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다 그만둔 날 - 김사이 시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78
김사이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쓴다
[시를 노래하는 시 20] 김사이, 《반성하다 그만둔 날》


 

- 책이름 : 반성하다 그만둔 날
- 글 : 김사이
-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08.9.12.)
- 책값 : 7000원

 


  빨래기계를 올해에 처음으로 들이고는 이레쯤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다가, 한 달 즈음 바지런히 써 보았습니다. 아이들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수북하게 쌓이고, 날마다 신나게 빨래해야 하는 만큼, 빨래기계가 있으면 일손을 덜기에 좋습니다. 이불도 척척 빨아내고, 두꺼운 바지나 겉옷도 수월하게 빨아냅니다. 그런데 아이들 옷가지는 하루에도 때 되면 오줌바지에 똥기저귀에 땀에 절은 옷에 흙이 잔뜩 묻은 옷에 끝없이 나옵니다. 빨래기계는 이런저런 옷가지를 한데 그러모아 빨아 준다 할 텐데, 나는 밑빨래를 안 하고 빨래기계에 넣지 못합니다. 오줌 밴 옷가지랑 흙이 잔뜩 묻은 옷을 같이 빨지 못합니다. 물이 빠지는 옷이랑 물이 안 빠지는 옷을 나란히 빨 수 없습니다.


  빨래기계를 한 달 즈음 홀가분하게 쓰면서 저녁이 되면 다시 수북히 새로 쌓이는 빨래를 바라보다가 무엇인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비내리며 축축한 날에는 아침에 한 차례 빨래기계를 돌려서는 옷을 말리기 어렵습니다. 더운 여름을 맞이하니, 저녁에 몇 가지 빨래를 해 놓아 집안이 안 메마르도록 하고 싶습니다.


  빨래기계가 차지한 씻는방 한쪽에 어느새 쪼그리고 앉습니다. 나는 다시 손빨래를 합니다. 빨래기계를 날마다 쓸 때에 ‘가장 낮은’ 물높이로 빨래를 하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36분이 걸립니다. 내가 손으로 빨래할 때에 몇 분이 걸리나 시계로 잽니다. 12분. 조금 많으면 15분이나 20분. 빨래감이 많은 날은 빨래기계도 42분이나 45분. 그러니까, 빨래기계를 쓰면 시간이 곱배기보다 더 드는 셈입니다. 물도 훨씬 많이 쓸 테고 전기도 꽤 많이 쓸 테지요.


.. 햇볕이 타는 한낮 / 가리봉오거리 / 슬리퍼에 맨발로 / 술 취해서 돌아다니는 후줄근한 남자 / 시장 복판에서 한바탕 몸씨름과 입씨름을 하다가 / 여자에게 허리춤 잡혀 끌려가고 ..  (가리봉엘레지)


  처음부터 손으로 빨래를 하지 않았던 사람은 외려 빨래기계보다 더 오래 품을 들여 빨래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손빨래가 아직 안 익숙하다면, 빨래기계보다 물과 비누를 더욱 많이 쓰리라 생각합니다. 비빔질과 헹굼질은 날마다 꾸준히 빨래할 때에 척척 손에 감깁니다. 어느 만큼 빨고 짜서 널어야 하는가 하는 잣대는 따로 없습니다. 그예 몸으로 느낍니다.


  빨래하는 겨를을 시계로 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제 하루에 네 차례쯤 손빨래를 하는데, 빨래를 하면서 빨래가 무언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빨래하는 품을 빨래기계한테 맡기더라도 10분쯤은 몸과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손으로 빨래하고 빨래를 끝낼 만한 말미가 들어야 기계한테 일감을 맡기는 셈입니다.


