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란 말도 없이
우에노 켄타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08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
― 안녕이란 말도 없이
 우에노 켄타로 글·그림,오경화 옮김
 미우 펴냄,2011.12.30./9000원

 


  아이들 옷가지를 두 손으로 복복 비벼 빨래를 하다 보면, 내 마음은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차츰 맑은 기운 서리고, 천천히 밝은 생각 샘솟습니다. 한겨울 손빨래는 손발 시린 고된 일이라 여길 수 있을 테지만, 한겨울에도 손빨래는 마음을 정갈히 씻거나 다스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식구들 함께 먹을 밥을 차리느라 한두 시간 가볍게 씁니다. 밥을 사다 먹는다든지, 밥차림을 ‘가시내(어머니)’한테 도맡기면서 이동안 다른 일을 한다면, 이른바 ‘생산성’이 있다든지 ‘경제성’이 있다고 말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무엇이 가장 대수로울까 궁금해요. 우리는 생산성이나 경제성을 높이려고 하루하루 살아가나요.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고 싶기에 내 목숨을 누릴까요.


  빨래를 하고 밥을 차리며 비질이랑 걸레질을 하는 까닭은 ‘몸을 고되게 움직여 집안일을 나누어 맡아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삶을 살찌우고 사랑을 살리기에, 집살림을 합니다.


  예부터 사람들이 손수 나무를 베고 손질하고 깎고 다듬어 집을 세운다든지, 연장을 만든다든지 하면서 오랜 품과 겨를을 들인 까닭은 천천히 헤아려요. 왜 여러 달에 걸쳐 나락을 돌보아 거두었을까요. 왜 여러 달에 걸쳐 푸성귀를 심어 거두었을까요.


  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사랑으로 맺어 아이를 열 달에 걸쳐 천천히 돌보아 낳을까요. 왜 아이들은 기나긴 해에 걸쳐 천천히 자랄까요. 왜 어버이는 아이들을 기나긴 해에 걸쳐 천천히 보살피며 삶을 누릴까요.

 

 


- 언제나 둘이서 함께 하기로 했던 마음을 잊지 맙시다. 매일을 둘이서 엮어 나가 벌써 이만큼이나 길어졌구나, 라고 확인하는 길목의 하루가 바로 오늘이로군요. (12쪽)
- 일하는 틈틈이 물건을 정리하는 김에 키호화 함께 한 추억의 조각들을 찾기 시작했다. (192쪽)
- ‘늘 함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힘들 때 나지막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키호는 말했다. (258쪽)


  고흥 시골집에서 인천 골목동네로 마실을 갑니다. 인천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사진동아리 아이들하고 골목동네를 걷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맞이해 학교 공부를 홀가분히 잊고는, 저마다 이녁 걸음걸이에 맞추어 천천히 골목동네를 걷습니다. 이웃이 살아가는 작은 집이 나란히 어깨동무하며 이루어진 어여쁜 골목동네를 걷습니다.


  인천 중구 율목동에서 경동으로 넘어서는, 그러니까 행정구역으로 치면 동이름이 바뀌는 언저리에 있는 오래된 피아노학원 하는 골목집 마당에서 자라는 쉰 살쯤 먹음직한 높다란 감나무 굵은 가지에 직박구리 세 마리 오순도순 앉아 언감을 쪼아먹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나는 발걸음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귀를 기울입니다. 직박구리 세 마리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한테도 직박구리 노랫소리 함께 듣자고 말을 건네는데, 귀를 기울이는 아이가 있고, 다른 데에 바빠 조잘조잘 떠들며 노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래, 노랫소리에 마음이 끌리면 골목새 노랫소리를 들을 테고, 동무들과 수다 떠는 즐거움에 끌리면 서로서로 조잘조잘 수다 떨기에 빠지겠지요.


  인천에서 사진동아리 아이들과 골목동네 걷기를 마친 이듬날, 시외버스를 타고 인천에서 순천으로 달립니다. 순천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들어섭니다. 호젓하고 조용한 고흥에 닿아 기지개를 켭니다. 아직 읍내이니 두멧시골로 더 들어가야 합니다. 군내버스를 탈까 하고 시계를 보는데, 마침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가 1분 앞서 떠났습니다. 이런. 고작 1분 사이로 버스를 놓치네. 다음 버스는 두 시간 뒤에 있는데.


  읍내를 천천히 걸어 가게에 들릅니다. 집식구 먹을 여러 가지를 장만합니다. 군내버스 놓친 데에는 다 어떤 뜻이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택시를 불러 집으로 달립니다. 택시를 타고 읍내를 벗어나 포두면을 지나고 도화면으로 접어드는데, 저 먼 멧등성이 너머로 저녁해 붉게 빛납니다. 아이들이 빨간 물감 풀어 하얀 종이에 곱게 그림을 그린 듯한 어여쁜 해님이 붉게 타오릅니다.


  집으로 돌아왔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우리 마을이네, 하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붉은 해님을 만나고, 낮 동안 노란 해님을 즐기는 우리 시골입니다. 해님이 푸른 숲 멧자락 사이로 뜨고 지는 모습을 어디에서 보겠어요. 바로 시골에서 보겠지요. 도시에서 이런 멋진 그림을 볼 수 있을까요. 공장 가득한 곳에서 이런 그림을 볼까요. 핵발전소 곁이나 골프장 둘레에서 이런 그림을 보나요.

 

 


- 응급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인공호흡을 반복했지만, 반응은 없었고, 내가 인공호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50쪽)
- 난 언제나 키호의 병을 두려워했다. 일상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했다. 예정이 틀어질까 봐 두려워했다. 가장 힘든 건 키호 본인인데, 이때 난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87쪽)
- 집안은 싸늘할 정도로 쥐죽은 듯 고요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 집의 소중한 일부가 쏙 빠져버린 것도 모르는 것처럼. (108쪽)


  저녁바람 포근합니다. 한겨울이지만 고흥 시골마을 저녁바람은 포근합니다. 흔히 시골은 겨울이 더 춥다고들 일컫는데, 내가 느끼기로는 시골은 겨울에 안 춥습니다. 시골은 겨울에 한결 따스합니다. 시골바람을 살가이 누리고 싶다면, 겨울에 겨울바람 얼마나 포근한가 느끼도록 시골에서 지내야지 싶어요. 봄에 봄바람 얼마나 시원한가 궁금하다면, 봄철 시골에서 지내야지 싶어요. 봄에 여름바람 얼마나 상큼한지 궁금하다면, 여름철 시골에서 지내야지 싶어요.


  깊은 밤 기저귀에 쉬를 눈 작은아이가 잠에서 깹니다. 작은아이 바지를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새로 채웁니다. 나도 밤오줌 눌까 생각하며 작은아이 안고 마당으로 내려옵니다. 시골에서는 밤오줌을 밖에서 누며 별바라기를 즐깁니다. 따로 별바라기 즐기려고 저녁마실을 하기도 하지만, 깊은 밤이나 새벽에 부러 마당으로 내려오고 풀숲으로 들어섭니다. 깊은 밤이나 새벽에 논둑에 서거나 밭둑에 섭니다.


