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빛꽃 / 사진비평 2025.10.2.
사진책시렁 171
《Women War Photographers : From Lee Miller to Anja Niedringhaus》
Anne-marie Beckmann·Felicity Korn 엮음
Prestel Publishing
2019.첫/2020.2벌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사랑이라면, 찰칵 담거나 안 담거나, 언제까지나 푸르게 빛나는 오늘 모습을 서로 마음에 담는다고 느껴요. 찰칵 찍지 않더라도 서로 함께 살아온 나날을 언제라도 고스란히 마음으로 떠올리는구나 싶습니다. 이와 달리 사랑을 잊은 채 찰칵찰칵 찍어대기만 한다면, 수두룩하게 찍거나 해마다 꾸준히 담더라도 마음에는 하나조차 안 남아서 못 떠올리는구나 싶습니다.
아이를 아직 낳기 앞서, 또 곁님을 만나기 앞서, “나중에 내가 짝을 맺고 아이를 낳으면, 우리집 살림살이를 어떻게 찍거나 담아야 스스로 사랑으로 빛나면서 아름다울까?” 하고 한참 생각하고 곱씹고 헤아려 보았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거나 지내거나 어울리면서 ‘어버이 여든, 아이 예순’이라는 나이에 이르도록 해마다 같은 곳에서 얼굴빛을 담은 일본사람과 하늬사람을 보았는데, 어쩐지 영 제 마음에는 안 와닿았습니다. 두 사람(사진가)은 ‘사진기록’은 했구나 싶되, ‘늙어가는 주름살’을 담았을 뿐, ‘어버이와 아이로서 어울린 사랑’은 못 담았더군요.
우리는 해마다 손을 찍을 수 있습니다. 발바닥을 찍을 수 있습니다.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찍을 수 있습니다. 손글씨를 찍거나 밥자리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늘 다르면서 새롭게 찍을 수 있습니다. 아기를 갓 나을 무렵에는 어버이가 차리고 젖을 물리는 모습을 담을 만하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손수 수저를 쥔 모습을 담을 만하고, 아이가 무럭무럭 크면서 부엌일을 거들고 손수 밥을 차리는 나날을 담을 만합니다. 우리는 “담에 몸을 붙이고 얼굴만 새기”는 ‘죄수 사진기록’을 굳이 남겨야 하지 않습니다. 싱그럽게 살아숨쉬는 길을 스스로 누리고 나누고 노래하면서 문득 담으면 넉넉합니다.
글감을 잘 뽑거나 골라야 글이 빛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담아내야지요. 이야기에 삶·살림·사랑을 숲빛으로 풀어내고 품어야지요. 오늘을 살아가고, 어제를 살아냈고, 모레를 그리는 나날을 적어야지요. 삶만 적는대서 글이지 않습니다. 살림만 보여준대서 글이지 않습니다. 삶과 살림이 사랑으로 어울리면서 시나브로 푸른숲과 푸른들과 파란하늘과 파란바다를 고루 담는 숨결이 흐르기에 글이 빛나고 그림이 빛납니다.
그림감을 잘 뽑거나 빛감(사진소재)을 잘 골라야 그림이나 빛이 아름답지 않아요. 무엇을 어떻게 쓰거나 그리거나 찍어야 한다는 틀(방법·표현법)은 아예 없습니다. 글길(문장작법)조차 아예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맞춤길과 띄어쓰기를 따박따박 맞춰야 하지 않습니다. 찰칵찰칵 찍으면서 안 흔들려야 하거나 결(색조·콘트라스트)을 꼭 맞춰야 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르게 쓰고 그리고 찍는 동안 다 다르게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다만, 다 다른 나와 너와 우리로서, 다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흐를 적에만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그저 오늘 이곳에서 사랑으로 노래한 눈물과 웃음을 고스란히 쓰거나 그리거나 찍어 보기를 바라요. 눈물웃음이 나란하게 피어나는 꽃을 느껴서 담아내기에 ‘글(문학)’이고 ‘그림(문화)’이고 ‘빛(예술)’입니다. 시늉은 시늉입니다. 흉내는 흉내입니다. 척과 체는 척과 체입니다. ‘사진시늉’과 ‘예술흉내’란 그저 덧없습니다. ‘사진인 척’할 까닭이 없습니다. ‘예술가인 체’한다면 그야말로 안쓰럽습니다.
이렇게 써야 노래(시)가 되지 않습니다. 저렇게 써야 글(소설)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노래요 글이라는 길은, 내가 나로서 나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품는 하루를 스스로 배우면서 너랑 나누는 눈빛을 담아내는 살림자락입니다. 어느 누구도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나 사진찍기를 못 가르치고 못 배웁니다. 누구나 스스로 이 삶에서 묻어나는 하루를 저희 손끝으로 가꾸고 달라면서 꽃피울 뿐입니다.
《Women War Photographers : From Lee Miller to Anja Niedringhaus》 같은 책이 있습니다. 빛돌이(남성 사진작가)가 아닌 빛순이(여성 사진작가)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그런데 이 책을 가만히 펴면, 빛순이라서 빛돌이가 못 보거나 못 담은 모습을 알아보거나 지켜보거나 살펴보거나 들여다보면서 담아내지 않습니다. 싸움짓이 얼마나 바보짓인지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빛순이나 빛돌이 누가 다가가서 찍어도 ‘나란’합니다. 싸움짓이 얼뜨기짓인 줄 못 알아본다면, 빛돌이 아닌 빛순이가 찰칵찰칵 찍어도 겉치레로 그칩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