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낮과 저녁



  아침에 빨래를 한다. 바깥에 널어 말린 뒤 읍내마실을 간다. 낮에 집으로 돌아온다. 땀으로 젖은 옷을 벗고 빨래를 한다. 아침에 넌 옷가지는 걷는다. 축축한 빨래를 넌다. 해질녘까지 뛰논 아이들을 불러 씻긴다. 옷을 다 갈아입히고 빨래를 한다. 낮에 빨아서 넌 옷가지는 잘 말랐다. 보송보송한 기운을 느낀다. 저녁에 빨래한 옷가지를 널고, 낮에 빨래한 옷가지를 천천히 갠다.


  기지개를 켠다. 모처럼 하루에 세 차례 빨래를 한다. 작은아이가 기저귀를 뗀 뒤로는 하루에 세 차례 빨래를 한 일이 드물다. 작은아이 빨래가 덜 나온 뒤부터 하루에 한두 차례만 했고, 작은아이가 네 살로 접어든 뒤에는 이틀에 한 차례 빨래를 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더위가 찾아오니 빨래도 잦을 테지. 아이들은 땀을 자주 흘리고, 옷도 자주 갈아입혀야 한다. 아이들은 자주 씻어야 하고, 어른인 나도 물을 자주 만지면서 땀을 훔치고 더위를 식힌다. 4347.5.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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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입히는 어버이



  우리 집 작은아이는 언제나 누나 옷을 물려입는다. 큰아이는 가시내이고 작은아이는 머스마이지만, 두 아이 옷을 나누어 입혀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가만히 보면, 어른이 입는 옷도 이와 같다. 굳이 가시내 옷과 머스마 옷을 갈라야 하지 않는다. 그냥 입으면 된다.


  나도 그동안 헌옷으로 가시내 옷을 꽤 많이 주워서 입었다. 신문배달을 하며 혼자 살 적에, 아파트에 신문을 돌리다 보면, 아파트에 으레 있던 헌옷 모으는 통을 뒤져서 입을 만한 옷을 가져왔다. 나도 입고 지국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형도 입는다. 아파트에 신문을 넣는 다른 신문사 일꾼도 저마다 헌옷통을 뒤져서 옷가지를 챙긴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입던 고운 옷을 저도 입고 싶다. 그런데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 고운 옷, 바로 치마를 저한테 입혀 주려 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네 살 작은아이는 울며 불며 떼를 쓰면서 누나 치마를 빼앗으려 한다. 누나가 안 입는 작은 치마를 작은아이한테 건넨다. 작은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빙그레 웃는다. 누나 치마를 입고는 좋아서 방방 뛴다.


  고운 빛이 알록달록 사랑스러운 치마이니, 작은아이가 입고 싶어 할 만하다고 느낀다. 색동저고리를 가시내만 입는가, 사내도 함께 입는다. 치마이고 아니고를 떠나, 아이들로서는 무지개와 같이 고운 옷을 입으며 고운 마음이 되고프리라 느낀다. 4347.5.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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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그림 좋은 풀순이 (2014.5.15.)



  밤잠을 자야 할 텐데, 큰아이가 안 자고 더 놀겠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놀겠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그리면 안 될까 하고 묻지만, 큰아이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종이와 빛연필을 내민다. “벼리 그려 주세요.” 하고 말한다. 알았어. 너를 그려 줄 테니, 그림을 보고 자자. 한손에는 연필을 쥐고 다른 한손에는 지우개를 쥔 아이를 그린다. 잠옷 바지에 있는 꽃무늬를 알록달록 그린다. 아이가 맑은 별빛을 받으면서 잠들고, 푸른 풀내음을 맡으면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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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5] 딸기를 먹는 손

― 오월에는 들딸기를 따자



  들딸기도 멧딸기도 멍석딸기도 사람이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들과 숲에서 돋는 딸기는 딸기풀이 스스로 씨앗(열매)을 떨구고 넝쿨을 뻗으면서 퍼집니다. 멧새가 빨간 열매를 따먹고 훨훨 날아 똥을 뽀직 눌 적에 멀리 퍼지기도 합니다. 들쥐나 다람쥐가 갉아먹다가 이곳저곳에서 똥을 뽀직 누면 다른 곳으로 퍼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딸기넝쿨을 걷어냅니다. 사람들은 멧자락을 허물어 길을 내거나 공장을 짓거나 골프장을 닦습니다. 들짐승과 숲짐승은 딸기를 퍼뜨리지만, 사람은 딸기를 없앱니다. 딸기를 먹고 오월을 누리는 들짐승과 숲짐승이 살아갈 터를 없애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들딸기나 멧딸기가 없어도 된다고 여깁니다. 비닐집을 세워 농약과 비료를 주면 얼마든지 더 굵은 비닐집딸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고, 이른봄이나 늦가을에까지 딸기를 먹는 사람들이에요. 봄에 꽃이 피고 여름을 앞둔 길목에서 누리는 딸기를 잊는 사람들입니다.


  오뉴월에 딸기를 먹습니다. 첫물 딸기는 몇 줌 안 되지만, 이내 커다란 통을 그득 채울 만큼 됩니다. 며칠 더 지나면 큰 통을 여럿 채울 만큼 쏟아집니다. 들딸기는 사람도 먹고, 새도 먹으며, 개미와 풀벌레도 먹습니다. 들과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목숨이 오뉴월에 새빨간 딸기를 먹으며 따스한 숨결을 북돋웁니다.


  싱그러운 딸기는 무엇을 먹고 이렇게 자랐을까요. 햇볕을 먹고, 바람을 먹으며, 빗물을 먹습니다. 흙을 먹고, 풀내음을 먹으며, 사람들이 따스하게 내미는 살가운 손길을 먹습니다. 4347.5.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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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딸기를 받으렴



  딸기를 딴다. 앙증맞게 작은 들딸기를 딴다. 한 줌 따고는 아이를 불러 손바닥에 쏟는다. 다시 한 줌 따고는 아이 손바닥에 붓는다. 또 한 줌 따고는 아이 손바닥에 얹는다. 들딸기가 빨갛게 돋은 풀숲을 헤친다. 가시에 찔리고 긁힌다. 아마 예부터 어버이라면 누구나 가시에 찔리고 긁히면서 들딸기나 멧딸기를 땄겠지. 아이들은 어버이가 딴 딸기를 먹으면서 봄맛을 누렸겠지. 아이들은 어버이가 건넨 딸기맛을 보면서 무럭무럭 자랄 테고, 아이들은 새롭게 어른이 되어 저희 아이한테 다시금 딸기를 따서 건넬 테지.


  해마다 딸기밭이 넓게 퍼진다. 해마다 딸기를 더 많이 얻는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어버이가 딸기를 따서 건넨다. 자, 이 딸기를 받으렴. 아이들이 씩씩하게 크면, 곧 아이들 스스로 딸기를 따먹으로 놀겠지. 아이들이 손수 딸기를 따먹을 날이 멀지 않다.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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