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찬앓이와 할머니 (2024.7.25.)

― 부산 〈책과 아이들〉



  한여름 끝자락에 사흘째 찬앓이(냉방병)로 끙끙거립니다. 이런 몸으로 용케 고흥에서 부산으로 시외버스를 달리고, 큰가게에 들러서 과일물과 복숭아와 소젖을 장만하고서 전철을 달려 〈책과 아이들〉까지 닿습니다. 갈수록 여름에 찬바람을 벗어날 길이 사라집니다. 시골집에서는 땀을 실컷 흘리고서 샘물로 씻으면 어느새 더위가 식는데, 시골버스만 타더라도 소름이 돋도록 춥고, 시골가게에서도 또 큰고장으로 옮기는 시외버스에서도 으레 다시 소름이 돋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찬앓이’라는 이름을 잊는지, 어디서나 더 차갑게 펑펑 틀어댑니다.


  저녁에 ‘동심읽기’ 모임을 꾸리면서 그림책 《말론 할머니》하고 《닉 아저씨와 뜨개질》하고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하고 《왜요?》를 나란히 놓고서 이야기를 폅니다. 하늘길을 누구랑 나란히 걸어가는지 돌아봅니다. 이 삶에 동무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헤아립니다. 스스로 즐겁게 놀이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봅니다. 언제나 우리 스스로 묻기에 스스로 길을 알아냅니다.


  더 많은 아이들하고 함께해도 즐거울 테지요. 얼굴을 하나하나 마주보면서 몇몇 아이하고 함께해도 즐거울 테고요. 어느 곳에서든 ‘마음나눔자리’라고 느낍니다. 언제나 ‘생각나눔마당’이라고도 느껴요.


  책집이란, 모든 책이 드나들고 만나듯, 모든 사람이 드나들며 어울리는 터전인, 바로 마을이자 숲이자 배움터라고 느낍니다. 굳이 ‘학교·비학교(언스쿨링)’로 금을 긋거나 어렵게 말하기보다는 ‘우리집 배움터’를 바탕으로 ‘우리마을 배움터’에 ‘우리책숲 배움터’로 차근차근 바라보면 넉넉하다고 느껴요. 굳이 일본말로 ‘자기주도’라 하기보다는 ‘스스로’ 하는 길을 헤아리면, 언제 어디에서나 다 다른 새길이 피어난다고 봅니다.


  이리하여 혼잣말로도, 아이들하고 밥을 먹다가도 “언제나 고맙습니다.” 하고 한마디를 읊습니다. 엊저녁부터 오늘밤을 거쳐 이튿날 새벽까지 그야말로 골골대며 잘 누워서 찬앓이를 풀어내 봅니다. 큰고장 이웃님을 마주하려면 찬앓이를 바라보고서 여름땀을 들여다볼 노릇이지 싶습니다. 시골에 있는 이웃님하고도 나무바람을 쐬자고, 나무를 더욱 심고 가꾸자고, 새가 새똥으로 나무를 심으면 반갑게 보살피자고 이야기합니다.


  머나먼 모레에는 말론 할머니마냥 숲이웃하고 환하게 피어나면 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는 풀꽃나무를 품는 푸른 손끝으로 집살림을 일구면 됩니다. 오늘까지 살아낸 어제는 기쁘게 되새기고 되짚으면서 이야기 한 자락을 쓰면 됩니다.


ㅍㄹㄴ


《말론 할머니》(엘리너 파전 글·에드워드 아디조니 그림/강무홍 옮김, 비룡소, 1999.1.22.)

《닉 아저씨와 뜨개질》(마가렛 와일드 글·디 헉슬리 그림/창작집단 바리 옮김, 중앙출판사, 2002.4.10.)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일론 비클란드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4.6.30.첫/2020.6.10.4벌)

《왜요?》(린제이 캠프 글·토니 로스 그림/바리 옮김, 베틀북, 2002.10.15.첫/2014.3.20.13벌)

#Why? #LindsayCamp #TonyRoss

《꼬마 삼보 이야기》(허문선 글·홍성지 그림, 계림닷컴, 2004.1.15.첫/2007.3.30.11벌)

#TheStoryofLittleBlackSambo #HelenBannerman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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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06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남 고흥에서 부산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는지 궁금하네요.없다면 아프신 중에도 몇 번씩 버스를 갈아타셨을 것 같아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네요.
저도 예전에 영월에서 서산까지 간 적이 있는데 직선 거리는 얼마 안되는데 영월에서 대전 대전에서 서산가는 시외 버스를 두번 갈아 탔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곳을 들르다 보니 한 8시간 버스를 탄 기억이 납니다.

파란놀 2025-09-22 08:53   좋아요 0 | URL
하루에 석 걸음 있습니다.
고흥과 부산 사이로 터전을 옮긴 분이
꽤 많으신 듯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