았다 ..  (421, 429쪽)


  한국전쟁으로 한국땅이 짓밟히고 앓던 무렵, 미국 군대는 삐라로 한국땅을 덮었다고 합니다. 끔찍하도록 뿌려댄 삐라는 똥종이로도 쓰이고 편지종이로도 쓰였답니다.


  입시전쟁과 취업전쟁과 생존전쟁이 벌어지는 오늘날 한국땅은 누가 어느 곳을 어떻게 짓밟는다고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무엇으로 뒤덮였다고 할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여기저기 넘실거리는 돈은 어떻게 쓰이는가요. 곳곳에서 출렁거리는 졸업장과 자격증과 신분증은 무엇을 보여주는가요.


  《적을 삐라로 묻어라》를 쓴 이임하 님은 당신 아이가 ‘제도권학교’에 시달려 아파하는 모습을 아주 어렴풋이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내놓고 나서는 ‘어렴풋이’에서 ‘또렷이’로 달라졌을까 모르겠습니다. 이임하 님 아이가 제도권학교 아닌 대안학교를 다니고 싶다 스스로 말한다는데, 그러면 이임하 님이 살아가는 곳은 어떤 데인가 궁금합니다. 글쓴이 이임하 님은 ‘제도권’에서 살아가나요, ‘대안’에서 살아가나요. 이임하 님 아이가 찾아나서려는 ‘제도권’과 ‘대안’ 사이에는 어떤 삶이 있나요. 이임하 님은 스스로 어느 삶터에서 사랑을 일구며 누리고 나눌 수 있는가요. 사람은 ‘제도권’에서 살아야 사람일까요, ‘대안’에서 살아야 사람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느 보금자리’를 느끼고 찾을 때에 사람일까요.


  온갖 무기가 춤추는 전쟁통에는 삐라에 묻힌 사람들이, 온갖 숫자와 성적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돈에 묻힌 채 허우적거립니다. (4345.10.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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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0-1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업장과 계급장과 신분증은 사람들 가슴에 깃든 사랑을 쳐다보지 않아요."

요즘 대학생들은 졸업장에 자격증이 될 만한 이력까지 쌓느라 참 바쁘게 살고 진정한 친구를 갖기가 힘든 것 같더군요. 가까이 있는 친구들이 모두 경쟁자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불행한 학생들입니다.
다음의 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무 한 그루와 함께 풀 한 포기를 가꿀 때에 내 삶이 나아져요. 풀벌레와 멧새 노랫소리를 들을 때에 내 삶이 좋아져요. 들길을 아이 손 맞잡고 거닐 때에 내 삶이 발돋움해요. 낮하늘이 얼마나 파란가 느끼고 밤하늘이 얼마나 까만가 깨달을 적에 비로소 내 삶이 훌륭하게 거듭나요."

숲노래 2012-10-16 12:52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이러한 책을 '지식'이나 '정보'로만 여기지 말고, 왜 이러한 책을 써서 내놓아서 나누는가 하는 '밑뜻'을 잘 새겨서,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일굴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랴 싶어요...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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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태어나는 새 숨결
 [책읽기 삶읽기 116]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144쪽).”고 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 신영복 님 책 《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를 읽습니다. 신영복 님은 당신 글씨가 걸린 ‘변방’을 찾아 먼길 나들이를 했다는데, ‘변방(邊方)’은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 (괴산) 거리의 가로등에도 고추와 임꺽정이 올라서 있다. 정작 소설 《임꺽정》의 문학적 위상이 어떤 것인지는 관심이 없다. 고추를 먹으면 임꺽정처럼 힘이 넘친다는 마케팅의 소재로 남아 있을 뿐이다 ..  (11쪽)


  신영복 님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들어갔고, 감옥에서 스무 해를 살다가 나온 다음에는, 내처 서울 쪽에서 살아가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곧, 신영복 님한테 ‘한복판(중심)’은 서울이 되고, 고향 밀양은 ‘변두리’가 되었겠지요.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갔고, 서울에서 한동안 대학교를 다니거나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이내 대학교는 그만두고 책일 또한 모두 접고서 고향 인천으로 돌아갔다가, 고향에서도 멀어진 시골로 삶터를 옮깁니다. 곧, 나한테 한복판은 시골이 되고, 서울이나 인천은 변두리가 됩니다.


.. 우리가 찾아간 서정분교는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놀라운 것은 학교 전체에서 풍겨 오는 풋풋한 흙냄새였다. 서울의 학교 운동장에는 없는 냄새였다 … (오대산 상원사) 종소리는 나를 깨뜨리고 멀리 오대산 전체를 품에 안았다 ..  (40, 100쪽)


  서울이나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내 삶터’는 변두리입니다. 부산에서든 대전에서든, 또는 춘천이나 순천이나 광주나 여수에서조차 ‘내 삶터 시골’은 변두리예요. 더욱이,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칠 때에, 고흥읍에서 보아도 우리 식구 깃든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은 한참 깊숙하게 들어간 ‘외딴 곳(변두리)’이에요. 이제 우리 마을 앞으로도 군내버스가 다니지만, 그리 멀지 않던 예전까지 우리 마을 앞에는 찻길이 없어 어떠한 자동차도 못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시골에서 네 식구 오순도순 툭탁툭탁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우리들한테 시골자락은 ‘한복판’입니다. 우리들한테 서울이나 도시는 ‘외딴 곳(변두리)’입니다. 우리 식구는 한복판인 시골자락에서 웃고 떠들며 노래하며 살아가면 즐겁습니다. 굳이 외딴 데까지 찾아갈 일이 없어요. 햇살을 누리고 바람을 마시며 냇물을 즐기는 한복판 보금자리가 좋습니다. 풀을 뜯고 나무를 어루만지며 멧새와 풀벌레 노랫소리를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시골자락 한복판 보금자리가 예쁘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태어나는 새 숨결을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자라나는 새 목소리를 헤아립니다. 시골에서 무럭무럭 크는 새 사랑을 그립니다. 시골에서 시나브로 일구는 새 손길과 눈길을 돌아봅니다.


