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 빛을 읽는 사진

 


  빛을 찍는 사진입니다. 낮에는 낮빛을 찍고, 밤에는 밤빛을 찍습니다. 밝다고 잘 찍지 않으며, 어둡다고 못 찍지 않아요. 밝은 데에서는 밝은 빛을 찍을 뿐입니다. 어두운 데에서는 어두운 빛을 찍을 뿐이에요.


  빛을 찍으려면 빛을 읽어야 합니다. 빛을 읽기에 빛을 찍을 수 있습니다. 어떤 빛인가를 읽고, 나한테 어떻게 스며드는 빛인가를 읽습니다. 빛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얼마나 즐거운가 놀라운가 사랑스러운가 기쁜가 슬픈가 재미난가 신나는가 괴로운가 힘드는가 들을 찬찬히 살핍니다.


  빛을 읽을 때에 빛을 찍을 수 있듯, 사람을 읽을 때에 사람을 찍을 수 있습니다. 무턱대고 사람들한테 다가가서 사진기 단추를 누른대서 사람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람들마다 다 다른 삶을 가만히 읽으면서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사람사진을 찍습니다.


  꽃사진도 이와 같아요. 꽃 앞에 무턱대고 선대서 꽃사진을 못 찍습니다. 흔한 말로 피사계심도를 잘 맞추어야 꽃사진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꽃송이를 아름답게 바라보며 즐기고 누릴 때에 꽃사진을 찍어요. 다만, 아름답게 느낀대서 아름다이 느낄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아름답게 느끼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아름다움 찍기’가 아니니까요. 사진은 ‘내가 누리는 삶 찍기’이니까요.


  그러면, 아름답게 보이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일컫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사진 찍는 분이 ‘이녁 삶’을 사진으로 담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사진을 들여다볼 사람 눈높이’에서 사진기 단추를 눌렀다는 뜻입니다. ‘내가 즐기고 누리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쳐다보며 웃고 기뻐해 줄 모습’에 마음이 기울어졌다는 뜻입니다.


  때때로 두 가지 마음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오래도록 사랑받고 두고두고 웃음꽃을 터뜨리며 한결같이 이야기샘이 되는 사진입니다. 다만, 아직 이만 한 사진은 몇 없다고 느껴요. 그리고, 이는 사진밭뿐 아니라 그림밭에서도 매한가지예요.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림이라면 그저 아름답다고 느낄 뿐이에요. 그러나, 그림이든 사진이든 ‘아름다움’이 처음도 아니요 끝도 아니며 알맹이도 아닙니다. 아름다움이란 한낱 겉모습이에요.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까닭은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 삶’에 이야기가 있고,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라는 아이는 ‘렘브란트’ 그림을 바라보며 샘솟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하면서 가슴 깊이 이야기가 흘러넘치지요. 마냥 쳐다보며 ‘아, 좋다!’가 아니라, 그림 한 장에서 ‘숱한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샘물’이 드러나야 비로소 ‘그림’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해요.


  사진을 바라볼 때에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 가슴’에서 저절로 이야기가 샘솟도록 하는 작품은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잔치에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야기가 샘솟아 저마다 아리땁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얼추 몇 작품이 모였다거나, 사진을 찍은 지 얼추 몇 달이나 몇 해가 되었으니 여는 사진잔치가 아니라, 사진쟁이 스스로 이야기가 흘러넘치기에 여는 사진잔치가 되어야 해요. 사진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서 어떤 이야기가 샘솟을까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이야기가 있기에 이야기를 누리며 찍는 사진입니다. 곧, 사진은 빛을 읽으며 빛을 찍는다 하는데, 사진찍기에서 다루는 빛이란 ‘이야기로 나아가는 문’인 셈입니다. ‘이야기로 나아가는 문’인 빛을 어떻게 얼마나 슬기롭게 읽고 즐기는가에 따라 사진빛이 달라지고 사진삶이 거듭납니다. 4345.1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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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1-2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두운 데서는 어두운 빛을 찍을 뿐....
그렇네요, 그런 생각을 못 해봤어요. 그냥 어두운 빛을 찍을 뿐인데
우리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 보여 하는거네요.

참 고운 사진입니다.

숲노래 2012-11-27 14:10   좋아요 0 | URL
밤에 별을 보는 느낌을 헤아려 보시면 돼요.
달여우 님도 고운 삶 누리며
고운 이야기 빚으시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