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책읽기

 


  마당에 깔개를 깔고는 식구들 모두 마당에 앉는다. 한여름 잠자리가 우리 식구들 둘레를 파르르 날아다닌다. 한창 놀던 잠자리 한 마리 마당 가장자리 후박나무 줄기에 살며시 내려앉는다. 후박나무 줄기에 붙은 잠자리는 후박나무 숨결을 느낀다. 후박나무 줄기에 붙은 잠자리를 바라보는 내 눈은 후박나무 숨결과 잠자리 숨결을 느낀다. 잠자리는 저를 바라보는 내 눈길을 느낄 테고, 후박나무도 제 줄기에 앉은 잠자리 숨결을 느낄 테지. 서로서로 바라보고 살을 스치는 느낌을 나눈다. 날갯짓하는 잠자리는 푸른 잎사귀를 부른다. 나는 후박나무 푸른 잎사귀와 한여름 잠자리를 부른다. (4345.8.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ㅂㄱㅎ’와 ‘PGH’
[말사랑·글꽃·삶빛 25] 한국사람이 쓰는 이름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던 1992년부터 내 이름을 ‘ㅊㅈㄱ’처럼 적었습니다. 동무들 이름은 ‘ㄱㅎㅅ’이나 ‘ㅈㄱㅎ’나 ‘ㄱㅅㅌ’처럼 적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던 때까지는 알파벳으로 ‘CJG’처럼 적기도 했지만, 나와 동무들 이름을 한글 닿소리를 따서 적을 때에 한결 즐거우면서 보기에 좋다고 느꼈어요. 때때로 학과목 이름 ‘국어’를 ‘ㄱㅇ’로 적고, ‘영어’를 ‘ㅇㅇ’로 적기도 합니다. ‘생물’은 ‘ㅅㅁ’로 적고, ‘물리’는 ‘ㅁㄹ’로 적어 봅니다. 사람들이 안 써 버릇해서 그렇지, 이렇게 한두 차례 적고 보면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어요. 그래서, 대학입시를 앞두고 다른 이들은 ‘SKY’라 말하지만, 나와 내 가까운 동무들은 ‘ㅅㄱㅇ’이라 말했어요. 적기로는 한글 닿소리를 따서 ‘ㅅㄱㅇ’이라 적고, 말할 때에는 ‘서고연’이라 말했어요.


  따로 한글사랑이 깊거나 넓었기에 ‘ㅊㅈㄱ’를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주고받는 한국사람이기에 아주 홀가분하게 한글 닿소리로 내 이름을 적을 뿐이었어요.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이니셜’을 쓴다면, 한글을 쓰는 나라에서는 ‘앞글’을 쓴다고 할까요.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러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며 나섭니다. 나는 이 후보도 저 후보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해서 나라가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하든 나 스스로 내 보금자리에서 내 삶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일구면서 누릴 때에 내 마을과 내 나라 또한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느낍니다. 내가 할 일이라면 아이들과 맑은 눈빛으로 맑은 생각을 나누는 일이라고 느껴요. 마음을 맑게 다스리고, 삶을 맑게 빛내며, 사랑을 맑게 꽃피우면, 이 기운이 차츰 퍼지면서 온누리를 따사로이 보듬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그나저나, 올 대통령선고를 둘러싸고 어느 정당 후보 한 사람 이야기가 곧잘 도마에 오르는 듯합니다. 이이는 ‘ㅂㄱㅎ’라는 한글 닿소리로 이녁 이름을 적바림하면서 스스로를 널리 알리려 합니다. 이제까지 여러 대통령 후보, 또는 정치꾼은 으레 알파벳 앞글을 딴 ‘YS’이니 ‘DJ’이니 ‘JP’이니 ‘MB’이니 하면서 적바림하곤 했는데, ‘GH’ 아닌 ‘ㄱㅎ’라는 한글 이름을 써요.


  ‘ㅂㄱㅎ’를 쓰는 이분이 한글과 한국말을 널리 사랑하거나 깊이 아끼기에 이처럼 한글 닿소리를 딴 이름을 쓰는지, 대통령선거에서 사람들한테 당신 이름을 두루 알리고 싶은 생각 때문에 한글 닿소리를 딴 이름을 새삼스레 내세우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글 닿소리를 딴 이름 적기는 새롭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이름을 적으니까요.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한글에 담아서 나타내는 겨레이니까, 대통령 후보이든 아니든, 소설쟁이가 되든 대학교수가 되든, 또 여느 흙일꾼이나 어버이가 되든, 누구나 한글 닿소리로 이름을 적을 만해요. 곰곰이 따지고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이름을 적을 때에 으레 알파벳으로 적어 버릇할 뿐이에요.


