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물든 미국말
 (657) 소울 푸드(soul food)

 

울퉁불퉁 못생긴 그 주먹밥이 제일 맛있었다며 주먹밥을 자신의 소울 푸드라고 말한다. 나의 소울 푸드는 무엇일까
《하성란-왈왈》(아우라,2010) 33쪽

 

  ‘제일(第一)’은 ‘가장’이나 ‘무엇보다’나 ‘매우’나 ‘무척’으로 다듬을 수 있어요. ‘자신(自身)의’는 ‘자신한테’나 ‘자신으로서는’로 손보거나 ‘이녁한테’나 ‘스스로한테’로 손봅니다. ‘나의’는 ‘내’로 바로잡습니다.


  ‘소울(soul)’은 영어입니다. 국어사전에 나올 까닭이 없습니다. “영혼, 마음, 정신”을 뜻한다고 합니다. ‘푸드(food)’ 또한 영어입니다. 국어사전에 나올 일이 없습니다. “식량, 음식, 식품, 먹이”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영혼(靈魂)’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죽은 사람 넋”을 뜻한다고 나와요. ‘식량(食糧)’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양식(糧食)’과 같은 낱말이라 나오고, 다시 ‘양식’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를 뜻한다고 나와요.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영어사전 뜻풀이에 ‘넋’이라는 한국말이 안 실립니다. ‘먹을거리’라는 한국말 또한 안 실립니다. 더 헤아리면, 영어사전 뜻풀이에 ‘넋’뿐 아니라 ‘얼’도 안 실리고, ‘먹을거리’뿐 아니라 ‘밥’도 안 실려요.

 

 소울 푸드
→ 마음에 남는 밥
→ 가슴에 아로새긴 밥
→ 마음으로 먹는 밥
→ 가슴을 어루만지는 밥
 …

 

  예부터 퍽 많은 이들이 ‘책’이라는 읽을거리를 가리켜 “마음을 살찌우는 양식”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나는 이 말마디에서 ‘양식’이라는 한자말을 ‘밥’이라는 한국말로 고쳐서 “책은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책은 영혼의 양식”이라고 얘기합니다. 나는 이 말마디에서 ‘영혼 + 의’과 같은 말투를 가다듬어서 “책은 마음밥”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이렇습니다. 지난날 지식인은 한자말로 지식을 뽐내었어요. 이를테면 “靈魂의 糧食”이라 적었어요. 이러다가, 글꼴만 한글로 고쳐 “영혼의 양식”이라 일컬었는데, 오늘날 지식인은 영어로 지식을 뽐냅니다. “soul food”라고 적어요. 이러다가, 글꼴만 한글로 바꾸어 “소울 푸드”라 일컬어요.


  지난날에는 초등학생한테까지 ‘한자 함께쓰기’를 시키겠다는 목소리가 여러 지식인과 언론매체와 중앙정부 공무원 사이에서 불거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초등학생 누구나 아주 스스럼없이 ‘영어 함께쓰기’를 시킵니다. 몇몇 지식인이나 언론매체나 중앙정부 공무원만 이렇게 시키지 않아요. 여느 어버이까지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아이들이 영어를 함께 쓰도록 이끌어요. 더 나아가, 초등학교뿐 아니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까지 영어 노래를 부르도록 하고 영어 만화영화를 보여줍니다.


  지난날 지식인으로서는 “靈魂의 糧食”이나 “영혼의 양식”을 이야기할 만합니다. 오늘날 지식인으로서는 “soul food”나 “소울 푸드”를 이야기할 만해요. 다만 한 가지 다른데, 오늘날은 지식인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조차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나 “마음밥”이라 말하지 못하면서, 영어 “소울 푸드”를 영어로 안 느껴요. 으레 쓰는 말로 삼아요. 흔히 주고받는 말로 여겨요. 아예 한국말이 되었다고 느낀다거나 아주 거리끼지 않고 쓸 만하다고 받아들여요.

 

 ― 마음밥 . 넋밥 . 생각밥 . 얼밥 . 꿈밥 . 사랑밥 . 이야기밥

 

  생각을 가다듬어 여러 가지 밥을 그립니다. 내 마음에 아로새길 만한 온갖 밥을 하나둘 그립니다. 마음으로 먹고, 마음에 새기며, 마음으로 느끼다가는, 마음을 따사로이 적시기에 마음밥입니다. 넋으로 즐기며, 넋에 돋을새김하고, 넋으로 살피다가는, 넋을 넉넉히 보듬기에 넋밥입니다.