  포근한 바람을 느끼며 별빛을 먹습니다. 따사로운 바람을 생각하며 별빛을 아로새깁니다. 내가 바라보는 저 별에서는 이 지구별 빛을 바라보겠지요. 내가 마주하는 저 별에서는 이 지구별 빛을 누리겠지요. 저 별은 지구에 드리우고, 지구는 저 별로 드리웁니다. 내 마음은 아이한테 닿고, 아이 마음은 나한테 닿습니다. 내 마음은 내 어버이한테 닿으며, 어버이 마음은 나한테 닿아요.


-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았다. 그곳에는 반드시, 내가 돌아오길 기다려 주는 아내와 딸이 있었으니까. (16쪽)
- 어디에 가든 키호의 존재가 촛불처럼 마음속에 불을 밝혀 주었다. 돌아오면 언제나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 (199쪽)


  빨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 마음이 이 옷자락에서 내 손으로 스며듭니다. 밥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이 밥이랑 국이랑 반찬에 담겨 아이들 몸으로 스며듭니다. 아이들 안거나 눕혀 자장노래 부르면, 내 몸과 아이들 몸에 고운 노랫마디 젖어듭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 뒹굴고 놀면, 아이들 목소리는 아이들 몸과 내 몸에 젖어듭니다.


  서로 부르는 목소리입니다. 서로 사랑을 부르는 목소리입니다. 서로 아끼는 목소리입니다. 서로 꿈을 아끼는 목소리입니다. 서로 보살피는 목소리입니다. 서로 마음을 보살피는 목소리입니다.


- “기운 내. 아빠가 기운 없으면 슬퍼지잖아.” (209쪽)
- “절대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돼! 켄타로 씨가 죽으면 난 눈물과 콧물과 침까지, 온몸의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수분을 질질 흘리며 폐인이 되어 버릴 거니까. 그건 너무 불쌍하잖아?” (237쪽)


  우에노 켄타로 님이 빚은 만화책 《안녕이란 말도 없이》(미우,2011)를 읽습니다. 우에코 켄타로 님이 옆지기를 잃은 마음을 그린 만화책입니다. 옆지기를 잃고서 이녁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면서 이 만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고마움, 아쉬움, 슬픔, 기쁨, 무거움, 사랑, 꿈, 믿음, 바보스러움, …… 모든 마음을 그림 하나에 알알이 담고 싶었다고 해요. 이녁 옆지기하고 서로 빚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해요.


  두 분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이야기를 빚은 삶이었을까요.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내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빚는 삶일까요. 내 이웃들은, 내 동무들은 저마다 어떤 보금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빚는 삶을 누리려나요.


  서로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꽃을 피울는지요. 서로 어떤 손길로 일을 하고 놀이를 할는지요. 서로 어떤 꿈을 키우고, 서로 어떤 사랑을 빛낼는지요. 고요하고 고즈넉한 시골 밤이 깊습니다. 4346.1.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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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1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이란 말도 없이, 제목에서 슬픔이 느껴지네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게 가장 슬픈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아름다운 슬픔이에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았다. 그곳에는 반드시, 내가 돌아오길 기다려 주는 아내와 딸이 있었으니까. (16쪽)
- 이 간단한 행복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왜 꼭 잃어버려야 그 소중함을 아는 것인지...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3-01-15 05:25   좋아요 0 | URL
연봉 높은 회사원이 되거나,
어떤 전문직업으로 전문가 노릇을 하거나,
정치꾼이나 교사 교수 된다거나,
기자나 작가가 되는...
이런저런 일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사랑할 삶을 누려야 대수롭지요...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 알맹이 그림책 23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김서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36

 


마음을 읽는 소리
―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일론 비클란드 그림,김서정 옮김
 바람의아이들 펴냄,2011.6.20./9000원

 


  겨울이라 겨울바람이 붑니다. 봄이라 봄바람이 붑니다. 겨울바람이기에 더 춥지 않고, 봄바람이기에 더 따뜻하지 않습니다. 겨울이기에 부는 겨울바람이요, 봄이기에 부는 봄바람입니다.


  추우라고 부는 바람이나 따뜻하라고 부는 바람은 없습니다. 언제나 날과 때와 철에 맞추어 부는 바람만 있습니다. 바람은 늘 바람결대로 불지만, 사람들은 바람을 이리 나누거나 저리 가릅니다.


  사람들 스스로 춥다고 여기면 바람은 춥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덥다고 여기면 바람은 덥습니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 봐요. 눈을 감고 마음을 열어 바람을 맞이해 봐요. 눈을 감고 마음을 열어 바람이 어디에서 비롯해 어디로 가는가를 헤아려 봐요.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요.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요. 바람이 건네는 노래를 들어요.


  바람을 마주하며 ‘좋네.’ 하고 속삭이면 바람은 싱긋 웃습니다. 바람을 마주하며 ‘짜증나.’ 하고 뱉으면 바람은 이맛살을 찡그립니다. 바람을 마주하며 이름을 불러 주면, 이를테면 산들바람이나 돌개바람이나 하늬바람이나 들바람이나 숲바람이라고, 때와 날과 철에 맞추어, 또 곳과 마을과 터에 맞추어 찬찬히 이름을 불러 주면, 바람은 부푼 가슴 되어 새로운 무늬와 결로 온누리를 흐릅니다.


.. 로타는 정원 울타리 문 앞에 서서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화를 냈어요. 하지만 조금 지나니까 우습게도 화는 전혀 안 나고 그냥 외롭고 슬프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또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슬프지도 않고 외롭기만 한 거예요. 그래서 로타는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언니랑 오빠가 올 때까지 뭘 할까 ..  (5쪽)

 


  하늘이 파랗습니다. 들이 푸릅니다. 하늘은 봄에도 겨울에도 파랗습니다. 들은 봄과 겨울에는 아직 누렇고,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비로소 푸르게 빛나며, 가을로 들어서며 푸른 기운 사이사이 누런 무늬 곳곳에 나타납니다.


  바다는 파랗습니다. 바다는 여름에도 가을에도 파랗습니다. 숲이 푸릅니다. 숲은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며 잎사귀를 떨구니 빛이 바뀌는데, 한겨울에도 푸른 잎사귀 건사하는 나무가 많아요. 한겨울 푸른나무가 있기에 숲은 푸르고, 숲이 푸른 빛을 곱게 펼치니, 사람도 짐승도 풀도 벌레도 모두모두 푸른 숨결 건사할 수 있습니다. 숲은 뭇 목숨을 살리는 어머니 품이라 할 만합니다.