  깊은 가을날 좋은 볕과 바람과 소리와 빛깔과 내음을 마시고 먹습니다. 마을마다 천천히 익는 감알을 바라보며 배부릅니다. 날마다 더 짙고 환하게 무르익는 나락을 바라보며 흐뭇합니다. 내가 안 심고 내가 안 베는 나락이지만,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나락논이 참 곱다고 느낍니다.


  누구인지 몰라도, 누군가 이 노오란 나락을 빻아 밥을 지어 먹겠지요. 누구인지 몰라도, 누군가 이 노오란 나락에 깃든 해님과 달님과 물님과 별님과 바람님과 흙님을 몸으로 받아들이겠지요. 시골에서 지내든 도시에서 지내든, 모든 고운 넋 깃든 나락 한 알을 먹으며 스스로 우주가 되고 스스로 빛이 되겠지요.


..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오죽헌은 그 규모부터 대궐같이 성역화되어 있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홍명희) 문학비는 주차장이 되어 있는 텅 빈 제월대 광장 가장자리에서 혼자 가을볕을 안고 있었다 ..  (56, 79쪽)


  이야기책 《변방을 찾아서》는 ‘변방’ 또는 ‘변두리’를 찾아간다고 글을 쓰지만, 시골사람 눈높이에서 바라보자면, 그예 ‘시골’ 나들이를 하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래요, 시골 나들이예요. “시골을 찾아서” 도시를 떠나요. 아주 살짝 시골에 머물다 도시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흙내음’을 맡고 ‘햇볕’을 쬐며 ‘바람’을 마시다가는 ‘냇물’에 손을 적시고 ‘나무그늘’을 누리려고 시골로 와요. 시골에 참말 살짝 머물다가 이내 도시로 간다 하지만, 시골에서 슬기를 깨우치고 생각을 빛내요.


.. 내가 그동안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료 수집과 집필 구상 등 준비를 많이 할수록 틀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  (12쪽)


  뜻있는 이들이 참다운 한복판에 삶터를 꾸리면 기쁜 일이 되리라 생각해요. 겉치레나 겉꾸밈 같은 한복판이 아니라, 참답고 착하며 아름다운 한복판을 가슴 깊이 느끼면서 뜻있는 이들 좋은 보금자리가 좋은 마을이 되고 좋은 지구별 쉼터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기쁘리라 생각해요.


  도시가 복닥거리고 어수선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모두 도시에서 스스로 복닥거리면서 어수선하게 살아가잖아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아웅다웅 치고박고 다툰다 하면서, 막상 이처럼 말하는 사람들 모두 도시에서 스스로 아웅다웅 치고박고 다투면서 살아가고 말아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빌어요. 서로 믿고 아끼며 지내기를 빌어요. 서로 돕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기를 빌어요. 서로 좋아하고 서로 웃으며 지내기를 빌어요.


  시골에서 만나요. 나는 이쪽 시골에서 살아갈 테니, 당신은 저쪽 시골에서 살아가셔요. 서로서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실을 다녀요. 나는 오늘 걸어서 당신한테 찾아갈 테니, 당신은 모레에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오셔요. 나는 또 글피에 당신한테 자전거수레에 아이들 태우고 마실을 갈 테니, 당신은 또 이레 뒤에 식구들과 들길을 천천히 노래를 부르며 걸어서 찾아오셔요. 환하게 밝는 아침햇살 맞으며 길을 나서요. 어둑어둑 땅거미 느끼며 밥 한 그릇 나누어요. (4345.9.25.불.ㅎㄲㅅㄱ)


―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글,돌베개 펴냄,2012.5.21./9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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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9-2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의 책인가요? 이 책 좋았는데...

내가 그동안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료 수집과 집필 구상 등 준비를 많이 할수록 틀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 (12쪽)
...그런거군요.

"시골에서 네 식구 오순도순 툭탁툭탁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 행복한 가족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

숲노래 2012-09-25 18: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밑줄을 그은 대목 몇 군데를 빼고는
'글쓴이가 있는 이곳(중심)'과 '글쓴이가 없는 저곳(변방)'이
어떻게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좋은 삶을 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시골(변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중심)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는데,
시골(변방)에 올 때면 다들 시골(변방)이 좋거나 훌륭하다 말하지만,
정작 도시(중심)를 떠나 시골(변방)로 삶터나 일터를
옮기는 일은 없어요.

언제나 '여행 이야기'로만 남는다고 할까요.

여행 뒷이야기를 넘어
스스로 어떤 삶을 새롭게 빚는다 하는 느낌과 마음을
글에 드러내지 못한다면...
가볍게 읽고 덮은 다음에 그저 그렇구나... 하고 생각해요...
 
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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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글과 생각
 [책읽기 삶읽기 115]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2005)

 


  자가용을 몰지 않는 우리 식구는 다 함께 나들이를 갈 때에 언제나 커다란 가방을 하나 메고, 손에는 자그마한 가방을 듭니다. 커다란 가방에는 아이들 옷가지를 챙기고, 자그마한 가방에는 아이들 먹을거리를 챙깁니다. 등에 메는 커다란 가방에는 옷걸이를 잔뜩 챙깁니다. 우리 식구가 어디에 머무를 때에 작은아이 기저귀와 바지를 빨래해야 하고, 빨래한 옷가지는 옷걸이에 꿰어 널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크든 작든, 아직 아이들 스스로 저희 가방을 메면서 저희 옷가지를 챙길 만한 나이가 아니니, 어버이가 모든 짐을 알뜰히 꾸립니다.


