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3
콘노 키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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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
 [만화책 즐겨읽기 154] 콘노 키타,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3)》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하고 잘 놀며 잘 지내자면, 어른 스스로 자연하고 가까이 지내면 됩니다. 자연을 닮은 아이들하고 사이좋게 놀며 사이좋게 지내자면, 어른부터 자연을 닮은 삶으로 고칠 수 있으면 됩니다.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한테서 자연을 떼어내니, 아이들은 아이다움을 잃습니다. 오늘날 아이다움을 잃은 아이들은 모두 자연하고 멀리 떨어지고 만 슬픈 얼굴입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싶으나, 아이들 어버이가 아이들을 자연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먹고 자고 입고 배우게 해요. 자연을 닮은 아이들한테서 자연스러움을 벗겨 물질과 문명과 교육과 제도권이라는 옷을 입혀요.


  어른들은 아이한테서 자연을 벗기며 무엇을 얻을까요. 어른들은 아이를 자연과 동떨어지게 하면서 무엇을 누릴까요. 어른들은 아이들 모두 어른하고 똑같이 자연을 모르거나 잊거나 짓밟거나 망가뜨리는 모습으로 크도록 내몰지 않나요.


- “반짝반짝 은하수다.” “응? 그 노래 말이구나. 대나무잎 살랑살랑.” (9쪽)
- “별님 손톱이다! 고마워, 리카코 고모.” “별 말씀을.” “아빠, 아빠, 예쁘지?” “사야 손톱은 아무것도 안 발라도 예쁘단다.” (10쪽)
- “비가 내리면 지상에서 별이 보이지 않긴 하지만, 구름 위의 사람들에겐 아무 문제도 없지 않을까?” (21쪽)
- “하늘은 점점 높아지고, 밤은 점점 길어지고, 까맣고 커다란 주머니 같은 밤하늘에 별빛이 초롱초롱 콕콕 박혀서, 가슴이 두근두근해.” (144∼145쪽)

 

 


  대통령 한 사람이 밀어붙일 수 없는 ‘4대강 사업’과 같은 토목공사입니다. 공무원 몇몇이 밀어붙일 수 없는 ‘국립공원 터널·케이블카 사업’과 같은 토목공사입니다. 재벌회사 몇몇이 밀어붙일 수 없는 ‘원자력발전소·화력발전소 새로 짓기’와 같은 토목공사입니다.


  토목공사를 꾀하는 어른 누구나 ‘해맑던 갓난쟁이’와 ‘싱그럽던 어린이’ 나날을 지났어요. 전쟁무기 만드는 데에 나라돈 펑펑 쓰는 이들 또한 티없던 갓난쟁이 나날을 지나 푸르던 어린이 나날을 보냈어요. 그런데 이들 모두 어른이 되어 토목공사와 전쟁질에 휩쓸립니다.


  이웃을 괴롭히던 어른도 갓난쟁이로 태어났습니다. 동무를 짓밟고 올라서려는 어른도 착한 어린이로 지냈습니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도, 좁은 골목에서 빵빵거리며 자동차 모는 사람들도, 입시지옥 굴레를 더 깊게 만드는 사람들도, 모두 사랑스럽던 아기였고 귀엽던 어린이였어요.


  그렇지만, 이들 어른 모두 슬픈 낯빛으로 살아갑니다. 이들 어른 모두 고단한 얼굴빛으로 살아갑니다. 왜, 무엇 때문에, 어떤 뜻을 이루려고 슬픈 낯빛이 되고 고단한 얼굴빛이 되나요.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들을 먹여살리려고? 식구들을 입히고 재우며 학교에 보내려고?


