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가출했다 힘찬문고 41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한기상 옮김, 최정인 그림 / 우리교육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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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18



어버이는 고스란히 물려준다

― 언니가 가출했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글

 최정인 그림

 한기상 옮김

 우리교육 펴냄, 2007.1.19.



  어버이는 아이한테 고스란히 물려줍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즐거움도 물려주며, 아픔도 물려줍니다. 사랑도 물려주며, 슬픔도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을까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물려받고 싶을까요?


  주먹질이나 손찌검을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요? 주먹질이나 손찌검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고 싶은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입시지옥을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는 얼마나 되나요? 입시지옥을 물려받고 싶은 아이는 얼마나 되나요? 한편, 아파트를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는 얼마나 있지요? 아파트를 물려받고 싶은 아이는 얼마나 있지요?



.. 엄마는 몸을 돌려 언니에게 물었다. “그분들 지금은 조화 장미꽃 안 가지고 있니?” “관심 있으면 가서 직접 보시지 그래요!” … 언니는 죽은 모르모트를 안고 침대로 갔다. 그러고는 침대보 위에 눕혀 놓았다. 엄마는 책상 위에 서 있는 타트야나를 안아서 책상 의자에 앉히고는 피가 나는 손가락을 호호 불면서 중얼거렸다 … 저녁에 쿠르트 아저씨가 우리 방으로 왔다. 아저씨는 언니에게 모르모트를 새로 살 거냐고 물었다. “당신 아이들한테나 사 주시지요.” 언니는 아저씨에게 쏘아붙였다 ..  (9∼10, 21∼23, 24쪽)



  어릴 적부터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돈이 무척 많은 동무는 없었으나, 돈이 꽤 많은 동무는 있었습니다. 돈이 꽤 많은 동무는 그 아이가 바라는 장난감을 거의 다 장만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어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도 저 아이네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돈이 많기를 바라나?


  아니더군요.


  우리 어머니도 밥을 잘 하시지만, 동무네 어머니 가운데 밥을 놀랍도록 잘 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밥이나 반찬을 차려서 주시는 동무네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동무네 집에서 밥을 한 그릇 함께 먹으면서 생각했어요. 우리 어머니도 이런 밥과 반찬을 해 주기를 바라나? 우리 집에서 이런 것을 먹기를 바라나?


  아니더군요.


  내가 열네 살인가 열다섯 살에 우리 아버지가 처음으로 자가용을 장만합니다. 값이 비싸니 꽤 오랫동안 다달이 갚도록 하면서 장만합니다. 아버지는 네 식구를 태우고 두 시간 동안 마실을 다니기도 합니다. 동네에 자가용 있는 집이 얼마 없던 때인데, 아버지는 무척 자랑스레 여깁니다. 이때 나는 우리 집에 자가용이 있어 좋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더군요.



.. 언니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엄마가 모욕을 주듯 비웃으며 말했다. “먼저 우리 가족에 대한 약속과 의무부터 지켜 보지그래.” “도대체 내가 지켜야 할 의무가 뭔데요?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가족이라는 건 누구를 얘기하는 거죠?” … 관리인 할머니는 타트야나의 머리 너머로 나를 째려보았다. 마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되는 듯 쏘아보았다 … 할머니는 우물쭈물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쨌든 누가 거짓말한다는 걸 알아차리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 그리고 잘 돌봐 줘야만 하지.” ..  (39, 67, 81쪽)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돈이나 맛난 밥이나 자가용을 물려받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한테 돈이나 맛난 밥이나 자가용을 물려주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오직 하나, 사랑을 물려받기를 바랐습니다. 예나 이제나 똑같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한테도 오직 하나, 사랑을 물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과 함께 꿈을 물려받고 싶으며, 꿈을 물려주고 싶어요. 사랑과 꿈과 함께 이야기를 물려받고 싶으며, 이야기를 물려주고 싶어요. 사랑과 꿈과 이야기와 함께 숲집을 물려받고 싶으며, 숲집을 물려주고 싶어요.


