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11.25.
 : 손이 시린 자전거

 


- 아이들한테는 담요 한 장과 두꺼운 겉옷을 덮어 주면서, 정작 나는 장갑을 안 낀 채 늦가을 자전거를 달리니, 손이 무척 시린다.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달린다. 천천히 달린다. 논둑길로 달리려고 이웃마을 쪽으로 넘어가는데, 저녁나절 자전거 달리는 할머니 한 분 보인다. 짐받이에 무얼 싣고 어디로 가시는 길일까. 자동차 드물고 길 잘 닦인 이곳에서는 굳이 짐차를 몰 까닭이 없으리라 느낀다. 저마다 자전거를 천천히 몰며 마을숲을 누리고 마을길을 즐기면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 마늘밭마다 잎이 제법 오른다. 바야흐로 겨울이 다가올 테고, 겨울날 찬바람을 먹으며 마늘은 한결 씩씩하게 알이 굵겠지. 겨울을 먹고 자라는 풀과 나무는 참 씩씩하고 튼튼하구나 싶다. 사람도 겨울을 먹고 자라면서 한결 씩씩하면서 튼튼하게 크지 싶다.

 

- 가을무늬를 한껏 누리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가 잠든다. 큰아이가 아버지를 부른다. “이제 노래 그만 불러요. 보라(동생) 자니까요.” 하고 말한다. 큰아이도 아버지도 호젓한 시골 들길을 천천히 달리며 한참 노래를 불렀다. 이제 둘은 말없이 조용히 달린다. 뉘엿뉘엿 기울며 어둑어둑 바뀌는 저녁놀을 누린다. 집에 닿아 작은아이를 방에 눕힌다. 큰아이는 집에 닿아 어딘가 아쉬운지 세발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빙빙 돈다. 성에 찰 만큼 세발자전거를 타고는 방으로 들어온다.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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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인터넷방마다 '내 이름'을 다르게 썼는데,

이제 차츰 이 다른 이름을 하나로 그러모은다.

 

인터넷이라는 데가 '나를 숨긴다'는 데에서 재미있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내가 내 삶을 글로 쓰는데 '내가 숨겨질 일이 없구나' 싶어

굳이 다 다른 이름으로 글을 쓸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알라딘서재에서도

드디어

내가 나한테 맨 처음 붙인 '내 이름'으로

돌아간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붙인 이름이 석 자 있는데,

이 석 자 말고,

나는 내가 나한테 붙인 이름이 있다.

이 이름은 '함께살기'이다.

 

딱 내 마음씨만큼 지은 이름이라 할 텐데

1992년에 이 이름을 나한테 붙여 주면서

나 스스로 되게 뿌듯했다고 느꼈다.

 

<나우누리>라고 하는 데에서 이 이름을 처음으로 썼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이 이름을 다시 썼으며,

<네이버>에서는 그냥 '고무신'으로 썼고,

다른 데에서는 알파벳으로 'hbooks'나 'hbooklove'를 쓰곤 했는데

(한글이 안 되는 곳에서는)

알라딘서재에서는 어쩐지 '된장'이란 이름이 쓰고 싶었다.

'된장'이라는 이름은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도 나란히 썼다.

 

라면 한 봉지를 끓여도,

김치찌개를 끓여도

어떤 국을 끓여도

어떤 무침이나 나물을 해도

나는 늘 '된장'을 넣곤 했다.

 

요즈음에는 된장은 잘 안 쓰고 소금을 쓴다.

그러다 보니, 소금을 먹고 된장을 잘 안 먹는

요즈음 내 삶을 돌아보건대

아무래도 '된장'이라는 이름은

목숨이 다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ㅈㅇㅎ이라고 하는 어떤 이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은

'젠장'이라느니 무어니 하고 다른 사람을 비아냥거리려고

이런 '된장' 같은 이름을 썼다느니 하는 말꼬리 잡는 글을

아무 데나 올리며 나를 헐뜯기도 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 내 이름을 '고추장'으로

 바꿀까 하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이러구러

나 스스로 나한테 붙인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

나는 내 이름을 젖히고

왜 다른 이름에 사로잡혀 이렇게 긴 해를 보냈을까.

