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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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차려 주는 고마운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133] 호시 요리코, 《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내 어릴 적, 동네에서는 ‘아기보기’를 해 주는 이웃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이웃 아주머니들은 다른 어느 부업보다 ‘아기보기’ 벌이가 쏠쏠하며 안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가 아프거나 울거나 하면 더없이 고단하다고, 더구나 아기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때에 아기가 왁왁 울어대면 싫은소리를 듣는다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아기보기 부업을 한 적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가 아기보기 부업을 한 적이 있었다면, 나는 퍽 어린 나날부터 ‘나 또한 어리’지만, ‘나보다 더 어리고 여린’ 목숨을 사랑스레 들여다보면서 아끼려 하는 눈길이나 마음길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 궁금하곤 합니다. 이웃집에서 아기보기를 할 때면, 그 집 가시내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니까, 제 동생도 아니면서 가없이 이뻐 하고 돌보아 주니까, 나한테도 우리 집 내 동생이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하다가는, 내 동생이 생기기 힘들다면 우리 어머니가 아기보기 부업을 살짝이라도 하면 어떠할까 싶곤 했어요.


  동생이 있는 동무가 한결 마음이 너그럽거나 넉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어린 동생을 늘 바라보고 따순 사랑을 주고받으며 무럭무럭 자란 동무들은 어쩐지 ‘나처럼 동생 없는 아이’보다 마음씀이나 생각밭이나 눈길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대목을 바라보고, 내가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곳을 느끼곤 했어요.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집에서 동생을 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한 집안에서는 누군가 막내가 될 테니까요.


  내가 잊지 못하는 어릴 적 일 가운데 하나를 되새겨 봅니다. 내가 국민학교 육학년 때였는데, 이제 학교에서 맏언니가 된 몸으로 어느 모로 우쭐거리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갓 학교에 든 일학년 동생을 문득 바라보니 키가 참 작고 몸도 참 작으며 눈빛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모릅니다. 한창 개구쟁이 짓으로 학교를 누비던 나는, 일학년 어린 동생 작고 맑은 눈빛과 몸빛을 바라보며 아주 다소곳하게 말을 건넸고, 교실까지 이끌어 주었습니다. 내가 제대로 안 느끼거나 잊을 뿐이라 할 텐데, 내 마음속에도 어리거나 여린 목숨을 아끼는 사랑씨앗은 틀림없이 있어요.

 

 


- “다카시, 취직 결정되었다면서? 호텔 레스토랑에 예약할 테니 오늘 밤은 다 같이 축하 파티를…….” “됐어요. 오늘은 서클 녀석들이랑 한잔하러 가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모처럼만인데.” “그리고 호텔 음식은 이제 질렸어요. 네코무라 씨가 만들어 준 게 훨씬 더 맛있거든요. 뭐랄까, 그리운 맛이 난다고나 할까.” (17쪽)
- “정말? 그게 엄마가 만든 거였단 말이에요?” “마, 맞아. 솜씨는 없지만 열심히 만들었지.” “아니에요. 난 그 가방이 맘에 들어서 졸업할 때까지 계속 썼는데요?” (109쪽)


  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이웃 아주머니 가운데 파출부 부업을 나가는 분이 더러 있었습니다. 날마다 나가기도 하고, 하루 걸러 하루 나가기도 합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다른 이웃집으로 파출부 일을 하기도 합니다. 모두 열다섯 개 동이 있는 오층짜리 아파트이건만, 열다섯 동 가운데에는 가난한 동이 있고 제법 가면 동이 있어요. 어릴 적에는 몰랐고, 나중에 스물 끄트머리쯤 되었을 때 오랜 동무를 만나 얘기를 하다가 ‘어릴 때 같이 살던 그 아파트마을 사이에 가난한 사람과 가면 사람이 따로 나뉘어졌다’는 소리를 비로소 들었습니다. 우리 집은 열석 평이었는데, 어느 집은 아홉 평이요, 또 어느 집은 열여덟 평이라 했고, 또 어느 집은 스물석 평이라 했어요. 어떻게 평수가 이리 다를 수 있을까 그때로서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 곰곰이 돌이키니, 동마다 호수가 달랐고 크기도 달랐다고 떠올랐어요.


  파출부 부업 나가던 아주머니들은 ‘집에서 늘 하는 일’을 똑같이 할 뿐이니까, 안 힘들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씀을 들으며 좀 아리송했어요. 집에서 늘 하는 그 집일이 이른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득한데, 이 일을 다른 집에서 또 한다니, 도무지 일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 노릇일까 하고.