  참말 기계를 쓴대서 집일이 줄어들까 아리송합니다. 오늘날 여느 사내(아저씨나 아버지)들은 빨래기계를 쓸 수 있어 가시내(아줌마나 어머니)들이 집일이 훨씬 줄어 홀가분할 뿐더러, 집에서 겨를을 많이 낼 만하다고 여겨 버릇하지 싶은데, 왜 이처럼 생각할까요. 스스로 집일을 해 보지 않았고, 스스로 빨래기계 같은 연장을 다뤄 보지 않았기에 이처럼 생각할까요. 빨래기계나 청소기를 비롯한 여러 연장을 쓸 때에 집일이 줄어든다면, 집에서 사내들이 이런 연장을 쓸 일이라고 느껴요. 그야말로 ‘힘이 안 드는’ 일이라 하면 사내들이 하면 돼요. 덧붙여, ‘힘이 드는’ 일이라 하면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서로 즐겁게 돕고 나누어 맡으면서 하면 돼요.


.. 아침이면 멀쩡하게 출근을 하고 슈퍼에 가고 산에도 가고 / 맑은 햇살에 눈 못 뜨는 나 같은 게 아니라 ..  (숨어 있기 좋은 방)


  아침에 멧풀을 흐르는 물로 헹구고 풀물을 짠 다음,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고, 곧장 식구들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떨며, 둘째 먹일 죽을 마련해 아이 꽁무니 좇으며 가까스로 한 그릇 다 먹입니다. 이렇게 하느라 아침이 얼마나 지나는가 하고 시계를 들여다 보며 헤아립니다. 풀물을 안 짜면 두 시간 즈음, 풀물을 짜면 세 시간 남짓, 이럭저럭 설거지를 끝내고 그릇을 마당에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키고, 또 이불을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면 네 시간 즈음, 여기에다가 방을 쓸고닦으며 이부자리 모두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고 기지개를 켜면 다섯 시간 남짓 지납니다. 아침 여덟 시부터 손에 물을 묻히니 어느 날은 열 시나 열한 시 즈음 한숨을 돌릴 만하지만, 으레 열두 시나 한 시가 되어야 겨우 한숨을 돌릴 만합니다. 어느 날은 두 시가 되어서 겨우 허리를 펴고 살짝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집일을 알뜰살뜰 예쁘게 건사하는가 하고 스스로 물으면 몹시 남우세스럽습니다. 어지른 책은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아이들은 갖고 논 놀잇감을 방바닥에 그대로 굴립니다. 뒷밭 쓰레기를 치우며 땅을 갈아엎는 일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다 마른 빨래를 미처 못 개고 쌓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설플 수 있나 싶으나, 이렇게 어설피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내가 어디에 마음을 쓰는지 골이 아프고, 내가 어떻게 사랑을 들여 살림을 돌보는지 골이 띵합니다.


  빨래를 하다가, 밥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뒷밭에 물을 주다가, 마당을 쓸다가, 잘 마르는 마늘을 뒤집다가, 빨래를 걷다가, 빨래를 개다가, 오줌바다 된 마루와 방바닥을 닦고 걸레를 빨다가, 비질을 하다가, 쌀을 씻어 안치다가, 또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다가, 나 스스로 어떤 말미와 겨를과 틈을 마련하여 아이들을 사랑하고 옆지기를 아끼는 삶을 누려야 할까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할 내 삶은 어떠한 길을까 헤아립니다.


.. 땅 끝에서 떠나온 곳 / … / 내 고향보다 더 허름한 빈민촌 같아 ..  (머물기 위해 떠나다)


  이른아침부터 손에 물을 묻히면 손에는 칼이나 걸레나 빗자루를 들밖에 없습니다. 연필도 볼펜도 책도 손에 들지 못합니다. 물이 묻은 손은 마를 새 없습니다. 새삼스레 다시 물을 묻히고, 한결같이 물내음 뱁니다. 물내 나는 손으로 아이 볼을 살살 꼬집다가 꼬질꼬질한 낯이나 손을 느끼면 아이를 씻깁니다. 엊저녁에는 둘째 아이 손톱에 까만 때가 낀 모습을 보고도 손톱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며 지나칩니다. 첫째 아이 손톱은 얼마쯤 또 길었을까요. 귀지는 어떠할까요. 둘째 아이는 언제쯤 귀지를 들여다보면 될까요. 아직 오줌가리기를 안 하려 하는 둘째 오줌바다 살림은 언제쯤 끝을 볼 수 있을까요. 둘째가 쓸 오줌그릇을 새로 장만해야 할까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문득 깨닫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품는 생각은 참으로 나 스스로 사랑하며 아끼면서 즐겁게 품는 생각인지, 하루하루 온갖 일에 끄달리거나 휘둘리면서 억지로 끄집는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하면 참 좋겠구나 하며 저절로 피우는 꽃생각일 때에 나부터 맑게 웃으며 하루가 즐겁겠지요. 저렇게 하며 참 기쁘겠구나 하며 홀가분하게 길어올리는 샘물생각일 때에 나 스스로 밝게 웃으며 하루가 환하겠지요.