  어디를 다니든, 내 옷가지는 아주 단출합니다. 웃도리와 반바지 한 벌만 챙깁니다. 겨울에 길을 나서더라도 내 긴바지는 안 챙깁니다. 겨울에는 아이들 옷가지가 두툼해지는 만큼 가방 자리를 더 차지해요. 내 옷가지를 되도록 줄이며 아이들 옷가지를 한 벌이라도 더 챙깁니다.


  애써 챙긴 아이들 옷가지라 하지만,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입히지 못한 옷’도 꽤 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입히지 못한 옷’을 안 챙길 수 없어요. 아이들이 이곳저곳에서 개구지게 뛰놀며 언제 어느 옷을 얼마나 더럽힐는지 모르거든요. 나와 옆지기는 아이들이 어디에서든 마음놓고 뛰놀도록 두면서 지켜보기에, 아이들이 신나게 놀며 땀에 옴팡 젖거나 이래저래 지저분해지면 서슴없이 갈아입힙니다. 갈아입히는 옷이 많이 나오면 많이 나오는 대로 빨래하고, 갈아입히는 옷이 적게 나오면 이러한 대로 빨래해요.


  이제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찾아들며 선선한 날인 터라, 시외버스나 기차에서 에어컨 바람이 어떻게 나올는지 모르기도 해서, 두 아이와 옆지기가 덮어야 할 수 있는 담요를 석 장 챙깁니다. 하룻밤 묵을 곳에 손닦는천이 제대로 있을는지 모르니, 손닦는천을 넉 장 챙깁니다. 오줌을 아직 안 가리는 작은아이가 방바닥에 오줌을 지르면 닦을 때에 쓰자고 걸레를 두 장 챙깁니다. 천기저귀는 더 넉넉히 챙깁니다. 마실물은 두 병 챙깁니다. 여러모로 가방이 커다랗고 무겁습니다.


.. 시골 바람이란 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던지 선뜻 그러자고 했다 … 친구의 잘못이었는지 고의였는지 광주에서 해남까지의 장거리도 직행버스도 못 타고 수도 없이 정거하는 그냥 시외버스를 타게 됐다. 그러나 그동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조금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기도 하지만, 위대한 영혼 또한 자연의 정기가 되어 자연을 빛나게 한다 ..  (9, 11∼12, 22쪽)


  나한테 옆지기도 아이들도 없던 지난날, 내 가방에는 오직 책이랑 사진기만 들었습니다. 홀로 살아가던 내 지난날, 집을 떠나 마실길에 오르면, 가방은 마실길에 읽을 책이 있을 뿐, 아직 홀쭉합니다. 마실길에 헌책방을 들르면서 가방은 차츰 무거워집니다. 홀로 다니던 지난날 내 마실길에는 언제나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자전거 나들이라 하지만, 차츰 무거운 자전거 나들이가 됩니다. 그래도 나는 늘 씩씩하고 즐겁게 자전거를 달렸어요. 책으로 꽉 찬 커다란 가방을 빙긋빙긋 웃으며 짊어지고 자전거를 달렸어요. 오르막도 내리막도 즐겁게 달립니다.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세우고 가방을 내리면 등때기가 없는 듯하고, 다리도 없는 듯합니다. 찬물로 한 차례 씻고 드러누우면 이런 하늘나라가 따로 없네, 하고 생각합니다. 마실길에 장만한 새로운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괜히 또 웃습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새근새근 잡니다. 하룻밤 밖에서 묵는 마실길이었는데, 오가느라 시외버스와 기차와 택시를 참 오래 타느라 모두 지쳤겠지요. 느즈막하게 넉넉히 자야겠지요.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아이들은 딱히 걱정을 하면서 다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옷이 더러워지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냥 놉니다. 그냥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냥 씻습니다.


  홀가분한 넋이요 몸이기에, 어디에서라도 해맑게 웃으면서 뛰놀 만하리라 느낍니다. 나들이를 다니는 어른도 스스로 홀가분한 넋이 된다면, 가방이 제아무리 무겁다 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홀가분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서로 즐기려고 다니는 나들이예요. 서로 웃으려고 다니는 나들이예요.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려는 꿈을 키우는 나들이예요. 짐을 많이 짊어져서 힘들지 않느냐구요? 글쎄요, 어깨가 빠질 듯한 느낌은 들겠지요. 그러나, 짐이 무겁다뿐, 나들이가 고단할 까닭은 없어요. 설레는 마음과 두근거리는 몸입니다. 꿈꾸는 마음과 사랑하는 몸입니다.


..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북경역이 바라다보였고, 큰길을 가득 메운 자전거의 흐름이 말할 수 없이 유연했다. 고요하고 느긋하면서도 생기가 넘쳐 보였다. 끝없이 흐르는 반짝이는 은빛 바퀴와 아침 바람에 나부끼는 머릿결과 색색가지 고운 치맛자락을 바라보면서, 만약 저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대신에 자동차를 한 대씩 몰고 출근을 하게 된다면, 하고 상상하니 끔찍한 일로 여겨졌다 … 땅의 숨결이란 무엇인가. 나무와 풀과 푸성귀의 씨앗을 품고 싹트게 하고 밀어올리는 거대한 에너지가 아닌가 ..  (75, 107쪽)


  박완서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2005)을 읽습니다. 할머니 나이가 되어 ‘여행가방’을 꾸려 나들이 다닌 이야기를 적바림한 책입니다. 1997년에 한 번 나온 적 있고, 2005년에 다시 나온 이야기꾸러미입니다. 2012년에 이르러 이 이야기꾸러미를 비로소 펼칩니다. 할머니 박완서 님이 사랑한 나들이는 무엇일까 헤아리며 책을 읽습니다.