  어머니는 날마다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차리는 모습을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면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갑니다. 어머니는 밥을 차리는 동안 다리를 쉴 겨를이 없습니다. 살짝이라도 앉아 무릎이나 발목을 쉬지 못합니다. 손도 눈도 머리도 온통 밥하기에 쏠립니다. 밥을 다 차렸어도 어머니가 같이 밥술을 뜨는 일은 드뭅니다. 밥을 차려서 내놓은 다음, 다른 집일을 붙잡습니다. 이를테면 빨래를 한다든지 다 마른 옷을 갠다든지, 집안에 많던 꽃그릇에 물을 준다든지, 바느질을 한다든지,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다리를 쭉 뻗으며 쉬는 겨를이 없어요.

 

 


- “네! 만나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전해질 거라고 믿으세요!” (25쪽)
-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소중한 사람이 슬퍼하면 위로해 주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냐? 솔직하게 사과하고 화해하면 속도 훨씬 시원해질 텐데.’ (76쪽)
- “어머, 어차피 눈물은 양파를 썰어도 나오는데요 뭐. 비록 거짓말이라 해도 가슴이 찡해지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니 어쩔 수 없잖아요.” (167쪽)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앞으로 가정부나 파출부 부업이나 일자리를 얻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남자 가정부’는 아마 아무도 안 쓰리라 느꼈지만, 남자라고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못 할 까닭은 없다고 여겼습니다. 외려 몸피 더 크고 힘살 더 단단한 사내들이 가정부나 파출부 노릇을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연 터전을 가장 사랑스레 돌보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삶결을 돌보는 일이라면, 가정부나 파출부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내 집은 나 스스로 예쁘게 건사하고, 다른 집은 다른 집대로 예쁘게 건사한다면 참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 “이 집은 엄마보다도 가정부가 자식들 일을 더 잘 알고 있구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부인보다도 애인을 더 챙기잖아요!” … “그야 내가 예뻐지면 당신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평범한 아내예요. 평범한 아내일 뿐, 당신의 연구 재료가 아니라고요.” (47∼49쪽)
- “사모님과 어르신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인걸요. 분명 두 분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자라셨을 텐데.” “서로 사랑해서 낳은 아이? 네코무라 씨.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에요. 다만 하나가 된 이후에도 계속 사랑하며 살아가는 게 어려운 거죠.” (80∼81쪽)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오늘 내 집살림을 돌아봅니다. 치운다고 치우고, 쓴다고 쓸고, 닦는다고 닦는다지만, 집안은 참 어지럽습니다. 먼지가 많습니다. 살림살이는 여기저기 잔뜩 쌓이거나 흩어져, 무엇 하나 찾자면 꽤 애먹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한 해에 한 차례씩 살림집을 옮기다 보니, 무엇 하나 느긋하게 돌보면서 자리잡도록 하지 못하기도 했어요. 우리 살림살이에서 책이 무척 많다 보니, 책에 치여 다른 살림이 이래저래 눌리기도 합니다.


  이런 매무새로 무슨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한다고 꿈을 꾸었느냐 싶은데, 어린 나날 내가 꿈꾸던 결이 고스란히 살아서, 오늘 나는 집일을 도맡으며 아이들과 살아가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곧, 나는 집일을 도맡을 때에 내가 사랑할 자연 터전을 생각하고, 살붙이들을 따사로이 어루만질 손길을 생각하며,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할 결을 생각할 노릇이로구나 싶어요.


  힘들다면 틀림없이 힘들 테지요. 고단하다면 어김없이 고단할 테지요. 그리고, 사랑스럽다면 참말 사랑스러워요. 아름답다면 참으로 아름답고요.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생각을 다스리는 무늬와 결과 흐름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추슬러 빛내느냐에 따라 새롭게 거듭납니다.

