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글 그림, 임은정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받으려고 태어난 숨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01] 사노 요코, 《세상에 태어난 아이》(프로메테우스,2005)

 


  아이들은 사랑받으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까닭은 사랑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어른들이 아이를 낳는 까닭은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곧, 아이들은 ‘사랑받으려’고 태어나며, 어른들은 ‘사랑하려’고 새 목숨을 낳습니다. 아이와 어른은 오직 한 가지 이음고리 ‘사랑’으로 서로 사귀고 만나며 얼크러집니다.


..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날마다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우주 한가운데에서 별들 사이를 마음대로 돌아다녔습니다. 별과 부딪쳐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태양 가까이 다가가도 뜨겁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  (3쪽)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목숨인 셈입니다. 사랑을 하지 못하는 어른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목숨인 노릇입니다. 아이만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어요. 어른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요.


  숨통이 붙었대서 사람이 아니에요. 숨통이 붙었으니까 살아간다 할 수 없어요. 몸이 아파 드러누운 채 꼼짝을 못하더라도 마음속 깊이 사랑을 길어올리는 사람이라면 아름답고 즐겁게 삶을 일군다 할 수 있어요. 돈이 넉넉하고 땅이 넓다지만 마음속 어디에서도 사랑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조금도 살아가지 못한다 할 수 있어요.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난 아이인 만큼,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친다 할 적에는 반드시 사랑을 가르칠 일입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넣는다 할 적에는 언제나 사랑을 누릴 곳을 찾을 일입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히려 할 적에는 늘 사랑을 느끼며 북돋울 줄거리 깃든 책을 건넬 일입니다.


  사랑을 하려고 태어난 어른인 만큼,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노상 사랑으로 빛낼 일입니다. 어른 스스로 밥벌이나 돈벌이로 삼는 일거리를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가장 즐거운 곳에서 가장 따사롭고 아름답게 찾을 일입니다. 어른인 나부터 사랑을 길어올릴 슬기를 깨우치는 삶동무 같은 책을 읽고, 어른인 나 스스로 삶을 빛낼 만한 글을 쓸 일이에요.


..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은 없었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여자아이의 엄마는 여자아이를 깨끗이 씻기고 약을 바른 다음, 엉덩이에 예쁜 반창고를 붙여 주었습니다 ..  (21쪽)


  풀 한 포기는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납니다. 햇살한테서 사랑을 받든, 토끼한테서 사랑을 받든, 사람한테서 사랑을 받든, 풀포기 하나 또한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납니다. 나무 한 그루도 사랑으로 씨앗을 맺고 새롭게 뿌리를 내립니다. 벌레 한 마디로, 새 한 마리도, 물고기 한 마리도 오직 사랑으로 태어날 수 있어요. 지구별에서 태어나는 목숨들은 모두 사랑이 영글며 이루어져요. 미움이라든지, 노예라든지, 돈이라든지, 전쟁이라든지, 계급이라든지, 신분이라든지, 참말 하잘것없는 까닭으로 태어나는 목숨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뜻밖에 사랑 없이 유전자를 건드립니다. 사랑 없이 유전자를 건드려 곡식과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 없이 유전자를 건드려 짐승들을 만들고, ‘사람 씨앗’마저 만들려고 해요. 사랑 없이 태어나는 목숨이 지구별을 얼마나 무섭게 망가뜨릴는지 헤아리지 않아요. 사랑 없이 만든 ‘유전자 건드린 곡식’이 사람들 숨결을 얼마나 허물어뜨릴는지 살피지 않아요.


  유전자를 건드린 ‘어떤 똑똑한 사람’이 있기에 과학이나 문화나 사회가 발돋움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되든 노자가 되든, 예수가 되든 부처가 되든, 이들은 ‘유전자를 건드려 만든 목숨’이 아니에요. 이들 어버이가 사랑으로 맺어 낳은 목숨이에요. 사랑스럽게 태어나서 사랑스럽게 살아가며 사랑스럽게 꿈을 피워요. 사랑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받아먹으며 사랑을 활짝 펼쳐요.


  내 아이는 나와 옆지기 사랑을 받으며 태어납니다.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을 받으며 태어납니다. 내 어버이는 이녁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을 받으며 태어납니다. 먼먼 옛날부터 고스란히 이어지는 사랑으로 새 숨결이 지구별에 깃들어요.


