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은 갔고,
한글날이 갔으니,
그저 한 해 내내 헤아릴 말글살림 이야기를
옮겨 본다.
.
.
마음·말·마실
― 마음을 담은 말을 나누는 마실길
마음이 있기에 말을 나누며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마음이 없기에 말이 끊기고 막히며 담을 세웁니다. 마음을 쓰면서 말 한 마디를 말씨앗으로 삼습니다. 마음을 안 쓰기에 말빛이 없는 채 꾸밈말을 합니다. 마음을 일으키면서 말씨 한 톨을 맺고, 말씨 한 톨을 새삼스레 마음에 심으면서 마음이 바다처럼 일렁입니다.
어떻게 말하고 글쓰기 스스로를 사랑할까요? ‘나’라는 빛을 차분히 바라보는 하루를 살면서, ‘너’라는 이웃빛을 차근차근 알아보는 오늘이면, 누구나 스스로 짓는 살림길을 돌아보면서 어느새 샘물처럼 솟는 맑고 밝은 생각이 싹트고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 + 너 = 우리’라고 하는 길을 배우고 익히는 이 삶을 누립니다. 내가 나부터 나로서 설 적에, 네가 너부터 너로서 서는 길을 알아봅니다. 내가 나로서 나답게 눈을 뜰 적에, 네가 너로서 너답게 눈을 뜨는구나 하고 마주봅니다. 이러는 사이에 서로 새롭게 한마음을 이루는 하늘(하나·하양)이라는 빛을 느끼고 품어요. ‘하늘’은 “하나인 우리”를 나타내고, ‘하나’는 “하늘인 나”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손수 살림을 가꾸는 마음을 그저 수수하게 담고 나누면 됩니다. ‘어렵게’ 말하려고 꾸미기보다는, 몸소 살아가며 돌보는 숨결을 그저 스스럼없이 얹고 주고받으면 됩니다. 쉽게 쓰려고 하기에 말글이 쉽지 않습니다만, 어렵게 쓰려고 할수록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지 못 합니다.
보여주거나 알리거나 자랑하려는 말글을 삼갈 적에 스스로 빛납니다. ‘내 하루’를 내 손으로 밝히면서, ‘네 하루’를 내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 하루’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잇기에 ‘이야기’가 깨어납니다. 내 하루를 들려주고 네 하루를 듣는 사이에 서로 북돋우기에 ‘이야기’가 자랍니다. ‘이야기 = 잇는 말·마음·길’이거든요.
‘마음소리’인 ‘말’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리’면서 나타내는 ‘글’로 옮기며, ‘노래(시)를 문득 느낄 만합니다. 모든 말은 ‘물’처럼 흐릅니다. 물은 그냥 흐르지 않고 소리와 가락을 이루면서 흐르는데, 이러한 ‘물줄기’처럼 말에는 ‘말줄기’가 있습니다. 물소리가 “물로 일으키는 소릿가락”이라만, 말소리는 “말로 일으키는 노랫가락”입니다. 서로 마음을 틔워서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는, 마음과 마음이 말과 말로 흐르게 마련이라서, 이렇게 흐르는 말소리·말가락을 가다듬어서 글로 추스를 적에 저절로 ‘노래(시)’로 피어납니다.
잘 쓰려는 글이나 노래가 아닌, 잘 펴려는 말이나 이야기가 아닌, 오늘까지 살아오며 헤아린 마음을 나누어 봅니다. 우리 말이 언제나 ‘마음노래’라는 대목을 느끼고 헤아리면서 들려주고 듣습니다.
‘낱말’ 하나를 문득 받아서 조그마한 종이에 단출하게 적어 보면, 이 짤막한 글줄은 어느덧 ‘쪽노래(단시)’ 한 바닥으로 거듭납니다. 처음부터 애써서 ‘시’를 쓰려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하루를 살아내면서 어떤 눈길로 어떤 살림을 지은 발걸음인지 되새기면서, 이러한 나날을 가만히 말과 글로 담아내는 사이에 시나브로 돋아나는 노래(시)입니다.
낱말 하나에 얽힌 ‘말밑·말뜻·말결·말씨·말느낌·말빛’을 가만히 헤아려 보는 틈을 낸다면, 여태까지 쓴 말마다 어떤 숨빛이 스몄는지 돌아볼 만합니다. 마음을 그리는 소리인 말이면서, 말을 펴면서 마음을 새롭게 북돋우고 가꿉니다. 마음을 소리로 들려주는 말인데, 말을 새록새록 들려주고 듣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 삶을 밝히는 ‘이야기’를 이루니, 이야기밭을 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이야기씨를 심으면서 이야기별을 바라보는 자리를 누립니다.
함께 말을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나누어 봐요. 서로 오가는 말을 헤아리면서 가만히 글을 써 봐요. 우리가 주고받는 마음을 그리는 말 한 마디롤 손끝으로 종이에 사각사각 옮기면, 어느새 노래(시)라는 열매 한 알을 얻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