 


- “한창 성장기인 여러분들은 지금쯤이면 벌써 저녁밥 먹고 가족과 함께 TV를 볼 시간 아닌가요?” “그건 너네 집 사정이고!” (123쪽)
- “부모든 자식이든 각자 사정은 있겠지만 부모가 없다는 것만으로 모든 걸 변명할 순 없어. 자네 역시 새끼고양이였을 때 부모도 없이 고생했지만 지금은 훌륭히 일하고 있잖아.” (133쪽)


  호시 요리코 님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조은세상,2009) 셋째 권을 읽습니다. 가정부 일을 하는 고양이 네코무라 씨 이야기를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고양이 네코무라 씨는 언제나 노래하면서 집일을 합니다. 늘 즐겁게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합니다. 스스로 먹을 밥이든 스스로 입을 옷이든, 남이 먹을 밥이든 남이 입을 옷이든, 딱히 금을 긋지 않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며 밥을 차리기에, 고양이 네코무라 씨가 차리는 밥을 먹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즐거운 노래를 함께 먹습니다. 좋은 사랑을 담아 짓는 밥이니, 누구라도 좋은 사랑을 나누어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옆지기와 두 아이가 ‘굶어죽지 않게’끔 밥을 차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살붙이 모두(나까지) 즐겁게 밥을 먹고 즐겁게 하루를 누리기를 꿈꾸며 밥을 차리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담아 밥을 차리고, 사랑을 담아 빨래를 합니다. 밥을 차리는 고마운 손길을 나 스스로 누리면서 내가 나한테 고맙고, 내 밥을 먹는 살붙이들이 고마우며, 나와 함께 이 집에서 살아가는 모두 고맙구나 하고 느낄 이야기꽃입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나한테 차려 주던 고마운 밥을 생각하며 우리 살붙이들 먹을 밥을 차립니다. 나는 내 어머니 몸짓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집일을 하고 빨래를 합니다. 내 어머니 삶자락에 깃든 사랑을 하나하나 아로새기면서 나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빛내고 싶습니다. 멀지 않아, 우리 첫째 아이가 제 앙증맞은 손으로 밥을 차려 우리 두 어버이한테 내밀 테지요. 내가 꽤나 어렸을 적 내 앙증맞은 손으로 밥을 차려 내 어머니한테 내밀었듯,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씩씩하고 맑은 넋으로 아리땁게 자랄 수 있을 테지요. (4345.6.21.나무.ㅎㄲㅅㄱ)

 


― 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호시 요리코 글·그림,박보영 옮김,조은세상 펴냄,2009.12.2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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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6-2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을 차려 주는 고마운 사람,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부추전과 김치전과 수박을 내와서 아버지와 셋이 모여
먹으면서, 참 행복하구나,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가족이 모여 있다는 것, 그 안에
먹을 게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어요. 그 감사를 평상시엔 잊고 살 때가 많지만요...ㅋ

파란놀 2012-06-22 17:08   좋아요 0 | URL
함께 모여 먹는 즐거움을... 저도 늘 누리고 싶어요...
 


 아이 어버이가 아플 때

 