.. 항암제 맞으면서 머리카락 홀랑 빠지고 나니 / 가발 찾는 아버지가 참으로 천연덕스럽다 /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묏자리까지 만들어놓고 / 애첩의 품에서 눈을 감을 아버지 / 행복하세요? ..  (애첩의 품에서)


  아이하고 들마실을 하거나 자전거마실을 하다가, 문득문득 느낍니다. 나도 좋고 아이도 좋다고 느낍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 이렇게 들마실이든 자전거마실이든 내 사랑스러운 어버이하고 오붓하게 얼크러지며 놀 수 있었으면 참말 기쁘며 아름다웠겠구나 싶습니다. 내 어린 날 내 어버이는 어린 나하고 이런 겨를을 누리지 못했을는지 모르는데, 그무렵 나와 내 어버이가 좋은 웃음을 누렸든 못 누렸든, 오늘 어버이로 살아가는 내가 우리 아이들이랑 옆지기하고 좋은 웃음을 누릴 수 있으면, 이 웃음꽃이 나와 아이들과 내 어버이한테까지 살몃살몃 스며들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사랑을 바라보며 사랑을 누려요. 빨래를 하건 밥을 하건, 내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꽃피워 예쁘게 누리는 하루가 되도록 다스릴 때에는, 언제나 사랑빨래이고 사랑밥이 돼요.


  하루 내내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으니,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짬이란 도무지 없다 싶습니다. 아주 빠듯합니다. 나는 틀림없이 집에서 종이책 읽기 아주 버겁습니다. 그런데, 종이책 아닌 다른 책은 늘 읽을 수 있어요. 아이책을 읽고 밥책을 읽으며 빨래책을 읽어요. 걸레책도 읽고 자장노래책도 읽습니다. 둘째 아이 걸음마책도 읽습니다. 내 손에서는 물기 마를 새뿐 아니라 둘째 아이 똥오줌 내음 가실 틈도 없습니다. 곧, 나는 오줌책이랑 똥책도 읽습니다. 뒷밭에 물 주러 갈 때면 밭책과 풀책을 읽습니다. 멧딸 따러 네 식구 노래하며 비탈밭 사이를 오를 때면, 이웃밭책과 들책과 딸책을 읽어요.


.. 한글도 다 못 읽는 여덟 살 아이는 붉은 노을이 어둠에 끌려갈 때 산자락 끝을 따라 언덕을 넘고 밭둑을 걸어 또 다른 언덕에 오른다 ..  (문)


  온누리 모든 삶은 책입니다. 내 삶도 책이고 네 삶도 책입니다.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가는 길도 책입니다. 군내버스 일꾼이 버스를 모는 매무새도 책입니다. 이웃마을 논밭을 바라보며 새삼스럽다 싶은 책을 읽습니다. 크고작은 돌로 비탈논과 비탈밭 이룬 모습 또한 남다르다 싶은 책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책을 읽습니다. 처마 밑 제비집 새끼 네 마리 몽땅 날갯짓 익힌다며, 오늘 새벽부터 이 녀석들 노랫소리 끊깁니다. 어디까지 날아가서 어떤 먹이를 찾고, 어미 제비한테서 어떤 꿈과 사랑을 물려받을까 궁금합니다. 나는 날마다 제비책을 읽습니다.


