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왜 읽어야 할까
둘째 아이는 일찍 일어난다. 매우 일찍 일어난다. 첫째 아이를 어떻게 돌보며 살았는가 더듬으면, 첫째 아이는 둘째보다 한 시간 반 즈음 더 일찍 일어났다. 첫째 아이와 살던 곳은 인천 골목집이었고, 이때에는 내가 새벽에 일어나 셈틀을 켜고 글을 쓸라치면 셈틀 불빛이 방 한쪽을 비추어 아이가 일찍 깰밖에 없었으리라 느낀다. 둘째를 낳고 살아가는 시골집은 자그맣지만 칸이 알맞게 나뉘었기에, 옆방에서 셈틀을 켜면 불빛이 조금만 샌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법이라 하지 않는가. 게다가, 일찍 일어나는 둘째는 아주 고맙게 새벽 여섯 시 반이든 아침 일곱 시나 일곱 시 반이든 똥을 한 차례 푸지게 눈다. 이러고 나서 두 시간쯤 뒤 거듭 똥을 푸지게 눈다. 아이 둘과 살아가며 다섯 해째 아침마다 아이들 똥치우기를 하고 똥빨래를 하면서 보낸다. 내 손은 똥을 치우고 빨래하는 손이요, 이 똥내 나는 손으로 글을 쓴다.
어제 홀로 순천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녀왔다. 두 아이를 데리고 가려 했으나 옆지기가 둘 다 놓고 가라 했다. 첫째 아이라도 데려가 책방 아이하고 놀게 해도 좋으리라 생각했지만, 두 아이를 떼어놓지 말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첫째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으나, 아침부터 밥을 안 먹고 개구지게 놀며 낮밥조차 제대로 안 먹으려 해서, 집에서 밥을 먹으라 하고 혼자 나왔다. 이리하여 나는 고흥버스역부터 시외버스를 거쳐 책방에 닿고, 다시 시외버스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버스역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책 한 권을 읽고, 시외버스로 나가는 길에 책 한 권을 읽으며,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을 읽는다. 헌책방에서는 책을 백 권 이백 권 삼백 권 …… 남짓 살피다가는 예순 권 즈음 장만했다.
아이 둘을 떼어놓고 혼자 나들이를 한 적이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과 다니면 아이들 바라보고 챙기느라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 아이들과 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때에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아이 오줌기저귀를 갈고 똥바지를 빨며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아이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내 손에 빗자루를 들 때에 책을 나란히 들 수 없다. 이불을 털고 말리면서 책을 손에 쥐지 못한다. 아이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 몇 장 겨우 찍지만, 책을 펼치지 못한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그림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을 한 권이나마 기쁘게 펼칠 수 있었을까. 첫째 아이를 불러, 또는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책을 펼친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혀 준다고 말하지만, 막상 내가 읽고 싶으니까 그림책을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읽힌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그림책 하나 골라서 읽기도 한다. 나는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찬찬히 넘기며 즐긴다.
그림책을 덮고 아이가 눈 오줌을 치운다. 빨래를 걷고 갠다.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이랑 살을 부비며 논다. 사람들은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책을 읽어서 무엇이 어떻게 좋아질까 헤아려 본다. 사람들은 책을 보배로 여기는가, 재산으로 삼는가, 자랑거리로 드러내는가, 좋은 벗으로 사귀는가, 반가운 스승으로 모시는가, 재미난 이야기로 느끼는가, 한 번 읽고 덮으면 끝이라 생각하는가.
책을 책답게 사랑할 수 있으면, 이웃을 이웃답게 사랑할 수 있겠지. 그런데, 사람들이 먹는 쌀은 누가 지었을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을 때에 누구한테 표를 준 흙일꾼’이 지은 쌀을 ‘어떤 성향과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사다가 먹는가. 능금 한 알을 사다 먹는 사람 가운데 이 대목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숲길을 거닐며 나무 한 그루 누가 심었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른오징어를 뜯어먹으며, 이 오징어를 손질한 사람 정치빛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며 전철을 타면서, 이 탈거리를 모는 일꾼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하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까.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이 아이가 앞으로 왼쪽이 될는지 오른쪽이 될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젖을 먹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정치를 하건 문학을 하건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즐겁게 걸어갈 뿐이다. 책은 무엇이고, 책에 담는 생각은 무엇이며, 책으로 빚는 글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책을 왜 읽어야 하고, 책을 읽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면서 삶을 누리는가.
두 아이가 서로 얼크러지며 논다. 한놈이 이리 달리면 한놈이 이리 좇는다. 한놈이 이리 뒹굴면 한놈이 이리 뒹군다. 한놈이 흙을 파헤치며 까르르 웃으면 한놈 또한 흙을 파헤치며 깍깍 웃는다. 가장 좋은 책은 내 곁에 있다. 가장 사랑스러운 책은 내 가슴에 품으면서 산다. (4345.6.13.물.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