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 [Maori]

 

요약
뉴질랜드의 원주민.

본문

폴리네시아계의 해양종족으로 유럽인의 내항() 전에는 20∼50만으로 추정되었다.

인구가 유럽인과의 접촉 이후 19세기 말에는 약 4만으로 격감하였으나,

현재는 20만까지 회복되어 뉴질랜드의 총인구 중 약 7.5 %를 차지하며,

말레이-폴리네시아 어족에 속한다.

뉴질랜드 차탐제도()의 원주민인 모리오리족( 모리오리는 1933년에 절멸)을

선주민의 한 파로 보고, 모리오리가 거대한 모아섬에서 수렵을 하였다고 해서

이를 ‘모아 헌터(Moa-Hunter)’라고 부르고 마오리족 이전의 선주민으로 간주하여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고고학적 조사가 진행되어

‘모아 헌터’를 마오리족의 조상으로 보게 되었다.

마오리족은 아마도 동부 폴리네시아소시에테제도에서 쿡제도를 경유하여

몇 차례에 걸쳐 건너왔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이주는 14세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오리족은 열대 폴리네시아의 고향에서 타로감자 ·얌감자 ·고구마 ·조롱박 등 4가지의 작물과

개를 가지고 들어왔다. 마오리족의 문화는 1769년 영국의 J.쿡 선장()이 이 섬에 도착할 때까지

고립된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해왔다.

이 무렵의 마오리족은 대부분이 북도()의 북반도()에 분포되어 땅을 파는 막대기와

호미 비슷한 일종의 삽만을 농구로 하여 원시적인 농경방법으로 주로 고구마를 재배하였다.

그들은 울타리를 만들거나 도랑을 파서 주위를 둘러싸고 ‘파’라고 하는 방어적인 취락에 거주하며,

대가족 단위 혈연 친족집단을 이루어 뚜렷한 신분적 계층분화로 귀족 ·평민 ·노예의 구별과

사회적 분업을 형성하였다. 특히 목조()를 비롯한 공예가 발달하였고,

그 결정이라 할 장려한 집회소가 있다. 또 녹석()을 가공하여

돌도끼나 티키 신상()을 만들고 장신구로도 사용한다. 아마()를 짜서 옷감으로 사용하고,

남자는 얼굴에 정교한 문신을 하며 귀[]의 장식도 정밀하다.

종교는 해신() ·삼림신() 등 다신교이며, 많은 터부가 있는 등 봉건적인 사회였으나,

현재는 근대문화에 적응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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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유교의 경전() 중 3경()의 하나인 《역경()》.
구분 경전
본문

단순히 《역()》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점복()을 위한 원전()과도 같은 것이며,

동시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을 물리치고 길운()을 잡느냐 하는 처세상의 지혜이며

나아가서는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하다. 주역()이란 글자 그대로 주()나라의 역()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나라 때의 연산역(), 은()나라의 귀장역()이라는

역서가 있었다고 한다. 역이란 말은 변역(), 즉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이 역에는 (이간)·변역·불역()의 세 가지 뜻이 있다.

이간이란 천지의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이며

이것은 단순하고 간편한 변화가 천지의 공덕임을 말한다.

변역이란 천지만물은 멈추어 있는 것 같으나 항상 변하고 바뀐다는 뜻으로

양()과 음()의 기운()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불역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그 변하는 것은 일정한 항구불변()의 법칙을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법칙 그 자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역》은 8괘()와 64괘, 그리고 괘사()·효사()·십익()으로 되어 있다.

작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왕필()은 복희씨()가 황허강[]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있는 도형()을 보고 계시()를 얻어 천문지리를 살피고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8괘를 만들고, 이것을 더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사마 천()은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문왕()이 64괘와 괘사·효사를 만들었다 하였고,

융마()는 괘사를 문왕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이, 십익은 공자()가 만들었다고 하여

그 정확한 작자를 밝혀낼 수가 없다.

역은 양()과 음()의 이원론()으로 이루어진다.

즉, 천지만물은 모두 양과 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약한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등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음 두 가지로 구분하고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원리이다.

달은 차면 다시 기울기 시작하고, 여름이 가면 다시 가을·겨울이 오는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그 원칙은 영원불변한 것이며, 이 원칙을 인간사에 적용시켜 비교·연구하면서 풀이한 것이 역이다.

태극()이 변하여 음 ·양으로, 음 ·양은 다시 변해 8괘,

즉 건()·태()·이()·진()·손()·감()·간()·곤() 괘가 되었다.