  물은 맑습니다. 냇물도 개울도 못물도 모두 맑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냇가나 냇둑이나 냇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는다면, 냇물은 흐리멍덩해지고 맙니다. 사람들이 자가용을 지나치게 몰거나 공장을 지나치게 세우거나 골프장이라든지 군부대라든지 발전소라든지 아파트라든지 고속도로라든지, 부질없는 문명과 시설을 자꾸자꾸 늘리면, 물빛은 맑음을 잃고 어두움과 흐림으로 달라집니다. 물은 사람들 삶에 따라 빛깔이 달라져요. 사람들 삶에 기쁨과 웃음이 넘치며 맑은 생각 자라면 물빛에도 기쁨과 웃음이 어리면서 맑은 빛 어여뻐요. 사람들 삶에 슬픔과 괴로움이 가득하며 흐린 기운 퍼지면 물빛에도 슬픔과 괴로움이 어리면서 어둡고 흐린 빛 칙칙해요.


.. 로타는 달걀 숨기기 좋은 곳을 아주 많이 찾았어요. 특히 아주 좋은 곳이 한 군데 있었어요. 내가 부활절 토끼라면 틀림없이 여기 숨길 거야, 하고 로타는 생각했어요 ..  (8쪽)

 

 


  밥은 목숨입니다. 고기를 먹어도 목숨이요 풀을 먹어도 목숨입니다. 목숨 아닌 밥은 없습니다. 목숨을 먹지 않는 사람은 살지 못합니다. 목숨을 먹기에 살 수 있으며, 목숨을 먹기에 스스로 이녁 목숨을 아끼면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목숨 아닌 밥을 먹는다면, 그러니까 내 몸에 다른 목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고, 나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기에 이웃을 아끼지 못해요. 목숨인 밥을 먹으면서 목숨을 먹는 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내 넋과 얼을 아끼지 못합니다. 내 넋과 얼을 아끼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과 동무 또한 사랑하지 못해요.


  오늘날 사회를 돌아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회사원 노릇이나 공무원 삶으로 바쁘거나 몸이 매인 나머지, 밥을 어떻게 먹는 줄 잊습니다. 목숨인 밥을 먹는 줄 헤아리지 않고, 때로는 목숨 아닌 영양소나 화학조합물로 이녁 목숨을 버티곤 합니다.


  사람은 밥을 먹습니다. 사람은 돈을 먹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른 목숨인 밥을 먹습니다. 사람은 화학조합물을 먹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다른 목숨인 밥을 먹습니다. 사람은 영양소를 먹지 않습니다.


  사람 몸뚱이는 거의 물로 이루어집니다. 거의 물로 이루어진 사람 몸뚱이는 다른 싱그러운 목숨을 받아들이며 푸르게 빛납니다. 곧, 물이 맑을 때에 사람 몸뚱이가 나란히 맑고, 사람마다 몸뚱이가 맑아야 마음이 비로소 맑을 수 있어요. 사람이 먹는 밥이 고기이든 풀이든, 정갈한 목숨을 고맙게 맞이해 하루를 누려야 비로소 환하게 빛납니다. 이런 돈벌이나 저런 일거리에 치이다가 밥을 잊거나 목숨을 잊는다면, 사람은 삶까지 잊고 말아요.


..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헉헉거리지도 않고요.” 로타는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  (11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글에 일론 비클란드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바람의아이들,2011)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마음이 맑은 아이 ‘로타’는 언제나 맑은 몸을 아끼면서 맑은 말을 속삭입니다. 맑은 몸을 돌보며 맑은 눈빛으로 맑은 이웃을 즐거이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걷습니다.


  로타는 왜 늘 기쁜 마음이요, 로타는 왜 언제나 즐거운 목소리일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로타는 늘 기쁜 마음이 되고 싶거든요. 로타는 언제나 즐거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싶거든요.


  로타는 로타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가요. 로타는 로타 스스로 꿈꾸는 대로 살아가요. 맑은 하루 누리고 싶기에 맑은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맑은 눈빛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싶기에 맑은 눈빛을 환하게 밝힙니다.


  사랑이 사랑을 부릅니다. 미움이 사랑을 부르는 적 없습니다. 미움은 미움을 부릅니다. 미움이 사랑을 부르지 않듯, 사랑은 미움을 부르지 않습니다. 즐거움은 즐거움을 부르지, 즐거움이 괴로움을 부르지 않아요. 괴로움은 괴로움을 부를 뿐, 괴로움이 즐거움을 부르지 않습니다.


  거친 말은 거친 말을 부릅니다. 고운 말은 고운 말을 부릅니다. 한겨레가 예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이야기꽃 피운 까닭을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랑은 사랑을 부르고, 꿈은 꿈을 부르며, 빛은 빛을 부릅니다.


  평화가 평화를 부릅니다. 군대는 군대를 부릅니다. 정치는 정치를 부릅니다. 경제는 경제를 부릅니다. 착한 넋은 착한 넋을 부릅니다. 돈은 돈을 부릅니다. 어여쁜 동무는 어여쁜 동무를 부릅니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부르고, 처세와 경영을 다룬 책은 처세와 경영을 다룬 책을 불러요. 푸른 빛은 푸른 빛을 부르며, 흐린 빛은 흐린 빛을 부릅니다.


.. “안녕히 계세요, 아저씨!” 로타는 인사를 했어요. “아저씨가 그리스로 돌아가셔서 정말 슬퍼요.” “난 안 슬프다.” 바실리스 아저씨가 말했어요. “잘 있어라, 로타! 넌 언제나 기분 좋은 아이였지. 앞으로도 그렇게 살렴!” ..  (18쪽)

 


  로타는 즐겁다구요? 네, 로타는 즐겁습니다. 그래서 로타는 늘 즐거움을 부릅니다. 로타를 둘러싼 다른 어른이나 오빠나 언니는 무엇을 부를까요? 모두들 즐거움을 부르나요? 모두들 짜증이나 미움이나 고단함을 부를까요?


  나는 무엇을 부르는 사람일까요. 내 아이들은 무엇을 부르는 사람일까요. 도시나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무엇을 부르는 사람일까요. 대통령은, 교사는, 장사꾼은, 지식인은, 공무원은, 회사원은, 버스 일꾼은, 흙을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들 무엇을 부르는 사람일까요. 마음을 읽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목소리로 서로 사랑해요. 마음을 읽는 하루 되어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삶을 누려요. 4346.1.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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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4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1-14 21:03   좋아요 0 | URL
아, 동화는 1부를 쓰다가
바빠서 ^^;;;;;

동시는 꾸준히 쓰니까
머잖아 그림책은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진가의 여행법 - 딸과 함께 떠난 유럽 사진기행
진동선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길동무로 삼는 사진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1] 진동선, 《사진가의 여행법》(북스코프,2008)

 


- 책이름 : 사진가의 여행법
- 글·사진 : 진동선
- 펴낸곳 : 북스코프 (2008.4.22.)
- 책값 : 18000원

 