.. 나는 떡집에서 증편을 두 개 사서 먹으면서 다니다가 공원 잔디밭에 누워서 나무 그늘에서 연인들이 쌍쌍이 정답게 속삭이는 것도 보고, 노인들이 한가롭게 작대기 같은 걸로 공 굴리기를 즐기는 것도 구경했다 …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 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  (86, 252쪽)


  박완서 님은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이야기합니다. 책을 다 읽고 덮기까지, 나는 새롭게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박완서 님이 할머니 나이가 되어 쓴 이 여행글은, 박완서 님으로서는 “잃어버린 글과 생각”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여행글이라 하지만, 여행글답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다니며 스스로 느낀 이야기’라든지 ‘이곳과 저곳을 누리며 스스로 사랑을 누린 이야기’는 얼마 안 됩니다.


  나는 박완서 님 ‘여행글’을 읽으면서 ‘박완서 님이 주섬주섬 그러모은 티벳 지식’을 읽고 싶지 않습니다. 티벳과 중국이 서로 어떤 사이인가 하는 이야기는, 박완서 님 여행책 아닌 다른 역사책이나 인문책에 알뜰히 잘 나옵니다. 구태여 ‘박완서 님이 옮겨적은 글’로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박완서 님은 무엇을 느끼려고 여러 나라로 나들이를 다녔을까요. 그저 몸이 얼마나 더 지치는가를 바라보려고 여러 나라로 나들이를 다녔을까요. 그저 아는 사람들과 돌아다니는 일이 도움이 되리라 여겨 여러 나라로 나들이를 다녔을까요.


  싱그러이 살아서 숨쉬는 ‘생각’을 읽을 수 있기에 여행글을 즐겁게 읽습니다. 맑게 빛나는 ‘넋’을 느낄 수 있기에 글을 고맙게 읽습니다. 스스로 지치는 몸이 되면 스스로 지치는 마음으로 달라지면서, 지친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맙니다. 스스로 기쁜 몸이 되면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거듭나면서, 기쁜 이야기를 오순도순 풀어놓기 마련입니다.


  교황 아무개 죽은 자리에 갈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빛’이 될까 궁금합니다. 콩나물 한 꾸러미 사려고 저잣거리에 다녀오는 일 또한 좋은 나들이요 마실이며 여행이 돼요. 좋은 동무랑 수다를 떨려고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일 또한 재미난 나들이요 마실이고 여행이 돼요.


  어디를 가야 여행이지 않습니다. 누구하고 가야 여행이지 않아요. 무엇을 보거나 누구를 만나기에 여행이지 않아요. 스스로 느끼는 삶이 있고, 스스로 누리는 빛이 있으며, 스스로 깨닫는 꿈을 보살필 때에, 비로소 여행이 되는구나 싶어요.


  할머니 박완서 님은 여행길에 ‘여행가방’을 잃어버렸다 말씀하지만, 정작 할머니 박완서 님이 잃어버린 한 가지라면 ‘삶을 사랑하는 글’과 ‘사람을 좋아하는 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4345.9.17.달.ㅎㄲㅅㄱ)


― 잃어버린 여행가방 (박완서 글,실천문학사 펴냄,2005.12.22./98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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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마워, 듀이 - 도서관 고양이가 건네는 위로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걷는책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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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가 들려주는 삶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109]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정말 고마워, 듀이》(걷는책,2011)

 


  비키 마이런 님과 브렛 위터 님이 함께 엮은 이야기책 《정말 고마워, 듀이》(걷는책,2011)를 읽습니다. 저마다 고양이를 사이에 놓고 꿈과 사랑으로 가득한 나날을 누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쁠 때, 슬플 때, 즐거울 때, 고단할 때, 좋을 때, 외로울 때, 기운날 때, 풀죽을 때, 어김없이 곁에서 따사로이 동무가 되었던 고양이 이야기를 펼쳐요.


  이를테면 ‘반려동물’도 ‘애완동물’도 아닙니다. 《정말 고마워, 듀이》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집에서 함께 살던 고양이’는 이녁 아이하고 똑같은 살붙이입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며 함께 눈을 떠서 함께 살아가는 동무입니다.


  생김새와 모습과 꼴은 ‘사람’이라지만, 막상 ‘사람인 한식구’ 가운데 말을 제대로 안 섞거나 생각을 주고받지 못하는 일이 꽤 잦은 오늘날이지 싶어요. 오늘날 어버이는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보내느라 바쁠 뿐 아니라 등허리가 휜다고 해요. 그렇지만 아이와 마주앉아 예쁘게 이야기꽃 피울 겨를은 못 내요. 오늘날 아이들은 집을 떠나 학교와 학원을 떠돌면서 마음을 나눌 말벗을 찾느라 힘들고 바빠요. 집안에서는 어버이가 돈을 벌어 저희를 학교와 학원에 넣느라 힘들고 바쁘다 하기에, 집밖에서 동무를 찾습니다.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을 동무를 집밖에서 찾고, 집밖에서 어울리며, 집밖으로 나돌아요.