  늘 읽는 내 나무책이 종이에 담겨 온누리에 두루 펼쳐지는 일은 드뭅니다. 노상 읽는 내 아이책이 종이에 실려 지구별에 골고루 펼쳐지는 일은 드뭅니다. 내가 읽는 제비책이나 참새책이나 까마귀책이나 종달새책을 따로 동물도감이나 식물도감이나 무슨무슨 자연책이나 환경책에서 만난 적은 아직 없습니다. 들판에서 듣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담은 종이책이 있을까요. 저녁부터 깊은 새벽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문학으로 다시 빚는 글꾼이 있을까요.


.. 아랫집 할머니처럼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하며 / 보듬어주길 바란 적 없는데 / 부지깽이 들고 쫓아다니는 것이 화풀이란 것쯤 안다 ..  (바람의 딸)


  글을 씁니다. 새벽 다섯 시 제비 노랫소리와 함께 마을 이장님 새벽 방송 소리를 들으며 글을 씁니다. 시골마을에서는 새벽 다섯 시에 마을방송을 합니다. 도시에서 새벽 다섯 시에 ‘동네방송’을 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알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곤 합니다. 도시에서 새벽 다섯 시뿐 아니라 여섯 시 무렵에 이런저런 방송을 한다며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면 도시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합니다.


  글을 읽습니다. 나는 내 삶을 글 한 줄에 푼푼이 눌러담아 쓰고, 나는 내 이웃 삶 푼푼히 눌러담긴 글 한 줄 읽습니다. 나는 늘 내 삶을 내 가락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에 맞추어 글을 씁니다. 내 이웃은 이녁 삶을 이녁 가락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에 맞추어 글을 씁니다.


  더 빼어나다 싶은 글은 없습니다. 더 놀랍다 싶은 글도, 더 좋다 싶은 글도, 더 아름답다 싶은 글도 없습니다. 모든 삶은 저마다 빼어나고 놀라우며 좋고 아름답습니다. 모든 글은 다 다른 삶결대로 반갑고 흐뭇하며 기쁩니다.


.. 남자들의 철옹성 같은 연대에 / 홀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가 ..  (살갗으로부터 오는 긴장)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글로 씁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 삶을 이웃이 손수 쓴 글을 읽으며 예쁘게 나눕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넋한테 둘러싸여 하루를 맞이하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소리에 둘러싸입니다. 나는 내가 누리고 싶은 빛깔에 둘러싸입니다.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사랑에 둘러싸입니다.


  이제 시집 하나 손에 들고 잠자리에 눕습니다. 한 꼭지 두 꼭지 하품을 하며 읽습니다. 몸이 고단하니까 하품이 나옵니다. 하품을 누르고 졸음을 좇으며 시를 읽습니다. 한 줄 더 읽고 싶어 꾸벅꾸벅 졸며 읽습니다. 한 쪽 더 펼치고 싶어 책장을 손에 쥐다가 이 모습 그대로 잠듭니다. 퍼뜩 깨어 한 쪽을 더 읽기도 하고, 문득 깨다가는 책을 덮고는 그대로 더 쓰러진 채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하루는 흐르고, 하루는 새롭게 찾아옵니다. 하루는 저물고, 하루는 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 5월 연둣빛 나무 이파리를 보는데 / 휴대전화로, 그래 휴대폰으로 / 해고통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 해고사유는 ‘잡담’이다. /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 갈 필요도 없었다 / 눈만 뜨면 전쟁을 치르듯이 아이 맡기고 / 30분 일찍 전철에 구겨져가던 내 밥그릇 자리 / 그러나 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였고 / 비공식적으로 잘린 거다 ..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김사이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반성하다 그만둔 날》(실천문학사,2008)을 읽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김사이 님은 이녁 삶을 얼마나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생각할까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전라남도 고흥에서 살아가는데, 나처럼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로 찾아들어 아이들이랑 삶을 누리는 이웃은 이 나라에 몇 사람쯤 될까 궁금합니다. 으레, 김사이 님처럼 시골마을을 부리나케 떠나 도시로, 더 큰 도시로 찾아들어야 하는 굴레나 고리나 얼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힘들거나 가난하거나 슬프거나 아프던 시골집 허름한 살림보다 더 쪼그라들고 외로우며 벅찬 도시살이를 누리더라도, 이 도시를 벗어나 다른 시골마을 작은 집을 꿈꾸며 사랑을 빚기란 만만하지 않은 노릇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김사이 님은 왜 ‘뉘우쳐’야 하고, 왜 ‘뉘우치다가 이 뉘우치기를 그만두’어야 했을까요. 뉘우치기보다는 사랑하면 좋을 텐데요. 뉘우치기를 그만두기보다, 사랑을 오래오래 이으면 기쁠 텐데요.