  낮 두 시에 고흥 두원면에서 모임이 있습니다. ‘한겨레 씨앗’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나는 ‘한겨레 씨앗’이나 ‘우리 씨앗’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분들은 으레 ‘토종 종자’라고 말합니다. ‘토종(土種)’도 ‘종자(種子)’도 한국말이 아닐 뿐더러, ‘토종 종자’라고 하면 같은 한자가 되풀이되는데, 이런 얄딱구리한 말을 얄딱구리한 줄 느끼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해마다 가을 지나고 겨울이 찾아오면,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는 시골 흙일꾼한테 큼지막한 종이 하나 나누어 줍니다. 큼지막한 종이에는 시골에서 심고 거두는 ‘씨앗’을 어떻게 간수해야 좋은가 하는 이야기가 적힙니다. 이 종이를 만드는 기관 이름은 ‘국립종자원’입니다.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씨앗’이라는 한국말을 안 쓰고, 시골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씨앗’이라는 한국말을 잊습니다.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하루하루 ‘씨앗’이라는 낱말을 잊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라에서 말글을 다스린다 하는 기관 이름은 ‘국립국어원’입니다. ‘국어(國語)’라 하는 한자말은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 전쟁미치광이들이 ‘일본 천황을 섬기는 나라에서 쓰는 말’이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중국사람은 ‘중국어’라 하지 ‘국어’라 하지 않아요. 지난날 한겨레는 ‘조선어’라 했어요. 일본이라면 ‘일본어’일 텐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앞세우며 대동아공영권을 외친 이들 천황나라에서는 ‘국어’라는 낱말을 뚱딴지처럼 썼지요. 곧, 이 낱말을 누구보다 한겨레가 떨칠 수 있어야 할 테지만, 정작 이 나라 공공기관부터 이런 낱말을 버젓이 써요.


  공공기관이라면 한자말을 써야 하는지 모르지요. 공무원이 되어 공식 서류를 쓰자면 한국말보다는 한자말이 어울릴는지 모르지요. 씨앗은 멀리하고 종자를 가까이할 노릇이요, 한글이나 한말이나 우리말 모두 가까이할 까닭이 없다 여길는지 몰라요.


  나는 두 아이와 살아가며 날마다 ‘아이 이야기’를 씁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요. 다른 이들은 제 글을 읽으며 ‘육아일기’라고 생각합니다. 나로서는 ‘아이 돌보기’나 ‘아이와 함께 살기’이지만, 오늘날 여느 눈길은 ‘육아(育兒)’입니다.


  나는 ‘사진찍기’를 하지만, 다른 분들은 ‘촬영(撮影)’을 합니다. 나는 ‘사진마실’을 하지만, 다른 분들은 ‘출사(出寫)’를 하지요. 나는 필름‘사진기’와 디지털‘사진기’를 쓰는데, 다른 분들은 모두 필‘카’와 디‘카’를 써요.


.. 자기만의 세상 바라보기가 곧 자기 사진이고 자기다운 사진이다. 나는 여행 내내 딸애가 그런 마음을 갖기를 바랐다 … 카셀이라는 도시를 만나는 것은 딸애의 몫이다. 이 낯선 곳, 낯선 환경에서 마주칠 모든 이미지들은 딸애가 느끼고 간직하고, 마음과 카메라에 담을 그 애만의 것이 될 터였다 ..  (16, 37쪽)


  나는 아이들과 시골마을에서 삽니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는 ‘촌(村)’에서 살아가는 모양새입니다. 나는 시골스러운 삶을 누리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촌스러운’ 모양새입니다. 시골은 시골일 뿐인데, 어느 한쪽에서는 ‘촌’이라 일컫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원(田園)’이라 말합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로 들어왔을 뿐이지만, 누군가는 ‘귀촌(歸村)’이라 하고, 누군가는 ‘귀농(歸農)’이라 말합니다.


  얼핏 생각하기로는, 말만 다를 뿐이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 다른 까닭은 넋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넋이 다른 까닭이라면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삶이 다르면 넋이 다르고, 넋이 다르기에 말이 달라요.


  아이들 말과 어른들 말이 다른 까닭은, 아이들과 어른들은 넋이 다르고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시내와 사내 사이에 말이 다른 까닭도, 가시내와 사내 사이에 넋과 삶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누구라도 쉽게 잘 깨달을 수 있어요. 내 삶에 따라 내 넋이 바뀌고, 내 넋에 따라 내 말이 달라진다면, 내 삶을 아름답게 다스릴 때에 내 넋이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내 말이 아름답게 다시 태어납니다. 내 삶을 착하게 보살필 적에 내 넋이 착하게 거듭나고, 내 말이 착하게 다시 태어나요.


  흙을 일구는 분들은 삶을 곱게 다스리면서 넋과 말과 흙 모두 곱게 다스립니다. 글을 쓰는 분들은 삶을 알뜰히 다스리면서 넋과 말과 글 모두 알뜰히 다스립니다. 사진을 찍는 분들은 삶을 즐거이 다스리면서 넋과 말과 사진 모두 즐거이 다스려요.


.. 도시 사진을 찍기에 앞서 중요한 것은 그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 단지 이 길이 로맨틱 가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풍요로운 자연과 넘치는 햇살, 아름다운 전원이 품은 기운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카메라 렌즈 속에서 더없이 꿈같은 풍경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  (37, 87쪽)


  귀농학교를 다닌대서 흙을 더 잘 알거나 더 잘 사랑하거나 더 잘 누리지 않아요.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내 곁 흙 한 줌 따사로이 아낄 수 있으면, 흙이든 마을이든 집이든 살림이든 무엇이든 따사로이 알고 느끼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론을 살피거나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찾아서 듣기에, 사진을 더 잘 알거나 더 잘 누리거나 더 잘 찍지 않습니다. 삶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내 살붙이와 동무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시나브로 사진을 슬기롭게 깨닫고 깨우치며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을 바라보아요. 아이들은 눈빛 환하게 밝히면서 놀이를 즐깁니다. 아이들은 말빛 곱게 여미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들은 맛나게 이것저것 배불리 먹으면서 몸과 마음을 알차게 북돋웁니다. 아이들은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마시고 푸르게 빛나는 풀에서 뒹굽니다. 아이들은 맑게 흐르는 냇물에 발과 손을 담그고, 싱그러이 부는 바람에 두 팔 벌려 온몸을 맡깁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할 때에는, 교사 자리에 서는 어른부터 이녁 스스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교과서에 적힌 지식을 줄줄 읊거나 외는 수업일 때에는 교사도 학생도 따분해요. 교과서에 갇히는 지식이 아닌, 삶으로 빛나고 사람들 사이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길어올릴 때에 교사도 학생도 재미납니다. 곧, 교사 된 어른 스스로 하루를 밝히는 이야기를 ‘교과서에 담긴 지식’에 빗대어 찬찬히 풀어놓을 때에 서로 기쁩니다. 교사가 이녁 스스로를 가르친다는 말은, 교사가 이녁 스스로 어떠한 숨결인가를 깨달으면서 아이들마다 어떠한 빛줄기인가를 느낀다는 뜻입니다.


