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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어 - 물고기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삽니다
김수우 지음 / 심지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마음으로 읽는 책
[책읽기 삶읽기 117] 김수우·윤석정, 《百年魚》(심지,2009)
부산 중구 동광동4가 5-2번지 2층에 〈백년어서원〉이라 하는 책쉼터가 있습니다. 인터넷에도 작은 방(http://cafe.daum.net/100fish)이 있어요. 서울 못지않게 커다란 도시인 부산에는 사람도 많고 집도 많고 자동차도 많습니다. 어디를 가도 북적거리고, 어디를 가도 밤하늘 하얀 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큰길에 서면 자동차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골목에 서도 싱싱 달리는 자동차가 많아 아슬아슬합니다. 나뭇잎을 간질이는 바람결을 느끼면서 햇살을 누릴 만한 땅뙈기가 매우 모자라요. 풀잎을 춤추게 하는 바람무늬를 바라보면서 햇볕을 쬘 만한 터가 아주 작아요.
책쉼터 〈백년어서원〉은 도시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마음을 쉬고 몸을 달래면서 스스로 삶을 북돋우도록 돕는 자그마한 둥지 구실을 하지 싶어요. 이곳을 지키는 김수우 시인은 윤석정 님이 나무에 새긴 ‘나무물고기’마다 한 가지씩 이야기를 달아 《百年魚》(심지,2009)라 하는 책을 내놓았어요. 이 책은 여느 책방에서는 구경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책방에서도 품절이라고만 뜰 뿐, 장만하기 퍽 힘들어요. 그러나, 즐거이 다리품을 팔아 〈백년어서원〉에 찾아가면 이 책을 기쁘게 만나 읽을 수 있어요.
..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배경입니다. 가장 아득하고 가장 가깝습니다. 누구에게나 높이이면서도 깊이이고 동시에 넓이로 열립니다 … 참 지혜는 삶은 공평하다는 것을 믿는 마음이 아닌지 … 진실한 사람에겐 어떤 형태의 삶이라도 제값을 지니고 반짝입니다 .. (13, 23쪽)
〈백년어서원〉에서는 따순 차를 마실 수 있고, 책꽂이에 가득한 여러 책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책이야 도서관에도 있고 새책방에도 있습니다. 요즈음은 곳곳에 북카페가 많이 생겨서, 북카페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어요. 그러나 〈백년어서원〉이 갖춘 책은 다른 북카페하고 사뭇 다릅니다. 제법 큰 출판사에서 차리는 북카페하고도 퍽 다릅니다. 하나하나 알뜰히 사서 읽으며 그러모은 책들이 있는 〈백년어서원〉이기에, 이 책들을 건사한 사람 눈길을 함께 읽을 수 있어요. 시를 쓰는 김수우 님이라서 시집을 꽤 널리 살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김수우 님이라서 사진 담긴 책을 여러모로 쏠쏠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숨가쁜 도시에서 숨을 돌리도록 이끌고, 앞만 보느라 바쁜 도시에서 옆을 보도록 돕습니다.
더없이 마땅한데, 밭에서 김을 맬 적에 앞만 보며 김을 맬 수 없어요. 앞 뒤 옆을 골고루 살피며 알뜰히 김을 매야 합니다. 한쪽만 바라보면서는 흙일을 하지 못해요. 이곳저곳 골고루 돌아보는 눈썰미와 손길이 되어야 흙을 만질 수 있어요.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이들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멧골에서 나무나 풀을 만지는 이들도 이와 같아요.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셔요. 내 눈길 테두리에서만 별을 바라보지 않아요. 고개를 빙 돌리면서 온 하늘을 두루 살피며 별을 바라봐요. 한낮에 하늘을 올려다보셔요. 나는 내 눈으로 바라보이는 곳만 바라보지 않아요. 고개를 빙 돌리면서 온 하늘 구름을 보고, 저 먼 끝자락 파란빛까지 즐겁게 바라봐요.