.. 천 원 주고 산 물건이 십 년쯤 되었으니 / 비닐이 벗겨지고 앙증맞은 곰돌이딱지가 너덜너덜해졌다 ..  (곰팡이꽃)


  곰돌이 비누갑하고도 열 해를 살 수 있어요. 작은 앵두씨 하나 심어 열 해를 보살필 수 있어요. 오늘 하루 새 곰돌이 비누갑을 천 원 치러 장만할 수 있어요. 작은 앵두씨를 심기 벅차면 작은 앵두나무 한 그루 이천 원이나 삼천 원쯤에 장만할 수 있어요. 허름한 도시 작은 집에서 곰돌이 비누갑은 열 해를 함께 살며 곰팡이꽃을 피워요. 곰팡이꽃도 꽃이니 무척 소담스럽고 예뻐요. 허름한 도시 작은 집 어딘가에 빈터가 있으면, 꼭 내 삯집 아닌 이웃집 언저리이든 동네 골목 한 귀퉁이가 되든, 시멘트바닥이나 돌바닥을 한 뼘만큼 들어내고 작은 앵두나무 심어 알뜰살뜰 보살펴 열 해를 살아내어 나와 내 이웃 모두 한여름 바알간 앵두알 누릴 수 있어요.


  사랑하기에 좋은 삶이에요. 좋아하기에 사랑스러운 삶이에요. 살아가며 빛나는 나날이에요. 빛나기에 살아갈 만한 나날이에요. 김사이 님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이야기를 김사이 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풀어낼 시노래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4345.6.14.나무.ㅎㄲㅅㄱ)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2-06-15 10:20   좋아요 0 | URL
ㅎㅎ 빨래기계를 들여놓으셨군요^^

파란놀 2012-06-15 17:27   좋아요 0 | URL
아... 꽤 되었어요.
요새는 거의 안 쓰지만요 ^^;;;

책읽는나무 2012-06-16 06:16   좋아요 0 | URL
빨래기계가 있어도 손빨래는 계속 해야되는 것 맞아요.
청소기계가 있어도 손으로 걸레질 해야되는 것 맞아요.
편리한 기계들이 곁에 있어도 뒷마무리는 항상 손으로 해야 마무리가 되는 집안일은
정말 끝이 없기도 하고,집안일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집안일 하시는 모습 뵈면 어쩜 이리 공감이 가는지 참~~ㅋ

전 그동안 집안일을 하면서 참 힘들다~ 참 하기 싫다~ 참 끝없다~ 만 반복하며
투덜댔었던 것 같아요.헌데 님을 뵈면 집안일을 저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할 수도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아이들 아가때 눈을 떠 뒷바라지 해주고 숨 돌릴라치면 오후 한 시가 되었던 것같아요.
전 그때 아침 세수 잠깐 했었던 것같아요.너무 바쁠땐 저녁에 아침 세수를 하기도 했었구요.
집에 있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시간이 부족한지 좀 짜증이 많이 나던때이기도 했었어요.아이들 웃는 모습에 또 잠깐 애써 짜증을 잊곤 했었지만요.
지금 님의 모습 뵈면 그시절이 문득 생각이 나면서 왜 님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약간의 후회가 생겨요.^^
지금이라도 잘해야겠어요.또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요.^^

그시절 시간 없어 책을 읽지 않은 순간에 뭔가 헛헛하다 생각 많이 하곤 했었는데 님의 글을 읽고 보니 저도 저 나름대로 삶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로군요.
그부분이 가장 좋았어요.^^

파란놀 2012-06-16 13:43   좋아요 0 | URL
마음속 좋은 책을 누구나 즐겁게 느낄 수 있으면
가장 사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저씨'와 '젊은 사내'와 '푸른 아이들' 모두
이러한 삶과 사랑을 잘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비 바라보기 2