  ‘ㅂㄱㅎ’를 쓰는 이분이 ‘ㅂㄱㅎ’처럼 적바림하기에 한결 널리 당신 이름을 알릴 수 있으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이분 스스로 이러한 이름을 쓰면서 당신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깊으면, 차츰 이 이름을 알릴 수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정치꾼 한 사람 말씀씀이를 돌아보건대 한글사랑이 더 깊지 않은 셈이요, 정치꾼 한 사람 몸짓을 살피건대 홍보하는 효과가 더 크지 않은 셈이요.


  그러나, 나는 생각합니다. ‘ㅂㄱㅎ’처럼 이름을 쓰는 이분 모습을 바라보면서, 신문기자이든 방송기자이든, 다른 정치꾼을 가리키는 자리에 이제부터는 ‘YS’ 아닌 ‘ㄱㅇㅅ’이나 ‘ㅇㅅ’처럼 적바림할 만해요. 굳이 ‘DJ’를 써야 할 까닭 없이 ‘ㄱㄷㅈ’이나 ‘ㄷㅈ’처럼 적바림해도 좋아요. 왜 ‘MB’라고만 적어야 할까요. ‘ㅇㅁㅂ’이나 ‘ㅁㅂ’처럼 적바림하면 돼요. 우리들은 ‘ㅇㅊㅅ’나 ‘ㅁㅈㅇ’처럼 사람이름을 적바림하면서 이분들을 떠올리면 즐겁습니다. ‘ㅂㄱㅎ’라고 이녁 이름을 적바림한 분 때문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라면 으레 이런 한글 닿소리 쓰기를 하면서 이녁 이름을 예쁘게 사랑하는 길이 있는 줄 예쁘게 느낄 수 있으면 흐뭇해요.


  나는 내 이름을 적바림하는 자리에 ‘ㅊㅈㄱ’라고도 적지만, 내 글이름인 ‘함께살기’를 간추려 ‘ㅎㄲㅅㄱ’처럼 적기도 합니다. 2012년에 서른여덟 살인데요, 나는 그동안 스무 해째 이렇게 내 이름을 적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 이름 ‘사름벼리’는 ‘ㅅㄹㅂㄹ’로 적고, 작은아이 이름 ‘산들보라’는 ‘ㅅㄷㅂㄹ’로 적습니다. 이름을 즐겁게 생각하며 한글 닿소리로 즐겁게 적습니다. 이름을 곱게 읊으며 앞글을 하나씩 곱게 따서 적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맑은 기운을 느끼면서 밝은 손맛을 살려 내 이름을 씩씩하게 적습니다. (4345.8.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여름 물놀이

 


  아이들 일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짐차를 끌고 시골집까지 찾아와 주신다. 짐차를 끌고 찾아와 주셨기 때문에 아주 커다란 고무통을 장만해서 짐칸에 싣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커다란 고무통 값은 4만 원. 퍽 무거운 고무통을 후박나무 그늘 밑에 놓고는 물을 채운다. 큰아이는 스스로 옷을 벗고 작은아이는 옷을 벗긴다. 두 아이는 고무통에서 끝없이 재미나게 논다. 바람이 빨랫줄을 건들이면서 기저귀와 옷가지가 살랑살랑 춤을 춘다. (4345.8.5.해.ㅎㄲㅅㄱ)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읽는나무 2012-08-05 08:53   좋아요 0 | URL
어릴때 저런 고무욕조(?)에서 물놀이 했던 기억이 나네요.^^
물을 받아 햇볕에 놔두면 절로 따뜻해져 물놀이 하기 참 좋았었어요.
덕분에 아이들이 신났겠어요.

파란놀 2012-08-05 09:13   좋아요 0 | URL
이제... 거의 날마다 할 수 있답니다~ ^^

BRINY 2012-08-05 09:52   좋아요 0 | URL
딱 물놀이하기 좋네요!