.. 태어난 아이는 물고기를 보면 쫓아가고, 모기에 물리면 가려워 하기도 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태어난 아이는 “깔깔깔” 하고 혼자서 크게 웃었습니다 ..  (27쪽)


  사노 요코 님 그림책 《세상에 태어난 아이》(프로메테우스,2005)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노 요코 님은 그림책 《세상에 태어난 아이》에서 당신 스스로를 일깨우고 당신 둘레 이웃과 동무를 일깨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당신을 비롯해 지구별 모든 사람들은 오직 ‘사랑’으로 맺고 이어진 사이인데, 당신을 비롯해 지구별 모든 사람들이 곧잘 ‘사랑’을 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햇볕 한 줌을 즐기고 바람 한 점을 누리는 삶이 무엇인가를 헤아리자고 이야기합니다. 풀잎과 나뭇잎을 쓰다듬고, 꽃빛과 낯빛을 아끼는 길을 돌아보자고 이야기합니다.


  보드라이 쓰다듬는 어머니 손길이 좋아서 사랑입니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 얼굴이 좋아서 사랑입니다. 따순 손길로 밥 한 그릇 짓습니다. 개구진 손길로 밥 한 그릇 석석 비웁니다.


.. 밤이 되었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잠옷을 입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 잘래. 태어난다는 건, 참 피곤한 것 같아.” 엄마는 웃었습니다. 엄마는 태어난 아이를 꼭 껴안고서 잘 자라고 입맞춤을 했습니다 ..  (31쪽)


  즐겁게 살아가고 싶어 태어납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삶이 즐겁기에 태어납니다. 즐겁게 살아가고 싶으니 낳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숨결이 하루하루 새롭게 북돋우면서 환하게 빛나기에 낳습니다.


  새근새근 잠든 우리 집 두 아이를 어루만집니다. 자는 틈틈이 이불을 여밉니다. 두 아이 모두 뒹굴뒹굴 구르며 잡니다. 이불을 이리 차고 저리 찹니다. 이불을 이리 모으고 저리 끌어당깁니다. 토닥토닥 덮어 줍니다. 큰아이는 스스로 밤오줌을 잘 가립니다. 작은아이는 이제 막 낮오줌을 가리도록 도와줍니다.


  시골마을은 조용하게 빛납니다. 깜깜한 밤하늘은 풀벌레 노랫소리로 가득합니다. 바람조차 불지 않으며 호젓합니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길가에 길게 널어 놓은 가을나락은 별빛을 머금고 햇볕을 마시면서 잘 마릅니다. 온 마을에 가을나락 내음이 물씬 번집니다. 나도 아이들도 이 가을나락을 먹으면서 가을을 느낍니다. 한여름 햇살을 쌀알 하나에서 느끼고, 봄날 봄꽃 기운을 쌀알 하나에서 느낍니다. 나도 아이들도 쌀알도 모두 사랑으로 태어나고 자랍니다. 사랑을 먹으면서 살아가고 사랑을 마시면서 빛납니다. (4345.10.6.흙.ㅎㄲㅅㄱ)

 


― 세상에 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글·그림,임은정 옮김,프로메테우스 펴냄,2004.10.19./9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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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볍씨 빛깔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보아 거둔 볍씨가 길가에 그득히 널린다. 실 같은 줄기일까 뿌리일까 가늘게 하나씩 나오기도 하는데, 가을볕 고루 받는 볍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몇 알 줍는다. 아이한테 몇 알 내민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볍씨를 입에 넣는다. 껍질째 먹어 보렴, 하고 말하면서 나도 한 알 혀에 올린다. 살살 씹는다. 침으로 녹이지 않아도 사르르 녹는다. 갓 거둔 벼알이란 이런 맛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햇쌀로 밥을 지어 먹을 때에 참 맛있겠네 싶으면서, 굳이 겨를 벗기지 않고 겨 있는 벼알을 통째로 밥으로 지어 먹어도 맛있으리라 느낀다.


  궁금하네. 왜 겨를 다 벗겨서 먹을까. 언제부터 겨를 다 벗겨서 밥을 지었을까. 겨를 벗겨 ‘쌀’로 바꾸지 않더라도 즐겁게 밥을 먹고 즐겁게 숨결을 북돋우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벼를 벼알 그대로 안 먹고 쌀겨를 버리면서 차츰 바보스레 바뀌지는 않았을까. 능금도 배도 복숭아도 살구도 포도도 껍질째 먹던 열매가 아닌가. 밤은 껍질이 두껍다 하지만, 나무에서 갓 딴 밤송이를 벌려 그 자리에서 껍질째 씹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나고 달달한지 모른다. 게다가 밤 겉껍질 아래쪽 빛깔이 몹시 하얗다. 껍질도 보드랍게 잘 씹힌다. 밤껍질이 두껍다고 느끼는 까닭이라면, 밤송이를 벌려 밤알을 얻은 지 퍽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물기가 다 빠져 거무스레할 적에는 껍질맛이 바뀐다.