.. 도심의 뒷골목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빛의 향연’이다. 사진의 생명도 존재도 그곳에 있으며, 오로지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도드라지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그곳의 빛과 어둠 속에 있다 … 여행사진은 오랫동안 찍는다고 해서 더 잘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익숙한 풍경을 낯선 풍경보다 더 멋지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109, 143쪽)


  아이들이 아침을 맞이해 일어납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저희한테 즐거울 놀이를 찾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들 일어나는 낌새를 느끼며 조금 더 자도 된다고 다독이다가는 아침밥을 짓습니다. 지난 저녁 미리 씻어서 불린 쌀을 냄비에 옮겨 물을 맞춘 다음 불을 올립니다. 밥물이 보글보글 끓을 즈음 다른 찬거리와 국을 헤아립니다. 밥이 다 될 무렵 밥상을 닦고 수저를 놓습니다. 이동안 방바닥과 부엌을 쓸고 닦습니다. 오늘 할 빨래를 헤아립니다.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마실을 나가자면 이래저래 옷가지를 챙겨야 할 테고, 마실을 가기 앞서 작은아이가 집에서 똥을 시원하게 누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푸지게 똥을 누면, 아이도 어른도 홀가분하게 다닙니다.


  마실을 다니는 내내 사진기는 내 목걸이가 됩니다. 나는 사진기를 목에 걸고 두 아이를 건사합니다. 아이들이 이리 뛰면 이리 쳐다보다가 빙긋 웃으며 사진기를 쥡니다. 아이들이 저리 구르면 저리 바라보다가 싱긋 웃으며 사진기를 듭니다. 두 아이를 손 하나씩 내밀어 잡아야 하니, 사진기는 늘 목걸이입니다. 아이 하나가 졸립다 하면 품에 안아야 하니, 사진기는 언제나 목걸이입니다. 읍내마실을 하며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장만하면 등에 멘 가방에 담습니다. 사진기는 노상 목걸이입니다.


  찍든 안 찍든, 커다랗고 무거운 목걸이를 걸며 지냅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찍히는 줄 느끼기도 하고 안 느끼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사진기로 쳐다보든 말든 저희 놀이를 잇습니다.


  나한테 사진기는 으레 길동무입니다. 마실길에서 동무입니다. 그런데, 길동무에 앞서 삶동무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인 나이듯, 사진기하고도 함께 살아가는 사진쟁이인 나입니다. 아이들 또한 나하고 삶동무요 놀이동무에 일동무입니다. 사진기는 아이들한테도 삶동무로 스며들고 길동무로 함께 거닐다가는 놀이동무로 같이 어울립니다.


.. 세상의 모든 길은 아름답다. 길은 그 길을 마음에 담은 사람, 그 길 위에서 사색하는 사람에게 진정 아름답게 보인다 ..  (257쪽)


  사진비평을 꾸준히 잇는 진동선 님이 당신 딸아이와 유럽마실을 하면서 《사진가의 여행법》(북스코프,2008)이라는 책 하나 내놓습니다. 두 사람이 먼먼 마실을 다녀왔구나 싶지만, 요즈음 같은 때에 유럽마실은 그리 먼먼 마실은 아니겠구나 싶습니다. 딸아이 낳아 함께 살아가면서 ‘앞으로 이 아이하고 유럽마실 해야지’ 하는 꿈을 꾸었기에, 사진길 새롭게 걷는 푸른 딸아이를 이끌고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는 걸음걸이로 유럽 곳곳을 누빌 수 있겠지요.


  꿈을 꾸는 대로 살아가거든요. 꿈을 꾸는 만큼 살아가거든요.


  아름다이 꿈을 꾸기에 아름다이 생각을 짓고, 아름다이 말을 나누며, 아름다이 삶을 누립니다. 즐겁게 꿈을 꾸면서 즐겁게 생각을 빚고, 즐거이 말을 섞으며, 즐거이 삶을 빛냅니다.


  사진마실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살아가면 언제나 사진마실입니다. 콩나물 한 줌 사러 가게에 찾아가도 사진마실입니다. 어깨에 사진기를 걸치면 사진마실이에요. 사진기 안 들고 나서도 사진마실입니다. 누구나 사진기로도 사진을 찍지만, 눈으로도 사진을 찍고, 마음으로도 사진을 찍어요. 가슴으로도 사진을 찍으며, 꿈과 사랑으로도 사진을 찍습니다. 이야기꽃 흐드러지게 피울 적에도 사진을 찍어요.


  사진은 필름에도 담기고, 마음밭에도 담깁니다. 사진은 디지털파일에도 담기며, 머릿속에도 담깁니다. 유럽마실을 할 적에도 사진마실이요, 이웃마을 나들이를 할 적에도 사진마실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남녘땅 한 바퀴를 돌 적에도 사진마실이고, 서울 골목동네나 제주 구비구비 거닐 적에도 사진마실입니다.


.. 그 옛날 외젠 앗제는 이 샹젤리제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명품 매장들은 찍지 않았다. 그는 개선문도 찍지 않았고 엘리제 궁도 찍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에펠탑도 찍지 않았다. 영원한 것은 찍지 않았고 곧 사라질 것들만 찍었다. 앗제처럼 길가의 가판대를 카메라에 담는다. 앗제의 시선으로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 본다 ..  (309쪽)


  그런데, 《사진가의 여행법》 309쪽에 나오는 ‘외젠 앗제’ 님 이야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외젠 앗제라는 분이 ‘사라질 것’을 사진으로 담았을까요? 글쎄요. 에펠탑은 안 사라지는 것일까요? 명품은 안 사라지나요? 뒷골목 집이든 여느 가난하거나 수수한 사람이기에 사라지나요?


  사진으로 담기에 ‘안 사라질’ 수 있겠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으로도 그리고 사진으로 찍는다 하지만, 사랑과 꿈을 담아 그리지 못하고 찍지 못할 때에는 ‘사라지는’ 것 가운데 하나 아니랴 싶어요.


  한국 시골마을 논자락 벼포기 하나를 사진으로 즐거이 꾸준히 찍는 분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논자락 벼포기는 ‘사라지는’ 숨결일까요, ‘안 사라지는’ 숨결일까요.


  생각해 보면, 논자락 벼포기가 되든, 들풀 한 송이가 되든, 사라지지도 않지만 안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숨결을 고이 잇습니다. 즐겁게 살아내는 하루요, 기쁘게 마무리짓는 하루입니다. 천 해를 살면 ‘오래 가는’ 것이거나 ‘안 사라지는’ 것일까요. 쉰 해를 살면 ‘짧게 가는’ 것이거나 ‘사라지는’ 것일까요.