.. 내가 사랑하는 아이오와 주 스펜서는 외부 사람들이 볼 때는 인구 1만 명의 작은 마을이다 … 이 고장에선 사람들의 관계는 뿌리가 깊고, 전화 한 통화로도 도움의 손길과 우정을 기대할 수 있다 … 오히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접근 가능하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도서관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자유로운 곳이다 … 제가 어렸을 때 마을에서 모기 방역을 하기로 해서 트럭들이 차 지붕에 오렌지색 경고등을 달고는 살충제를 뿌리고 돌아다녔죠. 며칠이 지난 후 어머니가 제게 물어 보았어요. ‘무슨 소리가 들리니?’ 그래서 저는 ‘아니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라고 대답했죠. 어머니는 ‘단순히 모기를 잡는 약이 아니었어. 모기만 잡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벌레도 다 죽인 거야. 그렇기 때문에 새들의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거야’라고 하셨지요 ..  (32, 34, 47, 91쪽)


  《정말 고마워, 듀이》를 엮은 두 사람은 ‘고양이’를 생각하면서 ‘삶이야기’를 깨닫습니다. 참으로 고맙구나 싶은 고양이를 티없이 바라보면서 저마다 어떤 삶을 사랑하며 지내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한테 고양이란 한식구이기도 하지만, 삶을 깨닫도록 이끄는 이슬떨이가 되기도 합니다.


  가만히 돌이키면, 우리 겨레이든 이웃 겨레이든, 큰식구를 이루어 숲에서 살아가던 지난날, 어느 집에서건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슬떨이가 되고 말벗이 되었어요. 어느 집에서건 아이들이 어른한테 이슬떨이도 되고 말벗도 되었어요. 한식구는 서로서로 좋은 이슬떨이가 되면서 말벗입니다. 옆지기와 나는 가장 가까우며 좋은 이슬떨이이자 말벗이에요.


  곧, 고양이가 있으면 고양이를 바라보며 내 삶을 헤아립니다. 고양이가 없으면 아마 개를 바라보며, 또 나무를 바라보며, 어쩌면 꽃을 바라보며, 또는 들판에 심은 푸성귀를 바라보며, 가끔은 들새나 멧새를 바라보며, 이따금 개구리나 풀벌레를 바라보며, 가만가만 잠자리나 나비를 바라보며, 저마다 다 다른 넋을 북돋우겠지요. 논개구리보다 아주 작은 풀개구리를 살뜰히 바라보면서 ‘네 삶은 어떠하니?’ 하고 눈을 빛내며 이야기꽃 피울 수 있어요. 늦여름 막바지에 꽃을 피우는 벼포기를 마주하며 ‘네 삶은 어떻게 피어나니?’ 하고 눈을 빛내면서 이야기마당 펼칠 수 있어요.


.. 삶은 단순하고 인생은 아름다웠다 …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단지 고양이일 뿐이었다. 우리가 그랬듯이 그 사람들도 토비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 어머니에게 인생은 언제나 힘겨운 싸움이었다. 이호한 그날 이후부터 애벌린의 삶은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 그녀는 또 하나의 가족을 잃은 것이다. 그녀에게 위안을 주던 친구를 잃은 것이다 … 나는 재즈도 필요없고 큰 집도 필요없고 비싼 반지도 필요없어요. 그냥 나와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갈 친구를 원해요 ..  (45, 59, 87, 221, 310쪽)


  들으려 하는 귀가 있으면 어디에서라도 이야기를 듣습니다. 나누려 하는 입이 있으면 언제라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들 스스로 어떤 이음고리가 있어야 하지는 않아요.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꼭 있을 까닭은 없어요. 사랑스러운 숲을 새롭게 찾아나서야 하지는 않아요. 바로 오늘 내가 있는 이곳에서 사랑을 느끼면 돼요. 아파트로 이루어진 곳에서든, 40층이나 50층짜리 높은 건물 한 귀퉁이 사무실에서든, 스스로 어떤 사랑을 빛내면서 어떤 삶을 누리고픈가 하는 대목을 돌아보면 돼요. 사랑과 삶을 돌아보면서 내 모습을 깨닫고, 내 모습과 마찬가지로 내 이웃들 모습을 깨달으면 돼요. 그러고서 말을 걸어요. 마음으로 말을 걸어요.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요, 하고 말을 걸어요. 어떻게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하고 말을 걸어요. 어떻게 살아갈 때에 웃을 수 있을까요, 하고 말을 걸어요.


  에어컨한테 말을 걸 수 있겠지요. 숟가락한테 말을 걸 수 있겠지요. 물꼭지를 틀고는 물방울한테 말을 걸 수 있겠지요.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한테 말을 걸 수 있겠지요. 창문을 열고 바람한테 말을 걸 수 있겠지요.


  모두들 내 좋은 동무예요. 저마다 내 예쁜 길동무예요. 서로서로 내 살가운 삶동무예요.


.. 당연히 새끼 고양이들은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다. 아주 작은 몸집으로 뒤뚱거리며 어미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 … 비키는 비록 고양이를 싫어했지만 이 녀석을 포기할 순 없었다 … 비키는 강이 흐르는 계곡 위로 우뚝 솟아오른 산과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거대한 독수리들이 있는 코디엑을 사랑했다. 숲이 자신을 에워싸는 듯한 느낌도 좋았고, 마을의 친근한 가게들도 마음에 들었다 ..  (183, 187, 214쪽)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을 열어 다가갔기에 ‘고양이 듀이’ 또한 이녁 마음을 열며 다가옵니다.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을 열어 다가간다면, 우리 시골집 마당에서 자라는 쑥 한 포기 또한 나한테 마음을 열며 다가와요.


  마음을 열 때에 아름답게 거듭나는 삶이에요. 마음을 가꿀 때에 스스로 새힘을 차리면서 활짝 웃는 삶이에요. 마음을 돌볼 때에 나와 이곳에서 한솥밥 먹는 살붙이도 빙그레 웃으며 마음을 보살피는 삶이에요.


  내가 나를 마음으로 좋아하면서, 내 보금자리를 좋아할 수 있어요. 내 보금자리를 마음으로 좋아하면서, 이 보금자리 깃든 마을을 좋아할 수 있어요.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을 좋아하면서, 이 마을이 서로 얼크러진 땅덩어리를 좋아할 수 있어요.