.. 선행은 자연을 따르는 까닭에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음입니다. 그러나 선한 인연을 열매를 맺기 마련 … 주는 자는 늘 넉넉하고 제 것을 챙기는 자는 늘 모자라기 마련 .. (49, 57쪽)
오늘날은 새책방도 헌책방도 인터넷에 목록 띄운 가게가 많아, 집이나 일터에서도 손쉽게 책을 살 수 있어요. 머잖아 도서관에서도 인터넷으로 ‘빌릴 책’을 신청해서 집에서 받도록 할는지 몰라요. 아니, 종이책을 몽땅 전자책으로 바꿔서 집에서 셈틀을 켜면 느긋하게 화면으로 책을 읽도록 할는지 몰라요.
그런데 말예요, 사람들이 집이나 일터에서 셈틀을 켜며 ‘살피거나 찾는’ 눈길이랑 손길로 어떤 책을 살피거나 찾을 수 있을까요. 목록에 30만 권이나 50만 권이나 100만 권이 올랐다고 하는 인터넷책방에서 1만 권이나 10만 권쯤 목록을 죽 훑을 수 있나요. 다문 1000권이라도 훑고 나서 책을 사는가요.
몸을 움직이고 다리품을 팔아 책방으로 나들이를 가면, 그야말로 수많은 책을 손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살피거나 찾을 수 있어요. 목록만 뒤져서는 만날 수 없는 책을 골고루 만나면서 내 마음을 북돋아요. 목록으로 볼 때에는 알기 어렵던 책을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줄거리를 훑을 수 있어요.
값을 치러 책을 삽니다. 책방에 서서 넋이 사로잡히도록 읽은 책을 삽니다. 안 읽은 책을 살 수 없습니다. 책방에 나들이를 가서 ‘읽은’ 책을 사고, 읽은 책을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금 읽으며, 집에 닿아 새롭게 읽습니다.
한 번 읽고 덮은 뒤 다시는 안 들출 책이라면 살 까닭이 없습니다.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라야 살 까닭이 있습니다. 두고두고 읽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곱게 물려주고픈 마음이 드는 책이라야 살 만합니다. 나무를 베어 얻은 종이로 책을 짓는 까닭은 ‘더 많이 팔아치워 더 많이 돈을 벌자’는 뜻이 아니에요. 오래도록 알차게 건사해서 뒷사람한테 슬기롭게 물려주자는 뜻입니다.
.. 천천히 가면 얼마나 무수한 것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요 … 이름이 우리의 본질은 아니지만 이름을 통해 만나므로 내 이름도 당신 이름도 꽃잎보다 눈부십니다. 이름을 불러 관계하니, 이름은 곧 마음입니다 .. (93, 171쪽)
이야기책 《百年魚》를 읽습니다. 백 가지 나무물고기는 저마다 어떤 빛과 꿈과 사랑을 담았는가 곰곰이 생각합니다. 물고기 모양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품에 안았는가 생각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맑은 숨을 들이마시며 목숨을 잇는 나는 날마다 어떤 생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요. 나는 나한테 어떤 이름을 스스로 붙여 주었나요. 나도 내 어버이처럼 어버이가 된 뒤,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 주었나요.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어떤 어버이가 되어 어떤 아이들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 줄 만할까요.
.. 나는 손님이 아니라 주인인 것을 .. (213쪽)
누구나 하늘이요 누구나 땅입니다. 누구나 바다요 누구나 냇물입니다. 누구나 꽃이며 누구나 숲입니다.
마음을 열면 스스로 하늘이 되고 숲이 됩니다. 마음을 펼치면 누구나 서로를 넉넉히 끌어안는 바다가 되고 냇물이 됩니다. 시원한 바람이 됩니다. 해맑은 잎사귀가 됩니다. 어여쁜 노래 들려주는 풀벌레와 멧새가 됩니다.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슬기로운 마음을 아리따운 생각으로 돌보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두 다리로 이 땅을 씩씩하게 밟을 수 있기를 빌어요. 두 손으로 이웃과 동무하고 살가이 어깨를 겯고 걸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1.10.흙.ㅎㄲㅅㄱ)
― 百年魚 (김수우 글,윤석정 깎음,심지 펴냄,2009.3.31./11000원)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