 

아스라한 이야기는 앞으로 새롭게 피어나리라 생각하며

내 이름을 예쁘게 사랑하자고 다짐한다.

(그런데, 알라딘서재 이름을 바꾸고 보니,

 서재 이름은 "함께살기-_-알라딘 지점"처럼 썼더라.

 참... 나도 나 스스로 뚱딴지 같았구나.)

 

이제 '된장'이라는 이름은 잘 쉬기를 빈다.

잘 있으렴~~~~ ^^

 

'된장'에서 '함께살기'로 이름을 바꾸면서

'함께살기-_-알라딘 지점'이라는 이름도 '고흥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로 바꾼다.

음...

어쩐지 어여뻐 보이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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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1-28 00:18   좋아요 0 | URL
어여뻐 보이네요.
된장이란 이름.. 저도 함께 흘려보냅니다, 잘가라.

파란놀 2012-11-28 04:4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그나저나, 일찍 주무셔야지요~ ^^;;)

페크pek0501 2012-11-28 19:02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없겠구나 싶어요.
멋진 새출발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파란놀 2012-11-29 11:42   좋아요 0 | URL
'새'것도 '헌'것도 아니지만~
암튼, 고맙습니다~~~ ^__^
 

 

 작은 아이, 더 작은 아이

 


  우리 집 대청마루는 우리 마을 이웃집 대청마루를 헤아리면 살짝 좁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 대청마루에서 잘 뛰어논다. 한여름에는 큰아이하고 이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잠을 자곤 했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 살 만큼 널널하다.


  이웃마을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니, 대청마루에 따로 샤시문을 달지 않아 대청마루 아래쪽이 훤히 트인 그대로 있다. 새삼스레 대청마루가 꽤 높다고 느끼면서, 이런 대청마루라면 비오는 여름날 대청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즐기고 비내음에 스며드는 시원스러운 바람을 느끼겠구나 싶다.


  아이들은 대청마루에 앉을 적에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이러한 대청마루에 아직 익숙하지 않던 큰아이는 그만 대청마루에서 지익 미끄러지며 아래로 한 번 굴러떨어지기도 한다. 그래 봐야 흙바닥이니 다칠 일은 없다. 한 바퀴 돌았으니 살짝쿵 놀랐을 뿐.


  큰아이라 하더라도 ‘작은’ 아이라고 새삼스레 느낀다. 작은아이라 하지만 참으로 ‘더 작은’ 아이라고 다시금 느낀다. 이 작은 아이들은 어버이 사랑을 받아먹으며 하루하루 무럭무럭 누릴 고운 숨결이다. 발그네를 하면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맞아들이는 살가운 대청마루 살린, 묵은 시골 흙집은 이 땅에 몇 채쯤 남았을까. 4345.1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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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푸는 책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구나 싶어 자리에 드러누워 한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등허리가 뜨끔뜨끔하다. 온몸이 찌뿌둥하다. 이럴 때에는 아무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내 몸속에서 서글픈 낱말만 튀어나올까 괴롭다. 살며시 책 하나 쥐어 펼친다. 좁아지며 얄팍하게 흐르던 마음이 살짝 풀어진다. 마음이 넉넉해야 생각이 흐른다. 마음이 좁살뱅이처럼 졸아들면 생각이 갇힌다. 작은아이를 안거나 큰아이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내려서 어두운 밤하늘 올려다보며 별을 헤아릴 적에는 마음이 풀린다. 바람을 쐬거나 햇볕을 쬐거나 풀잎을 쓰다듬어도 마음이 풀린다. 그래, 이 모두 나한테는 고마운 책일 테니까. 4345.1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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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빛을 읽는 사진

 


  빛을 찍는 사진입니다. 낮에는 낮빛을 찍고, 밤에는 밤빛을 찍습니다. 밝다고 잘 찍지 않으며, 어둡다고 못 찍지 않아요. 밝은 데에서는 밝은 빛을 찍을 뿐입니다. 어두운 데에서는 어두운 빛을 찍을 뿐이에요.