  ‘고양이 듀이’를 마주하든 ‘후박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든, 나는 언제나 지구별 사랑스러운 꿈벗이랑 어깨동무하는 나날입니다. 나는 어디에서나 마음을 활짝 열며 가장 싱그럽고 빛나는 생각을 주고받는 나날입니다.


.. 당신이 부상당한 동물에게 마음을 주면 그들은 절대 그것을 잊지 않는다 … 마시멜로는 나의 일부분이다. 만일 어떤 남학생이 내 스웨터에 붙어 있는 마시멜로 털을 싫어한다면 그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것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 그 책의 초고가 나와서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듀이가 내 어깨너머로 함께 읽고 있다고 느꼈다. 아니에요. 듀이는 속삭였다. 그건 그렇게 된 게 아니거든요. 마음속에 그런 속삭임이 들리면 나는 그 문단, 문장, 단어에 집중했다. 듀이의 이야기를 똑바로 전해야 했다 … 나는 식단도 바꾸었다. 약도 줄였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기 시작했다 ..  (249, 309, 385, 386쪽)


  할 수 없는 일이란 없기도 한데,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을 굴릴 까닭도 없어요. 할 수 있는 일뿐이기에, 내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하고 가만히 생각하면 돼요. 어쩌면 한꺼번에 백 가지나 천 가지 일을 할는지 모르지요. 만 가지 일을 한자리에서 할 수도 있지만, 이 가운데 꼭 한 가지만 골라 가장 즐겁게 누릴 수 있어요.


  사랑을 하고 싶으면 사랑을 하면 됩니다. 꿈을 키우고 싶으면 꿈을 키우면 됩니다. 나무를 심고 싶으면 나무를 심어요. 밥을 먹고 싶으면 밥을 먹어요. 숲길을 걷고 싶으면 숲길을 걷지요.


  가장 좋아할 만한 삶을 생각합니다. 가장 즐거울 만한 길을 살핍니다. 가장 아름다울 만한 사랑을 어루만집니다. 미국땅 한켠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를 곁에 두면서 가장 좋아할 만하고 가장 즐거울 만하며 가장 아름다울 만한 삶을 찾던 사람들이 있어요. 한국땅 골골샅샅에는 ‘누구한테 마음을 열면’서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내 살붙이는, 내 이웃은, 나를 둘러싼 모든 목숨들은 어느 때에 저마다 이녁 삶을 사랑하면서 하루를 곱게 누리려나요. (4345.8.23.나무.ㅎㄲㅅㄱ)


― 정말 고마워, 듀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글,배유정 옮김,걷는책 펴냄,2011.12.15./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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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4월에서 8월까지 모든 진보에게 묻는다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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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 아닌 평화를 이룰 삶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1] 손석춘,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책이름 :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글 : 손석춘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8.15.)
- 책값 : 1만 원

 


  방바닥을 걸레질합니다. 하루에 몇 차례씩 걸레질을 하거나 비질을 하곤 합니다. 어린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그야말로 쉴 겨를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어버이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하는 보금자리에서 숱한 일을 쉴 틈 없이 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걸레질이 지겹거나 비질이 귀찮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지르거나 작은아이가 똥오줌을 눈다 하더라도, 닦거나 치울 만하니까 닦거나 치웁니다. 어지른 것을 치우고 똥오줌 또한 치우면서 집안을 한 번 더 쓸거나 닦는 셈이리라 느낍니다.


  집 안팎에서 놀며 땀에 젖거나 지저분해진 옷을 벗겨 씻깁니다. 새 옷을 입힙니다. 아이들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수북하게 나옵니다. 한 살을 더 먹으면 빨래가 줄까, 두 살을 더 먹으면 빨래가 가뿐할까, 하고 생각한 지 다섯 해가 흐릅니다. 앞으로 해는 흐르고 흘러 또 다섯 해가 흐를 테고, 거듭 다섯 해가 흐르겠지요. 이동안 아이들마다 팔힘이나 다리힘이 부쩍 붙는다면, 바야흐로 아이들은 저희 옷을 저희가 빨래하거나 건사하거나 보듬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갖은 집일과 빨래와 밥하기에 얽히며 살아가지만, 이처럼 보낼 나날은 아주 짧으리라 느껴요. 무럭무럭 큰 아이들이 저희 삶을 저희 깜냥껏 빛내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활짝 웃을 날이 아주 길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 찬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운데는 4월혁명 세대도 있고 가까이는 한총련 세대도 있다. 그들의 찬가는 사뭇 객관적 통계로 뒷받침된다. 헐벗고 굶주린 나라가 산업화에 성공했고 민주화도 이뤘으며 마침내 선진화에 이르고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일까. 진보 일각에서도 마치 박정희를 비판만 하면 낡은 진보, ‘꼴통 진보’ 따위로 매도하는 윤똑똑이들이 나타났다. 박정희가 이룬 경제성장을 인정해야 새로운 진보이고 수구좌파가 아니라는 논리는 사뭇 학문의 옷까지 걸치고 등장했다. 박정희가 일본제국주의에 혈서를 써 가며 충성을 맹세할 만큼 출세를 위해서라면 민족을 배신하길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도, 쿠테타 직후 〈민족일보〉 발행인 처형을 비롯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숱한 민주 인사들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범이었다는 사실도, 민주공화국 헌법을 유린하고 사실상 총통으로 군림하며 정수장학회니 육영재단, 영남대 재단 따위로 다른 사람 재산을 빼앗거나 축적한 사실도, 국가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 ‘채홍사’를 둘 만큼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는 증언도 죄다 중요하지 않다 ..  (9∼10쪽)


  빨래를 날마다 너덧 차례나 예닐곱 차례까지 합니다. 겨울철에는 하루 서너 차례 빨래로 마무리지었으나, 여름철에는 예닐곱 차례뿐 아니라 여덟아홉 차례 빨래를 할 때가 있습니다. 후끈후끈 무더운 날에는 아이도 어른도 옷을 자주 갈아입고 자주 씻기고 씻으면서 새삼스레 빨래를 합니다. 무더운 날에는 빨래도 잘 마르니 자주 빨아 바지런히 말립니다.