파란놀 2012-08-07 04:07   좋아요 0 | URL
넵~ ^^

순오기 2012-08-05 22:53   좋아요 0 | URL
우리 삼남매도 저렇게 큰 고무통에서 여름 한철을 보냈어요~
바람에 날리는 빨래가 분위기를 더 살녀주는데요.^^

파란놀 2012-08-07 04:08   좋아요 0 | URL
마당에서 나부끼는 빨래는 그늘 노릇도 해 준답니다~

카스피 2012-08-06 20:49   좋아요 0 | URL
흠 빨간 고무통 오랜만에 보내요.예전에 외할머니댁에 여름에 놀러가면 항상 할머니께서 고무다라(이거 일본말이죠^^;;;)에 물을 받아 노시면 거기서 논 기억이 납니당^^

파란놀 2012-08-07 04:08   좋아요 0 | URL
어른도 들어가서 함께 놀 수 있어요~
 


 글을 쓸 겨를을 못 낼 때에

 


  날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어느 하루 글을 쓸 겨를을 내지 못할 때에는 숨이 막힌다. 곰곰이 생각한다. 내가 글일꾼 아닌 흙일꾼이라 한다면, 하루라도 흙을 만지지 못하거나 쓰다듬지 못할 때에 얼마나 숨이 막힐까. 내가 마음닦기를 하며 삶을 다스리는 사람이라 할 때에 어느 하루 마음닦기 할 겨를을 누리지 못할 때에 얼마나 숨이 죌까.


  내 삶을 내가 사랑스레 누리지 못하면서 하느님 넋이 되지 못한다. 내 삶을 내가 사랑스레 누리는 길은 ‘반드시 글을 써서 어느 만큼 남기’는 굴레 아닌 ‘글쓰기를 어떻게 받아들여 즐기느냐’에 있다.


  글을 쓸 겨를을 도무지 못 내는 나날을 자꾸자꾸 보내면서 생각한다. 내 삶을 쓰는 내 글은 어떤 사랑이 빛나는 이야기일 때에 나 스스로 활짝 웃으며 마주할 만한가. (4345.8.5.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두가 기적 같은 일 - 바닷가 새 터를 만나고 사람의 마음으로 집을 짓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송성영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스로 이끄는 생각으로 살아가다
 [책읽기 삶읽기 112] 송성영, 《모두가 기적 같은 일》(오마이북,2012)

 


  마을에서 매미 우는 나무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곤 합니다. 이웃 어느 집이건 나무가 우람하거나 많은데, 이 많은 나무 가운데 매미 우는 나무는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면내나 읍내에 나가면 매미 노랫소리를 쉬 듣습니다. 도시에서도 매미 노랫소리를 곧잘 듣습니다. 이와 달리 시골 한복판에서는 매미 노랫소리를 못 들으니 좀 알쏭달쏭한데, 가만히 생각하니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분들 누구나 풀약을 무척 자주 쳐요. 논둑에도 밭둑에도, 논에도 밭에도 틈틈이 풀약을 칩니다. 나무 밑이라고 달라지지 않아요.


  도시는 자동차가 몹시 많습니다. 도시사람은 담배를 무척 많이 피웁니다. 그렇지만 도시 길거리에 심은 나무에 풀약을 틈틈이 치는 일은 드물지 싶어요. 도시 길거리에서 자라는 나무 밑이나 둘레에는 담배꽁초이며 쓰레기이며 잔뜩 있지만, 나무뿌리 있는 땅속에는 시골처럼 풀약 기운이 스며들 일이 적으리라 느껴요.


.. 그동안 생활비를 꺼내 쓰는 통장에 있는 100만∼200만 원을 전부로 알고 살아온 제게는 분명 엄청난 거금이었습니다. 욕심이 눈앞을 가렸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저는 그 거금으로 농사지을 땅과 빈집을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옆에 작은 흙집까지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  (15쪽)


  저녁에 읍내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해 떨어지고 별이 뜬 읍내 밤하늘은 까맣습니다. 까만 밤하늘에 별빛이 반짝입니다. 시골 읍내에서는 별을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읍내보다 훨씬 까맣습니다. 훨씬 까만 밤하늘에는 훨씬 반짝이는 별이 더 많이 보입니다.


  밤이 까맣기에 별이 밝습니다. 밤이 까맣지 않다면 별은 밝지 않을 뿐더러, 별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밤이 하얗다면 별은 깜깜합니다. 밤이 하얀 곳에서는 아예 별을 잊거나 모른 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해가 밝기에 푸른 잎사귀 싱그러운 풀과 나무를 알아봅니다. 해가 맑기에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하얗습니다. 해가 곱기에 가을날 누런 들판을 바라볼 수 있고, 해가 예쁘기에 새와 꽃과 벌레와 냇물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기로 불을 밝혀도 집안에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가 내리쬐는 낮에도 책을 읽을 수 있으나, 해가 떨어진 깊은 밤에도 전기불을 켜면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가 없는 깊은 밤에도 길거리에 불빛을 드리우면 걸어다니기에 좋고 얼굴을 알아볼 수 있으며 나방 날갯짓을 살필 수 있어요.