  문득 어릴 적을 떠올린다. 요사이 쌀에는 겨가 그대로 붙은 알을 보기 힘들지만, 어릴 적 쌀 가운데에는 겨가 그대로 있는 알이 꽤 있었다. 하얀 쌀밥을 어머니가 지어서 차려 줄 때에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한두 알이나 서너 알쯤 겨가 고스란히 있는 쌀알이 있다. 나는 겨가 고스란히 있는 쌀알을 남다르다 느끼며 한참 오물오물 씹으며 새삼스럽다 싶은 맛을 즐겼다.


  어른들은 으레 ‘백 차례쯤 씹어서 먹어야 맛이 난다’고 말하는데, 하얀 쌀알은 백 차례 아닌 열 차례 씹기도 힘들다. 그동안 사르르 녹으니까. 씨눈이 있는 누런 쌀알도 백 차례를 씹기 힘들다. 그사이 스르르 녹는다. 백 차례쯤 씹으라 하던 밥이란 ‘겨가 고스란히 있던 밥’이 아닐까. 역사책에 적히지 않는 예전 사람들은 곡식을 먹을 때에 언제나 껍질까지 함께 먹지 않았을까. 껍질째 먹는 곡식이기에 영양소를 한결 골고루 얻고, 이는 한결 튼튼하며, 몸과 마음은 한결 씩씩할 수 있지 않았을까. (4345.10.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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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아이 글쓰기 2

 


  큰아이가 제 이름 ‘사름벼리’ 넉 자를 스스로 외워서 쓸 수 있은 지 한 달이 지난다. 이제 큰아이는 책에 적힌 큼지막한 글씨를 바라보면서 옮겨 그릴 수 있다. 일찌감치 이렇게 해 볼 수 있었으나, 이때껏 내가 먼저 글을 써 주면, 아이가 이 글을 바라보며 그리면서 글쓰기를 했는데, 오늘부터는 아이더러 책에 적힌 글씨를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글씨가 있으면 써 보라고 했다.


  큰아이는 큰아이 나름대로 여러 글씨를 바라본다. 큰아이한테 마음에 드는 글씨가 적힌 책을 집어서 곁에 둔다. 글씨 한 번 보고 빈책에 한 번 슥 그리고, 다시 글씨 한 번 보고 빈책에 한 번 슥 그린다.


  참 마땅한 일인데, 글씨를 익히는 다섯 살 어린이도 ‘아이 마음에 드는 글씨’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제 글씨를 익힌다. 아이 마음에 안 드는 글씨는 바라보지 않는다. 아니, 아이 마음에 안 드는 글씨는 ‘그러한 글씨가 있는지 없는지 아예 안 느낀’다.


  책방마실을 할 적에는 나 스스로 내 마음에 드는 책만 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읽을 만한 책이름을 살피고, 내가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책을 손에 쥔다. 다른 책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마음에 없는 책은 아예 안 보인다.


  누군가는 ‘어떻게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나요?’ 하고 묻는다. 그런데,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기 마련이다.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 마련이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란 없다. 스스로 풀어야 할 무언가 있어서 누군가를 만나고, 스스로 꾀하거나 바라는 무언가 있어서 누군가를 만난다. 스스로 얻거나 가지고 싶은 무언가 있어서 어느 일을 한다. 스스로 ‘하고픈 일’이란 ‘살고픈 꿈이나 생각’이다. 돈 때문에, 학교 때문에, 일터 때문에, 문화·편의시설 때문에, 교통시설 때문에, ……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나와 옆지기는 오직 숲 때문에, 흙 때문에, 풀과 나무 때문에, 바람 때문에, 멧자락과 냇물 때문에, 바다 때문에, …… 시골에서 살아간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옳게 느끼지 못하거나 제대로 깨닫지 못할 뿐이다. 걷고 싶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요, 사랑하고픈 사랑을 하는 사람이며,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다섯 살 큰아이는 참 예쁘게 글을 쓴다. 왜냐하면, 아이는 스스로 예쁘다고 여기며, 아이가 하는 모든 놀이는 다 예쁘다고 여기니까. (4345.10.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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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맛

 


  내가 어릴 적에는 우유이든 사이다이든 술이든 물이든 모두 병에 담겼다.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 할 적에도 사이다 유리병을 가방에 넣고 가서는, 다 마시고 빈병을 집으로 가져왔다.