  때로는 빨래만 바지런히 하고, 옷 개기는 미적미적 미룹니다. 예쁘게 개어 옷장에 넣어도 워낙 빨리 옷을 버리고 갈아입으니 다른 일을 할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다른 집일에 마음을 쓰느라 그만 깜빡 잊곤 합니다. 요즈음에는 마당에서 빨래를 걷을 적에 아예 마당에서 선 채 빨래를 갭니다. 이렇게 개지 않으면 옷가지를 집안으로 들이고서 옷을 못 개리라 느껴요. 옷가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면 다른 집일이 나를 부르는 바람에 옷은 나중에 개도 되지, 하고 여기고 맙니다.


  바로 옆에 수북하게 쌓인 옷가지는 어서 개 달라고 부릅니다. 부러 못 본 척하지는 않으나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잠을 자 주는구나 싶습니다. 밤새 틈틈이 비가 오더니 아침 일곱 시 즈음에는 햇살이 노오랗게 비치고, 뒤꼍에서 매미가 노래합니다. 아침햇살은 나뭇잎과 풀잎 사이에 곱게 드리웁니다. 물기 머금은 흙은 보들보들 빛납니다. 더위는 한풀 꺾인 듯하다가도 쉬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직 팔월 한복판인걸요.


  어느 논자락에는 벌써 이삭이 맺히고 열매가 익습니다. 이삭 맺힌 논은 얼마 없지만, 남녘나라에서 많이 따사로운 전남 고흥 시골마을 논자락은 조금 더 일찍 노오란 들판으로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나뭇잎은 푸르고, 들판은 노오라며, 하늘은 파랗게 눈부실 때에, 이 빛깔 사이사이 하얗게 흐르는 구름이 있을 적에, 네 식구 천천히 들길을 거닐면서 두 팔을 스르르 듭니다. 맑은 빛을 맞아들입니다. 밝은 볕을 받아들입니다. 고운 숨결을 끌어안습니다.


  걸을 수 있어 들길을 걷습니다. 누울 수 있어 풀숲에 눕습니다. 달릴 수 있어 멧길을 낑낑거리며 달립니다.


  바람은 산들산들 붑니다. 빛살은 골고루 퍼집니다. 풀벌레는 곳곳에서 노래합니다. 이 모든 목숨붙이 사이에서 사람은 예쁜 생각을 틔웁니다.


.. 그들의 반발감은 ‘조중동 프레임’을 남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 확고해지기도 했다. 자신의 잘못을 생뚱맞게 조중동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적잖게 목격해 왔다 … 조중동 때문만으로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치 세력과 국민 사이에, 좁게는 진보정치 세력 내부에, 더 좁게는 바로 진보 개개인 내부에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 먹통은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다. 적잖은 진보도 먹통이다 … 문제는 아무리 대안 토론회를 열고 책을 출간해도 국민과의 소통이 막히는 데 있다. 대다수 언론이 대안을 담은 신간 소개조차 모르쇠다 … 진보를 내세운 언론도 진보세력이 내놓는 대안 보도에 인색한 데 있다 ..  (17, 30, 106쪽)


  손석춘 님이 쓴 자그마한 책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진보정치나 진보운동이 걸어온 길을 찬찬히 짚으면서, 옳은 넋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만히 그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국땅에서 나고 자란 젊은 넋이 바라던 옳은 길이란 무엇이었나 하고 밝힙니다. 한국땅에서 아이를 낳고 어버이나 어른이 될 젊거나 푸른 넋이 스스로 붙안을 만한 예쁜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 한국의 대다수 시민은 ‘노동자’라는 말을 부담스러워 한다. 이해할 수 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노사 관계를 비롯해 노동 교육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다 … 한국은 노동자라는 말은 물론, 노동운동이나 임금협상과 단체협상 그 모든 게 시민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나라다 … 진보정당의 분열상은 대서특필하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작 생활 현장에서 실제로 진보 대안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을 이해하기는 난감하다 ..  (22∼23, 25, 110쪽)


  누구한테나 들려줄 만한 말인데, 억척스레 살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힘을 내어 살아갈 때에 즐겁지, 억척스레 살며 즐거울 수 없습니다. 악을 쓰며 살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때에 기쁘지, 악을 쓰며 사는 동안 기쁠 수 없습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하루만에 훌쩍 다녀올 만한 길이라면, 자전거를 타면 이틀이나 사흘에 걸쳐 천천히 다녀올 만한 길입니다. 두 다리로 걷는다면 열흘이나 보름이 걸릴 만한 길일 수 있습니다.


  꼭 자가용을 몰아야 좋은 삶이 아닙니다. 자전거를 우악스레 빨리 몰아야 좋은 나들이가 아닙니다. 죽을 동 살 동 쉬잖고 걸어야 좋은 마실이 아닙니다.


  자가용 있어도 즐겁고, 자가용 없어도 즐겁습니다. 돈 넉넉히 있어도 즐거우며, 돈 얼마 없어도 즐겁습니다. 즐거움은 자가용이나 돈에 깃들지 않아요. 즐거움은 오직 내 마음에 깃들어요. 너른 마음에 깃드는 즐거움이에요. 착한 마음에 스미는 기쁨이에요. 맑은 마음에 찾아드는 웃음이에요. 고운 마음에 넘치는 사랑이에요.