- “와아, 사야는 빠른 년생이라서 키는 작지만, 굉장히 야무지구나! 역시 하루카 동생이야!” “나도 깜짝 놀랐어.” (19쪽)
- “그래, 엄마 눈에는 아직 한참 어린애로 보일지도 모르지. 여자아이는 성장이 빨라서, 그만큼 더 소중하게 아껴 줘야 하는데 말이야.” “빠르지 않아. 사야는 우리 반에서 제일 작은걸.” “여자아이의 몸은 비밀을 숨기고 있단다. 지금은 남자아이들과 다르지 않아도, 조금씩 조금씩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앞으로 소중한 변화의 계절이 찾아올 거야.” (50∼51쪽)

 

 


  해 지고 어두운 저녁, 아이 둘을 하나하나 재웁니다. 둘 모두 더 놀려 애쓰고, 둘 모두 졸린 눈을 비비며 더 놀려 힘쓰다가는, 아버지가 자전거수레에 태워 밤자전거 마실을 하니, 먼저 둘째가 스르르 잠들고, 이윽고 첫재가 사르르 잠듭니다. 둘째는 집에 닿아 어머니가 품에 안고 자리에 눕혀 새근새근 재우려 할 때에 깹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품에 안고 자리에 눕혀도 깨지 않습니다. 둘째는 밤자전거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 두 시간 만에 비로소 잠듭니다. 한참 놀아 주고 한참 노래 불러 준 끝에 천천히 잠듭니다. 그래, 아이들은 실컷 놀지 않고서야 잠들지 않는가 봐요.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놀고픈 만큼 개운하게 놀아야 신나게 잠들는지 몰라요.


  아이들은 자연이니까요. 아이들은 자연과 같으니까요. 흐드러지게 놀고 흐드러지게 꽃피우는 아이들이라 할 테니까요. 해맑게 푸른 잎 틔우고 해맑게 꿈을 나누는 아이들이라 할 테니까요.


  모든 자연은 새벽에 기지개를 켜고 아침에 일어나며 낮에 신나게 움직이다가 저녁에 시나브로 잠듭니다. 모든 자연은 밝은 낮에 밝은 기운 뿜고, 어두운 밤에 새근새근 잠자며 쉽니다.


- “엄마랑 아빠도 너무너무 사이가 좋아서 신이 심술을 부린 걸까.” (24쪽)
-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걸 깨닫게 돼요. 난 사소한 일에도 짜증내고 화내고 언성을 높이는, 아직 부족하고 못난 엄마지만, 마음은 언제까지나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위로 뻗어 나가고 싶어요.” (58쪽)

 


  오늘은 마루문을 닫지 않고 모기문만 닫습니다. 마루문을 안 닫으니 시골집 둘레 무논마다 개구리 노랫소리 집안으로 한가득 들어옵니다. 마루에 서면 마당에 있을 적이나 논가에 설 적이나 엇비슷하게 개구리 노랫소리 우렁찹니다. 마루에서 방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 노랫소리는 살짝 잦아드는가 싶지만, 그래도 되게 크게 들려요.


  옆지기 코 자고, 두 아이 새근새근 자는 집에서 홀로 깨어 개구리 노랫소리를 즐깁니다. 아니, 나는 멀쩡히 깬 몸으로 개구리 노랫소리를 즐기고, 세 식구는 고단히 잠든 몸으로 개구리 노랫소리를 즐깁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내가 듣는 개구리 노랫소리도 좋지만, 깊이 잠든 식구들이 몸으로 받아들일 개구리 노랫소리도 좋으리라 느껴요. 생각해 봐요. 자동차 붕붕 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을까요. 술 얹힌 사람들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잠들 만한가요. 가게에서 튼 기계소리를 들으며 잠들기에 좋은가요.


- “사야, 너한테는 내가 있단다. 부족하지만 여자 선배로서, 리카코 고모는 언제든지 사야 네 편이야. 그러니까, 마음 놓고 쑥쑥 자라렴.” (51∼52쪽)
- “눈을 뗄 수가 없네요.” “네?” “어린아이들은 잠시만 눈을 떼도 변하는 것 같아요.” “네, 어린아이들의 시간은 단위가 다르니까요.” (54쪽)
- “어릴 때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도, 쓸데없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그런 시간도 성장하기 위한 에너지로 필요한 것 아닐까요. 성장이란 굉장해요.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뻗어 가는 거잖아요. 입에 넣는 밥 한 숟가락, 앞으로 내딛는 작은 한 걸음. 모든 것이 성장이라는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요. 키가 작은 만큼 대지가 가깝고, 키가 작은 만큼 하늘이 멀죠. 어려운 말을 모르는 만큼,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요. 어린아이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짧은 만큼, 시간은 천천히, 소중하게 흘러가는 거예요.” (55∼57쪽)