  마음속에 담으면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안 담고 사진으로만 찍으면 어느 것도 사라집니다. 마음속으로 아끼면서 보듬을 때에는 모두 오래도록 이어지며 향긋한 풀내음 나누어 줍니다. 가슴속으로 돌보면서 사랑할 때에는 서로서로 한결같이 마주하며 따사로운 손길 주고받습니다.


  길동무로 삼는 이야기입니다. 길동무가 되는 사진입니다. 길동무처럼 활짝 웃으며 어깨를 겯는 사진입니다. 길동무로서 씩씩하게 삶꽃 피우는 이야기입니다.


  사진마실은 ‘사진’마실이기에 앞서 마실입니다. 사진찍기는 ‘사진’찍기에 앞서 찍기입니다. 사진읽기도 ‘사진’읽기에 앞서 읽기예요. 사진길을 걷는 이들 또한 ‘사진’길을 걷기 앞서 길을 걷습니다.


  마실을 생각하고 찍고 읽는 이야기를 생각하며 길과 삶을 생각합니다. 내 생각을 빛내면서 내 이야기(말과 글)가 빛나고, 내 이야기를 빛내는 동안 시나브로 내 삶이 싱그러이 빛납니다. 사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이쁜 동무입니다. 434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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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10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속에 담으면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 정말 그렇더군요. 마음속에 담긴 것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선명하고 확실할 때가 있어요.

숲노래 2013-01-12 09:29   좋아요 0 | URL
언제나 고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거이 누리시겠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예요
 
거울속으로 비룡소의 그림동화 205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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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35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아
― 거울 속으로
 이수지 그림
 비룡소 펴냄,2009.12.15./15000원

 


  거울을 들여다보며 놀이를 즐기는 예쁜 아이가 거울을 그만 깨뜨리고 말아 어둠이 드리우는 이야기를 찬찬히 펼치는 이수지 님 그림책 《거울 속으로》(비룡소,2009)를 읽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거울놀이를 곧잘 즐겼는데, 자칫 잘못해서 거울을 깨뜨린 적 있지 싶어요. 작은 거울이 깨질 적에는 바삭 하고 작은 소리가 나고, 큰 거울이 깨질 적에는 와장창 하는 큰 소리가 나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노는 동안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또 다른 누리를 맞이하는 느낌인데, 거울이 깨지고 나면 아이쿠 하면서 흠씬 두들겨맞으며 꾸중 들을 근심이 찾아듭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며 지난날을 돌이켜봅니다. 집에 거울이 있으니 거울놀이도 합니다. 아이들은 거울 들여다보기를 꽤 즐깁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거울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는 없는 거울인데, 이웃집에 간다든지 읍내나 다른 데로 마실을 가면, 곳곳에 거울이 있습니다. 유리로 바깥을 막은 가게에서는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추어 주곤 합니다. 아이들은 거울이나 유리벽 앞에 서서 저희 모습을 쳐다보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이리저리 스스로 바꾸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니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나는 집에서 물을 받아 손빨래를 합니다. 지난날 어버이들은 냇가에 가서 빨래를 했습니다. 때로는 마을에 빨래터를 따로 마련해서, 한쪽에서는 물을 긷고 다른 한쪽에서는 빨래를 했지요. 아이들은 어버이 일손을 거들며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합니다. 퍽 어린 아이들은 어버이와 빨래터에서 놉니다. 어버이가 빨래를 하는 동안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면서 빨래를 주무르는 모양을 구경합니다. 이윽고 저희도 빨래 복복 주무르는 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이러다가 빨래터 흐르는 물줄기를 가만히 들여다보지요. 헹구고 비비느라 물결이 찰랑찰랑거릴 적에는 내 얼굴이 물무늬 따라 흔들리고, 물결이 가라앉으면 내 얼굴이 또렷이 보입니다.


  옛사람도 거울을 보았다고 합니다. 청동거울도 있고 무슨무슨 거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옛사람한테는 따로 거울과 같은 무언가 없어도 넉넉했으리라 느껴요. 냇물에 얼굴을 들이밀면 또렷하고 맑게 내 얼굴이 드러나는걸요.


  냇물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내밀어 손가락으로 톡 찍습니다. 내 얼굴이 찰랑찰랑 흔들립니다. 그렇지만 머잖아 물결이 가라앉으며 내 얼굴은 다시 살아납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어떤 슬픈 일이 닥쳐 흔들리고, 슬픈 일이 닥쳐 흔들려도 이윽고 고요히 가라앉으며 내 얼굴에 웃음이 돌아옵니다. 기쁨과 슬픔이 갈마든다고 할 수도 있는데, 따로 무엇과 무엇이 갈마든다기보다는, 삶이 움직인다고 느껴요. 삶은 늘 움직이고, 나는 늘 그대로입니다. 물결이 일며 내 얼굴이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겉보기로 흔들릴 뿐, 정작 내 알맹이는 가만히 있어요. 내가 느낄 내 모습은 한결같이 드러나는 낯빛이요 언제나 짓는 웃음입니다.


  어버이도 아이도 집에서 냇물놀이를 즐기면 참 예쁘리라 생각해요. 어버이도 아이도 집 가까이 냇물을 두면서 숲과 들을 사귀면 서로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바삭 깨지거나 와장창 무너지는 것 말고, 한결같은 햇살과 언제나 고운 나무처럼 정갈한 삶동무를 곁에 두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맑은 냇물 들여다보고, 맑은 냇물 마시며, 맑은 냇물 지킬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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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4공단 여공 푸른사상 시선 24
정세훈 지음 / 푸른사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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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누어 주셔요
[시를 노래하는 시 40] 정세훈, 《부평 4공단 여공》

 


- 책이름 : 부평 4공단 여공
- 글 : 정세훈
- 펴낸곳 : 푸른사상 (2012.11.24.)
- 책값 : 8000원

 


  별빛이 흐릅니다. 시골에도 도시에도 별빛이 흐릅니다. 시골에만 흐드러지는 별무리가 아닙니다. 별무리는 지구 바깥에 아리땁게 드리웁니다. 그저, 도시에는 먼지띠와 먼지구름이 너무 짙고 두껍다 보니, 지구 둘레에서 아리땁게 흐드러지는 별무리를 바라보지 못할 뿐이에요. 도시에서는 아리따운 별무리 아닌, 아파트와 건물과 자동차와 공장 굴뚝만 바라보아야 할 뿐입니다.


  햇빛이 흐릅니다. 시골에도 도시에도 햇빛이 흐릅니다. 시골에만 쏟아지는 햇빛이 아닙니다. 햇빛은 풀도 꽃도 나무도 살리지만, 짐승도 벌레도 사람도 살립니다. 햇빛이 있기에 냇물과 바다가 삽니다. 햇빛이 있어 집도 들도 숲도 삽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햇빛을 꽁꽁 가립니다. 땅을 파거나 건물을 커다랗게 짓고는, 모두들 햇빛 아닌 전기불빛을 먹으며 삽니다.


