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 세상이 쓸쓸하고 가난할 때 빛나는 그들에게, 삶을 물었다
이승환 지음, 최수연 외 사진 / 이가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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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한 그릇 함께 나눌 이웃
 [책읽기 삶읽기 105] 이승환·최수연,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2009)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2009)라는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돈 버는 걱정’에 목매달며 살아간다 하지만, 막상 스스로 ‘돈 버는 걱정’에 목매달고픈 사람은 없구나 하고. 사람들 누구나 ‘돈 버는 걱정’이 아니라 ‘즐겁게 누리고픈 삶’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 아지매들에게는 유명한 사진가보다는 생선 한 마리 더 파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게는 알은체하지 않고 ‘니 맘대로 찍어라’며 가만히 놔두는 것이 고맙다 ..  (12쪽/최민식)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합니다. 왜 돈을 벌려고 할까요? 아주 마땅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돈을 쓰려고 돈을 법니다. 돈을 쓸 생각이 없다면 돈을 벌지 않아요. 이를테면, 어느 재벌회사 우두머리라 하더라도 돈을 쓰려고 돈을 벌지, 그저 쟁이기만 하려고 돈을 벌지 않아요. 1억을 쓰고 싶으니 1억을 벌고, 100억을 쓰고 싶으니 100억을 벌어요.


  곰곰이 따지면,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도 돈을 법니다. 돈을 써야 할 곳이 있으니 돈을 법니다. 돈 버는 걱정 때문에 돈을 벌지는 않아요. 이모저모 돈을 써야 할 곳이 있다고 여겨 돈을 법니다.


  그런데, 돈 쓸 곳을 여러모로 많이 만들지 않으니까 굳이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좋은 나날을 더 기쁘게 여기기에, 돈을 벌려고 애쓸 품보다 하루하루 마음껏 누릴 품에 더 마음을 기울입니다. 홀가분하게 누릴 삶이 좋지, 돈을 버느라 보낼 나날이 좋을 수 없어요.


  곧, 나는 나대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나대로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 이철수는 겨울에만 판화 일을 한다. 봄·여름·가을에는 들일만 한다. 겨울 동안 꼬박 판화에 매달려 100여 점을 만든다. 1년에 100점이라는 이야기에 ‘기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이철수는 ‘밥 먹고 하는 일이 이건데 도대체 그대들은 뭐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  (30쪽/이철수)


  우리 식구는 자동차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 식구는 자전거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식구는 자전거에 앞서 두 다리로 살아갑니다. 두 다리로 걷다가, 버스를 얻어타거나 택시를 잡아탑니다. 때로는 기차를 타 보고, 두 번쯤 비행기도 타 보았으며, 이렁저렁 배도 타 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자동차 없으면 퍽 힘들겠다고 여겨 버릇하지만, 젊은이도 늙은이도 꼭 자동차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잘 헤아릴 수 있으면 가장 즐겁습니다.


  곧, 무엇이 있어야 좋은 삶이 아닙니다. 무엇이 없으면 나쁜 삶이 아닙니다. 즐길 줄 아는 삶이 좋은 삶입니다. 누릴 줄 아는 삶이 예쁜 삶입니다. 생각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 때에 빛나는 삶입니다.


  더 있으니 좋을 수 없습니다. 덜 있어서 나쁠 수 없습니다. 하나를 누리든 둘을 누리든, 하나도 못 누리든 둘은 엄두도 못 내든 스스로 홀가분하게 생각하며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자동차를 얘기했지만, 멀리멀리 자주 나다녀야 한다면 자동차가 있으면 홀가분하겠지요. 그런데, 혼자 나다닌다 하면 자전거로 넉넉해요. 둘이나 셋이 나다닐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달거나 저마다 자전거를 몰면 돼요. 꼭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고, 어느 때에 맞추어야 하면 더 일찍 길을 나서면 됩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택시를 불러 짐을 싣고 달리면 돼요.