 

 


  잘 자는 식구들 이불을 여밉니다. 방 온도계는 25도입니다. 한국땅 남녘은 바람도 햇살도 한결 따사로운데, 시골마을 온도계는 그리 높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따로 부채를 안 쓰면서 즐거이 잠을 잡니다. 선풍기이든 에어컨이든 부질없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이든 이웃 시골마을이든, 집안에 선풍기나 에어컨 놓은 집을 못 보았어요. 모기그물 치고 문을 열면 아주 시원해요. 외려 썰렁하다 싶어 긴소매를 입거나 두툼한 이불을 덮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벌써부터 푹푹 찌든 무더위 밤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왜 무더위 밤이 되는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니, 지난 5월 첫머리에 경기도 파주 책도시에 한번 마실을 갔다가 푹푹 쪄서 죽는 줄 알았으니, 어느 만큼 헤아릴 만하기도 합니다. 흙땅 없이, 숲 없이, 나무 없이, 풀 없이, 냇물도 멧자락도 없이,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한 도시는 봄밤조차 무더위로 후끈후끈 달아오를밖에 없습니다. 작은 아파트나 살림집이나 가게라도 식힌다며 냉방기를 돌린다지만, 냉방기를 돌리며 바깥으로 내보내는 후끈후끈한 바람은 도시를 더 뜨겁게 달구고 맙니다. 그렇다고 냉방기를 안 쓸 수 없고, 그렇다고 자동차가 안 돌아다닐 수 없으니, 도시는 스스로 굴레에 빠져요. 도시는 스스로 어수선해지고 말아요. 도시는 스스로 죽음수렁과 같은 데가 되고 말아요.


  돌이켜보면, 밤에 별을 올려다볼 수 없는 곳은 사람도 여느 짐승도 푸나무도 목숨다이 살아갈 수 없구나 싶어요. 내 어릴 적 살던 도시이든, 첫째 아이 낳던 도시이든,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냈는지 참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무더위 그 후끈거림 그 땀내음 어떻게 견디었는치 퍽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골버스는 에어컨이 없어도 됩니다. 창문을 열면 시원합니다. 도시버스는 창문을 열지 않을 뿐더러, 아예 창문이 없기도 합니다. 고속도로 달리는 시외버스는 온통 통유리예요.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쐴 만하지 않으니까 창문을 못 열도록 만들어요. 도시에 있는 건물도 고속버스와 비슷해서, 창문을 활짝 열게끔 짓지 않기 일쑤예요. 햇살도 바람도 마음껏 스며들 수 없어요. 회사도 집도 학교도 가게도, 도시에서는 자연하고 너무나 동떨어져요.


-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바통을 이어서 달리면, 누구 한 사람이 늦어도 다른 사람이 금방 커버할 수 있구나.’ (116쪽)
- “우리가 어렸을 땐 거의 매일 밖에서 뛰어놀곤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위험이 가득하다는 것도, 어린아이가 이렇게 가냘프고 약한 존재라는 것도 몰랐어.” (138쪽)


  콘노 키타 님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오직 사랑을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홀가분하며 기쁘고 예쁜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을 읽으며 즐겁습니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첫째 아이가 머잖아 한글을 익히고 나면 혼자서 예쁘게 읽을 만한 만화책이 되리라 생각하며 참말 즐겁게 읽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을 수 있을 때에 씩씩하게 자라듯, 나는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책을 읽으며 씩씩하게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아이들은 자연과 가깝기에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보금자리에서 예쁘게 자라듯, 나는 아이들이랑 자연을 곱게 누리는 보금자리에서 자연스러운 넋으로 사랑을 가꾸도록 돌보면서 빙긋 웃습니다. 아이들 웃음은 어버이한테 스며들고, 어버이 웃음은 아이들한테 젖어듭니다.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은 자연을 살가이 보듬고,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을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자연을 사랑으로 맞아들이며 고운 꿈을 빛냅니다. (4345.6.4.달.ㅎㄲㅅㄱ)

 


―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콘노 키타 글·그림,김진수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6.15./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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