 


  새끼 제비가 새벽부터 일찌감치 날갯짓을 익히려 한다. 한 번은 날갯짓을 익히다가 그만, 상자에 쏙 들어갔다. 이런저런 짐을 치우다가 종이상자를 몇 섬돌 둘레에 뚜껑 열린 채 두었는데, 새끼 제비 하나가 종이상자에 빠진 채 헤어나오지 못한다. 어째 거기 들어갔니 하고 꺼내 주려 할 무렵 새끼 제비는 서툰 날갯짓 하며 겨우 빠져나온다. 오늘은 샤시문틀에 엉성하게 앉아 어미 제비를 짹짹 불러댄다. 하도 시끄럽게 울어대기에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내가 어미 제비라 하더라도 이런 엉성한 날갯짓에 앉음새라 한다면 무척 싫을 듯하다. 새끼 제비는 새끼 제비대로 어리벙벙한 채 엉성하게 앉고, 어미 제비는 얼른 제대로 앉거나 날아올라 다른 데에 앉으라며 둘레에서 날며 지저귄다. 새끼 제비는 한참 멀뚱멀뚱 고개만 돌리다가 겨우 서툰 날갯짓을 하며 빨랫대에 앉는다.


  그런데 6월 11일 이날까지 새끼 제비 네 마리 가운데 한 마리만 날갯짓을 익히고, 다른 세 마리는 둥지에 앉아 목만 내밀고 구경을 한다. 한 마리만 제대로 가르치려는 뜻일까. 한 마리씩 차근차근 가르치는 매무새일까. 암수 어미 두 제비가 새끼 제비 한 마리를 사이에 두고 이리 날고 저리 날면서 날갯짓을 몸소 보여주면서 가르친다. 앉음새와 깃털핥기도 먼저 보여주며 가르친다. 이 새끼 제비들은 이듬해부터 저희 어미 제비처럼 날렵한 몸매가 되고 익숙한 몸짓이 되어 온 하늘을 싱싱 날아다니겠지. (4345.6.13.물.ㅎㄲㅅㄱ)

 

 

 

 

 

 

 

 

 

 

 

 

 

(곧이어 제비 바라본 셋째와 넷째 이야기도... -_-;;;)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놀 2012-06-13 23:22   좋아요 0 | URL
헉... 내가 찍어 올리면서 사진을 다시 보다가...
다섯째 사진에서 '암놈 어미 제비'가
빨랫대에서 어디에 앉았나 하고 보니
아주... 놀랍군요 @.@

우째 조 끈 꼬투리 끝자락에 사뿐히 앉을 수 있담!
 

호미

 


호미 쥐고
굽은 허리에
뒷짐걸음

 

흙 묻은 양말로
천천히 걷다가
찻길 건너며
슬쩍
뒤를 보고는

 

커다란 버스
달리는 줄 깨닫고
놀라
종종걸음

 

한숨 쉬다가
밭으로 가는
할머니

아이들 같다.

 


4345.5.1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을 왜 읽어야 할까

 


  둘째 아이는 일찍 일어난다. 매우 일찍 일어난다. 첫째 아이를 어떻게 돌보며 살았는가 더듬으면, 첫째 아이는 둘째보다 한 시간 반 즈음 더 일찍 일어났다. 첫째 아이와 살던 곳은 인천 골목집이었고, 이때에는 내가 새벽에 일어나 셈틀을 켜고 글을 쓸라치면 셈틀 불빛이 방 한쪽을 비추어 아이가 일찍 깰밖에 없었으리라 느낀다. 둘째를 낳고 살아가는 시골집은 자그맣지만 칸이 알맞게 나뉘었기에, 옆방에서 셈틀을 켜면 불빛이 조금만 샌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법이라 하지 않는가. 게다가, 일찍 일어나는 둘째는 아주 고맙게 새벽 여섯 시 반이든 아침 일곱 시나 일곱 시 반이든 똥을 한 차례 푸지게 눈다. 이러고 나서 두 시간쯤 뒤 거듭 똥을 푸지게 눈다. 아이 둘과 살아가며 다섯 해째 아침마다 아이들 똥치우기를 하고 똥빨래를 하면서 보낸다. 내 손은 똥을 치우고 빨래하는 손이요, 이 똥내 나는 손으로 글을 쓴다.