.. 전 그저 부드러운 뒷산과 좌우 산줄기가 바람을 막아 주고 있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좋았습니다 … 밑도 끝도 없이 터를 구하는 데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고 푼수처럼 말하자 동네 어르신이 마뜩찮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뭐 그렇게 까다롭게 땅을 구하러 다녔데요이. 어디든 정 붙이고 살믄 고만이지.” ..  (26, 62쪽)


  새벽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노랫소리라 느끼기에 새벽녘 찾아드는 소리 모두 노래라고 여깁니다. 멧새도 들새도 풀벌레도 바람도 나뭇잎도 풀잎도 모두 노랫소리를 들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철마다 새롭게 찾아드는 노래이고, 아침 낮 저녁 밤으로 새롭게 울려퍼지는 노래라고 맞아들입니다.


  새끼를 깐 멧새나 들새 노랫소리는 새삼스럽습니다. 갓 깨어난 새끼가 무럭무럭 자라나며 퍼지는 노랫소리는 남다릅니다. 그러고 보면, 갓 태어난 아이들 노랫소리도 새삼스럽습니다. 하루하루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이들 노랫소리도 남다릅니다.


  나는 늘 노랫소리에 둘러싸인 채 살아갑니다. 나를 둘러싼 노랫소리는 내 마음결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마음결이 따사로울 때에는 노랫소리 또한 따사롭습니다. 내 마음결이 칙칙할 적에는 노랫소리 또한 칙칙합니다. 내 마음결이 보드라울 때에는 노랫소리 또한 보드랍습니다. 내 마음결이 딱딱할 적에는 노랫소리 또한 딱딱해요.


  내 마음이 생각을 이끕니다. 내 마음이 이끄는 생각이 삶을 이끕니다. 내 마음이 이끄는 생각으로 누리는 삶이 사랑을 이끕니다.


.. 산 위의 나무들은 땔감이 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막아 주고 산소를 공급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푸른 빛깔에 고운 단풍까지 아낌없이 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  (293쪽)


  좋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좋다고 느낄 삶을 누립니다. 좋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좋다고 느낄 사랑을 나눕니다. 좋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좋다고 느낄 꿈을 이룹니다.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오늘 하루 다르게 찾아옵니다.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오늘 이야기는 새롭게 빛납니다.


  이 시골집에서 살아도 싱그러운 하루입니다. 저 시골마을에 깃들어도 상큼한 하루입니다. 저 골목집에서 살아도 해맑은 하루입니다. 저 아파트숲에 깃들어도 산뜻한 하루입니다.


  마음이 사랑스럽지 못하다면 삶이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눈빛이 사랑스럽지 못하다면 삶이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손길이 사랑스럽지 못하니 삶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몸짓이 사랑스러울 때에 삶은 시나브로 사랑스레 거듭납니다.


  내가 걸어갈 길은 스스로 일굽니다. 내 길은 내가 닦습니다. 내 생각은 내가 예쁘게 다스리지만, 내 생각은 나 스스로 바보스레 내팽개치곤 합니다.


.. 전력 소모량이 많은 대도시 주변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면 구태여 자연경관을 해치고 전자파로 건강까지 해치는 송전 철탑을 세워 먼 거리까지 전기를 끌어다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핵발전소를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안정성을 강조한다 해도 그만큼 위험천만한 시설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핵발전소 반대를 이기적인 님비 현상으로 몰아붙이고 있지만, 정작 이 위험한 시설에서 멀리 떨어져 살며 물 쓰듯 전기를 사용하는 대도시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일 것입니다 ..  (322쪽)