.. 먹을 것 아껴서 필름과 인화지 사는 처지를 빤히 알기에 극구 사양했으나, ‘손님 대접할 정도는 버니 걱정 말라’며 검지로 헛총을 놓고는 낡은 르망을 몰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는 따뜻한 삐딱이였다 ..  (45쪽/김영갑)


  밥 한 그릇 나누는 삶이란 남한테 밥 한 그릇을 내어주는 삶이 아닙니다. 나부터 내 몸을 살찌우는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하다고 느끼는 삶입니다. 나 스스로 밥 한 그릇으로 내 삶이 넉넉하기에 내 이웃과 동무한테 밥 한 그릇 나눌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밥 한 그릇으로 내 삶이 넉넉하다고 여기지 못하면,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 밥 한 그릇 내밀지 못해요.


  내 마음속에 사랑이 예쁘게 피어날 때에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두루 사랑을 나누어 줘요. 내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나지 못한다면 내 이웃은커녕 바로 나 스스로를 사랑으로 돌보지 못해요.


  그러니까,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에 나오는 이 땅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밥 한 그릇 넉넉히 누릴 줄 알면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라면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같은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값이나 가방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이러한 책에 실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참 얄궂다 해야 할 텐데, 오늘날 한국땅 사람들은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같은 책을 사다 읽으면서, 막상 이녁 삶은 ‘밥 한 그릇으로 넉넉히 살찌울 사랑’이 되도록 건사하지 않습니다. 삶을 살찌우는 길은 오직 사랑인 줄 머리로 안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지 않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아요.


..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시인들은 다 위대하며, 심지어 문학의 열병을 앓고 있는 문청들에게는 시인은 곧 하느님이다 ..  (117쪽/김용택)


  도시사람들이 아파트를 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아파트를 버리고, 아파트를 빌리거나 장만하느라 들인 돈으로 ‘마당과 텃밭 있는 작은 집’을 마련해 오붓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호젓하게 햇볕을 누리는 마당이 집마다 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게 햇살을 머금으며 돌볼 텃밭이 집마다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참말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사람들 누구나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좁은 틈바구니에서 시멘트랑 아스팔트에 둘러싸이지 말고, 숲과 그늘과 나무와 흙과 햇살과 바람과 냇물이 시원한 터전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빕니다.


.. “늘 내 운동의 마지막은 땅과 생명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예전에는 남녀평등, 노사평등을 외쳤으나 이제는 사람과 자연의 평등을 외쳐 나가야지. 이것도 지난날의 치열한 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운동이거든. 이러한 소박하고 잔잔한 움직임이 계속 번져 나가 큰 물결이 됐으면 해요.” ..  (243쪽/조화순)


  도시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4대강 반대’를 외칩니다. 그런데, 스스로 살아내지 않는 이야기를 목청 높이 외친다 한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4대강 반대’를 하자면, 참말 이 같은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치집권자 정책하고 맞설 만한 삶을 꾸려야 마땅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4대강 반대’를 하고 싶으면, ‘4대강 언저리에 작은 집을 얻어 작은 시골살림 누리면’ 돼요. ‘4대강 둘레 작은 땅뙈기를 장만해서 작은 살림 즐기면’ 돼요.


  시골 땅값은 도시 집값하고 견주면 매우 싸요. 시골에서 내 밭과 땅을 누릴 때에는 먹고 입으며 자는 품은 아주 적어요.


  사람들 스스로 누릴 줄 알고, 가꿀 줄 알며, 사랑할 줄 알면 돼요. 사람들 스스로 누리지 못하고 가꾸지 못하는데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정치집권자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요. 사람들이 온통 도시로만 몰려드는데, 아주 마땅히 이런 토목공사를 밀어붙이겠지요. 사람들은 온통 도시로만 몰려들었으니까, 시골에서 살아가며 참말 온몸 부딪혀 ‘4대강 사업 얼마나 나쁜 줄 알아?’ 하고 따질 사람이 없어요.


  통계나 숫자나 이론이나 비평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오직 내 몸뚱이로 움직이는 삶으로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요. 밥 한 그릇을 나누자면, 내 몸을 움직여 밥 한 그릇을 지어야지요. 밥을 하고 밥을 푸고 밥그릇을 내밀어야지요. 머리로만, 입으로만, 말로만 외친다 해서 어느 하나 이룰 수 없어요. 밥 한 그릇 나눌 이웃이 누구요, 밥 한 그릇 내밀 내 모습이 어떠한가를 슬기롭게 살펴야 해요. (4345.6.4.달.ㅎㄲㅅㄱ)


―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이승환 글,최수연·임승수·방상운·장기훈 사진,이가서 펴냄,2009.11.2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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