  어제 홀로 순천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녀왔다. 두 아이를 데리고 가려 했으나 옆지기가 둘 다 놓고 가라 했다. 첫째 아이라도 데려가 책방 아이하고 놀게 해도 좋으리라 생각했지만, 두 아이를 떼어놓지 말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첫째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으나, 아침부터 밥을 안 먹고 개구지게 놀며 낮밥조차 제대로 안 먹으려 해서, 집에서 밥을 먹으라 하고 혼자 나왔다. 이리하여 나는 고흥버스역부터 시외버스를 거쳐 책방에 닿고, 다시 시외버스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버스역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책 한 권을 읽고, 시외버스로 나가는 길에 책 한 권을 읽으며,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을 읽는다. 헌책방에서는 책을 백 권 이백 권 삼백 권 …… 남짓 살피다가는 예순 권 즈음 장만했다.


  아이 둘을 떼어놓고 혼자 나들이를 한 적이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과 다니면 아이들 바라보고 챙기느라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 아이들과 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때에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아이 오줌기저귀를 갈고 똥바지를 빨며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아이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내 손에 빗자루를 들 때에 책을 나란히 들 수 없다. 이불을 털고 말리면서 책을 손에 쥐지 못한다. 아이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 몇 장 겨우 찍지만, 책을 펼치지 못한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그림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을 한 권이나마 기쁘게 펼칠 수 있었을까. 첫째 아이를 불러, 또는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책을 펼친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혀 준다고 말하지만, 막상 내가 읽고 싶으니까 그림책을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읽힌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그림책 하나 골라서 읽기도 한다. 나는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찬찬히 넘기며 즐긴다.


  그림책을 덮고 아이가 눈 오줌을 치운다. 빨래를 걷고 갠다.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이랑 살을 부비며 논다. 사람들은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책을 읽어서 무엇이 어떻게 좋아질까 헤아려 본다. 사람들은 책을 보배로 여기는가, 재산으로 삼는가, 자랑거리로 드러내는가, 좋은 벗으로 사귀는가, 반가운 스승으로 모시는가, 재미난 이야기로 느끼는가, 한 번 읽고 덮으면 끝이라 생각하는가.


  책을 책답게 사랑할 수 있으면, 이웃을 이웃답게 사랑할 수 있겠지. 그런데, 사람들이 먹는 쌀은 누가 지었을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을 때에 누구한테 표를 준 흙일꾼’이 지은 쌀을 ‘어떤 성향과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사다가 먹는가. 능금 한 알을 사다 먹는 사람 가운데 이 대목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숲길을 거닐며 나무 한 그루 누가 심었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른오징어를 뜯어먹으며, 이 오징어를 손질한 사람 정치빛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며 전철을 타면서, 이 탈거리를 모는 일꾼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하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까.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이 아이가 앞으로 왼쪽이 될는지 오른쪽이 될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젖을 먹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정치를 하건 문학을 하건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즐겁게 걸어갈 뿐이다. 책은 무엇이고, 책에 담는 생각은 무엇이며, 책으로 빚는 글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책을 왜 읽어야 하고, 책을 읽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면서 삶을 누리는가.


  두 아이가 서로 얼크러지며 논다. 한놈이 이리 달리면 한놈이 이리 좇는다. 한놈이 이리 뒹굴면 한놈이 이리 뒹군다. 한놈이 흙을 파헤치며 까르르 웃으면 한놈 또한 흙을 파헤치며 깍깍 웃는다. 가장 좋은 책은 내 곁에 있다. 가장 사랑스러운 책은 내 가슴에 품으면서 산다. (4345.6.13.물.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pourquoi28 2012-06-13 20:00   좋아요 0 | URL
어릴 때
책 읽어주는 사람 없이 자랐지요
어른이 되어서
내 아이한테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되었지요
지금은 학교에서 故事媽媽 되어
남의 아이들에게 ppt로 책 읽어주고 있어요
그건, 제가 그림책을 좋아하니까 즐겁게 보여주죠^^

파란놀 2012-06-13 20:07   좋아요 0 | URL
종이로 된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은 없었을는지 모르나,
삶으로 사랑을 들려준 분들은 많았으리라 믿어요.
이 힘이 있기에 오늘처럼 살아갈 수 있겠지요..
 