  둘째가 몸앓이를 하던 날부터 아이 아버지 몸이 차츰 안 좋아지더니, 어제와 오늘 아이 아버지는 어떻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아리송하기까지 하다. 이제 깊은 밤이 되어 아이들 모두 새근새근 잔다. 아이들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나서 겨우 몸을 일으켜 쉬를 누고 코를 푼다. 몸이 후끈 달지는 않으나 언제 다시 후끈 달는지 모를 노릇이다. 오늘 아침에는 퍽 늦게까지 자고 나서 일어나니 몸이 나아지는가 싶었으나, 이른아침부터 온 집안을 쓸고 닦은 다음, 아이들 씻기고 빨래하며 밥을 차리느라 여러모로 움직이고 보니 도로 몸이 달면서 기운이 쪽 빠진다. 이제 나는 어찌할 수 없다며 자리에 드러누워 한 시간 반쯤 허리를 펴려 하지만 기운이 도로 살아나지는 않는다. 아이들 부산한 소리가 귀에 쟁쟁거려 그만 벌떡 일어난다. 어지러운 몸으로 집일을 건사한다. 눈알이 핑 돌고 골이 쑤시니 스스로 생각을 빚지 못한다. 그래도 생각을 잊고 싶지 않아 자꾸자꾸 생각한다. 나 스스로 내 몸이 아프다고 여기니 자꾸 아픈지, 나 스스로 내 몸이 아플 까닭 없다고 생각하며 내 몸을 낫게 돌릴 수 있는지, 끝없이 생각한다. 식구들 굶길 수 없기에 밥은 차리지만, 밥술을 들기란 참 벅차다. 저녁 밥상은 도무지 차릴 기운이 없으나, 어찌저찌 감자 두 알 썰어 감자국을 끓여 아이 앞에 내놓는다. 첫째 아이가 밥을 제대로 뜨는지 마는지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며 그냥 뻗는다. 둘째 아이는 오늘 네 차례 똥을 누면서 몸속 나쁜 기운을 이럭저럭 빼낸 듯하다. 그래도 저녁에 가슴에 누여 재우며 보니, 몸이 아직 뜨겁고 눈곱과 콧물은 자꾸 나온다. 이 아이들이 하루 더 달게 자고 나서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기를 빈다. 나 또한 신나게 기운을 차릴 수 있기를 빈다. 눈이 아프고 목이 따갑다. 안 아픈 데가 한 군데도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다. 내가 내 몸 구석구석 아프기를 바라기에 이토록 괴로울 만큼 아픈지, 참말 내가 스스로 맡는 일이 너무 무거워 아플밖에 없는지, 차근차근 생각한다. 몸이 무겁거나 아프기 때문에 입에서 퉁명스런 말이 튀어나오는지, 스스로 더 슬기로우며 착하게 살아가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못하니까 스스로 망가지고 마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온몸이 찌뿌둥한 나머지, 낮과 밤과 아침과 새벽을 보듬는 아름다운 소리를 한 가지도 듣지 못한다. 햇살도 바람도 물도 흙도 마음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무엇을 남겼을까. 나는 우리 아이와 옆지기한테 무엇을 남기는가. 밖에서 보기에는 고단하다지만, 안에서 누리기에는 즐거운 삶이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멀쩡하다지만, 안에서 느끼기에는 고단한 삶이 있다. 우리 아이들과 옆지기와 내가 모두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나날을 누리면서 마음 가득 흐뭇한 물결이 넘실거릴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본다. 좋은 생각을 품으면서 흐트러진 몸을 다스리고 싶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고단한 몸으로 밥을 차리든 개운한 몸으로 밥을 차리든 맛나게 숟가락 들지 않는가. (4345.6.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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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22 05:43   좋아요 0 | URL
몸이 아플땐 몸이 내게 할말이 있는거라 생각해요.
그럴땐 무리하지 마시고 좀 쉬세요.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니 무책임한 말을 쉽게 하고 있네요.
산들보라가 좀 나은 것 같다니 다행인데, 사름벼리랑 된장님이 어서 나으셔야할텐데요.

파란놀 2012-06-22 07:17   좋아요 0 | URL
제가 쉬면 집에서 일할 사람이 없거든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몸에서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기를 빌고 또 빈답니다...
 

 


새벽 세 시 사십 분
둘째 아이
끙 끙
소리 내며
일어나

 

잠들 무렵
옆에 누운
아버지
어디 갔나
찾는다

 

문턱
두 손으로 짚고
옆방에서
글 쓰는
아버지
빤히 바라본다

 

쉬 했니
촉촉한 기저귀 벗기고
폭신폭신 기저귀 대어
무릎에 누여
살살 토닥인다

 

삼십 분쯤 뒤
새근새근 잠든
둘째 아이
천천히 안고
천천히 일어서
옆에 방석 둘 깔고
살며시 눕힌다

 

내 웃도리 한 벌
둘째 몸 덮는다

 

아직 많이 작은 둘째
내 웃도리 한 벌로
넉넉히
이불 삼을 만하다

 


4345.5.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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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크레파스 풀빛 동화의 아이들
엘렌느 데스퓨토 그림, 로버트 먼치 글, 박무영 옮김 / 풀빛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맑은 빛을 생각할 때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6] 엘렌느 데스퓨토·로버트 먼치, 《이상한 크레파스》(풀빛,2002)

 


  어질어질한 머리로 밤새 잠을 뒤척이다가 새벽 늦게 잠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이른아침에 식구들은 아직 꿈누리를 날아다니고, 나는 홀로 걸레를 손에 쥐고는 방바닥을 훔칩니다. 끝방 바닥에 깔던 깔개를 들추어 마당에 넙니다. 아침부터 좋은 햇살이 퍼지니, 이 햇살을 받아 보송보송 곱게 마르리라 생각합니다.