  땅이나 집이 아닌 ‘숲집’입니다. 숲으로 이루어진 숲입니다. 숲을 이룬 집입니다. 넓거나 비싼 땅이나 집이 아닌, 숲으로 둘러싸인 집입니다. 언제나 아름답게 우거진 푸른 숲과 집입니다.



.. 나는 언니한테 여기에 남아 있어 달라고 말하려 했다. 안 그러면 난 완전히 혼자가 되니까 … “누나네 할머니 좋아? 누나네 할머니도 우리한테 할머니가 될 수 있어? 누나네 할머니도 할아버지 있어? 그 할아버지도 좋아?” 올리버가 물었다. 난 재채기를 했다. 그리고 계속 재채기를 하면서 몇 번이나 “그래, 그래.” 하고 대답했다 ..  (49, 153쪽)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님이 쓴 《언니가 가출했다》(우리교육,2007)를 읽습니다. 이녁은 이 작품을 1974년에 처음 선보였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마흔 해를 묵은 작품인데, 유럽에서도 마흔에 앞서까지 ‘가정폭력’과 ‘가정불화’가 대단했구나 싶습니다. 아마 오늘날에도 이러한 아픔과 슬픔은 모두 안 가셨지 싶습니다. 아이를 때리거나 다그치는 어버이가 많고, 아이를 괴롭히거나 윽박지르는 어버이가 많습니다. 게다가 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학교에서도 어른들은 아이를 다그치거나 윽박지르기 일쑤입니다. 요즈은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 아이를 때리는 일은 거의 수그러들었다 할 만하지만, 아이를 때리지 않아도 입시지옥이 있어요. 시험지옥이 있습니다. 여기에, 학원이 지옥처럼 도사립니다. 아이들은 마음 놓고 놀지 못하고, 아이들은 동무와 사이좋게 지내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열대여섯 살쯤 된다면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드디어 몸으로 옮길 만합니다. 그러면, 열대여섯 살짜리 아이는 집을 나가서 어디로 갈 만할까요? 우리 사회는 ‘집을 나간 아이’를 받아들일 만큼 너그럽거나 넉넉하거나 포근할까요? 현대 도시문명 사회는 모든 사람을 옥죄거나 윽박지르기에, 여느 집 어버이조차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때리지 않을까요?


  아이를 때리는 어버이도 마음에 생채기가 있습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생채기를 다스리지 못했으니 아이를 낳아도 사랑으로 보살피지 못합니다. 어버이부터 삶을 새롭게 찾아야 합니다. 즐거운 삶이 되어야 하고, 아름다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즐겁지도 못하고 아름답지도 못한 하루라면, 이러한 굴레에 갇힌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자리를 찾거나 셋집을 찾으면서 집을 나가는 삶이 아닌, 스스로 꿈을 세워서 가꿀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야기책 《언니가 가출했다》에서 ‘언니’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언니’가 집으로 돌아온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언니네 어머니도, 언니네 새아버지도, 언니네 새할머니도 모두 예전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이제 언니에 이어 동생도 머잖아 집을 나가겠지요. 머잖아 집을 나간 뒤 두 번 다시 그 집에 돌아가지 않겠지요. 사랑이 없는 집에서 뛰쳐나가겠지요.


  그런데, 사랑이 없는 집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된 ‘사랑 없이 자란 아이’가 아이를 낳을 적에는 어떤 삶이 흐를까요. 예전과 똑같은 가정폭력과 가정불화일까요, 아니면 이 아이들은 슬기롭게 거듭나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가꿀까요? 이야기책 《언니가 가출했다》에서는 이 대목을 못 건드립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책에서는 이 대목을 못 살폈다거나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거나 이 대목까지 마음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는지 모릅니다. 4347.10.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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