사진찍기
― 아이들은 어떤 이웃인가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감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글감이 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그림감이 있듯,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온 사랑과 믿음과 꿈을 담는 사진감이 있습니다.


  내 사진감은 ‘헌책방’입니다. 나는 1999년부터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헌책방을 처음 다닌 때는 1992년인데, 1998년 봄과 여름에 비로소 사진을 배우고서는 가끔 헌책방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다가, 1999년이 되어 내 삶을 들일 내 사진감은 헌책방으로 삼을 때에 가장 즐겁다고 깨달았습니다. 여섯 달 즈음 이곳도 찍고 저것도 찍으며 어느 사진감을 붙잡아야 할까 하고 살폈는데, 막상 나한테 가장 즐거운데다가 사랑스러운 사진감은 가장 가까이 있는 줄 뒤늦게 알아차렸어요.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도 내 사진감은 늘 헌책방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헌책방을 찾아갈 일은 아주 드물어, 몇 달에 한 번 나들이를 할까 말까 싶습니다. 그래도 나로서는 내 사진감이 헌책방이라 말합니다. 어제 모처럼 헌책방마실을 하며 사진기 두 대를 기쁘게 챙깁니다. 헌책방에 닿아 홀가분하게 책을 살피며 사진을 찍습니다. 오랜만에 왔으니 신나게 찍자고 생각하려는데, 사진기 단추를 얼마 안 누릅니다. 자주 다니며 자주 찍으면 나로서도 내 사진감을 한껏 북돋운다 할 텐데, 뜸하게 다니며 몇 장 못 찍으면 내 사진감을 이래저래 북돋우기 어렵다 할 텐데, 이 모습 저 모습 닥치는 대로 찍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시골집에서는 언제나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들과 마을 곳곳을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어느 결에 ‘아이들’이 내 새 사진감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아주 저절로 ‘골목길’이 내 새삼스러운 사진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를 돌이키고, 골목길을 사진으로 옮길 적을 헤아립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을 내 가장 좋은 사랑을 기울여 사진으로 빚습니다. 아이들 사진을 함부로 찍지 못합니다. 우리 집 아이라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찍을 수 없습니다. 더 살피고 더 헤아리며 더 아끼는 손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내 보금자리 깃들던 골목동네 또한 이 삶터를 사랑하며 좋아하는 눈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길을 추억이나 개발이나 소외나 변두리 같은 이름표를 붙이며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내 꿈을 즐겁게 이루는 좋은 벗으로 여기는 사진감입니다.


  문득 아이를 바라봅니다. 시골마을 어디에나 흔하게 피고 지는 들꽃을 한손 가득 꺾어 손에 쥐고 놉니다. 다섯 살 아이는 묻습니다. “나는 왜 꽃을 좋아해요?” 이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에는 어떤 말을 물을까 궁금합니다. 열다섯 살이 되고 스물다섯 살이 되면 또 어떤 말을 물을까 궁금합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는 늘 아이 곁에서 아이를 사랑스레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다면, 걱정할 일도 근심할 까닭도 없겠지요. 나는 늘 내 가장 빛나는 사랑으로 우리 집 빛나는 아이 삶빛을 사진으로 옮길 테고, 드문드문 헌책방마실을 하더라도 내 가장 반가운 웃음으로 내 더없이 아름다운 헌책방 책시렁을 사진으로 아로새길 테지요. (4345.6.13.물.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pourquoi28 2012-06-1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여쁩니다~
맑고 밝고 따스한 기운이 저에게로 스며듭니다..^^

파란놀 2012-06-13 23:23   좋아요 0 | URL
모든 아이들은 모두 어여쁜데,
너무 많은 어버이들은
이녁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 줄을 잘 모르는 듯해요.
가만히 바라보면
날마다 얼마나 놀라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