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함께 있는 즐거움
 [만화책 즐겨읽기 118] 토우메 케이,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그믐밤에는 달이 보이지 않습니다. 달이 보이지 않으면 별이 한결 잘 보이지 않으랴 싶지만, 막상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노라면 별을 그리 많이 찾아보지는 못합니다. 깜깜해진 밤하늘은 더 깜깜하고 별빛까지 수그러듭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살짝 바깥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걷습니다. 바람이 꽤 쌀쌀하면 살짝 나왔다가 금세 들어갑니다. 바람이 그닥 차지 않으면 마을을 한 바퀴 빙 돕니다. 보름밤에는 길이 훤히 잘 보여 걱정없이 걷는데, 그믐밤에는 여느 때에 잘 보이던 길이 아주 깜깜합니다. 이때 아버지랑 나란히 걷는 첫째 아이는 아버지 손을 꼭 움켜쥐며 뒤로 물러섭니다.

 

 별을 보고 깜깜한 밤을 보면서 이제 이렇게 조용한 때에는 모두 코 하고 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습니다. 이런다고 곧 잠들 아이들은 아닙니다. 갓난쟁이 둘째는 가슴에 엎드리도록 합니다. 첫째는 곁에 누우라 합니다. 이런 다음 한참 노래를 부르며 놉니다.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하다가는 두 팔로 아버지 가슴을 팍 디디고 웃몸을 일으키는 둘째가 까르르 웃기를 되풀이하다가는 눈꺼풀이 스르르 감길 무렵, 나즈막하게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이무렵 첫째는 “동생 자?” 하고 묻고는 저도 하품을 길게 하다가는 눈을 사르르 감습니다.


- “너 지금 까마귀들에게 밥 주고 있는 거냐? 그건 팔다 남은 도시락이잖아. 사장님이 아시면 야단하실 텐데.” “비밀로 해 주세요. 어차피 버릴 거잖아요.” (10쪽)
- “나도 도시락, 한 개만 줘.” “뭐? 이런 일을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어, 규정상. 미안하지만.” “뭐? 방금 까마귀에게는 줬잖아.” “그, 그야 그렇지만.” “좀 봐줘. 막차를 놓쳐서 신주쿠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단 말이야.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래. 까마귀에게 적선한 셈치면 되잖아.” (13쪽)

 


 아이 둘을 나란히 재우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이 둘을 재우고 보면 셋이나 넷이 있을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떠올립니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이랑 살을 부대끼며 같이 있는 나날이 가장 즐거운 하루가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억지로 재우려 한대서 잠들 아이들이 아니라, 실컷 뛰고 구르고 기고 달리고 하다가 제풀에 겨워 곯아떨어질 때에 비로소 꿈누리로 접어드는 아이들이리라 생각합니다.

 

 멀리 찾아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어요. 바로 내 어린 나날을 조금만 떠올리면 오늘 내 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하고 어떻게 어울릴 때에 서로 기쁘며 좋은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사람 몸은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는다면, 사람 마음은 사랑을 먹으며 기운을 얻어요. 밥 한 그릇으로 몸에 새 기운 북돋우고, 사랑 한 자락으로 마음에 새 기운 북돋울 수 있어요. 몸과 마음이 함께 튼튼해야 씩씩한 사람이 돼요. 몸만 튼튼하거나 마음만 튼튼할 수 없어요. 내 몸을 빛낼 가장 좋은 밥을 찾아서 먹고, 내 마음을 빛낼 가장 좋은 사랑을 찾아서 나누어야 즐거운 삶이에요.


- “그나저나 넌, 하나도 안 변했구나.” “사람이 반년만에 쉽게 바뀌겠어! 너야말로 전혀 안 변했는걸.” (35쪽)
- “이상하지. 사랑이란 단지 착각일 뿐인데, 알고 있으면서 그걸 거역할 수가 없다니. 덕분에 5년씩이나. 바보같이.” (72∼73쪽)

 


 가장 즐거이 살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가장 즐거이 살아가는 길이니까요. ‘가장’은 오직 한 가지에만 붙이는 꾸밈말이거든요.

 

 이렁저렁 즐거운 길이란 많아요. 이모저모 즐거이 누릴 삶도 많겠지요. 그러나 참말 가장 즐겁게 오순도순 어우러질 길이라 한다면 다문 하나예요. 어버이로서, 아이로서, 집식구로서, 옆지기로서, 살붙이로서, 서로서로 가장 즐겁게 오순도순 어우러질 길이란 스스로 밥을 일구어 얻고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나누는 삶 하나라고 느껴요.


