볍씨 빛깔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보아 거둔 볍씨가 길가에 그득히 널린다. 실 같은 줄기일까 뿌리일까 가늘게 하나씩 나오기도 하는데, 가을볕 고루 받는 볍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몇 알 줍는다. 아이한테 몇 알 내민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볍씨를 입에 넣는다. 껍질째 먹어 보렴, 하고 말하면서 나도 한 알 혀에 올린다. 살살 씹는다. 침으로 녹이지 않아도 사르르 녹는다. 갓 거둔 벼알이란 이런 맛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햇쌀로 밥을 지어 먹을 때에 참 맛있겠네 싶으면서, 굳이 겨를 벗기지 않고 겨 있는 벼알을 통째로 밥으로 지어 먹어도 맛있으리라 느낀다.


  궁금하네. 왜 겨를 다 벗겨서 먹을까. 언제부터 겨를 다 벗겨서 밥을 지었을까. 겨를 벗겨 ‘쌀’로 바꾸지 않더라도 즐겁게 밥을 먹고 즐겁게 숨결을 북돋우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벼를 벼알 그대로 안 먹고 쌀겨를 버리면서 차츰 바보스레 바뀌지는 않았을까. 능금도 배도 복숭아도 살구도 포도도 껍질째 먹던 열매가 아닌가. 밤은 껍질이 두껍다 하지만, 나무에서 갓 딴 밤송이를 벌려 그 자리에서 껍질째 씹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나고 달달한지 모른다. 게다가 밤 겉껍질 아래쪽 빛깔이 몹시 하얗다. 껍질도 보드랍게 잘 씹힌다. 밤껍질이 두껍다고 느끼는 까닭이라면, 밤송이를 벌려 밤알을 얻은 지 퍽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물기가 다 빠져 거무스레할 적에는 껍질맛이 바뀐다.


  문득 어릴 적을 떠올린다. 요사이 쌀에는 겨가 그대로 붙은 알을 보기 힘들지만, 어릴 적 쌀 가운데에는 겨가 그대로 있는 알이 꽤 있었다. 하얀 쌀밥을 어머니가 지어서 차려 줄 때에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한두 알이나 서너 알쯤 겨가 고스란히 있는 쌀알이 있다. 나는 겨가 고스란히 있는 쌀알을 남다르다 느끼며 한참 오물오물 씹으며 새삼스럽다 싶은 맛을 즐겼다.


  어른들은 으레 ‘백 차례쯤 씹어서 먹어야 맛이 난다’고 말하는데, 하얀 쌀알은 백 차례 아닌 열 차례 씹기도 힘들다. 그동안 사르르 녹으니까. 씨눈이 있는 누런 쌀알도 백 차례를 씹기 힘들다. 그사이 스르르 녹는다. 백 차례쯤 씹으라 하던 밥이란 ‘겨가 고스란히 있던 밥’이 아닐까. 역사책에 적히지 않는 예전 사람들은 곡식을 먹을 때에 언제나 껍질까지 함께 먹지 않았을까. 껍질째 먹는 곡식이기에 영양소를 한결 골고루 얻고, 이는 한결 튼튼하며, 몸과 마음은 한결 씩씩할 수 있지 않았을까. (4345.10.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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