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지내며 하나도 안
힘들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아직 없다. 앞으로도 없으리라 느낀다. 왜냐하면, 참말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마땅하지 않은가. 무엇이 힘든가. 다만, 두 아이와 지내다가 누군가 아이가 ‘몇 달’이라느니 ‘언제 태어났느냐’ 하고 물으면 으레 멈칫멈칫한다.
태어난 해가 언제인지 잊기도 하고, 좀처럼 못 떠올리기도 한다. 태어난 날을 잘못 알기도 하고, 달수를 잘못 세기도 한다.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탓일 수 있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안 보내는 탓일 수 있으며,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는 탓일 수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느낄 적에 ‘나이’나 ‘달수’로 생각하지 않은 지 오래이다. 아이를 느낄 적에는 눈빛을 보고 낯빛을 본다.
손을 잡고 발가락을 만진다. 아이들 배를 살살 쓰다듬어 보고, 허리와 등을 비벼 본다. 머리카락을 빗어 주고 쓰다듬는다. 옷을 갈아입히고
씻으면서 배가 어느 만큼 들어갔는지 살핀다. 달리기를 얼마나 잘 하고, 넘어졌다 일어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키가 어느 만큼 자랐는가
헤아리고, 아이들 손을 잡고 걸을 적에 아이 손과 내 손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돌아본다.
밥상맡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먹는지 헤아린다. 언제나 아이들 밥그릇에 조금 많이 밥을 퍼서 건네는데, 아이들은 배고프면 꽤 많이
담은 밥을 씩씩하게 다 먹는다. 덜 배고프면 먹다가 남긴다. 두 아이 똥받이를 손수 하니까, 아이들이 누는 똥을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으면서
아이들 몸이 어떠한가를 돌아보고, 밥을 제대로 씹어서 먹었는지 알아본다. 하루이틀 만진 아이들 똥오줌이 아니기도 하지만, 아이들 똥오줌이
‘더럽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이들이 먹은 그대로 똥이 되고, 이 똥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텐데, 왜 더러울까.
아이가 하나라면 한결 수월하다든지, 더 멀리 자주 나들이를 다닌다든지, 이것저것 더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다고도 가끔
생각한다. 그러나, 둘이라서 덜 수월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둘이기에 두 아이는 서로 돕고 아끼면서 놀곤 한다. 내가 작은아이한테 이것저것 따로
품을 들이거나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아도, 큰아이가 동생을 보살피거나 이것저것 가르치거나 보여주곤 한다. 아이 하나일 때와 둘일 때 가운데 어느
쪽이 ‘일손이 적게 든다’고 가를 수 없다.
언제나 아이들이 먼저 나한테 말을 건다. 아이들은 저희한테 어버이가 ‘무엇을 해 주어야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가’를 먼저
알려준다. 나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서 듣고, 잘 챙기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 아이들이
말하기 앞서 찬찬히 베풀면서 함께 누릴 이야기를 조곤조곤 지으면 된다.
날마다 새로운 생각을 얻는다. 늘 새로운 마음이 된다. 할머니 두 분이 “혼자 애 돌보느라 얼마나 힘들겠어?” 하고 걱정해
주셔도, 여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는 터라, “아이들이 있어 날마다 새 글을 쓸 수 있고, 새 일이 찾아들면서, 새 삶을 누리는걸요.” 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빗대어 말할 만하다. 아름다운 영화를 두 시간 동안 꼼짝않고 보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사랑스러운 책을
몇 시간 가만히 서서 읽는 동안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푸른 숲길을 거닐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짙푸른 바다가 멀리까지 이어진
모래밭에 서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싱그러운 바람이 흐르는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이들과 지내는 하루란, 이
모두가 한꺼번에 잇달아 찾아드는 삶이라고 느낀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마음속으로 드리우는 빛살이 참 반갑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