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글쓰기 2

 


  큰아이가 제 이름 ‘사름벼리’ 넉 자를 스스로 외워서 쓸 수 있은 지 한 달이 지난다. 이제 큰아이는 책에 적힌 큼지막한 글씨를 바라보면서 옮겨 그릴 수 있다. 일찌감치 이렇게 해 볼 수 있었으나, 이때껏 내가 먼저 글을 써 주면, 아이가 이 글을 바라보며 그리면서 글쓰기를 했는데, 오늘부터는 아이더러 책에 적힌 글씨를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글씨가 있으면 써 보라고 했다.


  큰아이는 큰아이 나름대로 여러 글씨를 바라본다. 큰아이한테 마음에 드는 글씨가 적힌 책을 집어서 곁에 둔다. 글씨 한 번 보고 빈책에 한 번 슥 그리고, 다시 글씨 한 번 보고 빈책에 한 번 슥 그린다.


  참 마땅한 일인데, 글씨를 익히는 다섯 살 어린이도 ‘아이 마음에 드는 글씨’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제 글씨를 익힌다. 아이 마음에 안 드는 글씨는 바라보지 않는다. 아니, 아이 마음에 안 드는 글씨는 ‘그러한 글씨가 있는지 없는지 아예 안 느낀’다.


  책방마실을 할 적에는 나 스스로 내 마음에 드는 책만 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읽을 만한 책이름을 살피고, 내가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책을 손에 쥔다. 다른 책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마음에 없는 책은 아예 안 보인다.


  누군가는 ‘어떻게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나요?’ 하고 묻는다. 그런데,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기 마련이다.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 마련이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란 없다. 스스로 풀어야 할 무언가 있어서 누군가를 만나고, 스스로 꾀하거나 바라는 무언가 있어서 누군가를 만난다. 스스로 얻거나 가지고 싶은 무언가 있어서 어느 일을 한다. 스스로 ‘하고픈 일’이란 ‘살고픈 꿈이나 생각’이다. 돈 때문에, 학교 때문에, 일터 때문에, 문화·편의시설 때문에, 교통시설 때문에, ……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나와 옆지기는 오직 숲 때문에, 흙 때문에, 풀과 나무 때문에, 바람 때문에, 멧자락과 냇물 때문에, 바다 때문에, …… 시골에서 살아간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옳게 느끼지 못하거나 제대로 깨닫지 못할 뿐이다. 걷고 싶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요, 사랑하고픈 사랑을 하는 사람이며,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다섯 살 큰아이는 참 예쁘게 글을 쓴다. 왜냐하면, 아이는 스스로 예쁘다고 여기며, 아이가 하는 모든 놀이는 다 예쁘다고 여기니까. (4345.10.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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