.. 김대중이 군사독재 아래서 “경제성장의 열매는 이들과 결탁한 소수 특권층에 의해 거의 독점되어 왔으며 노동자·농민들은 성장의 결실 배분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어 왔다”고 주장했지만, 바로 그 노동자와 농민들이 갈망했던 ‘김대중 대통령’ 아래서도 경제성장의 열매는 소수 특권층이 독점했다 …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국가에서 국민 대다수가 억척스럽게 살아가면서도 얼마 안 되는 여가시간 대부분을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으로 보낸다. 케케묵은 바보상자론을 펴려는 게 아니다. 다만 차분히 토론해 볼 필요는 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드라마를 보았는가를. 드라마에 나오는 대기업 회장과 그 가족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  (76∼77, 123쪽)


  나는 진보가 더 좋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진보(進步)’를 한국말로 쉽게 풀자면 ‘나아짐’이나 ‘높아짐’이라 하는데, 한 마디로 ‘발돋움’이라 할 테지요. 한결 앞으로 나아가고 한결 슬기롭게 높아진다는 뜻일 테지요. 아무튼, 나아지거나 높아질 때에 아름다울 수 있지만, 나아지거나 높아진다는 뜻을 꼭 발돋움으로 따져야 하지는 않아요. ‘생활 진보’라 말할 것 없이, 오이꽃이나 수박꽃이나 호박꽃이나 수세미꽃을 보는 하루도 아름답고 즐거우며 놀랍습니다. 감꽃이나 벼꽃이나 매화꽃이나 딸기꽃이나 달맞이꽃이나 나팔꽃이나 오얏꽃을 보는 하루도 예쁘며 빛나고 훌륭합니다.


  진보정당일 때에 진보가 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삶이 아름다울 때에 ‘환하게 웃는 길로 나아간다’고 느껴요. 내가 웃고 네가 웃는 길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만화책 《도라에몽》에 나오는 ‘이슬이’는 ‘영민이’와 ‘진구’뿐 아니라 ‘퉁퉁이’와 ‘비실이’한테도 손수 구운 과자를 나눕니다. ‘도라에몽’과 ‘진구’는 ‘이슬이’뿐 아니라 ‘퉁퉁이’와 ‘비실이’도 불러 즐겁게 구름을 타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놀이를 즐깁니다.


  함께 나아가는 길이에요. 가을날 누렇게 익은 들판에서 거두는 벼는 이이한테만 먹이고 저이한테는 안 먹여도 되지 않아요. 골고루 나누는 사랑이자 꿈입니다. 다 함께 누리는 밥이자 삶입니다.


  이를테면, 무상급식을 하면 돈있는 집한테든 돈없는 집한테든 골고루 좋겠지요. 무상급식을 할 돈은 세금을 골고루 슬기롭게 거두면 되겠지요. 나는 100원을 벌기에 10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내 이웃은 10000원을 벌기에 1000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또는, 나는 10원을 벌기에 세금을 따로 내지 않습니다. 내 동무는 100000원을 벌기에 10000원이나 20000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흙을 조금 떠서 나릅니다. 힘센 어른들은 푸대에 흙을 잔뜩 담아 지게로 몇 섬씩 나릅니다. 그런데,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떡을 한 점씩 줍니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밥그릇 하나씩 베풉니다. 집에 아이가 있는 어른은 떡을 두 점 받거나 석 점 받습니다. 몸이 아파 드러누운 어른은 흙푸대를 한 섬도 안 날랐으나 떡과 밥을 똑같이 받습니다. 아기를 밴 어머니는 떡과 밥을 둘씩 받기도 합니다. 아기를 밴 어머니 또한 흙푸대는 한 섬도 안 날랐으나 떡과 밥은 외려 더 받는다 할 만합니다.


  너무 마땅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마땅한 이야기는 이쪽 신문을 읽으며 이쪽 생각을 하든 저쪽 신문을 읽으며 저쪽 생각을 하든 누구한테나 마땅하고 옳으며 똑같습니다. 귀여운 손자는 왼쪽 사람한테도 귀엽고 오른쪽 사람한테도 귀엽습니다. 우리 집 아픈 아이는 왼쪽 사람한테도 보살필 애틋한 아이요 오른쪽 사람한테도 보살필 애틋한 아이예요.


.. 무엇보다 진보가 할 일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에게 사람과 사회, 역사의 변화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진보운동을 시작했겠는가. 그 첫 마음을 소통해야 옳다 … 진보 대혁신의 출발점은 개개인의 자기성찰과 학습이다 ..  (97, 113쪽)


  우리 삶은 굳이 ‘진보’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진보’가 굳이 이 땅에 뿌리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착함·참다움·고움’ 이렇게 세 가지가 이 땅에 뿌리내리면 돼요. 누구한테나 착한 빛과 서로서로 참다운 꿈과 다 함께 고운 사랑이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으면 즐거워요.


  고운 아이한테도 미운 아이한테도 떡 한 점씩 나눕니다. 고운 이웃도 미운 이웃도 따로 없이, 저마다 논밭을 푸르게 일굽니다. 능금나무는 모든 사람한테 달콤한 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복숭아나무는 모든 아이들한테 달콤한 열매를 베풉니다. 포도나무는 모든 어른들한테 달콤한 열매를 선사합니다.


  정치이든 경제이든 문화이든 교육이든 예술이든, 또 집안일이든 집살림이든, 능금나무 같은 길을 걸어가면 좋으리라 느껴요. 복숭아나무처럼, 포도나무처럼, 또 볏포기처럼 배추처럼 무처럼, 누구한테나 맛나고 달콤하며 배부른 숨결을 불어넣는 예쁜 길을 걸어가면 참말 좋으리라 생각해요.
  삶을 배워야지요. 사랑을 얘기해야지요. 꿈을 이루어야지요. (4345.8.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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