- “미안해. 이 밤중에. 잠깐 나와 줄 수 없을까?” “커피숍이라도 갈까?” “아니, 여기서도 괜찮아. 오래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난, 널 좋아해.” (87쪽)
- “네가 말한 착각에 종지부를 찍고 자전거 채로 넘어졌어. 그냥 한번 자기변혁을 시도해 봤을 뿐이야. 거짓말쟁이인 자신을 힘껏 쫓아내 봤어. 그리고 도망갈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되나 하고 봤더니, 뜻밖에, 아무렇지도 않더라구. 계속 같은 곳에 있을 뿐.” (95쪽)
- “거짓말쟁이는 아무것도 잃지 않지만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어. 난 거짓말쟁이지만 처음으로 남이 날 좋아해 주길 바랐어. 나도 도망칠 곳을 잃은 건지도 몰라.” (98쪽)

 


 아이들이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다고 그리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름난 대학교에 붙는다고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붙거나 큰회사 시험에 붙었기에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가 씨앗 한 알 고이 건사해서 무럭무럭 자라도록 심을 수 있을 때에 기쁩니다. 아이가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서로서로 아끼고 보듬으며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기쁩니다. 아이가 따스한 손길로 풀줄기와 꽃잎을 쓰다듬을 수 있을 때에 기쁩니다. 아이가 맑은 눈빛으로 노래하며 이야기꽃 피울 때에 기쁩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내 삶에서 나부터 살고 싶은 길이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동안 아이하고 함께 누리고 싶은 길입니다.

 

 나는 시험 100점이 썩 기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나는 어찌저찌 누리는 이름쪽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살가이 건사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좋습니다. 내가 포근히 감싸며 나눌 수 있는 사랑이 좋습니다. 내가 흐뭇하게 길어올릴 이야기와 꿈이 좋습니다.

 

 아이한테 바라고 싶은 무언가를 나부터 살아내면 됩니다. 아이한테 무언가 바라고 싶으면 나부터 기쁘게 살아내면 됩니다. 아이와 어버이가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이 한길을 걸으면 됩니다.


- “네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다지 잘해 줄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내 머릿속은 그럴 여유가 없거든.” “알고 있어. 우오즈미는 생각할 게 많으니까. 자신에 대해서도, 시나코 선생님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어. 난 반 바퀴 정도 늦게 출발한 러너 같은 존재야.” “뭐?” “처음부터 지는 경기를 시작했다는 뜻이지. 우오즈미가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알지만, 난 우오즈미가 생각하는 것만큼 환상이나 이상을 가지고 있진 않아. 내가 생각하고 느낀 그대로의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우오즈미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어. 난 우오즈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야 물론, 언젠가는 날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우선,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그러니까 괜찮아. 포기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이런 내가 이상해?” (215∼217쪽)

 


 토우메 케이 님 만화책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학산문화사,2001) 첫째 권을 읽습니다. 모두 일곱 권으로 이루어진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첫째 권에서는 ‘함께 있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사랑이든 아니든, 사랑이라 느끼든 못 느끼든, 서로 바라보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증명서나 계약서나 신고서가 있어야 함께 살아가는 님이 아닙니다. 한 집 같은 방에서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야 함께 살아가는 짝이 아닙니다. 몸을 섞는대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몸을 섞기도 하지만, 사랑이 아니면서 몸을 섞기도 해요.

 

 사랑일 때에는 서로 마주볼 수 있기에 기쁘고, 사랑인 만큼 서로 마주볼 수 없어도 마음으로 그리기에 기쁘며, 사랑인 사람들은 저마다 두 다리 서는 곳에서 사랑씨앗 곱게 뿌리며 돌보기에 기쁩니다.


- “까마귀 좋아해?” “좋아한다기보다, 익숙해지면 귀엽잖아.” “가끔 먹이를 나눠 줘서 고마워.” “그게, 네 까마귀였어?” “응.” (15쪽)
- “난 우오즈미를 만나고 싶어서 가게에 들르는 거야.” “그거 고맙군.” (51쪽)


 좋아하니까 손을 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입을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나들이를 함께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둘이 꼭 붙어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이 지구별 이 조그마한 마을 이 자리에 함께 햇살을 누리고 바람을 마시면서 웃고 울 수 있습니다. (4345.2.18.흙.ㅎㄲㅅㄱ)


―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토우메 케이 글·그림,신현숙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1.6.25./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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