  플라스틱에 물이나 마실거리가 담긴 때가 언제였을까. 맨 처음 플라스틱에 담긴 무언가를 마셨을 적, 나는 몹시 나쁜 냄새를 느꼈다. 어떻게 이런 데에 마실거리를 담아서 사람들한테 마시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느낌은 한결같다. 어쩔 수 없이 페트병 물을 마셔야 할 때면, 물맛보다 플라스틱맛을 느낀다. 페트병 맥주가 처음 나올 적, 적잖은 사람들은 유리병 아닌 페트병을 가방에 넣으면 무게가 가볍다며 반갑게 여겼지만, 나는 술맛이 나쁘다고 느껴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이러한 느낌은 오늘날에도 똑같다. 페트병에 담긴 술을 마시면 술보다 페트병 냄새가 먼저 훅 끼친다.


  집에서 아이들한테 물을 마시게 할 때에도 이 느낌은 똑같다. 나부터 페트병 플라스틱 맛을 느끼는데, 아이들이 페트병을 입에 물고 마시도록 할 수 없다. 바깥으로 마실을 할 때에도 같은 마음이다. 처음에는 유리병을 들고 다니며 물을 마시게 했고, 요사이에는 스텐 물병을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바깥에서 여러 날 돌아다녀야 할 때면, 어쩌는 수 없이 ‘집물’이 아닌 ‘바깥물’을 마셔야 하는데, 바깥물을 마실 적에는 수도관을 타고 흐르는 냄새를 느낀다. 먹는샘물을 사다 마시더라도 집물처럼 시원하거나 개운한 느낌을 받지는 못한다. 왜일까. 사다 마시는 먹는샘물도 우리 집물처럼 땅밑에서 맑게 흐르던 물일 텐데, 페트병에 담긴 먹는샘물에서는 우리 집물처럼 맑으며 시원스러운 느낌이 안 날까. 흐르는 물이 아닌 갇힌 물이 되었기 때문일까. 언제나 흙과 풀과 나무와 바람과 햇살이랑 얼크러지는 물이 아닌, 공장에서 플라스틱 통에 꽁꽁 가둔 물이기 때문일까. (4345.10.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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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아이 오줌가리기

 


  어제 하루 작은아이 오줌기저귀를 한 장도 내지 않는다. 한 시간에 한 차례 오줌그릇에 앉히니 이때마다 조금씩 쉬를 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에도, 새벽에 칭얼거려 깨어날 적에도, 지난 열일곱 달을 돌아보건대 막 눈을 뜨거나 잠결에 이리저리 몸을 뒤틀 적에는 쉬가 마렵다는 뜻이요, 살며시 안아서 토닥이고 보면 바지나 기저귀에 으레 쉬를 누기 마련이라, 이 즈음에 오줌그릇에 앉히니, 졸린 눈으로도 쉬를 눈다.


  오늘도 낮 다섯 시 사십 분까지 아직 기저귀 한 장 내지 않는다. 틈틈이 쉬를 누였기 때문이다. 이제 깊은 낮잠에 빠진다. 깊은 낮잠을 잘 즐기다가 일어난 뒤에도 쉬를 누이면, 오늘은 밤잠을 잘 때까지 기저귀이며 바지이며 한 장도 빨래감이 안 나올 테지. 그러나, 빨래감이 있고 없고보다, 작은아이가 오줌그릇에 앉아 쉬를 누는 버릇을 들이니 반가우면서 예쁘다. 이제 너도 네 누나처럼 쉬가 마려울 때에는 쉬를 눌 자리를 찾을 수 있겠지. 쉬를 눌 자리를 찾을 수 있은 다음에는 똥을 눌 자리도 찾을 수 있겠지. 다 큰 아이가 되는구나. (4345.10.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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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0-05 17:58   좋아요 0 | URL
이쁘네, 이제 오줌도 가리는구나... 아이고.

파란놀 2012-10-05 18:08   좋아요 0 | URL
오줌 안 가려도 이쁘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