건은 하늘·부친·건강을 뜻하며, 태는 못[]·소녀·기쁨이며, 이는 불[]·중녀()·아름다움이며,

진은 우뢰·장남·움직임이며, 손은 바람·장녀, 감은 물·중남()·함정, 간은 산·소남()·그침,

곤은 땅·모친·순()을 뜻한다. 그러나 8괘만 가지고는 천지자연의 현상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이것을 변형하여 64괘를 만들고 거기에 괘사와 효사를 붙여 설명한 것이 바로 주역의 경문()이다.

한편 공자는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그 원글을 해석하고 이치를 밝힌 《십익》을 저술하였다.

십익이란 새의 날개처럼 돕는 열 가지라는 뜻으로, 즉 단전() 상·하편, 상전() 상·하편,

계사전() 상·하편, 문언전(설괘전()·서괘전()·잡괘전()이 그것이다.

《주역》은 유교의 경전 중에서도 특히 우주철학()을 논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일본·베트남 등의 유가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술의 원전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다.

  출처-네이버

 

 주역은 역시 너무 어려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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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유가()의 오경() 중 한 경전.
구분 경전
시대 중국 고대
본문

58편(). 상서()라고도 한다. 우서() ·하서() ·상서() ·주서() 등

당우() 3대에 걸친 중국 고대의 기록이다. 상서는 상고()의 책으로 숭상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삼왕()의 정권의 수수(), 정교() 등의 기록으로,

고대의 사적() 사실이나 사상을 아는 데 중요한 책이다.

당시의 사관() ·사신()이 기록한 것을 공자가 편찬했다고 한다.

당초에는 100편이었다고 하나, 진()나라의 시황제()의 분서()로 산일()된 후

한()나라의 문제() 때 복생()이 구승()한 것을 당시 통용되던 예서()로 베껴

《금문상서()》라고 한다. 그 후 경제() 때 노()나라의 공왕()이

공자의 구택()을 부수고 발견한 진()나라의 문자로 쓰인 것을 《고문상서()》라고 한다.

《고문상서》는 일찍 없어지고 현재는 동진()의 매색()이 원제()에게 바친

《위고문상서()》가 《금문상서()》와 함께 보급되었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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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춘추 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여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
구분 시집
본문

황허강[] 중류 주위안[] 지방의 시로서, 시대적으로는 주초()부터 춘추() 초기까지의 것 305편을 수록하고 있다. 본디 3,000여 편이었던 것을 공자()가 산정()했다고 한다.

국풍()·소아()·대아()·송()의 4부로 구성되며, 국풍은 여러 나라의 민요,

아()는 공식 연회에서 쓰는 의식가(), 송은 종묘의 제사에서 쓰는 악시()이다.

각부를 통하여 상고인()의 유유한 생활을 구가하는 시,

현실의 정치를 풍자하고 학정을 원망하는 시들이 많은데, 내용이 풍부하고,

문학사적 평가도 높으며, 상고의 사료()로서도 귀중하다.

원래는 사가소전()의 것이 있었으나 정현()이 주해를 붙인 후부터

 ‘모전()’만이 남았으며, 그때부터 《모시()》라고도 불렀다.

당대()에는 《오경정의()》의 하나가 되어 경전화하였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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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라이 [(시)]

 

요약
일본 봉건시대의 무사().

 

본문

가까이에서 모신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본래 귀인()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이를 경호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헤이안시대[] 이후 무사계급이 발달하여

셋칸케[ :섭정과 관백벼슬을 하는 가문]와

잉[] 등에서 경호를 위해 무사를 채용하게 되자,

점차 사무라이의 명칭이 무사 일반을 가리키게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법[]에서는 낭당()을 거느리고

기승()의 자격이 있는 무사를 일컬었고,

형벌도 낭당과 일반서민과는 구별되었다.

무로마치[]시대에 있어서도 대체로 상급무사를 지칭하였는데,

에도[]시대에는 사농공상()의 네 신분이 고정되어,

그 가운데 사()에 속하는 자를 일반적으로 이렇게 칭하였다.

그러나 무가사회 내부에서는 보다 엄격하게 이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막신() 중에서는 하타모토(:에도시대 직속으로 만석 이하의 무사)를

가리켰으며,  가치[]와 주겐[:무가의 고용인] 등의 하급무사와는 구별하였고,

제번()의 가신 중에서도 주고쇼[:무사 직위의 하나] 이상의 무사를

이렇게 간주하는 등, 무사 중에서도 비교적 상층계급을 사무라이라고 하였다.

또한 무가()를 주군()으로 섬기지 않는 특수한 사무라이로

궁가()에 봉사하는 미야사무라이[],

몬제키[:격이 높은 사원]에 봉사하는 데라사무라이[] 등이 있었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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