.. 1972년 중졸 소년이 노동자가 되었다 / 아버지는 탄광에서 탄을 캐내는 광부였다 /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도 가고 싶었다 / 아버지는 늘 자기처럼 되지 마라 했다 / 아버지 같은 노동자가 되기 싫었다 / 그러나 소년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 노동법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 노동판과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 후진국으로 더 싼 피땀 값을 착취하러 갔다 / 이 땅의 피땀 값이 너무 비싸다며 갔다 ..  (2012년 노동판)


  바람이 붑니다. 아이들 머리카락을 건드리고, 내 살결을 건드리는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후박나무 잎사귀를 살짝 건드리고, 가을 거쳐 겨우내 말라죽어 누렇게 바뀐 풀포기를 건드립니다. 바람은 겨울들과 겨울숲을 살포시 껴안으면서 조용히 붑니다.


  바람은 이야기 한 자락 실어, 이곳에서 저곳으로 붑니다. 이 마을 사람들 삶자락이 바람 한 자락에 실려 저 마을 사람들한테 찾아갑니다. 저 마을 사람들 삶자락은 다시금 바람 한 자락에 실려 이 마을 사람들한테 찾아옵니다.


  바람이 불며 가랑잎이 구릅니다. 바람이 불며 비닐봉지가 날아오릅니다. 바람이 불며 자전거가 휘청거립니다. 바람이 불며 창문이 덜덜 떨립니다.


  사람들이 쉬는 숨은 곧 바람입니다. 바람이 불기에 숨을 마십니다. 바람이 불어 숲과 바다에서 푸른 넋 실어 나르기에, 우리들 누구나 푸른 숨을 쉽니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탓에 공장 굴뚝에서 쏟아지는 매연과 먼지가 이웃마을로 번집니다. 바람이 불고 말아 발전소 굴뚝에서 넘치는 매연과 먼지가 옆마을로 퍼집니다. 바람이 부는 나머지 자동차 배기가스가 온 고을에 가득합니다. 바람이 불면서 쓰레기가 나뒹굴고, 바람이 불면서 온갖 지저분한 냄새가 춤춥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 노동은 오늘 당장 팔지만 / 품삯은 / 언제 받아낼 수 있을지 모르는 / 새벽길을 나선다 ..  (외상 노동)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기에 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교사란 학생한테 삶을 가르치는 일꾼이요, 학생이란 교사한테서 삶을 배우는 푸름이입니다. 사랑하며 살아갈 꿈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기에 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교사란 학생한테 사랑하며 살아갈 꿈을 가르치는 일꾼이며, 학생이란 교사한테서 사랑하며 살아갈 꿈을 배우는 어린이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학교는 배움터 구실을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학교는 사랑터 구실하고 동떨어집니다. 학교 건물부터 감옥과 똑같이 짓습니다. 학교 틀거리란 감옥하고 똑같습니다. 교사들 몸가짐과 말투는 감옥을 지키는 일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는 삶하고 등지고 사랑하고 동떨어지며 꿈하고 멉니다.


  초등학교에 가야 하는 어린이집이 아닙니다. 중학교에 가야 하는 초등학교가 아닙니다. 고등학교에 가야 하는 중학교가 아닙니다. 대학교에 가야 하는 고등학교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학교를 다니든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깨우칠 노릇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 학교조차 안 다니더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을 익힐 노릇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으로 낳습니다. 어른은 아이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고운 꿈으로 낳습니다. 어른은 아이와 고운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회사원으로 살아갈 어버이가 아니요, 회사원이 될 아이가 아닙니다. 공무원이든 노동자로 살아갈 어른이 아니요, 공무원이든 노동자로 살아갈 아이가 아닙니다. 모두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갈 사람입니다. 돈을 버는 어떤 일자리가 사람을 보여주지 않아요. 돈을 버는 어떤 일터가 사람살이를 밝히지 않아요. 삶을 일구고 사랑을 나누는 보금자리가 사람을 보여줍니다. 꿈을 꾸고 이야기를 나누는 보금자리가 사람살이를 밝혀요.


.. 소주를 물 마시듯 마셨듯이 / 억지로 몸을 움직인다 // 분진 날리는 밀폐된 공장에서 / 함부로 굴린 몸 / 크고 작은 직업병 후유증이 배어 / 몸 편히 가만히 있을라치면 / 온몸 속에 벌레들이 든 것처럼 / 스멀스멀 야릇하게 쑤셔와서 ..  (야릇한 통증)


  하루 내내 실컷 뛰고 놀고 구른 아이들이 새근새근 잡니다. 코코 자는 아이들이 깊은 밤이나 새벽에 문득문득 깹니다. 깨면서 쉬가 마려웁다느니 목이 마르다느니 하면서 보챕니다. 한 아이가 깨어 살살 달래며 밤오줌을 누이고는 다시 토닥토닥 어루만지며 재웁니다. 이윽고 다른 아이가 깨어 살살 달래며 밤오줌을 누이고는 다시 토닥토닥 어루만지며 재웁니다.


  두 아이 밤오줌을 누여 다시 재우며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는 아이가 둘이니 밤에 두 번 깨면 되지만, 아이가 셋이나 넷이라면, 또는 다섯이나 여섯이라면, 또는 일곱이나 여덟이라면 어떠할까요. 지난날 사람들은 아이를 참 많이 낳아 함께 살았는데, 지난날 어버이는 밤마다 밤잠 한 번 제대로 이루기나 했을까요. 지난날 사람들은 누구나 조그마한 흙집에서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 한잠을 이루었을 텐데, 밤마다 이리 칭얼 저리 구르는 아이들이랑 어떤 하루를 누렸을까요.


  큰아이는 오른팔로 다독이고 작은아이는 왼팔로 다독입니다. 나한테 팔이 둘 있으니 홀로 두 아이 건사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나한테 아이가 셋이라면 어떡하지? 그때에는 또 그때대로 어떻게든 세 아이를 건사할 만하겠지요. 아이가 셋이라 할 적에는 서로 터울이 질 테니, 그때에는 참말 그때대로 세 아이를 거느릴 만하리라 싶습니다. 아이가 넷이라 하고 다섯이라 해도 그렇겠지요. 저마다 이 어여쁜 아이들 살살 구슬리고 아끼면서 밤을 누리고 새 아침을 맞이하리라 느껴요.


.. 이담에 내 주검 묻힌 무덤에 / 찾아와 노는 / 그 어느 어린아이 있어 / 내 무덤 봉분 반질반질 낮아졌으면 // 그 아이 그렇게 어른이 되었으면 ..  (무덤)


  고즈넉한 겨울밤이 흐릅니다. 겨울에는 밤에도 낮에도 고즈넉합니다. 따로 바람이 불지 않으면 거의 아무런 소리를 못 듣곤 합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멧새나 들새가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살짝살짝 듣지만, 겨울에는 멧새나 들새조차 노랫소리를 잘 안 들려줍니다. 그래, 겨울이란 숲도 들도 바다도 모두 조용히 쉬는 철이지요. 풀도 쉬고 나무도 쉬며 꽃도 쉽니다. 들짐승도 쉬고 풀벌레도 쉬며 달빛과 별빛도 쉽니다.