  걸레질을 하고 걸레를 빨고, 다시 걸레질을 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합니다.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도 이른아침부터 집안을 쓸고 닦았습니다. 하루쯤 걸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어머니는 으레 이른아침부터 집안을 쓸고 닦으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두 아이와 부산스레 살아가는 하루를 되짚습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비질을 해도 먼지나 모래가 쓸립니다. 집안과 마당을 쉴새없이 드나드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먼지와 모래를 실어나릅니다. 아들 둘 낳아 돌본 우리 어머니라면 날마다 이른아침부터 쓸고 닦는 일부터 할밖에 없었겠다고, 이제 와서 몸으로 깨닫습니다. 이른아침에 걸르지 않으며 할 일이라면, 비질과 걸레질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비질과 걸레질을 마친 나는 물을 마십니다. 어제 잔뜩 짠 풀물도 마십니다. 늦도록 자는 두 아이는 몸이 아프니까 늦도록 잘 텐데, 내 몸이라고 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몸을 일으켜 움직입니다. 아이들 일어나서 배고프다 하면 무엇을 먹일 때에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몸이 나아져 신나게 뛰놀 만하다면, 아이들과 모처럼 어떤 나들이를 해 볼까 헤아려 봅니다.

 

 


.. 어느 날 브리짓이 엄마한테 말했어요. “엄마, 저 크레파스 좀 사 주세요. 친구들은 모두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그걸로 얼마나 멋지게 그림을 그리는지 몰라요.” ..  (5쪽)


  좋은 햇살과 함께 아이들 몸이 차츰 좋아지리라 믿습니다. 그래, 그러면 오늘 아이들이 일어나면 맨 먼저 옷을 벗겨야지요. 따순 물 나오도록 보일러를 돌리고, 물이 따뜻해질 때까지 시원한 물로 아버지부터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다음, 이윽고 물이 따뜻해지면 두 아이를 함께 씻겨야지요. 이동안 이불 한 채는 빨래기계에 넣어 빨래하고, 나머지 옷가지는 내가 복복 비비고 살살 헹구어야지요. 다 씻고 다 빨래한 다음, 식구들 모두 풀물을 마시며, 맛난 밥을 차려서 먹든, 아무래도 내 몸이 많이 힘드니 바깥으로 나가서 바깥밥을 사먹든 해야지요.


  생각을 해 보고, 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집에서 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집에서 누리는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늘 바라보며 받아들일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 사랑을 생각합니다. 옆지기와 이루는 삶을 생각하고, 시골집에서 맞이하는 하루를 생각합니다.


  봄에 처마 밑으로 찾아든 제비는 새끼 네 마리 씩씩하게 잘 컸습니다. 새벽에 깨고 아침에 날갯짓을 하다가는 저녁 늦도록 아무도 안 돌아옵니다. 모두들 먹이를 찾느라 바쁠는지 모르며, 기운찬 날갯짓을 가다듬느라 멀리멀리 마실을 다녀올는지 몰라요.

 


.. 엄마는 브리짓이 말했던 크레파스를 사 주었어요. 그것도 500개나 말이에요 ..  (6쪽)


  내가 맑은 빛을 생각할 때에 내 넋이 맑게 거듭난다고 느껴요. 내가 벌나비를 바라보며 너희 참 곱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을 건넬 때에, 벌나비는 한결 고운 빛을 뽐내면서 싱그럽게 날갯짓하리라 느껴요.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너희 참 아름다운 줄거리를 이 몸에 아로새겼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을 건네면, 책 한 권은 더 싱그러우며 슬기로운 빛무늬를 나누어 준다고 느껴요.


  내가 어두운 빛을 생각한다면, 내 넋 또한 어둡게 바뀌겠지요. 내가 케케묵은 빛을 헤아리면, 내 얼 또한 케케묵게 되겠지요. 그러니까, 나는 늘 맑은 빛을 생각하며 살아야 즐겁습니다. 이 좋은 삶을 생각하고, 저 좋은 길을 바라보며, 그 좋은 꿈을 북돋울 때에 하루하루 기쁘게 누리리라 느껴요.


  글을 쓰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글로 빚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사진으로 아로새깁니다.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목소리에 싣습니다. 애써 궂은 생각이나 슬픈 생각을 글·그림·사진·노래에 얹을 일이 없어요. 굳이 나쁜 생각이나 몹쓸 생각을 어디에도 드러낼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 먹으라고 일부러 썩은 고기를 차릴 어버이란 없어요. 옆지기 먹으라고 일부러 쉰내 나는 나물을 내놓을 짝꿍은 없어요. 그런데 오늘날 삶터를 돌아보면, 더 때깔 좋고 더 굵직하게 보이는 푸성귀나 열매를 만든다면서 농약을 치고 비료와 항생제를 먹여요. 풀한테도 짐승한테도 못할 짓을 자꾸 일삼아요. 가게에 가득한 과자와 소시지와 빵마다 갖가지 화학첨가물 범벅이에요. 이들 먹을거리를 만든 사람은 ‘내 사랑스러운 아이’한테 먹일 생각이었을까요. 공장에서 화학첨가물 만드는 사람은 ‘내 사랑스러운 옆지기’한테 먹일 생각인가요.