  빛을 찍으려면 빛을 읽어야 합니다. 빛을 읽기에 빛을 찍을 수 있습니다. 어떤 빛인가를 읽고, 나한테 어떻게 스며드는 빛인가를 읽습니다. 빛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얼마나 즐거운가 놀라운가 사랑스러운가 기쁜가 슬픈가 재미난가 신나는가 괴로운가 힘드는가 들을 찬찬히 살핍니다.


  빛을 읽을 때에 빛을 찍을 수 있듯, 사람을 읽을 때에 사람을 찍을 수 있습니다. 무턱대고 사람들한테 다가가서 사진기 단추를 누른대서 사람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람들마다 다 다른 삶을 가만히 읽으면서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사람사진을 찍습니다.


  꽃사진도 이와 같아요. 꽃 앞에 무턱대고 선대서 꽃사진을 못 찍습니다. 흔한 말로 피사계심도를 잘 맞추어야 꽃사진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꽃송이를 아름답게 바라보며 즐기고 누릴 때에 꽃사진을 찍어요. 다만, 아름답게 느낀대서 아름다이 느낄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아름답게 느끼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아름다움 찍기’가 아니니까요. 사진은 ‘내가 누리는 삶 찍기’이니까요.


  그러면, 아름답게 보이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일컫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사진 찍는 분이 ‘이녁 삶’을 사진으로 담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사진을 들여다볼 사람 눈높이’에서 사진기 단추를 눌렀다는 뜻입니다. ‘내가 즐기고 누리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쳐다보며 웃고 기뻐해 줄 모습’에 마음이 기울어졌다는 뜻입니다.


  때때로 두 가지 마음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오래도록 사랑받고 두고두고 웃음꽃을 터뜨리며 한결같이 이야기샘이 되는 사진입니다. 다만, 아직 이만 한 사진은 몇 없다고 느껴요. 그리고, 이는 사진밭뿐 아니라 그림밭에서도 매한가지예요.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림이라면 그저 아름답다고 느낄 뿐이에요. 그러나, 그림이든 사진이든 ‘아름다움’이 처음도 아니요 끝도 아니며 알맹이도 아닙니다. 아름다움이란 한낱 겉모습이에요.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까닭은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 삶’에 이야기가 있고,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라는 아이는 ‘렘브란트’ 그림을 바라보며 샘솟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하면서 가슴 깊이 이야기가 흘러넘치지요. 마냥 쳐다보며 ‘아, 좋다!’가 아니라, 그림 한 장에서 ‘숱한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샘물’이 드러나야 비로소 ‘그림’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해요.


  사진을 바라볼 때에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 가슴’에서 저절로 이야기가 샘솟도록 하는 작품은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잔치에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야기가 샘솟아 저마다 아리땁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얼추 몇 작품이 모였다거나, 사진을 찍은 지 얼추 몇 달이나 몇 해가 되었으니 여는 사진잔치가 아니라, 사진쟁이 스스로 이야기가 흘러넘치기에 여는 사진잔치가 되어야 해요. 사진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서 어떤 이야기가 샘솟을까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이야기가 있기에 이야기를 누리며 찍는 사진입니다. 곧, 사진은 빛을 읽으며 빛을 찍는다 하는데, 사진찍기에서 다루는 빛이란 ‘이야기로 나아가는 문’인 셈입니다. ‘이야기로 나아가는 문’인 빛을 어떻게 얼마나 슬기롭게 읽고 즐기는가에 따라 사진빛이 달라지고 사진삶이 거듭납니다. 4345.1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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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1-2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두운 데서는 어두운 빛을 찍을 뿐....
그렇네요, 그런 생각을 못 해봤어요. 그냥 어두운 빛을 찍을 뿐인데
우리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 보여 하는거네요.

참 고운 사진입니다.

파란놀 2012-11-27 14:10   좋아요 0 | URL
밤에 별을 보는 느낌을 헤아려 보시면 돼요.
달여우 님도 고운 삶 누리며
고운 이야기 빚으시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