  그런데, 시골숲은 이렇게 쉬더라도, 도시는 쉬지 않습니다. 회사는 쉬지 않습니다. 공무원도 군인도 정치꾼도 기자도 모두 안 쉬어요.


  그러고 보면, 도시에는 철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딱히 없습니다. 늘 같은 하루요 늘 같은 쳇바퀴입니다. 봄이라서 해사하게 감도는 빛이 없는 도시입니다. 여름이라서 푸르게 빛나는 싱그러움이 없는 도시입니다. 가을이라서 무르익는 구수한 밥내음이 없는 도시예요.


  철이 없다면 달도 없습니다. 일월 삼월 오월 같은 달이 없습니다. 달이 없으니 날도 없고 보름도 없겠지요. 참말, 도시에서는 날도 보름도 달도 철도 해도 느끼기 어려워요. 그저 시계바늘 따라 부산스레 움직여야 하는 ‘일’만 있습니다. 틀에 맞추어 해야 하는 일만 있는 도시입니다. 규칙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규정이 있고 규범이 있습니다.


  시골자락 밭뙈기에는 틀이나 규정이 없습니다. 시골자락 논에는 규범이나 법이 없습니다. 숲에는 규칙이 없어요. 호미질을 하는데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란 법이 없습니다. 낫질이나 쟁기질을 하는데 이때에 하거나 저때에 하란 법이 없어요. 풀벌레가 깨어나 노래할 적에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란 법이 없습니다. 새들은 새끼를 낳아 사랑스레 돌볼 뿐, 어떤 규정이나 규범에 따라 새끼를 낳지는 않습니다. 풀은 저마다 새 햇볕 쬐며 새 기운 차리면서 줄기를 올릴 뿐, 어떤 법에 따라 자라서 꽃을 피우지 않아요.


.. 우린 군사정권 시대로 돌아가 / 케케묵었으나 결코 케케묵지 않은 / 언쟁을 벌인다 // 희망버스에 대해 / 나는 공생을 위한 것이라 하고 / 그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짓이라 한다 / 고공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을 / 나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투사라 하고 / 그는 선량한 이들을 선동하는 빨갱이라 한다 ..  (희망버스에 승차하지 못한 날)


  아이들은 꼭 학교에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삶을 즐겁게 배우면서 하루를 신나게 누리면 넉넉합니다. 아이들은 이런 졸업장 저런 자격증을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함께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고 고맙게 마무리하면 넉넉합니다.


  신문이나 방송마다 늘 주식시세표를 읽고 고속도로가 어떠한가를 말하며 연예인 뒷이야기에다가 사건과 사고 이야기를 끝없이 외칩니다. 날마다 새로운 주식시세표를 읽으며 날마다 새로운 고속도로 길흐름을 말하고 날마다 새로운 연예인 옆이야기에다가 사건이랑 사고 이야기를 자꾸자꾸 되풀이합니다.


  좀 따분할 텐데요. 퍽 지겨울 텐데요. 왜 숫자에 안달해야 할까요. 왜 교통방송을 들어야 할까요. 왜 남들 뒷이야기나 옆이야기를 구시렁대야 하나요. 왜 사건과 사고를 실어야 신문이나 방송소식이라고 여길까요.


  졸업장 때문에 다니는 학교는 얼마나 심심하랴 싶습니다. 자격증 때문에 다니는 학원은 얼마나 멋없으랴 싶습니다. 숫자놀음에 안달해야 하는 삶은 얼마나 딱할까요. 남들 호박씨 까느라 내 삶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슬픈 노릇일까요. 죽거나 다치거나 괴롭히는 이야기를 자꾸자꾸 들으면서 어떤 꿈이나 사랑을 길어올릴 수 있는가요.


.. 함께 간 며느리를 보고 / 아줌마는 누구냐고 묻는 어머니 / 함께 간 손자를 보고 / 총각은 누구냐고 묻는 어머니 / 내가 누구냐고 묻는 나에게 / 제 자식도 몰라보는 어미가 /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듯 / “둘째 아들 세훈이지” 또렷이 대답하신다 / 덧붙여서 간병인에게 / “우리 아들 시인이유”라고 소개까지 한다 / 시인! / 뇌경색과 극심한 치매를 / 앓고 있는 어머니가 / 나를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다니 ..  (오래된 생각)


  시집을 읽습니다.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았으나 노동자가 되었고, 노동자가 되었어도 품을 즐거이 팔지 못한 채 아픈 몸뚱이 부여잡고 살아야 하는 정세훈 님이 적어내린 이야기 깃든 《부평 4공단 여공》(푸른사상,2012)을 읽습니다.


  아프게 살아온 하루인 만큼, 아픈 이야기가 마디마디 흐릅니다. 슬프게 지낸 하루인 터라, 슬픈 이야기가 골골샅샅 흐릅니다.


  웃으며 살았으면 웃음을 이야기하겠지요. 노래하며 살았으면 노래를 부르겠지요. 그러나, 아픔도 이야기요, 슬픔도 노래입니다. 눈물도 삶이며 주름살도 사랑이에요.


.. 평생을 / 땀방울로 지새운 / 어머니가 / 나를 꽃봉오리로 남겨놓고 / 저 하늘로 떠나셨다 ..  (봄비가 떠난 아침)


  어머니는 땀방울이면서 눈물방울이었을 테고, 이슬방울이면서 빗방울이었겠지요. 어머니 사랑을 받아먹고 살아온 나 또한 땀방울이면서 눈물방울이에요. 나 또한 이슬방울이면서 빗방울입니다. 우리 아이들 또한 땀방울이면서 눈물방울일 테고, 이슬방울이면서 빗방울이겠지요.


  사랑이 고이 이어지면서 천천히 흐릅니다. 꿈이 살포시 잇닿으면서 가만히 흐릅니다.

  달빛이 내려와 우리 작은 집 지붕에 퍼집니다. 햇빛이 드리우며 우리 작은 마당 후박나무 잎사귀로 번집니다. 아이들 눈빛이 온 마을에 퍼집니다. 내 말빛과 숨빛이 내가 딛는 땅마다 차곡차곡 내려앉듯 번집니다.


.. 도시는 너무 춥다고 / 고향 산천으로 돌아가잔다 ..  (바람)


  사랑을 나누어 주셔요. 내 마음 즐거이 북돋울 사랑을 나누어 주셔요. 꿈을 나누어 주셔요. 내 가슴 촉촉히 적시는 꿈을 나누어 주셔요. 내 따사로운 사랑으로 이 겨울을 포근히 안아 주셔요. 내 너그러운 꿈으로 이 나라 아프고 슬픈 이웃들 살그마니 안아 주셔요. 434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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