 


.. “네, 엄마! 정말 깨끗이 지워지고 있어요!” 브리짓의 그 말은 사실이었어요. 목욕탕에서 나온 브리짓은 진짜 완전히 지워져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나, 세상에!” 엄마는 너무 놀라 소리쳤어요. “큰일이구나, 브리짓!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학교에 갈 수 있겠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일자리도 절대 구할 수 없단 말이다!” ..  (26쪽)


  엘렌느 데스퓨토 님 그림과 로버트 먼치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이상한 크레파스》(풀빛,2002)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아이와 살가이 얘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림책 어머니 또한 고작 열 몇 해 앞서는 ‘똑같은 아이’였을 텐데, 참말 열 몇 해만에 그림책 어머니는 아주 틀에 박히거나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고 말아요. 스스로 생각을 하지 못해요. 스스로 생각을 빛내지 않아요.


  한낱 그림책 줄거리로 나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일자리도 절대 구할 수 없단 말이다(26쪽)!” 같은 외침이 아니라고 느껴요. 참말 오늘날 한국땅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 굴레에 갇혀요. 생각이 아닌 굴레에 갇혀요. 생각을 버리고 굴레를 붙잡아요. 생각을 놓고 굴레를 거머쥐어요.


  왜 아이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요. 왜 아이한테 크레파스를 500개씩이나 잔뜩 안기기만 하나요. 크레파스 500개 가운데 하나쯤 어머니가 즐겁게 손에 쥐어 그림을 그리면 안 될까요. 아이 아버지는 집에서 낮잠만 잘 노릇이 아니라, 500개나 되는 크레파스 가운데 하나를 쥐고는 아이랑 신나게 그림놀이를 누릴 수 없을까요.

 


.. 아빠는 전보다 더 멋지게 보였어요.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어때요? 아빠가 더 멋있어 보이지 않나요?” 브리짓이 물었어요. “난 도대체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구나!” “맞아요.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  (30쪽)


  그림책 어린이는 크레파스를 500개 가집니다. 이윽고 다른 500개를 가집니다. 머잖아 새로운 500개를 또 가집니다. 자그마치 1500개나 되는 크레파스를 가집니다. 이동안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 곁에서 아이 삶을 지켜보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느라 이토록 바쁜가 궁금합니다. 무엇에 쫓겨 이렇게 아이가 사랑스레 살아가는 꿈결을 지켜보지 못하는가 궁금합니다.


  ‘화가 되는 길’을 걸어가라고 아이한테 크레파스를 사 주지 않습니다.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길’을 걸어가라고 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길을 손 잡고 걸어갈 노릇입니다. 맑은 빛을 생각하며 서로 맑은 꿈을 나눌 살붙이입니다. 맑은 빛을 아끼며 서로 맑은 사랑을 나눌 좋은 삶동무입니다. (4345.6.21.나무.ㅎㄲㅅㄱ)

 


― 이상한 크레파스 (엘렌느 데스퓨토 그림,로버트 먼치 글,박무영 옮김,풀빛 펴냄,2002.3.2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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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꽃 책읽기

 


  이웃집은 어디나 마늘이 꽃대(마늘쫑)를 높이 뻗어 꽃망울 터질 때까지 놓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마늘을 바지런히 캐고 손질해서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골마을 어느 집이라 하더라도 마늘꽃을 구경할 수 없습니다. 꽃대가 올라오면 뽑아서 먹고, 꽃망울 터질까 싶으면 캐서 손질하거든요. 밭 가장자리에 누군가 마늘을 심고는 가만히 지켜볼 때라야 비로소 마늘꽃을 구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내가 심지 않더라도 배추꽃이나 무꽃은 곧잘 구경할 수 있으나, 마늘꽃만큼은 스스로 심어 돌보아야 비로소 구경할 수 있구나 싶어요. 마늘도 파도 양파도 모두 소담스럽게 꽃망울 터뜨리는데, 이 꽃망울을 아리땁게 바라보자면, 내 삶 한켠에 나 스스로 느긋하게 말미를 마련해 놓아야겠지요.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는 사람만 책을 읽고,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는 사람만 사랑을 하고,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는 사람만 꽃을 누려요. (4345.6.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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