  꿈을 담아 꿈밥입니다. 사랑을 실어 사랑밥입니다. 이야기가 샘솟아 이야기밥이에요. 좋은 밥으로 몸을 살찌우고, 기쁜 밥으로 마음을 북돋웁니다. 어여쁜 밥으로 살아갈 기운을 얻고, 아름다운 밥으로 말글을 빛냅니다. (4345.6.20.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울퉁불퉁 못생긴 그 주먹밥이 가장 맛있었다며 주먹밥을 이녁 마음에 남는 밥이라고 말한다. 내 마음에 남는 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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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사진에 담는 얘기

 


  아이 어머니가 빛종이를 알맞게 자르고 접어 여럿을 한데 그러모아 볼록볼록한 종이공을 접습니다. 누구라도 찬찬히 생각하며 천천히 접고 끼우면 볼록볼록한 종이공을 접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접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바닥에 살며시 올려놓고는 좋아합니다. 발가락 사이에 끼워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아버지한테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윽고 종이공이 둘이 되니 손바닥에 예쁘게 올려놓고는 방바닥에 드러눕습니다. 아버지한테 이 예쁜 공 사진으로 찍어 달라고 말합니다. 나는 사진기를 손에 쥐고는 아이가 웃는 사진을 두 장 찍습니다.


  사진 한 장은 사진기를 손에 쥔 이가 찍고 싶을 때 찍으며 태어납니다. 사진 두 장은 사진기를 바라보는 이가 찍히고 싶을 때 찍히며 태어납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사진에 찍히는 사람 마음을 따사롭게 보살피며 사진에 찍히고 싶게끔 이끌어야겠지요. 사진에 찍히고 싶은 사람은 사진을 찍는 사람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도록 돌보며 사진을 찍고 싶게끔 이끌어야겠지요.


  삶이 따사로울 때에 사진이 따사롭다고 느낍니다. 사진이 따사롭구나 싶다면 삶이 더없이 따사롭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삶이 넉넉할 때에 사진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사진이 넉넉하구나 싶다면 삶이 가없이 넉넉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사진에 담는 얘기란 바로 사람들 스스로 아끼며 좋아하고 꿈꾸는 모습이리라 느낍니다. (4345.6.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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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이마에

 


  아이 어머니가 종이접기로 볼록공을 접어서 첫째 아이더러 놀라고 준다. 이동안 둘째 아이가 어머니 무릎에서 새근새근 잠든다. 요 며칠 몸이 달뜨고 콧물을 줄줄 흘리며 아픈 둘째 아이 부디 얼른 나아지기를 빈다. 어린 산들보라는 아직 종이볼록공을 예쁘게 건사하지 못하고 찌끄러뜨리기에, 잠든 이마에 살짝 올려놓아 본다. (4345.6.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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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개실 놓을 자리 (도서관일기 2012.6.1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옆지기가 즐거이 장만한 뜨개실이 무척 많다. 이 실을 어떻게 건사해야 좋을까. 서재도서관 교실 넉 칸 가운데 한 칸 벽에 책꽂이를 두른 다음 놓으면 될까. 셋째 칸은 책꽂이를 조금만 두어 무척 널따랗기 때문에 이곳에 큰 책꽂이 둘을 붙여 보기로 한다.


  아버지하고 함께 서재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는 신이 자꾸 벗겨진다며 벗어서 손에 든다. 찻길은 판판해 달리기 좋아 아버지더러 신을 들어 달라고 내민다. 다른 한손에는 종이인형을 들고는 폴딱폴딱 뜀뛰기를 하면서 내처 달린다. 혼자 저 멀리 앞서 달린다. 신나게 달릴 곳, 마음껏 뛸 곳, 흐드러지게 놀 곳 들이 가장 좋은 삶터가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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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2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 달려가는 모습은 참 멋지네요.
여유로워보여요
아이 삶에서 여유로워 보이는 것까지 생각하다니
참 당연한 건데 말이에여

파란놀 2012-06-21 00:20   좋아요 0 | URL
아이가 늘 너그럽고 느긋하도록
잘 지내고 싶어요 @.@
에구구~~
 

자전거쪽지 2012.6.15.
 : 빗물 젖은 푸른 길을

 


- 빗방울이 살짝 들던 날 자전거를 몬다. 두 아이를 모두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길바닥은 촉촉히 젖었으나 자전거를 달릴 만하다고 느낀다. 하늘을 온통 하얗게 채운 구름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하얗고 들판과 멧자락은 푸르다.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바람을 맞는다. 면소재지에 닿아 중국집에 들른다. 이웃한 가게 아이가 첫째 아이한테 아는 척을 한다. 알고 보니, 우리 시골집 옆에 붙은 마늘밭에 식구들과 마늘 캐러 오던 여섯 살 언니였다. 둘은 같이 손을 잡고 놀다가는 수레에 앉은 둘째 아이를 바라보며 예쁘다 예쁘다 하고 말한다.

 

- 면소재지로 들어설 때, 또 면소재에서 나올 때, 도화중학교 옆길 멧자락에 가득한 밤나무마다 밤꽃이 한창 흐드러진다. 밤꽃이 흐드러지니 꼭 밤나무만 있는 듯하구나 싶은데, 봄철에는 이레마다 새 꽃이 소담스럽게 피고 지면서 갖은 빛깔을 뽐냈다. 숲은 참 여러 빛깔은 골고루 품는다. 밤나무 아래로 치자나무 하얀 꽃이 똑부러진다. 치자나무 흰꽃은 무척 야무지게 생겼다. 수레에 앉은 아이들한테 “위에는 밤꽃, 아래에는 치자꽃.” 하고 말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푸른 숲 옆을 지나고, 푸른 들 사이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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