  송성영 님이 전라남도 고흥에 새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수필책 《모두가 기적 같은 일》(오마이북,2012)을 읽습니다. 송성영 님은 흙을 일구는 삶을 생각하지만, 밥벌이는 글을 써서 메꾸곤 했답니다. 송성영 님 옆지기가 ‘미술 교사’ 노릇을 하며 알뜰히 버는 돈이 있어, 시골자락에서 흙과 벗삼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나도 시골에서 살아가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며 글을 안 쓴다면 삶이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글쓰기에 마음과 품과 겨를을 들이는 만큼 흙이랑 풀이랑 나무한테 마음과 품과 겨를을 들이겠지요. 글을 써서 책을 빚을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글을 안 쓰고 흙이랑 풀이랑 나무한테 마음과 품과 겨를을 들이면, 돈벌이는 없거나 적거나 다를 수 있으나, 밥벌이는 넉넉할 수 있는 한편 새로운 ‘벌이’를 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흙을 더 잘 알 수 있고, 풀이랑 나무를 한결 넓게 알 수 있어요. 글에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글을 한결 잘 쓰거나 한결 잘 읽을 수 있어요. 흙에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흙을 한결 잘 알거나 한결 잘 다룰 수 있어요. 바닷사람이 바닷물에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물질과 고기잡이를 한결 잘 알거나 한결 잘 할 수 있어요. 자가용을 장만한 사람 또한 자가용한테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자가용을 한결 잘 알거나 잘 몰 수 있겠지요.


  스스로 이끄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이끄는 생각이 삶을 이룹니다.


  그나저나, 송성영 님은 “우리 집을 포함해 달랑 집 두 채만 있는 바닷가 오지임에도 번듯한 새집에 깃들여 살며 기운이 펄펄 살아난 아내는 이사 오자마자 이력서를 챙겨 방과 후 강사 자리를 찾아나섰습니다. 큰 도시에 비해 문화적 여건이 낙후한 고흥에는 미술 전공자들이 귀한 모양입니다. 아내는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다 초등학교 세 군데에서 강사 자리를 얻었습니다(226쪽).” 하는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큰 도시에 비해 문화적 여건이 낙후한 고흥’은 어떤 모습인지 아리송합니다. ‘문화적 여건’이란 무엇이고, ‘낙후한 모습’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나 또한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느 시골마을 여느 시골사람으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 이웃 할머니가 백일홍을 바라보며 예쁘다 말하는 모습이란 ‘문화를 누리는 삶’이며 ‘그림 같은 그림을 알아보는 눈길’이라고 느껴요. 높고 낮은 멧자락을 낀 비탈밭 돌을 골라 돌울을 쌓아 빚은 밭이랑 논은 모두 ‘아름다운 예술품’이로구나 싶어요. 풀빛 우거진 숲이 넓게 이어진 멧자락 모두 ‘예쁜 문화예술’이로구나 싶어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이 될 만큼 싱그럽고 해맑게 지키며 돌본 시골마을 고흥은 어디나 ‘문화요 예술이며 문명이고 사랑’이 되리라 느껴요.


  다만, 시골 분들 스스로 삶을 애틋하게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길을 더 씩씩하게 믿지 못한 나머지, 자꾸자꾸 풀약을 칩니다. 논에도 밭에도 자꾸자꾸 풀약을 치고 맙니다. 풀약을 안 치고 똥오줌 거름으로 지은 곡식이랑 열매가 훨씬 높은 값을 받는 요즈음이기 때문에 유기농 농사를 지어야 하지는 않아요. 풀약을 친 곡식이나 열매는 사람 몸에도 안 좋을밖에 없을 뿐더러, 내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아 흙을 살찌우며 거둔 곡식이나 열매는 흙일꾼인 시골사람부터 달삯쟁이인 도시사람 모두 튼튼하게 살릴 수 있어서 좋아요. 돈 때문에 짓는 유기농이 아니에요. 돈을 더 벌자고 하는 유기농이 아니에요. 삶을 사랑하고 삶을 빛내며 삶을 가꾸고픈 꿈이 있어서 유기농을 해요.

  꼭 유기농이 아니더라도, 내 보금자리와 마을을 한결 푸르게 사랑하면서 풀과 나무를 바라본다면, 모든 들풀이 모든 약초이듯, 모든 들풀을 손으로 살가이 쓰다듬으며 좋은 벗이자 밥이자 넋으로 맞아들일 만하겠지요.


  풀약을 안 친 멧자락이나 들판에서는 어느 풀을 뜯어먹어도 배가 부르면서 몸이 싱그럽게 살아나요. 풀약을 친 멧자락이나 들판에서는 어느 풀도 섣불리 뜯어먹을 수 없어요. (4345.8.5.해.ㅎㄲㅅㄱ)

 


―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송성영 글,오마이북 펴냄,2012.6.22./13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